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벌 -권영민
지난 1월 런던에서 돌아오는 길에 썼다. 실화에 기반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소설로, B-소설로라도 읽힐 수 있다면 좋겠다.
택시에서 내렸다. 짧은 포옹과 함께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참, 둘이서 사진도 찍었다. 엄마에게 잘 지내다가 들어간다는 보고를 해야 하니까. 그리곤 녀석은 여느 때처럼 뒤꿈치를 들고 걷는 그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기숙사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지난 해 5월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이상할 정도로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래도 택시에서 그간의 오해도 풀고, 손도 잡고 올 수 있었다.
지난 번에 내가 왔을 때는 엑시앗(기숙학교에서 2박 3일의 짧은 외박)을 마치고 녀석을 지하철로 데려다줬었다. 지하철로 학교까지 오는 길이 조금 서글펐다. 물론 굳이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고, 느껴서도 안된다는 걸 안다. 나는 외국인이고, 잠깐 아들을 보러 온거니까. 그래도 다른 학생들이 고급 차량을 타고 하나 둘 씩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을 때, 나와 녀석은 지하철을 타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자니 저절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눈치였다. ‘아빠는 여기 안 사니까 당연한거지..’. 그 때 느낀 기분 탓일까,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35파운드를 냈다. 녀석과 마주보고 1시간동안 대화를 나눈 데 쓴 비용치고는 적당하다.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기숙사 앞에서 다른 학생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저기서 녀석이 달려왔다.
“어.. 왜 다시 나왔어?”
그렇게 묻고 보니, 녀석에게 이번에 주기로 한 요시다 포터 탱크백이 내 어깨에 둘러져 있었다.
“아, 가방 가지러 왔구나. 잘했어“
”아빠, 그게 아니고..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어“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그리고 곧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얼른 택시 호출앱을 열어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다른 연락처를 찾다가 겨우 연락이 닿은 곳은 우리를 태워 온 기사가 아닌 택시회사였다. 그러는 사이 택시에서 내리고 15분은 흘러 있었다. 15분이면 택시 기사는 제법 멀리 갔을 가능성이 컸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코벤트 가든에서 해로우까지 오는동안 기사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상대 운전자에게 욕을 했다. 브레이크를 과격하게 밟았고, 그렇게 길들여진 오래된 토요타 프리우스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굉음이 났다. 그런 운전자라면 아마도 센트럴 런던까지 이미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빠에게 혼날 걱정, 행여나 아이폰을 되돌려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내 전화로 다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차에서 내린지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기사와 통화가 되었다. 영국 학교에 10년동안 아들 녀석을 보내면서 내 앞에서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토록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늘 평가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본다고 생각해서였겠지만... 그래도 급하니까 하는구나. 그 정도로 녀석은 다급해 보였다. 중동에서 온 이민자 택시 기사와는 대화가 어긋나는 듯 보였다.
”뭐래?“
”지금은 다른 승객을 태우고 있어서 바로는 못 온대..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해보라는데.. 어쩌지? 난 지금 전화가 없잖아..“
어느 새 9시가 되었다. 기숙사 입실 마감시간이다.
“아빠가 여기서 기다릴께. 한 시간 후에 나와서 아빠 전화로 전화하면 되지 않을까?”
“아빠가 한 시간 후에 전화해주면 안돼?”
물론 전화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그 사람과 아빠가 대화가 가능할까? 내가 여기서 그냥 기다릴께“
”여기 너무 춥잖아. 비도 오고.. 아빠 그냥 호텔로 가. 내가 Mr Marchant에게 전화 빌려볼께“
”그게 돼?“
”안되면 키런한테라도 부탁해볼께. 키런이 빌려줄거야“.
녀석이 다시 돌아갔다. 아빠 한번 더 보러 나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반대로 전화기를 두고 왔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버스로 갔다가 다시 택시로
내가 내 아이를 못 견뎌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이런 거다. 물건 잃어버리는 것.
물건을 좀처럼 잃어버리지 않는 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일 수 있다- 와 달리 녀석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지난 해 6월 학교에서 간 그리스 여행에선 애플워치를 호텔에 두고 왔다. 다행이 그리스의 호텔에서 애플워치를 영국의 학교까지 소포로 보내줬다. 덕분에 여름방학은 스마트 워치 없이 지내야 했다. 애플워치를 잃어버렸 보던 그 여름에는 또 에어팟도 잃어버렸다. 사촌 집에서 놀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그건 찾지 못했다. 물건은 잃어버린 건 때로는 새 물건으로 갈아탈 기회이기도 하다. 녀석은 두꺼비도 아니면서 헌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리고, 신형 에어팟 프로를 다시 샀다. 이번에 한국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날도 에어팟이 없다고 소동을 피웠다. 이번에는 겨우 찾긴 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찾고, 찾고 잃어버리고...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과 둘째, 은희 셋이서 런던에 지낼 때의 일이다. 평소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은희가 모처럼 영국산 신발을 하나 샀다. 그리고 녀석이 쇼핑백을 들었다. 엄마 대신 들어주겠다는 기특한 말과 함께. 쇼핑을 마친 세 사람은 이층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런던 시내를 구경하며, 빅밴을 보러갔다. 버스에서 내려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은희는 녀석의 손에 새로 산 신발이 든 쇼핑백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야! 쇼핑백은?“ 아마도 은희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묻지는 않았을 거다. 은희는 다급하게 타고 온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그 버스의 종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다행이 그 버스가 있었고, 쇼핑백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모처럼의 런던 시내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녀석과 있으면 이런 일이 제법 된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찾으러 다니고, 그러는 사이 일정도 끝나 버린다. 돈도 아깝지만 정신적 소모도 어지간히 된다.
이제야 생각이 났는데, 지난 해 5월, 런던에 온 것도 녀석이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BRP 카드라는 일종의 영국 비자를 또 어디선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은 해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BRP 카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녀석은 7월에 학교에서 그리스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카드를 재발급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재발급은 일정상 가능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런던에 가서 재발급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 슬롯을 최소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했다. 분실 경위를 작성하고 영국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영국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비용이 들었다. 카드 재발급 비용만 거의 50만원이 들었다. 아까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만원이면 해결될 일인데, 영국은 정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외국인들의 돈을 뜯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재발급 신청을 하러 가는 당일도 잊을 수 없다. 오전 일찍 서류를 제출하고 오후에는 녀석과 런던 시내를 느긋하게 구경할 예정으로 첫번째 슬롯인 9시로 예약을 했다. 드문 런던의 맑은 날 아침이었다. 녀석과 버스를 타고 런던의 출근길 풍경을 구경했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거쳐 마천루가 즐비한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비자센터에 도착했다. 서류 제출 중에 녀석이 이번에는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기분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폭발할 것 같았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폭발했다. 9시에 맞춰 도착했는데, 호텔에 다시 돌아오면 내가 예약해 둔 슬롯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시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런던에 또 와야 하나? 비자 때문에 비행기값, 호텔값으로 몇 백만원을 지출했는데, 이걸 한번 더 해야 한다고? 다시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돈을 아꼈다는 만족감은 사라졌다. 비자 센터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30분만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비자센터는 영국 정부가 사기업에게 위탁을 주어 운영하는 곳이라 그래도 융통성이 있었다. 몇 분 늦었지만 다행이 신청을 마무리했다.
녀석의 물건 잃어버리기 역사에 대해서 길게 썼는데, 이런 일이 꽤 자주 있다는 것이 문제다. 녀석을 보면 가끔은 나와 지금 여기 있지만 정신은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아무 곳에나 물건을 두고,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랬을 거다. 아이폰을 보고 난 후 다리 밑과 차량 시트 사이에 끼워뒀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내렸고, 내리고 나서도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병이 아닐까. 병이라면 무슨 병일까?
병이 아니라면 보리스 존슨이나 윈스턴 처칠 같은 걸까, 그런 생각도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영국의 엘리트 계층들은 엘리트로서의 자기의식이 있어서 헤어스타일이나 물건 정리 따위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보리스 존슨의 머리가 자다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인 것도 이튼칼리지 출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고. 녀석도 비슷한 종류의 학교에 다녀서 이러는 걸까? ‘나는 머리스타일이나 소지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그런 의식.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물건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인 걸까. 어릴 때부터 자주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환경 탓은 아닐 것이다. 뭔가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일까. 아니 그 반대로 다른 뭔가에 집중하느라 아이폰 따위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일까.
택시에 녀석이 전화를 두고 내렸다고 은희에게 알렸더니 지혜로운 답이 왔다.
”녀석이 해결해야 해. 매트론과 알아서 해결하게 하고 여보는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 귀국 준비나 잘 하자“
내일 오전 11시가 출국이니까 8시에는 호텔을 나서야 한다. 아직 짐도 안쌌고... 얼른 가야 하는게 맞다.
그러던 중에 어느 덧 한 시간이 지났다.
비가 많이 와 제법 추웠다. 녀석은 내가 떠난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빠, 내가 택시 기사와 통화를 했어. 그런데 여기로는 못 가져다 준대.“
”아 왜? 아빠가 그 택시 타고 갈테니까 오라고 해“
”그래도 안된대. 여기 오는 거보다 그냥 일하는 게 더 돈이 되기 때문에 못온대“
”그럼 어떻게 해? 택배로 보내달라고 해“
”그것도 안해준대. 자기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대. 이 아저씨 뭔가 말이 너무 안 통해. 그냥 벽 같아“
”아, 우리가 페이를 한다는 데도 왜 안 해준다는거지? 이해가 안되네.. 그럼 안 주려는건가?“
”자기 집으로 오래.. 내일 오전에 오라는데, 아빠가 좀 가주라..“
”야, 아빠가 내일 오전 11시 출국인데 거길 어떻게 가? 못 가지..“
”그럼 어떻게 해? 아.. 어쩌지...“
”매트론하고도 이야기해보고, 안되면 가디언에게 부탁해볼께“
택시 기사가 결국 오지 않게 됐단 걸 알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때만 하더라도 가디언에게 부탁해볼 심산이었다.
그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 이거 매트론 전화야.“ 녀석이었다.
”매트론이 통화했는데 그 기사가 무조건 집에 와서 가져가래. 내일 오래.. 내일 10시까지“
”가디언에게 부탁해도 내일 10시까지는 못 가. 가디언은 9시 출근이라, 9시에 바로 간다고 해도 10시까지는 무리지. 지금 일요일이라 연락이 닿지 않고“
”아 그렇네... 그럼 어쩌지?“
”아빠가 가디언에게 부탁해볼텐데 화요일에 가지러간다고 해줘. 가디언에게 아빠가 부탁해볼께“
”화요일은 안된다고 하던데.. 내일 무조건 오래“
”거기가 어딘데?“
”받아 적을 수 있어.. E13 8AN, Liddon street, No.9이래. 가디언이 내일 아침에 출근하실 때 가면 안되려나?“
”화요일에 가도 돼. 핸드폰 하루 없다고 별 일 안 생겨. 걱정마. 찾게 된다“
”Mr 마천트가 다른 옵션도 이야기해줬는데, 우버는 픽업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대. 우버 기사가 물건을 받아서 찾아주기도 한데“
”그래? 그거 해도 좋게 아빠가 한번 알아볼께“
”이제 나 컴퓨터도 내야 해서 정말로 연락이 지금부턴 안돼... “
”그래. 아빠가 뭔가 정해지는 게 있으면 밤 중에 메일할께“
주소를 검색해보니 런던의 zone 3에 해당하는 외곽지역이다. 해로우가 런던 서부, 기사의 집은 웨스트햄 근방으로 런던 동부다.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지하철과 237번 버스, 웨스트햄 가는 길
플랫폼에 지하철이 들어왔다. 런던의 지하철은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우버 픽업 서비스에 관한 정보는 찾아보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Sudbury에서 탄 지하철이 그린파크를 지나자 이걸 타고 한 시간 반을 더 가면 웨스트햄에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까지 갔는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비가 많이 오는데 가서 기다릴만한 곳이 있을까? 민약 기사가 오늘 새벽 늦게까지 일하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데 이 추위에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오만 생각이 오가던 중에 돈으로 생각이 옮아갔다. 아마도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도와야주겠지만 이 거리라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버로 가능하다고 해도 족히 60파운드는 내야 가능할테고. 반면 내가 오늘 간다면 그보다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 좀 피곤하겠지만 내일 11시간이나 비행해야 하는데, 거기서 자면 된다.
기사는 무조건 집에 들어올거야.. 설마 안들어오겠나? 기사가 내일 10시 전에 오라고 했으니까, 기사 본인도 최소 6시간은 자야 할테니 새벽 3시에는 아마 들어올거고. 그럼 내가 가서 기다렸다가 아이폰을 돌려받자. 그리고 공항에 가기 전에 해로우에 들르자. 빠듯하지만 가능은 할 것 같다. 그렇게 웨스트햄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 아이폰 배터리는 11%,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폰이 꺼지면 여러가지 난처했다. 길도 못찾고, 애플페이가 안되니 지하철, 버스도 못탄다. 택시앱도 켤 수 없다. 그 때부터는 제발 전화기야 꺼지지만 마라... 아이폰에 아니, 배터리에 대고 기도했다. 그래도 혹시 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글맵을 켜서 기사의 집 위치를 숙지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N237을 타고, Plaistow police station에 내린 후 북쪽으로 걸어 좌측 코너로 돌아 두 블럭을 걷는다. 지도를 보고 정리했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라 자신은 없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비도 많이 와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행여나 전화가 꺼질까 꼼짝 앉고 내릴 역을 놓치지 않으려 지하철 안내방송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있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나.. 후회가 밀려왔다. 호텔에서 녀석의 기숙사로 갈 때 지난 번처럼 지하철로 갔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괜한 자격지심과 조금 편하게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탄 것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남들은 다 자기 차를 타고 가는데, 우리는 택시 타고 가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아?
후회란 건 이런 거다. 우연한 실수도 벌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 벌에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조금 빨리, 조금 편하게 가려 했다가 나는 지금 편하지도 않고 아직 호텔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갔다면 녀석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9시에 헤어지고, 나는 10시면 다시 호텔에 돌아와 짐을 싸고 이때 쯤이면 잠에 들었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짜증이 났다. 돈 쓰고 고생하고.. 뭐하는 짓인가.. 중동 이민자 택시 기사에 대한 원망도 시작됐다. 학생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 집까지 찾아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갈 수 있단 말인가? 돈을 지불하겠다는데 좀 와서 가져다 주면 안되나?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불친절한 기사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사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나면 죽을만큼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왜 무조건 자기 집으로 와서 찾아가라고 하는건가... 다시 생각은 런던에, 아니 영국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퀵서비스도 없는 멍청한 나라..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을 수 없는 부도덕한 나라.. 외국인의 돈을 체계적으로 뜯는 양아치 같은 나라..

Requiem, CHRIS OFILI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Requiem‘이라는 벽화가 생각났다. 켄싱턴구 남부 지역 빈민들이 모여 살던 켄싱턴 구립 운영 아파트 화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한 작품이다.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스프링쿨러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수십명을 죽게 만든 정부와 기업이 합작해 대규모 희생자를 냈다. 멍청한 정부와 공공예산 삭감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이 작품이 떠오른 건 이 화재의 시작이 중동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발화지점인 4층은 중동계 이민자가 살고 있었다. 화재 직후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중동 이민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인종 차별과 함께 이슬람에 대한 테러공격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안되지.. 이슬람과도, 중동과도 상관 없는 일이야..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이름이 Mr Ali인 것을 알고 나니 ”역시 중동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었나“... 그런 생각으로 옮아갔다. 중동 사람들은 부도덕하다. 런던이 말도 안될 정도로 불친절하고 멍청하고, 더럽고 치사한 나라가 된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웨스트햄에 내릴 때 즈음하여 스스로 자책하던 나는 어느새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웨스트햄 역은 생각 이상으로 큰 역이었다. 역 내부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맸지만 그 큰 역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아마 새벽 시간에 내가 정신이 없어서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런던은 치사할 정도로 화장실에 인색하다. 공중 화장실은 없거나 있어도 더럽다. 그냥 더러운게 아니라 추접다고 할 정도로 엉망으로 더럽다. 아마도 위생감각이 없는 인도와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아무데나 오줌을 싸서 그럴 거야. 혹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화장실에서 범죄를 일으켜서 화장실이 없는 걸거야..
역에서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신발은 걸을 때마다 스펀지에서 물이 솟아 오를 정도로 젖었다. 소변이 급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씻어내 주길 기대하며.. 그러다 족히 20분은 기다렸을까.. 두꺼운 파카가 무색할만큼 추운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한 인도사람이 와서 말을 걸었다.
"캐닝타운행 버스 지나갔나요?“. 발음에 여전히 인도 억양이 남아 있는 키 작은 남자다. 이 사람도 이민자일까?
“아무 버스도 안 지나갔어요”. 그날 밤, 나는 퉁명스러웠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버스 한대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아까 본 경찰서 앞 정류장에 내려 북쪽을 향해 걷고, 왼쪽 코너를 따라 두 블럭을 갔다. 이상하다. no. 9이라 적힌 집이 없었다. “뭐지? 속은건가?” no. 23이라고 적힌 집 앞에는 프리우스 한대가 서 있었다. 왠지 내가 탔던 택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no.23은 불이 꺼져 있었고,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여기 아닌가 보네.. 그래도 여기 근처가 맞을 것 같으니까 기다려보자’.
아 그러던 중에 no. 23 집에 불이 켜졌다. “누구세요?”. 이번에도 한 중동 사람이 나왔다. “여기 Mr Ali 집인가요?, 볼트기사가 사는 곳 맞아요?“. 집 주인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no 9이 어딘지 아나요?”
집주인은 자기 스마트폰을 켜서 지도로 아래로 한 블럭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길을 따라 내려왔지만 No. 9은 보이지 않았다. 프리우스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로 치면 영세민 아파트 비슷하게 집합건축물이 늘어선 한눈에 봐도 거무죽죽한 위험해 보이는 동네였다. 땅콩주택 같은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선 집들은 전형적인 영국 서민들의 가정으로 보였다. 동네에 가난이 묻어 았었다.
집의 넘버링들이 이상했다. no. 23의 다음 집은 24가 아니라 27이었다. 27 다음 집은 29고, 23의 이전 집은 19였다. 알 수 없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no.9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몇 집을 두르렸다. 새벽 1시에 세 네 집의 주인을 깨웠다. 하나 같이 이민자였다. 그러던 중 no.8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늦은 밤이라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주 작은 키의 한 중동 아주머니가 나왔다.
“여기가 Mr Ali 집이 맞나요?”
“맞아요. 무슨 일이세요?”
“제가 전화기를 Mr Ali의 차에 두고 내렸어요. 그가 여기와서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는 집에 왔나요?”
“아니요. 그는 여기 없어요.”
“알겠어요. 저는 그냥 당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겠습니다”
지금도 왜 No.8이 no.9인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혼란 그 자체의 밤이었다.
그렇게 겨우 집을 찾았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나왔다.
"그가 지금 오는 중이래요.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아 정말요? 아 감사한 뉴스네요”
“추운데, 잠깐 들어와 계실래요?”
“아니요.. 천만에요. 괜찮습니다.”
20분만 기다리면 된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전화기를 꺼냈다. 배터리가 이미 방전되어 있었다. 그래도 녀석의 전화를 받으면 그 전화로 연락과 버스를 타면 된다. 30분 정도 지나서 낯 익은 프리우스가 모습을 보였다. Mr Ali는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서 내렸다.
‘어? 왜 조수석에서 내리지?’
그가 걸어왔다. 택시에서 볼 때보다 좀 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이 방법 밖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어요. 그래서 무례인줄 알지만 지금 당신 집에 오게 됐어요”
“괜찮아요. 제가 가져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택시가 제 차가 아니라서 제 마음대로 방향을 정하지 못합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그는 회사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 신분이라, 아이폰을 가져다 주고 싶어도 가져다 주지 못했던 것이다.
연신 땡큐를 연발하고, 악수도 했다. 다시 내 손에 온 녀석의 아이폰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N15, 채링크로스로
N15, 나이트버스 15번을 타면 채링크로스까지 간다. 비를 뚫고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다시 한 시간만 버스를 타면 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왔다. 이층에 올라가자 바깥 비로 습기가 가득해 창문 밖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전화로 은희와 대화를 나눴다.
“인디아나 존스 찍은 것 같아... 너무 춥고 힘들다”
“여보 대단해, 고생했어... 우리 남편 해리슨 포드네”
안도감에 잠이 쏟아졌다.
습기로 창밖도 보이지 않아 더 그랬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 버스 내부를 둘러보았다. 모두 인도 사람, 중동 사람... 피부가 하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시안도 나 뿐이다. 그제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되묻게 된다.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도 나고, 노상방뇨를 한 것도 나인데... 이민자 때문에 화장실도, 거리도 엉망이라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다니... 늦은 밤 2시의 런던 버스에는 청소 노동자들이 이동한다. 내가 싼 소변을 치우는 사람들.. 전화기를 잃어버린 사소한 일조차 의연해지지 못하는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까운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 거기에 삶의 무게가 있다.
그깟 아이폰, 오래된 12프로맥스인데 중고로 사면 50만원 밖에 안해.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또 일당 10만원 더 버는 것 그거 아무 것도 아냐라고 생각하고 전화기를 잃어버려 전전긍긍하는 사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적대시하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녀석이 전화를 잃어버리고 나서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건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계산‘이었다. 중고 아이폰 가격 50만원,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최소 30만원, 우버 픽업 요청하면 12만원, 내가 가면 버스타면 갈 때 3파운드, 올 때 3파운드, 녀석에게 가져다주는 비용 30파운드 다 해도 10만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계산이 지배했던 것이다.
창 밖이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습기를 손으로 닦아내니 왠 다리가 보였다. 워털루 브릿지다.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아 이거 건너면 안되는데.. 반대 방향인데.. 이번에도 뛰어서 겨우 내렸다.
내리고 보니 녀석과 오늘 낮에 온 코톨드 갤러리 앞이었다.
미술관에서 오면 녀석의 정신은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다. 가끔, 아니 자주 아들 녀석과 있다보면 껍데기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설명해줘도 어디까지 듣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그냥 알겠다고 대답만 하는 건지, 정말로 알겠다는 건지... 솔직한 내 느낌은 전자에 더 가깝다. 심지어 그림을 보고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건성건성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그림 한 점이라도 재밌다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미술관 다니는 것도 습관이라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간다. 여기와 지금, 바로 앞의 사람과 물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단지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래도 내셔날갤러리와 코톨드갤러리를 오늘 돌아보면서 녀석과 재밌게 본 작품이 하나가 있긴 있었다. ’ 엘리야와 까마귀‘(구에르치노)라는 작품이었다. 라파엘로 화풍으로 그려진 초대형 그림에서 엘리야는 신이 까마귀를 통해 보내준 음료와 빵을 두 손을 모은 채 받고 있다. 이방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제사장 7000명과 싸워서 이긴 영웅 엘리야는 고작 여왕 한 사람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에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게 그렇게 무서웠을까? 왜 신은 무서워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준 걸까?
“배고파서 그런게 아닐까“. 녀석의 대답이 정답이다.
배고프면 모든 것에 부정적이 되는 녀석의 모습은 엘리야와 닮았다. 죽지 않고 승천한 배고픈 엘리야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을 들여다 봤다. 신앙의 영웅도 배고프면 부정적이 된다.. 코톨드갤러리에서 호텔까지는 15분을 걸어야 한다. 비가 오는 1월의 밤은 추웠다. 나도 죽여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신은 빵만 준게 아니고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위로했다고 하는데, 빵이든 음성이든 뭐든 주시길 하는 마음에 저절로 ’주여‘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로뎀나무 같은 호텔에서 세시간을 잤다.
지하철로 가다가 다시 택시로, 해로우
6시 30분에 일어났다.
밤새 챙겨둔 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레스터 스퀘어(Lecester square) 역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Sudbury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녀석에게 아이폰을 전달해줄 생각이다. 8시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남겨뒀는데 녀석은 확인을 못했는지 답이 없다.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스무정거장을 가야 한다. 꽤 가야 한다. 게다가 큰 문제도 해결됐으니 책이나 한번 읽어볼까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런던에 와서 다 읽겠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돌아가는 날, 그것도 지하철에서 읽게 되다니... 하루키 책은 껌 씹는 것 같은 맛이 있다. 입 안에 옅은 단맛이 난다. 씹는 듯 읽었다.
구글맵에서 Sudbury라고 하차하라는 알림이 떴다. 이상하다. 역 이름이 그게 아니다. 뭐지? 놀란 마음에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 보니, 세상에 피카딜리 라인은 Acton town에서 분기해 노선이 나뉘어 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sudbury행이 아닌 히드로공항 행을 탄 것이다. 아, 왜 또 이런 시련이... 괜히 책을 읽었나.. 집중했어야 하는데... 지도앱을 다시 켜서 녀석의 학교까지 검색해보니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녀석과 만나기로 한 8시까지 시간을 지킬 수 없고, 9시반까지 공항에 가서 수속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는 30파운드다. 분노가 치민다. 게다가 지금은 출근시간, 런던의 도로는 좁고, 차가 막힌다. 또 돈을 쓰고 시간을 썼다는 생각에 어제를 반복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합리적이지 않은데 다시 녀석에 대한 원망이 시작됐다. 녀석이 스마트폰을 어제 갖고 내리기만 했어도, 나는 어제 잠을 푹자고, 8시에 호텔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환승 없이 앉아있기만 하면 9시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물론 그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안다. 내가 지하철에서 책을 볼게 아니라 노선을 봐야 했고, sudbury로 제대로 갔어야 한다. 그렇게 자책에 자책을 거듭하던 중에 해로우에 도착했다. 녀석이 나오고 있었다. 교복을 차려 입은 멀끔한 모습으로..
“아빠, 고마워”
“야, 다음 번부터는 진짜 안 찾아준다. 아빠 부탁해.. 제발 물건 좀 잘 챙겨”
“어, 이제 잘 챙길께. 미안.. 아빠 이제 공항 가?”
“응, 이제 가려고.. 너는 지금 수업가나? 지금 가도 돼?”
”지금 가면 돼. 아빠 고마워.. 진짜로.. 조심해서 가고 곧 만나“
원망하다가다도 녀석을 보니 마음이 풀린다. 볼을 쓰다듬고 한번 더 포옹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두 주 후에 다시 또 만나.
녀석이 이번에도 뒤꿈치를 들고 걷는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멀리서 한번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어 준다. 아 드디어 해결했다.
SL9 익스프레스 버스의 고장, 히드로 공항
해결이 됐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해결되고, 해결되면 또 다시 다른 문제가 온다. 그렇게 인생은 문제의 연속인가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호텔에서 여기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오고, 여기서 공항까지는 택시를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실수로 택시를 벌써 탔으니 이번에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계획을 바꿨다.
공항까지 익스프레스로 간다는 SL9 버스를 탔다. 출근시간이라 외곽이지만 차가 어마어마하게 막혔다. 내가 수속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 10시 25분인데,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이미 10시였다.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도로 상황으로는 방법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만 간다면 10시 15분까지 겨우겨우 도착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버스 기사가 운행 도중 차량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고 모두 내리라고 했다. 어? 왜?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거지? 영국 너무 싫어...
히드로공항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노동자가 버스기사를 향해 달려가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솔직히 속이 좀 시원했다. 영어로 욕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멋지다고까지 생각했다.
아 그란데 이제 어떻게 하지.. 버스로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다시 택시를 잡았다. 택시앱에서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내게 배정된 택시 시트로엥 피카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취소 버튼을 눌렀다. 또 6파운드의 캔슬피(cancel fee)가 부과됐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아 왜! 타지도 않은 택시에, 보이지도 않는 택시에 6파운드는 너무 많잖아.
30인치 대형 캐리어를 들고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버스를 탔다. 다행이도 히드로 공항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10시 28분에 공항에 도착해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가장 늦게 수속을 마무리했다. 짐을 맡기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 보딩게이트 앞 대기석에 앉으니 눈물이 났다.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내게 1월은 늘 경제적으로 버거운 달이다. 여유가 없는데 아들 녀석과 보내려고 무리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고, 호텔을 잡고, 매일 밤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주었다. 그리고 여기왔다는 핑계로 꽤 값 나가는점퍼도 하나 사고.. 그러고 보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야 할 때는 안타고,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될 때는 또 탔다. 말하자면 녀석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난 하루동안은 런던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 같은 시간이었다. 런던의 그물, 런던이 주는 벌, 런던의 벌...
점퍼를 사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폰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고, 런던을 쓸고 닦는 이민자들을 이기적이고 비위생적이라고 혐오하고, 6파운드 취소수수료에 터너와 컨스터블과 베이커과 호크니가 살았고, 테이트브리튼과 내셔널갤러리도 공짜로 가는 이 곳 런던에 환멸이 생겼던 거다.
자주 잃어버리는 것과 어떤 것도 잃어버리려 하지 않는 것 둘 중 무엇이 덜 불행한 것일까.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다. 벌조차도 여유있게 받을 여유. 6파운드 때문에, 아니 덕분에. 아니 내가 여유있개 돈을 쓸 상황이 지금은 아니라서....
”이제 비행기 탄다“
”아빠 잘 가“
어떻게 아이폰을 찾았는지 끝까지 묻지 않는 녀석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안해서 묻기 힘든 걸까? 물어볼 시간이 없었던 걸까? 그래,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테니까...글쎄,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이내게 하루동안 선사해준 하루 밤의 지옥 덕분에,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려 걸려버린 런던의 그물, 런던이 준 벌 덕분에 한 편의 글이 나왔다.
그래 글이란, 지옥에서 쓰여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