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아직 어른이 되기 두려운 그대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가슴 따뜻한 격려
정희재 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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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구별에서 어른으로 잘 살고 있나요?
- 정희재,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읽고

 살다보면 가끔 위로가 필요한 날이 찾아온다. 그런 날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오랜만에 펼쳐든 일기장 가득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하고,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생각에 잠겨들기도 한다. 책장을 정리하거나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빛바랜 편지들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언제였을까.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아마 한창 책읽기에 빠져들었던 중학생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수하고 순진했다. 세상의 밝은 면을 더 많이 알고 있었던 소녀였던 시절. 어린왕자는 맑고 투명한 빛으로 다가왔다. 처음 그 빛을 만났을 땐 그저 환하다 생각했다. 세상에 이처럼 밝은 빛이 또 있을까 싶어 그저 신비로웠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는 동안 다시 만나게 된 어린왕자는 빛이 지닌 고유의 온기로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어 주었다.

 돌아가야 할 근원을 일깨워주는 동화 <어린왕자>. 어린왕자가 말한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이 까무룩 잊힐 때면 그는 늘 나타나곤 했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수많은 ‘다름’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은 아이. 그 ‘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통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린왕자>는 특별한 해석 없이도 술술 잘 읽히는 동화다.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굳이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 ‘다시 읽기’나 ‘재해석’같은 고리타분한 고증이 아니다. 귀소본능.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태초에 품은 순수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본능적인 마음을 되짚어주고 있다. 바로 ‘어린왕자’를 통해서 말이다.

 지구상에 어린왕자를 나만큼이나 특별히 생각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어떤 사람이기에 늘 어린왕자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까. 아마 어린왕자가 생각하는 ‘정말 이상한 어른’은 아닐 것 같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조금은 고단하고 조금은 외로웠을 것 같기도 하다. 내적 방랑기를 무던히도 견뎌냈을 것 같은 사람. 그래도 마음속에 꿈과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고 살았을 것 같은 사람. 다른 별에서는 평판이 좋다고 소문난 '지구별'이라지만, 이곳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사실 녹록치 않다. 웃어도 보고 울어도 봤을 것이다. 타협도 해보고 협상도 해봤을 것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삶의 이야기들. '사랑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꿈은 불투명한 시대에 띄우는 어린왕자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생의 모든 것 앞에 '不(아닐 불)'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고단함에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그 또한 불안하고 불확실하며 불투명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이므로.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는 <어린왕자>를 어른의 시각에서 더 깊이 공감하게 해준다. <어린왕자>이야기가 한 단락 끝나면 지구별 어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왕자>와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끊임없는 고뇌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때론 울컥 하기도 한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라며 허물어져 내리는 마음에 당황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계 없이 마음을 놓아버리다니. 그래도 괜찮다. 어린왕자 앞이니까. 어린 왕자를 나만큼이나 사랑하는 지구별 어른 앞이니까.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과 미래와 꿈에 대해 그리고 시대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 책을 읽는 동안 밑줄은 늘어만 가고 그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처음 만나는 ‘정희재’라는 저자의 필력과 생각에 이처럼 깊이 공감하게 될 줄이야. 속절없는 이끌림. 어린왕자 이야기이기에, 지구별 어른 이야기이기에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었나 보다.

 살아가는 것이 고단해도, 삶이 가끔 나를 속여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 주저하지도 포기하지도 말 것.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삶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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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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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해체를 통해 깨닫게 된 진정한 가족의 의미
-손현주, 『불량가족 레시피』를 읽고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 자유로울 것 같다. 전에 없던 자신감도 생길 것 같다. 치기어린 반항도 해보고 부조리에 반기도 들어볼 것 같다. 한마디로 일탈, 한마디로 비상!

 여기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일탈을 꿈꾸는 소녀가 있다. 소원여고 1학년 5반 권여울.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배다른 형제들 틈에서 막내로 자라났다. 일반적인 가정의 막내와는 달리 권씨 집안에서는 완벽한 천덕꾸러기다. 자신만 보면 욕을 퍼부어대는 거친 입을 가진 언니와 ‘송장 칠 나이에 똥 걸레 빨게 한 년(p.15)’이라며 온갖 잔소리와 타박을 해대는 할머니 밑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 거기에 다발경화증이라는 병 때문에 늘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오빠와 뇌경색을 앓고 있는 주식폐인 삼촌도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집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빠다. 채권 추심 하청 일을 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 살고 있는 집마저도 위태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한 아빠. 일도 문제지만 아빠의 최대 맹점은 여자를 너무 밝힌다는 것. 두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동거의 결과물인 여울이네 기이한 형제관계가 그 증거다.

 모든 상황이 여울이를 힘들게 한다. 어디로 가든 낭떠러지 뿐.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여울이가 2년 째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것도 다 살기 위해서다. 늘 그립기만 한 엄마의 빈자리도 잠시 잊어볼 겸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전혀 다른 세상에서 느끼는 행복. 충만하진 않지만 짜릿하긴 할 것이 같다. 코스튬플레이로 피오나공주를 택한 것도 무수리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공주가 되어보고 싶어서다. 예정에도 없던 슈렉이 나타나 눈치 없이 키스를 해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하지만. 무수리로 돌아온 현실은 역시나 녹녹치 않다. 그래도 공주가 되려는 허황된 상상에만 목매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차츰 깨달아 간다.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 하는 철학적인 고민도 잠시 해보면서 말이다.

 여울이의 최종 목표는 하루 빨리 가출을 하는 것이다. 어영부영 하는 틈에 다시 집으로 끌려 들어오는 여타 청소년의 가출이 아닌 완벽한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울이의 말을 빌리자면 가출이 아닌 출가! 그런 여울이 앞에서 언니, 오빠, 삼촌까지 먼저 집을 나가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다. 그야말로 가족들의 가출릴레이. 곪아버린 상처는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상처가 나면 곪기 전에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은데 당장 못 견딜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방치하곤 한다. 때론 미련할 정도로 상처를 방관하기도 한다. 그것이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여울이네 가족들이 모두 그랬나보다. 마음 한 구석에 불만을 잔뜩 품은 채 ‘어디 한 번 건드리기만 해봐’ 하는 심정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온 가족들. 한 번 불꽃이 튀기 시작하자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여울이를 당혹스럽게 한 건 가족들의 연이은 가출소동만이 아니다. 코스를 하면서 마음에 둔 세바스찬은 여울이가 아닌 여울이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고, 위태위태하던 아빠의 사업은 결국 수많은 리스크를 안은 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대책 없는 가족들 틈에서 여울이는 결국 할매와 단 둘이 남게 된다.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것. 함께 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슬슬 걱정이 된다. 모두가 선수를 치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여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 평생 엄마를 기다렸듯 이제는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그 가족들을 기다려야 할 차례.

 모두들 가족의 형태를 띠며 살아가고 있지만 막상 들추어보면 제각각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울이네 만큼 찬란한 가족사를 지닌 가정 또한 분명 있을 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여울이는 소신 있고 당차다. 지금 이 시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줄 현실감 있는 캐릭터. 코스튬플레이로 자신만의 일탈을 즐기고 출가를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가족이 해체 상황에 이르자 소녀 가장으로 분한다. ‘진짜 용기를 내 출가한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p.195)' 갈 준비를 하는 건강한 청소년.

 오합지졸 가족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가출 퍼레이드. 그 속에서 다양한 성장통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권여울. 『불량가족 레시피』는 가족의 해체를 통해 가족의 재탄생을 예고하는 쿨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개성강한 캐릭터와 작가의 순발력 넘치는 필치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완벽하게 빠져들게 한다. 가족이 아닌 것 같은 가족구성원들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소설.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저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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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빠진 그녀들의 특별한 여행

편견을 벗은 와인의 소박함을 오감으로 느끼다!

 

 와인, 아름다운 기다림  

최정은&김민송 / 북스캔 

 

... 댓글이벤트 당첨 선물 ...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나무를 키운다면적어도 30년은 기다려야 한다.

거기다 포도를 수확하고 만들기까지 2~3년은 더 공을 들여야 한다.

게다가 다 만들어진 와인이라 할지라도 제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 따라 적게는 1~2년 많게는 10~20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시기까지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머리말 중에서...

 

 

호사품도 아니고 격식을 따져야만 먹을 수 있는 술도 아닌 친근한 와인...

프랑스 와인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만나기 위해 떠난

두 여인의 프랑스 와인 여행기!

프랑스 시골 마을의 포토밭... 그 밭고랑 사이를 직접 거니는 사이

프랑스 와인은 서서히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어깨의 힘을 빼고 편히 즐길 수 있는 와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두 여인,

그녀들을 따라 프랑스 와인 속으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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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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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
-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자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내포하고 있는 말. 하지만 오늘날의 자살은 더 이상 자발적인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가해오는 타인의 말과 행동이 한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분명 ‘A'라는 사람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B'로 인식한다. 처음에는 ‘아니다’라고 부정을 한다. 그러다 점점 ‘그런가?’ 라며 스스로도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에는 ‘그럴지도 몰라’라는 자괴감에 빠져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현실을 인정해버린다. 한 사람의 세 치 혀에서 시작된 장난, 그 장난에 동조하는 아이들의 영악한 놀이. 3년 가까이 지속된 이 놀이가 오늘, 천지를 죽였다.

『우아한 거짓말』은 2008년 『완득이』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김려령 작가의 책으로 한 청소년의 자살을 통해 본 학교 내 왕따 문제와 이 사회에 만연된 가십 문제를 꼬집고 있다. 5학년 때 전학 온 천지를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화연이다. 남들이 보기에 화연이 만큼 천지를 챙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화연은 천지와 가까이 하려는 사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친구로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천지를 철저히 고립시켜 완벽한 왕따로 만들기 위한 고단수 전략이다. 화연의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를 점점 더 궁지로 내몰아 간다.

천지는 잘못된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한때 언니와 엄마 혹은 다른 누군가가 바꾸어주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이젠 희망을 놓아버렸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잘 지내겠지 라며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이라도 잘 지내니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주어야 한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형식적인 안부만을 확인하며 살다보니 마음속의 말들은 쌓여가고 병은 깊어만 간다.

천지는 속으로 곪아갈수록 겉으로는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성적이 좋아야 신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상위권을 유지하려 애썼고, 무던해 보이기 위해 소설책을 읽는 척하며 뜨개질에 몰두했다. 그저 문제없는 평범한 아이. 천지는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잘못된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아이의 현실은 고단하다. 결국 자살을 준비하는 천지. 이 세상에 다섯 개의 털실 뭉치를 남겨 놓는다.

『우아한 거짓말』은 작가의 네임벨류 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이 책은 나를 김려령 작가의 완벽한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완득이’의 톡톡 튀는 발랄함과는 달리 읽는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소설. 벼랑 끝에 선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마음에 와 닿아 편치 않다. 어른 세계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세계는 이 사회의 아픈 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가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자의 고백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래서일까. 열네 살, 이미 죽은 자가 되어버린 천지의 독백은 처절하기보다 처연하다. 천지의 독백, 동생이 죽은 이유를 밝히려는 언니 만지의 추적, 천지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숨은 노력들, 천지 가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도.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소설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 긴박하고 때론 절박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한 필치로 잡아낸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 덕분에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 더 이상 방치될 아이가 없어야 하므로. 더 이상 방치될 어른 또한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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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에게 띄우는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

-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정희재 . 지식의 숲

 

몸이 피곤해지면 습관적으로 비타민을 챙겨먹듯 마음이 허해지면 나는 <어린왕자>를 펼친다.

언제 처음 그를 만났던 걸까. 아마 한창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 중학생 무렵이 아니었을까.

처음 어린왕자를 읽었을 땐 그저 한 편의 동화에 지나지 않았다.

나도 어린왕자와 어느 정도 비슷한 시각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았으므로

큰 감흥이나 여운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신비하고 아름다운 동화 한 편...

순수했고 순진했고 '허영이라고는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세계(p.121)'를 간직한 소녀였으니까.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는 동안 여러 차례 <어린왕자>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처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넘어오는 동안 <어린왕자>는 한 편의 동화를 넘어 일종의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너도 별 수 없구나. 그저 그런 어린이 되어가고 있잖아.

 어린왕자가 정말 이상하다고 말한 바로 그런 어른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때면 슬펐다. 언제부터 어른이 되기 시작한 것인지.

세상이 정한 숫자란 것에 이상하게 집착을 하고,
마음 가득 허영을 채우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턴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때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곤 한다.

괜스레 서글퍼지고 쓸쓸해진다. 그러다 눈물 한 모금 머금고

다시 어린왕자같은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가 살아보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재충전을 해주는 <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시 읽기'같은 수식어가 필요없는 <어린왕자>를 과연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쉽게 공감하고 쉽게 읽히고 쉽게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에 특별한 해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 책, 기대 이상으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위안을 준다.

<어린왕자>를 여러 번 읽는 동안 어렴풋이 마음에 일렁이던 느낌을 저자 정희재는 확연한 공감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재해석이라는 고리타분한 고증이 아니다. 지구별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했던 고단함들을

어린왕자를 통해 정화하고 다독인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에세이!

 

무한 되돌이표를 그리며 술을 마시는 어른들에게 나는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어른이란 어린이들이 생각하듯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니다. 살다보면 희망은 잠깐

기운을 북돋워준 뒤 달아나기 십상이고, 하늘은 한 번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가 오죽 많은가.

타들어 가는 속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는 어른의 삶이란 참으로 측은하고 가련하다.

그렇다. 나는 어린왕자와 한편이 돼서 술 먹는 어른들이란 정말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구별 어른'이 된 것이다. (p.130)

 

거대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것인가, 물결을 따라 흘러갈 것인가,

떠있는 것도 여간 힘들고 성가신 것이 아닌데 그만 가라앉아 버릴까.

그 땐 몰랐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라앉아 버리는 것도 여간한 용기가 아니라는 것을.

치열하게 돌아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그냥 물결 따라 흘러가게 마련인 게 우리들 인생 같아.(p.141)

 

 

 

 

'사랑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꿈은 불투명한 시대에 띄우는 어린왕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마음을 울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의 모든 것 앞에 '不(아닐 불)'을 달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에 대한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책.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읽는 동안 <어린왕자>를 어른의 시각에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다른 별에서는 평판이 좋다고 소문난 '지구별'이지만, 이 곳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사실 녹록치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 나 같은 어른이 많으니... 혼자만 고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책임회피다.

살아가는 것이 고단해도, 삶이 가끔 나를 속여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 주저하지도 포기하지도 말 것.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지라도 나로 인해 나 자신의 삶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최소한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나는 오늘, 이 책에서 삶을 또 한 번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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