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에게 띄우는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

-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정희재 . 지식의 숲

 

몸이 피곤해지면 습관적으로 비타민을 챙겨먹듯 마음이 허해지면 나는 <어린왕자>를 펼친다.

언제 처음 그를 만났던 걸까. 아마 한창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 중학생 무렵이 아니었을까.

처음 어린왕자를 읽었을 땐 그저 한 편의 동화에 지나지 않았다.

나도 어린왕자와 어느 정도 비슷한 시각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았으므로

큰 감흥이나 여운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신비하고 아름다운 동화 한 편...

순수했고 순진했고 '허영이라고는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세계(p.121)'를 간직한 소녀였으니까.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는 동안 여러 차례 <어린왕자>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처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넘어오는 동안 <어린왕자>는 한 편의 동화를 넘어 일종의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너도 별 수 없구나. 그저 그런 어린이 되어가고 있잖아.

 어린왕자가 정말 이상하다고 말한 바로 그런 어른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때면 슬펐다. 언제부터 어른이 되기 시작한 것인지.

세상이 정한 숫자란 것에 이상하게 집착을 하고,
마음 가득 허영을 채우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턴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때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곤 한다.

괜스레 서글퍼지고 쓸쓸해진다. 그러다 눈물 한 모금 머금고

다시 어린왕자같은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가 살아보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재충전을 해주는 <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시 읽기'같은 수식어가 필요없는 <어린왕자>를 과연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쉽게 공감하고 쉽게 읽히고 쉽게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에 특별한 해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 책, 기대 이상으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위안을 준다.

<어린왕자>를 여러 번 읽는 동안 어렴풋이 마음에 일렁이던 느낌을 저자 정희재는 확연한 공감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재해석이라는 고리타분한 고증이 아니다. 지구별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했던 고단함들을

어린왕자를 통해 정화하고 다독인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에세이!

 

무한 되돌이표를 그리며 술을 마시는 어른들에게 나는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어른이란 어린이들이 생각하듯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니다. 살다보면 희망은 잠깐

기운을 북돋워준 뒤 달아나기 십상이고, 하늘은 한 번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가 오죽 많은가.

타들어 가는 속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는 어른의 삶이란 참으로 측은하고 가련하다.

그렇다. 나는 어린왕자와 한편이 돼서 술 먹는 어른들이란 정말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구별 어른'이 된 것이다. (p.130)

 

거대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것인가, 물결을 따라 흘러갈 것인가,

떠있는 것도 여간 힘들고 성가신 것이 아닌데 그만 가라앉아 버릴까.

그 땐 몰랐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라앉아 버리는 것도 여간한 용기가 아니라는 것을.

치열하게 돌아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그냥 물결 따라 흘러가게 마련인 게 우리들 인생 같아.(p.141)

 

 

 

 

'사랑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꿈은 불투명한 시대에 띄우는 어린왕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마음을 울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의 모든 것 앞에 '不(아닐 불)'을 달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에 대한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책.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읽는 동안 <어린왕자>를 어른의 시각에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다른 별에서는 평판이 좋다고 소문난 '지구별'이지만, 이 곳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사실 녹록치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 나 같은 어른이 많으니... 혼자만 고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책임회피다.

살아가는 것이 고단해도, 삶이 가끔 나를 속여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 주저하지도 포기하지도 말 것.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지라도 나로 인해 나 자신의 삶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최소한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나는 오늘, 이 책에서 삶을 또 한 번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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