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덧붙임.

목요일은 일이 많아 10시만 되면 이미 아주 지친 상태가 된다. 다음 날 오전에 있을 라디오 방송 대본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제는 너무 피곤해져 일을 마친 후 곧장 잠에 들었다. 그리곤 오늘 새벽 4시에 깼다. 2시간동안 대략의 원고를 쓰고 쇼파에 드러누워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1년 전 내가 쓴 글이라는 포스팅이 먼저 보였다. 오늘 라디오에서 소개한 책이 <김수영의 연인>이었는데, 지난 해 같은 날에도 김수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음의 단단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지난 해 본색소사이어티에서 내가 옹졸하게 굴었던 일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신용준이 내게 김수영이 썼다는 문장 하나를 적어 보냈고 그게 퍽 위로가 되었다. 용준이 보낸 글은 김수영이 쓴 박인환 부고사였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고사치곤 야속하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이었는데, 그 옳음에 대한 강박적이라 할만큼의 태도가 좋았다. 그리고 1년만에 그 부고사를 다시 읽으니 다른 문장이 눈에 더 들어왔다. 


" "아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


나는 김수영과 박인환이 어떤 사이인지는 잘 모르지만 <김수영의 연인>에서 김현경 선생은 김수영이 박인환을 무시하게 된 계기가 마리서사에서 있었던 낭독회에서 박인환이 어떤 일본 작가의 글을 읽는 솜씨가 형편이 없다는 걸 본 후로부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건데 물론 단지 그 때문일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김현경이 쓴 이 책은 이렇듯 김수영의 내밀한 마음의 움직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그 김수영과 김현경이 가난과 어떻게 싸웠는지, 김수영이라는 한 인간이 사랑한 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볼 수 있다는 정도이지 사실 이 책에서 문학장에서 김수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누구와 대립했는지, 왜 그런 대립을 감내했는지 식구에게서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비화들도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솔직한 내 느낌은 김수영은 아마 외로웠을 것이고, 이 부부는 경제공동체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는 거다.(모든 부부가 경제 공동체적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내인 김현경도 김수영을 잘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부정적인 평을 해보면, 김현경 선생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라는 것을 인정 받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느껴졌다. 김수영에게 여러 여자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의 아내이고, 그간 저작권자로 행사하지 않아 인세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진정한 저작권자이고, 김수영이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데 필요한 생활 기반을 제공해준 것도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구성 면에서도 아쉽다. 사실 이 책의 1부와 3부는 거의 같은 내용이다. 1부는 3부를 조금 고쳐쓰면서 상세한 내용을 붙이고 3부에서 가명으로 처리되었던 인물명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했다. 3부는 90년대 중반인가 어느 여성지에 나간 글인데 그 때는 당사자들의 실명을 공개하기 어려운 맥락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생활인 김수영의 민낯을 보고 나니 그의 시가 달리 읽히는 맛이 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김수영이 반성적으로, 무겁게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광적으로 흥분하면서, 아내를 괴롭게 만들정도로 신경질적으로 써내려갔다고 생각하고 시를 읽어보니 느낌이 새삼스럽다. <만용에게>도 양계일로 쩔쩔매며 써내려간 글이라고는 이전에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어째서 김수영이라면 밥벌이와 문학은 간단히,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하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방송에서는 흥미 위주로 소개했다.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를 위주로^^.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1.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책읽는 오두막에서 만들고, 김현경이 쓴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책입니다. 시인 김수영을 많은 분들이 아실텐데요, 이 책의 저자인 김현경 선생님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입니다. 이 책에는 김수영의 생애, 김수영의 문학 세계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인의 아내로 살아온 김현경 선생의 곡절 많은 삶이 마치 드라마와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 그리고 김수영과 김현경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얼마 전에 윤동주 시인을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했었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기에 손색이 없다, 오히려 <동주>보다도 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2. 김수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시죠. 혹시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지요.


네, 김수영 시인은 1921년에 태어나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아픈 시기를 살았던 한국 문학계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입니다. 도쿄상대에 입학했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게 되어 학교를 마치지 못합니다. 광복 이후에 연희대 그러니까 지금의 연세대 영문과로 편입했지만 중퇴하고 맙니다. 6.25 전쟁 때는 의용군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52년에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신문사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번역일을 했는데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는 도시 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썼지만 4.19 혁명 이후부터는 현실 비판과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집중적으로 쓰게 됩니다. ‘풀’,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같은 시가 김수영의 대표적인 시인데요, 모두 이 시기동안에 쓰여진 시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볼 때 반 고흐가 떠오릅니다. 연인을, 동생을, 자연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사랑하며 그림을 그렸던 반 고흐처럼 김수영 시인도 한 여인을, 인간을, 우리 사회를 정말 뜨겁게 사랑하며 시 쓰기에 매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도 닮았습니다. 가난과 싸우다가 반 고흐는 3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는데요, 김수영 시인도 엄혹한 한국 사회의 격변기에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가난과 싸우다가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3. 그렇다면, 이 책의 작가인 김현경 선생님께서도 김수영의 아내로 살면서 김수영과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은 것이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 책을 보면요, 김현경 선생이 김수영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5월이었다고 해요. 김현경 선생이 아직 여고생이던 15살 때 당시 22살이던 김수영을 처음 만나거지요. 물론 그 때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구요, 해방 후 다시 김수영을 우연히 명동 거리에서 만나게 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 때의 과정이 이 책에 정말 재밌게 소개되는데요, 오늘은 김수영 시인의 문학 세계보다는 김현경 선생과 김수영 시인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책의 내용을 좀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김현경 선생님은 그 당시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시인 배인철과 사귀고 있었다고 해요.  배인철 교수와 김현경 선생이 명동에서 데이트를 한 것을 본 김수영이 그 다음 날 새벽 느닷없이 구둣발로 김현경 선생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고 해요. “어떻게 넌 말 뼈다귀 같은, 정체불명의 엉터리 같은 놈과 사귀어? 넌 어찌 그렇게 우둔해? 응? 내가 꼭 말로 사랑해야 한다고 해야 돼? 그래야 꼭 알겠어?” 하더라는 겁니다. 

 사실 배인철 시인은 그렇게 말 뼈다귀 같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니혼대학 영문과를 나와서 해양대 교수를 하고 있었고, 당시 사람들이 한복 아니면 군복을 염색해서 입고 다닐 때 영국 신사처럼 수트를 입고 다닐 정도로 기품이 있고 멋졌다고 해요.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 김수영이 끼어들어서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1947년 5월 두 사람이 장충단 공원을 걷고 있을 때 괴한이 나타나 두 발의 총을 쏩니다. 한 발은 김현경 선생의 옆구리를 관통하고, 다른 한 발은 배인철의 두개골을 관통하면서 결국 배인철은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리고 맙니다.


4. 아, 벌써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 같은데요, 배인철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나고 만거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었을까요?


 그렇죠? 김현경 선생님도 배인철이 죽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배인철은 남로당의 주요멤버였다고 해요. 배인철은 부친께서 인천에서 통운회사를 운영할 만큼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그가 남로당 멤버일 거라고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못했던 거죠. 당시 경찰은 오직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김현경 선생의 주변 남자들을 불러 들여 고문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고초를 당한 것이 김수영 시인이었다고 해요. 

 아마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확인된 것이겠죠. 이 일이 있고나서 김현경 선생님은 이화여대에서 제적이 됩니다. 연애금지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죠. 김현경 선생이 가택구금을 당하고 있을 때 김수영은 태연히 찾아와 김현경 선생에게 시를 쓰고 문학을 하라고 열변을 토하고는 돌아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5.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시작된 거군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해요. 이 두 사람이 노량진 종점에서 백사장을 따라 여의도 쪽으로 걸어가다 여의도 섬 한 가운데 얕고 넓은 웅덩이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숨이 막힐 만큼 더운데 맑은 웅덩이를 보더니 김현경 선생이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원피스와 속옷 마저 벗고 알몸으로 물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김수영도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하다가 결국 옷을 벗고 뛰어들어 갔는데요, 아무도 없는 여의도 섬 한복판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제 정신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한밤 중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고문을 당해도 태연히  찾아가서 데이트를 즐긴 김수영도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김현경 선생님도 보통이 아닙니다. 학칙을 어기고 연애를 해서 퇴학을 당하고, 옷을 벗고 웅덩이에 뛰어 들어가고..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학을 하려면, 혹은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유로운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마음껏 표현하는 태도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에 한국 문학의 가장 높은 곳까지 김수영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6. 여의도에 인적이 없는 웅덩이에서 옷을 벗고 헤엄을 치다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지금처럼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여의도를 생각해보니 더 꿈 같은 이야기처럼 들려요. 그런데 이 때가 1948년이라고 하셨잖아요? 6.25가 터지고, 김수영 시인이 포로가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계속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사실 6.25가 터지기 전에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이뤄지기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먼저 두 사람의 집안 배경 자체에 차이가 많이 났어요. 김현경 선생의 아버지는 경기고 출신의 사업가였고 일제 시대에 훗카이도에 골프를 치러 다닐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총독부가 진행한 만국박람회의 기획자이기도 했구요, 광산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김수영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김수영의 어머니는 유명옥이라는 설렁탕집을 했구요, 그래서 가난했지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김수영은 치질이 아주 심했다고 해요. 항문에서 터져 나오는 고름을 김현경 선생이 짜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치질 치료 때문에 병원비가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까 김현경 선생이 집에 있는 비단을 몰래 팔다가 잡혀서 아버지가 방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해요. 그래도 항문에 고름까지 짜주는 사이를 어느 누가 가를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결혼식도 하지 않고 살림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그렇게 시작했다고 해요. 


7. 그렇네요. 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흥미진진하네요. 


 이후에도 어려움은 많았습니다. 김수영이 길거리에서 인민군에게 징집되고, 여차저차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가게 되는데요, 그 때는 이미 첫 아들을 낳은 이후라고 해요. 죽은 줄만 았던 김수영이 1952년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통에 모두들 너무 가난해서 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수영은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통역이나 번역일을 했지만 그걸로 밥벌이는 어림도 없었고, 자식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김현경 선생은 자신에게 김수영을 소개시켜 준 이종구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취직을 부탁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이종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종구는 일자리는 알아봐 주지 않고 김현경 선생을 자기 집에 잡아두고 보내주지를 않습니다. 탈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시하며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렇게 김현경 선생은 이종구와 함께 살게 됩니다. 


8. 아, 그러면 두 사람 간의 진짜 시련은 전쟁도, 가정도 아니고 가난이었던 것이네요. 


 그렇죠. 결국 가난 때문에 이종구에게 붙잡혀 있었던 거니까요. 이종구는 집요하게 김현경 선생에게 자신과 혼인할 것을 요구하고 김수영과 이혼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결국 김현경 선생도 김수영에게 찾아가 이혼도장을 달라고 했더니 김수영이 도장을 줬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도장을 이종구에게 주려고 하니 도저히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도피에 도피를 거듭해서 이종구를 탈출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죠? 

 전쟁이 끝나고도 가난한 삶은 계속되었다고 해요. 혹시 김수영이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이 때 쓴 시가 <만용에게>라는 시입니다. 제가 조금만 읽어보겠습니다.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지

모이 한 가마니에 사백삼십원이니

한달에 십이, 삼만원이 소리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육십개 밖에 안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 값이 

일주일에 육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칠할을 낳아도

만용이의 학비를 빼면 

아무 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이하 생략)


시 내용 중 일부인데요, 김수영이 번역일을 해서 벌어들인 작은 돈을 양계장 하면서 모두 닭이 먹었다고 해요. 주로 생활은 김현경 선생이 책임을 진 것 같아요. 양장점을 운영했는데, 꽤나 유명했다고 해요. 그런 생활 끝에 김수영은 1968년 6월 15일, 술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치여 죽고 맙니다. 사실 이것도 가난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돈이 급해 김현경 선생이 김수영에게 번역한 원고료를 선불로 받아오라고 채근했었다고 해요. 그걸 받아오다가 변고를 당하게 된겁니다.


9. 김수영 시인이 마지막으로 쓴 시가 ‘풀’로 알고 있는데요, 두 사람의 사랑, 김수영 시인의 불꽃 같은 생애를 더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에게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주시죠.


 최근 김수영 시인이 한국 문학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작가냐를 두고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소동은 대부분 김수영의 문학보다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겁니다. 김수영이 생전에 보였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사람들이 김수영의 문학까지 폄하하는 건데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김수영의 깊고 넓은 시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시라는 것은 정치적 의미, 종교적 의미를 따지며 읽는 것이 아닙니다. 알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듯 시를 입 속에서 천천히 굴리며 시적 언어를 경험하는 거죠. 이 책에는 김현경과 김수영의 러브 스토리 뿐 아니라, 근대를 살아오면서 여자로서 자신의 문학적 꿈은 포기하고 남편의 문학적 성취를 지원했던 한 여성의 삶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현경 선생이 뽑은 김수영의 시와 그 시에 얽힌 뒷이야기들이 있어 김수영의 시를 알사탕처럼 입에 굴리는 맛을 더해줍니다. 요즘 시를 읽는 독자들이 너무 적어졌다고 해요. 입에서 알사탕을 굴릴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까요? 부디 이 책을 통해 시를 읽는 5월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에 소개드리게 되었습니다. 

교통방송, 김수영, 김현경, 김수영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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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아이가 좀 처진대요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 때 나를 학교에 보내셨다. 덩치는 컸지만 용기는 부족했던 나를 학교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때는 몰랐는데 학교에 자주 드나 드신 것을 못마땅해 하셨던 아버지와 다툼도 많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공터에는 늘 아이들이 모여 딱지를 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어린 내가 행여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질의 종이를 접어 딱지를 만들어주셨다. 은행에서 나눠주는 빳빳한 달력 종이는 힘도 좋고, 쉽게 터지지 않아 딱지판에서 귀한 몸이었다. 달력을 모두 딱지로 만들어 신발가방에 챙겨 넣은 후 어머니 손에 끌려가다시피 딱지치기를 하러 나갔다. 동네 아이들은 딱지치기에 한창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덩치가 나보다 작았던 한 아이를 데려오셨다. 그게 내 딱지판 데뷔전이었다. 첫 번째 딱지는 단 두 번 만에 넘어갔다. 두 번째 딱지도. 세 번째, 네 번째, 그 이후에도 딱지를 연달아 잃었고 쉽게 달력딱지를 딴 녀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그 아이 곁으로 가 1,000원짜리를 건넸다. 한번 져주라는 뜻이었다. 어머니께 ‘매수 당한’ 아이는 이제 내 딱지를 넘길 마음이 없다는 양 딱지가 아닌 바닥을 향해 딱지를 내리쳤지만 딱지판 새내기인 나는 아무리 힘껏 내리쳐도 그 녀석의 딱지를 넘길 수 없었다. 이미 닳고 닳은 그 아이의 딱지는 달력으로 갓 만든 내 딱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과의 접착력이 좋아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넘기지 못하자 그 친구는 재미없다며 자기 딱지를 챙겨 들고 자리를 옮겨갔다.

그 이후로 다시는 딱지치기를 하러 가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락실도 다니지 않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고, 자라서는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도 하지 않았는데 착실한 아이여서 라기보다 안 될 싸움은 처음부터 하지 말자는 심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끝까지’ 놀아본 경험이 없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면 싸우지 않으려 했다. 질 수도 있는 싸움은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질 수밖에 없더라도 해야 하는 싸움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사에 끝을 보지 못하는 성급함은 끝까지, 끝을 볼 때까지, 울면서 매달리고, 힘겹게 어떤 지점까지 도달해 보려는 경험, ‘딱지치기의 끝’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새로운 유치원을 가기 전날 밤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림도 잘못 그리고, 영어도 못하고, 축구도 잘 못해.” 아이 유치원에 가보니 아이의 그림은 옆에 걸려있는 다른 아이 그림보다 못하다. 공차기도 뭔가 어설프다.

“댁의 아이가 반에서 좀 처진대요.”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들은 말이다. 순간 어질했다. 집에 돌아와 일곱 살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야 할까, 이제는 축구 교실에라도 보내고, 노는 것도 ‘뒤처지지 않도록’ 놀이교실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영어도, 수학도 안 가르쳤으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축구교실 대신 친구들과 축구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뒤처진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어머니는 딱지치기에서 이기게 도와줄 수 있는 ‘딱지치기 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1,000원을 건네서라도 이기게 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아빠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가 왜 그러셨던 것인지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내 아이가 지는 것을, 져서 속상해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새로운 유치원이 어떤지 물었다. 재미있단다. 축구도, 영어도 잘 안 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고 한다. 내일도 또 할 거라고 했다. 아이에게 이기는 경험을 줄까,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경험을 줄까. 이럴 때 육아가 힘들다.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싸움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고귀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꼭 이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육아를 위해 매수금 1,000원이 필요하지도, 너무 많은 용기도 필요하지 않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2016. 4.28 한국일보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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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딥마인드


 페이스북 친구의 일곱 살 아이는 수학 퀴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자동차 번호판의 네 자리 숫자 각각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해서 아빠가 정해준 숫자를 만드는 게임을 즐긴단다. 예를 들면, 아빠가 정해준 숫자가 50이라고 하자. 아이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이 ‘5796’이었다면 아이는 (5×7)+9+6이라고 답하면 된다. 먼 길을 갈 때도 아이는 자동차 번호판으로 숫자와 씨름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단다. 다만 걱정도 있다고 하셨다. 번호판이 ‘9083’인 경우에 (90÷2)+8-3이라도 50이 될 수 있는데 아이는 9와 0을 조합해서 90이 될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나누기는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라고 했다.


 글을 읽고난 후 번호판을 가지고 그런 놀이를 만들어 낸 친구도 기발하고, 그런 놀이를 즐겨한다는 아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자 그런 생각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동네 도서관에 보드게임을 하러 가자고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앞 도서관에 가면 수십 종의 보드게임을 무료로 할 수 있다. 아이가 먼저 선택한 게임은 ‘쿼리도’였다. 우리 모두 처음 접하는 게임이었지만 규칙은 어렵지 않았다. 먼저 가로 9칸, 세로 9칸으로 된 게임판의 반대편 양 끝 줄에 각자의 말을 서로 마주 보게 세워둔다. 그리고 게임판에 세울 수 있는 9개의 나무 조각을 이용해 상대 말이 내 말이 처음에 서 있던 반대편 줄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누구든 먼저 상대 말이 서 있던 줄까지 도착하면 이기는 거다. 나는 아이가 움직이는 말을 막으려 나무 조각을 무리해서 세우다가 번번이 게임에서 졌다. 일부러 져준 게 아니다. 정말 내 꾀에 빠져, 그리고 아이의 수를 간파하지 못하여 진 것이다. 




 아이가 다음으로 가져온 건 ‘숫자의 강’이라는 게임이었다. 게임판에는 숫자가 1부터 100까지 적혀 있고, 우리 각각은 6개씩의 집을 나눠 갖는다. 그리고 카드를 두 번 뽑게 되는데, 처음 뽑은 카드에 적힌 숫자에 그 다음 뽑은 카드에 적힌 숫자를 더하거나 빼서 나온 숫자에 자기 집을 세운다. 예를 들면 처음 뽑은 카드에는 ‘10’이 적혀 있고, 다음으로 뽑은 카드에는 ‘-7’이 적혀 있다. 그러면 게임판에 ‘3’이라고 적힌 곳에 집을 세우면 된다. 두 사람 중 먼저 여섯 개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먼저 아이가 카드를 뽑았다. 처음 뽑은 카드에는 ‘93’, 다음 카드에는 ‘-17’이 적혀 있다. 아이는 엉뚱한 답을 냈다. “85? 86이야? 몰라. 하기 싫어. 다른 것 할래”. 그때 갑자기 페친의 아이가 떠올랐다. 곱하기, 나누기도 한다는데.. 뭔가 모를 오기가 생겼다. “안돼. 다시 해 봐”. 아이는 다시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겨우 답을 냈다. 다시 아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53’이 적힌 카드와 ‘-10’이 적힌 카드다. “이번에는 쉽지? 53에서 10을 빼면 얼마일까?”. 아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아빠, 44야?”. “아니”. “45?, 46?”. “야! 53에서 10을 빼는데 어떻게 45야? 정신 안 차릴래?”. 아이는 갑자기 화를 내는 아빠를 보고 얼어 붙었다. 눈물이 맺혔다. “아빠, 43 맞아?”.


 대관절 큰 소리가 나자 사서가 들어왔다 나갔다. 안 배웠으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아이가 수학과 결국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날은 참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10을 못 뺄까. 10을 빼는 건 1을 빼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것 아닌가? 내 아이는 수학머리가 없는 걸까?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하루 종일 수학 문제를 풀게 만들었다. 노트에 두 자리 숫자를 적어주고, 내가 어릴 적 내 어머니께 배운대로 계산법을 가르쳤다. 아이는 금방 요령을 익혔다. “37에서 46을 더하려면 먼저 7과 6을 더한 13을 적어. 그런 다음에 3과 4를 더해 나온 7을 앞의 자리 1과 더해줘. 그러면 83이 되지? 쉽지?”. 그리고 그날부터 구구단도 외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5단까지 외웠다. 집에 쌓아둔 수학 문제집도 모두 풀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아이는 이제 구구단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나도 아이가 수학 머리가 영 없진 않구나 안도하는 사이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4에서 8을 곱하면 왜 32인거야? 곱한다는 게 뭐야?”.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다시 물었다. “7하고 6을 더해서 나온 13에서 앞자리 1과 3에서 4를 더한 7은 왜 더해주는 거야?”. “몰라. 그냥 아빠가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어”. 




 아이를 재우고 나자 자책감이 몰려왔다. 오늘 나는 교육이 아니라 고문을 한 것이리라. 돌이켜 보니 아이가 53에서 10을 빼는 것이 8을 빼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 당연했다. 아직 손가락 계산기가 필요한 아이에게 10을 빼는 것은 앞자리 5를 4로 바꾸면 되는 간단한 계산이 아니다. 53부터 52, 51, 50... 44, 43. 그렇게 하나씩 열 번을 빼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8을 빼는 것보다 복잡한 계산이 되는 것이다. 수학 문제집도 아이 혼자라면 결코 다 풀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관점에서야 아이들이 푸는 수학 문제는 너무 단순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읽고서 거기에 제시된 방식에서 패턴을 찾아 답을 하기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아이가 문제를 읽고 패턴을 찾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답을 찾는지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원리를 찾을 시간도 주지 않았고 유치한 시기심에 요령부터 가르쳤으니, 내 아이를 알파고만도 못하게 취급한 것이다. 구글에서도 알파고가 ‘경험’을 통해 알고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학습의 기회를 줬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한낱 계산 능력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고가 필요한 쿼리도도 아이에게 못이기는 아빠인데, 아침에 일어나더니 그래도 “아빠가 최고”란다. 잠깐 페친의 아이가 최고라 생각한 아빠부터 정신을 차려야겠다.


-2016.5 키자니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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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 우리가 꿈꾸던 마을이 펼쳐지고 있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박재동 글.그림 김이준수 글,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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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책 소개 방송을 한지 6개월이 흘렀다.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다음 주에 소개할 책을 정하고, 쫓기듯이 읽고, 대본을 준비하고, 방송국에 가서 방송을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해온 책 소개는 줄거리 정리에 가깝다. 부끄럽다. 나는 생방송에 나가서 책을 소개하지만 사회자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내가 사전에 준비한 대본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나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전할 기회는 거의 없다. 대본을 준비하면서 말로 할 것을 글로 쓰게 되니 생생한 감상은 떨어져 나가 버린다. 13분 내에 책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인상 비평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터넷 서점이나 영화 리뷰에 해당되는 100자 평을 라디오판으로 하는 셈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선 형식상 어떻게 해야 잘하는 소개인지 잘 판단이 안선다. 

 다른 어려움도 있는데, 책 소개라는 것을 왜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누가 이 방송을 듣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듣는다고 하더라도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가 내가 소개하는 책에 흥미를 가져 읽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물론 내가 소개하는 책을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실 나 조차도 누가 소개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남이 소개한 책까지 어떻게 읽나. 그러면 책 소개 방송에서 내가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책이 있다는 정도를 알려주려고? 아니면 책을 빌미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시간을 적당히 채우기 위해서? 혹시 그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렇게 생각하면 좀 우울해진다. 이 코너의 이유는 못찾겠지만 내가 이 방송에 나가는 이유는 있긴 하다. 이렇게라도 한 주에 한 권을 이 방송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의외의 책을 읽고 만나는 작은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들었던 책방송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었다. 김영하는 팟캐스트의 특성을 이용해 시간 제약 없이 아예 책을 읽어주는 방송을 했는데, 귀로 듣는 책이라는 점에서, 믿을 만한 소설가가 선택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존재 이유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이 방송이 오랫동안 업로드되고 있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빨책>은 믿을만한 평론가이자 독서가인 이동진과 좋은 작가인 김중혁이 책을 중심에 두고 나누는 대화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독서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독해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칫 묻힐뻔한 좋은 책을 건져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존재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책을 소개한다는 것을 어떤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준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영하는 주선자가 나가지 않고 소개 받을 사람만 약속장소에서 만나게 하는 방식이라면, 이동진은 주선자가 소개팅 장소에 상대가 나오기 1시간 전에 나가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방식이다. 어느 방식이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방송은, 내가 믿을만한 작가도 아니고, 섬세한 독해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책에 대한 선정 기준도 모호하고, 책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도 아니라 이 방송이 왜 필요한지 이유를 잘 찾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성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초보 결혼정보회사랄까. 심지어 돈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동욱 선생이 하는 말로 위안을 먼저 삼겠다. 


"시작(詩作)이란, 홀로 훈련하는 운동선수가 오직 스스로에게 몰두하는듯하지만 기실 자신의 의식과 상관없이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듯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수백 개 째 혼자 공을 던지는 투수의 훈련에서 오로지 의식되는 것은 자신의 구질이지만, 다른 한편 그의 공을 쳐낼 자를 의식의 바깥에서 필연적인 근거로 삼으며, 패스를 연습하는 축구 선수는 공의 향방만을 의식하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패스를 받을 자를 필연적인 근거로 삼는다. 우리가 공동체를 인식하기 이전에, 우리의 실존은 공동체를 향해 이미 개방되어 있으며, 이 개방성은 타자를 향한 영원한 운동으로 표현될 것이다. 우리는 고독할 새가 없다기보다도 고독을 통해서조차 공동체를 향해 나간다. 따라서 표면에 나타난 형태가 나이건 너이건 어떤 것이건 간에 시를 주관하는 근본적인 화자는 '우리'이다." (<곡면의 힘>, 123~124쪽))


나는 시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개 째 혼자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책을 소개하는 내 목소리를 전파에 실어 보낸다. 공동체, 내게는 이 라디오를 듣는 지역의 청취자들을 희미하게 의식하면서. 물론 시와 같이 이런 책 소개가 우리의 언어를 교란하며 세계를 고양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성찰이 아니라 책의 소중한 성찰의 빛이 조금 더 구석구석까지 미치도록.


이번에 소개한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은 지난 플레이어스 포럼에서 만난 김이준수님께 선물받았고, 김이준수님이 쓰신 책이다. 어린이날에 마을을 선물하자는 취지로 대본을 썼다. 저 이에게 소개할 여기 이 멋진 이를 주선자의 눌변과 우둔함으로 가려지지 않기를, 이 책이  담고 있는 소중한 성찰이 내가 살고 있는 대구도 비추길 빌 뿐이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1.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샨티에서 만들고, 김이준수가 쓰고 박제동이 그린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박제동 선생님은 만화를 그리시는 분이시죠? 이 책의 삽화를 그려주셨구요, 김이준수 선생님은 늘 본인을 ‘커피 노동자’라고 하시는데, 과거에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계시다가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쓰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대부분의 글은 김이준수 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이 책에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으로 만든 20가지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책을 읽는동안 부끄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2.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권영민씨가 부끄러움을 느끼실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는 잘 짐작이 되지 않는데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네,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이웃을 만들며 정말 재미있게 살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5년 째 살고 있구요, 대학 가기 전까지 10대 전부를 대구에서 살았는데도 주변 이웃들의 이름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잘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 이웃이 없다는 점이 부끄럽게 느껴진거죠. 사실 그럴만도 한게 저는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웃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 책에 소개된 파크리오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파트에서도 이웃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주거 유형의 60%가 아파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웃을 만든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시죠? 저도 처음에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일텐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상상이 꼭 허황되거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방 파크리오맘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파크리오맘은 ‘파크리오’는 서울 잠실에 있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임유화씨의 별명입니다. 임유화씨는 분당에서 2006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요,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굉장히 우울했다고 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예전 친구들과 만나기도 어려워지게 되죠. 저 역시도 아이를 낳은 후부터 관계면에서 고립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임유화씨는 파크리오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기혼 여성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고 해요. 매일 두 시간 이상 관리하면서 회원을 모았고, 2009년 봄에 ‘새봄 초록 파티’라는 파크리오맘 1회 정기 모임까지 개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원수가 많아지니까 지금 이 카페에서는 30-40개의 동호회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구요, 4월, 9월에는 오프라인 벼룩시장을 여는데 처음에는 공간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10회 이상을 하게 되면서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파크리오 단지의 행사로 받아들이고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요. 심지어 파크리오맘 카페에서는 ‘기부 릴레이 드림’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는데요, 한 회원이 자신이 쓰던 식탁을 버리려고 하는데 혹시 필요한 분이 있느냐고 글을 올리고 다른 회원이 혹시 받아가면 파크리오맘의 기부통장에 두 사람 이름으로 1000원이 기부금으로 적립된다고 해요. 그리고 식탁을 받은 회원은 한 달 안에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물건 중 무엇이든 기부를 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기부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나눔 음악회를 하고 엄마들이 재능기부를 해서 연간 무려 4000만원 정도나 되는 큰 금액을 국내외 아이들에게 기부까지 한다고 해요. 


4. 파크리오맘이라는 한 사람의 상상이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낸거군요.


제 아이가 두 살 때인데요, 그 날 제가 아이를 보고 있는 중에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제가 중요한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전화를 받고 놀라 15분만 기다려 달라, 금방 가겠다고 하고선 제 어머니와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무도 대신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에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당황해서 결국 유모차를 밀고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아이가 자꾸 우는 통에 미팅은 사실 엉망이 되었는데요, 그날 누군가가 아이를 봐줄 이웃이 한 사람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파크리오 아파트에서는 그게 정말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임유화씨가 깊은 잠에 들어 아이가 초인종을 눌러도 듣지 못하고 전화도 꺼져 있었는데, 아이가 울면서 놀이터에 가자 놀이터에 있던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달래며 함께 있어주고 저녁밥까지 먹여주며 돌봐주고 있었다고 해요. 어제가 어린이날이었는데요, 아이들이 가장 자라기 좋은 세상은 이런 이웃들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선생님은 아이를 정말 키우고 싶다면 답은 하나 뿐이라고 합니다. “부모 외에 신뢰하는 어른들이 있고, 아이가 원할 때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놀이터와 도서관과 단골가게가 있는 환경에서 키우면 된다”는 거지요. 즉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랑하며 늙어갈 수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린이날이라서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사주게 되는데요, 어쩌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마을’이 아닐까 해요. 


5.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어린이날이라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장난감 선물을 하게 되는데요, 부모 외에 신뢰하는 어른들이 있는 마을을 선물한다니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런 마을을 파크리오맘은 자녀에게 선물한 셈이네요.     


이 책에서 김이준수 선생님은 우리가 마을에서 ‘놀고, 먹고, 모이고, 협동하고, 말하고, 예술하고, 교육하고, 일한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서울에 ‘삼각산재미난마을’이라는 곳 혹시 아세요? 얼마나 재미있으면 마을 이름이 ‘재미난’ 마을일까요? 재미난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부모들 몇 사람이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해요. IMF가 닥치니 실직이 늘어나고,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육아 문제가 지금처럼 사회 문제로 부각될 때 몇 사람들이 모여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린이집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니까 이 아이 부모들이 초등 교육도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겁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지닌 재능과 상관 없이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받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도록 내몰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배운 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는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삼각산재미난학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이게 삼각산재미난마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획일적인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들이 직접 학교까지 만든다..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인데요, 지금도 그런 교육이 정말 가능한지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시죠? 재미난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도 가르치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요. 텃밭 가꾸기, 재래시장 마실, 골목 사진찍기 등을 하는거죠. 자기 소변을 썩혀서 거름으로 텃밭에 쓰고,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은 날씨에 민감해질 겁니다. 학교에서는 이론으로만 배우는 대자연의 순환을 재미난 학교의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는 거죠. 재미난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에게 높임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학생은 반말로 자기 의견을 교사에게 말하는데요 수평적인 관계일 때 교육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겠죠. 


7. 아이들이 정말 마을에서 배우고, 자라고 있는 거네요. 그런데 ‘마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뭐부터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마을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몇 해 전부터 아이들 놀이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인데도 놀이터가 하나 밖에 없고, 눈비가 오거나 너무 춥거나 더우면 아이들이 놀 공간이 돈을 내고 가는 키즈카페가 아니면 별로 없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놀이 문제가 정말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성로에 한번 가보세요. 놀이터가 없습니다. 놀이터가 없다는 것은 아이들 데리고 올 생각하지 마라는 겁니다. 요즘은 마트에도 놀이터가 있는데, 대구 시내에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저도 이리 저리 뛰어다녔는데 이게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저는 이 책을 보면 제가 놀이터 만들기를 하기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요, 먼저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아빠와 만나고 대화 나누고 집에 초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정말 살기 좋은 마을들은 원래부터 있었던 곳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웃이 없어서, 외로워서, 집이 너무 비싸서, 아이들 교육하기가 좋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자기 집과 가게로 불러 모으고 이야기 나누고 대화하면서 학교와 도서관이 세워지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밥을 지어먹는 마을 부엌이 생기고, 마을 신문과 방송이 생기고, 놀이터가 만들어지더라구요. 좋은 마을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한 사람의 꿈이 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협력할 때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자랄 수 있는 강한 마을이 자랄 수 있는거죠. 좋은 마을은 부동산 가치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면 범죄의 가능성도 훨씬 줄게 됩니다.


8. 이웃이 있는 좋은 마을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는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번거로운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걱정도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네, 저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모든 분들은 “불편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울에서 한 개인이 일평생 일을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은실이네는 여성 5명이 모여 사는데요, 한 사람 당 방 하나씩을 쓰면서 주방 거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요. 서울에서 주거비용을 원룸에서 지내도 최소 65만원이 드는데, 은실이네 하우스에서는 일인당 30만원으로 임대료, 생활비가 다 해결되는 거지요. 물론 그런 경제적 이점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내 아이 이름을 아는 마을은 보안을 이유로 문 걸어 잠그기에 바쁜 아파트, 저택보다 훨씬 더 이점이 많겠죠.


9. 말씀을 들으며 책의 제목처럼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은데요, 끝으로 정리해주시죠.


 어제가 어린이날, 곧 있으면 어버이날인데요, 어린이와 노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이 있으면 내 아이를 여러 사람이 돌보기 때문에 안전하고, 친구가 있기 때문에 노인분들도 외롭지 않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마을들에서는 시장이 열리고 축제가 생기고 아이들이 다시 골목을 뛰어 다니고, 한 동네에 사는 아저씨와 못 보던 아저씨를 아이들이 구분하고, 서로가 서로의 별명을 부릅니다. 주택을 재산으로 생각하면 돈은 벌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기쁨은 알려줄 수 없고, 우리 부모님들이 노년을 외롭게 보내게 만드는 것일 수 있죠. 서울 통계지만 서울 시만은 2년 이내에 35퍼센트, 5년 이내에 65퍼센트가 이사를 합니다. 교육, 일자리, 경제 문제 등으로요. 이렇게 이사 다니는 사회에서 이웃이 형성될리 없는데 대구도 사정이 비슷할 겁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거든요. 진짜 선물은 마을이라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책은 서울시에서 기획한 책인데요, 대구시에서도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가 마련되어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지원해주고 교육도 한다고 합니다. 주변을 보면 정작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마을을 만드는 일에 관심도 없으면서 지원금을 따내서 다른 곳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부디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은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대구가 정말 살기 좋은 도시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보시며 마을을 꿈꾸는 분들이 더 많아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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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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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모멸감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가 모멸감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내게 모멸감을 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들과 교수였음을 새삼 확인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당시 내가 느낀 모멸감은 더욱 또렷해졌고 반드시 되갚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모멸감이 수치심을, 분노를 촉발시키는 최악의 방아쇠라는 저자의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교통방송에서 모욕과 모멸을 주제로 한 나만의 삼부작 소개가 끝났다. 모욕 당하지 않는 사회는 있을 수 없겠지만 모욕을 주고,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와 싸우는 사회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 싸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적 자부심일 것이다. 장애, 가난, 지방대 출신, 지방 거주, 비만,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부심이 되는 사회에서 모욕과 모멸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모욕과 모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본색소사이어티가 생각하는 사회는 그런 사회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혹시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벌어졌던 테러를 기억하시나요? 어느 괴한이 오슬로 정부 청사 인근에서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서 8명을 숨지게 했고, 곧바로 노동당 청년캠프가 열리고 있던 섬으로 건너가 한 시간 동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면서 69명을 사살한 일이 있었는데요, 섬에 있던 청년들은 이곳 저곳으로 쫓겨다니면서 사냥을 당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텐데요, 범인은 브레이비크라는 32세 청년이었고, 단독범행이었습니다. 브레이비크가 왜 이토록 끔직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시나요?

 

2. 글쎄요, 브레이비크도 노르웨이 사람이니까 이슬람 원리주의의 테러인 것도 아닐테고, 혹시 사이코 패스였던 것일까요?

 

저도 이번에 범행 동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학창 시절 브레이비크에게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브레이비크는 학창 시절에 심한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때 그를 구해준 이는 파키스탄계 이민자 친구였다고 해요. 그러면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은데, 브레이비크는 오히려 굴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도움을 준 이는 이민자였기 때문이에요. 평소에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업신여겼던 외국인에게 보호 받은 일이 너무 창피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브레이비크는 신체적인 강인함을 키우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남자로서 인정받고 싶었는데요, 미국으로 건너가 북유럽 사람들은 잘하지 않는 성형 수술까지 하고 왔는데, 주변의 여성들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매춘으로 그 박탈감을 해소하며 여성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 갔습니다. 학살을 할 때 예쁜 여학생부터 살해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즉 브레이비크는 자기가 업신여기던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모욕감,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굴욕감 때문에 살인마가 된 것이지요.

(*세바시 강연에서는 브레이비크가 터키계라고 말씀하셨음)

 

3. 아, 여성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성형까지 했는데 모두에게 외면 당했다면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수치심이나 굴욕감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제가 그동안 ‘모욕감’이나 ‘굴욕감’이라는 주제로 책을 자주 소개해왔는데요,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 김현경 선생의 <사람, 장소, 환대>도 모두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모욕을 주는 이야기와 그 때 사람들이 느끼는 생생한 경험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욕감을 주제로 한 책 삼부작 중 마지막 책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바로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김찬호 선생님이 쓰신 <모멸감>이라는 책입니다. 김찬호 선생님은 사회학 연구자인데요, 한국 사람들 마음 속에 얽혀 있는 수치심, 열등감, 자기혐오, 분노, 두려움 등의 감정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분출되게 되는지, 모멸감이라는 감정이 한국 사회의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4. 모욕감, 모멸감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모욕감, 모멸감은 모두 비슷한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수치심보다는 모멸감이 더 피하고 싶은 감정인 것 같긴 한데요..

 

네, 먼저 모욕감부터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모욕감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감정인 거죠. 많은 경우는 모욕감도 일종의 수치심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모욕을 당하면 수치심이 생겨나니까요. <디스커넥트>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중학교 남학생들이 벤이라는 학생을 골탕 먹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외톨이로 지내며 음악과 SNS에 빠져 지내는 벤에게 두 명의 학우가 제시카라는 미모의 가짜 여성 아이디를 만들어 다가갑니다. 벤과 제시카는 친해지는데요, 제시카는 자신의 누드 사진을 보내면서 벤에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해요. 이게 친구들 장난인 줄 모르고 벤은 알몸에 사랑의 노예라고 쓰고 셀카를 찍어 보냅니다. 다음 날 두 학생은 전교생에게 이 사진을 발송하고, 벤은 사랑의 노예로 불리다가, 결국 자살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벤이 느낀 감정이 모욕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거의 말로 쓰시긴 하지만 오늘 책의 제목인 <모멸감>은 모욕감과는 좀 뉘앙스가 다릅니다. 앞서 브레이비크가 느낀 것도 굳이 말하자면 모욕감이 아니라 모멸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이 섞여 있는 단어거든요. 모욕이 적나라하게, 상대에게 직접 공격적인 언행을 가하는 거라면, 경멸이나 멸시는 은연 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모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상대를 경멸하는 것은 무심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많은 경우는 모멸감이 모욕감보다 훨씬 더 사람을 기분나쁘고 수치심을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브레이비크가 수치심을 느낀 것은 학교에서 당한 집단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 이민계 학생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거거든요. 이민계 학생이 브레이비크에게 일부러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했던 일이 아닌데도 브레이비크가 모멸감을 느낀 거죠.

 

5. 꼭 어떤 사람이 내게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도 어떤 상황 때문에 모멸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을의 입장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했다면 갑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을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죠.

 

이 책의 저자인 김찬호 선생님은 한국 사회가 모멸감을 주고, 모멸감을 느끼는 사회라고 진단하는데요, 모멸감을 느끼거나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나 모두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무시하는 표정, 비웃는 눈빛, 퉁명스런 말투로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의 경우도 상대를 무시해야지만 자기 자신이 그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열등의식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도 상대가 나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되는데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했으니까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 되는 거죠. 하급자가 자신을 깍듯이 떠 받들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는 공위 공직자들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하급자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거죠. 정작 무시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부심이 매우 낮은 사회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2005년 자료인데요, 미국에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53개국 중 한국은 개인의 자부심 수준이 44위였다고 해요. OECD 36개국 중 삶의 질 수준은 2013년에 27위였다고 합니다.

 

6. 개인의 자부심이 낮은 사회에서 삶의 질이 높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아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자존감이 낮고, 개인에 대한 자부심이 낮은 이유가 뭘까요?

 

이 책의 저자인 김찬호 선생님은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시는데요, 전부 소개해드리기는 어려워 하나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혹시 일본에서는 ‘부라쿠민’이라는 집단이 있는 것 아세요? 부라쿠민은 가축의 도살, 사형 집행, 피혁 가공 업체 등에 종사한 천민집단의 후손들을 말하는데요, 일본은 불교 사회라서 이런 살생과 관계된 일은 혐오 직업이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래서 차별 받는데, 기업에서도 만약 부라쿠민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음성적으로 해고하거나 애초부터 합격시키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유력한 총리 후보가 부라쿠민 출신이라고 지명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구요, 반대로 1990년대 호소카와 총리가 지명될 때는 호소카와가 영주 가문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이 유리하게 작동했다고 해요.

 

7.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는데, 가까운 일본이라도 상당히 다르네요.

 

맞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인 신분제도는 거의 대부분 무너졌구요, 핏줄에 따른 특혜나 불이익도 거의 없지요? 양반의 후손임을 내세워도 유리할 게 별로 없고, 상놈 집안 출신임이 밝혀져도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혈통적 신분제가 깔끔하게 정리한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아요.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18세기부터 평민들이 돈을 주고 호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양반수가 늘어났구요, 19세기가 되면 인구 절반이 양반이 되니까 양반이 귀족 노릇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식민지배가 되니까 어차피 다 식민지 백성인데 거기서 반상을 따지는게 우스운 일이 되는 거죠. 그래도 일제 때는 어느 정도 양반의 지위가 유지되었는데 결정적으로 6.25 전쟁이 신분제를 쓸어버렸습니다. 전쟁이 나니까 기존 질서가 모두 뿌리 뽑히게 되고,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피난 가니까 지역 사회에서 양반 노릇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분제 청산이 신분제에 억눌렸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식민지, 전쟁, 산업화의 결과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신분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겁니다. 그런 신분 의식이 과거 신분을 대신해 학력, 빈부, 외모, 피부색, 지위 등으로 위계질서를 만드는 기준이 되게 된 거지요.

 

무슨 가게만 가면 ‘주인 나오라고 해!’라는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은 주인 아닌 아랫것들과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신분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신분의식이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서 철저한 서열의식, 귀천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느끼는 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죠.

 

8. 갑과을 사회도 그런 신분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중매도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예전 신분제 사회 때처럼 당사자의 부모들이 나와서 본다고 하더라구요.

 

홍세화 선생님이 쓴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리에서 택시 운전하며 사십 세쯤 되어 보이는 두명의 승객은 회사의 간부로 보였고, 한 사람은 삼심 여세로 부하직원이었다고 해요. 운전사가 한국인인지 모르고서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듣고 홍세화 선생님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습니다. ‘근데 이 친구 월남애지?’라고 한 사람이 묻습니다. “글쎄요. 여기에 인도 지나 사람이 많으니까요”라고 부하직원이 답하자 “아냐 내 말이 맞아. 월남애가 틀림 없어. 깡마른게 월남애가 틀림 없다고”. “보트피플아냐?”라고 말하자 홍세화 선생이 뒤를 살짝 돌아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는 말이 “뭘 돌아봐 인마. 운전이나 잘할 것이지. 그래도 이 자식들 출세했어.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다 하고. 용됐지, 용 됐어”.

 

9. 피부색으로, 직업으로 서열을 나누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네요. 이제 정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은연 중에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수치심을 준 적이 얼마나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들고, 퉁명스럽게 대하고, 연락을 끊어 버리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저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모두 사죄하고 싶은 마음인데요, 청취자분들도 이 책에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는 그런 점이 없었는지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모욕 스터디’라는 것이 있습니다. 면접관들이 하도 대답하기 힘든 곤혹스럽고 기분나쁜 질문을 던지니까 거기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하도록 연습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면접관들은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겠네요”. “그 나이가 되도록 뭐했어요?”, “공부 엄청 못했나 봐요”라는 식으로 모욕적인 말을 압박 면접이라는 명분으로 합니다. 그걸 대비하겠다는 건데요, 면접 경험이 있는 75%가 이런 질문을 받고 불쾌했다고 합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취업준비생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면접의 일부라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는 이런 모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회복되고, 사람들 사이의 결속을 통해 모멸감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 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부하는 것도 한 몫을 하지요. 이 책은 구성이 특이한데요, 책을 사면 책과 함께 음악이 담긴 CD가 있습니다. 유주환씨가 모멸감을 주제로 한 곡을 만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시고 음악을 들으시면서 굴욕 주는 사회에서 우리의 존엄을 지켜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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