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해체를 통해 깨닫게 된 진정한 가족의 의미 -손현주, 『불량가족 레시피』를 읽고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 자유로울 것 같다. 전에 없던 자신감도 생길 것 같다. 치기어린 반항도 해보고 부조리에 반기도 들어볼 것 같다. 한마디로 일탈, 한마디로 비상! 여기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일탈을 꿈꾸는 소녀가 있다. 소원여고 1학년 5반 권여울.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배다른 형제들 틈에서 막내로 자라났다. 일반적인 가정의 막내와는 달리 권씨 집안에서는 완벽한 천덕꾸러기다. 자신만 보면 욕을 퍼부어대는 거친 입을 가진 언니와 ‘송장 칠 나이에 똥 걸레 빨게 한 년(p.15)’이라며 온갖 잔소리와 타박을 해대는 할머니 밑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 거기에 다발경화증이라는 병 때문에 늘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오빠와 뇌경색을 앓고 있는 주식폐인 삼촌도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집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빠다. 채권 추심 하청 일을 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 살고 있는 집마저도 위태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한 아빠. 일도 문제지만 아빠의 최대 맹점은 여자를 너무 밝힌다는 것. 두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동거의 결과물인 여울이네 기이한 형제관계가 그 증거다. 모든 상황이 여울이를 힘들게 한다. 어디로 가든 낭떠러지 뿐.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여울이가 2년 째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것도 다 살기 위해서다. 늘 그립기만 한 엄마의 빈자리도 잠시 잊어볼 겸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전혀 다른 세상에서 느끼는 행복. 충만하진 않지만 짜릿하긴 할 것이 같다. 코스튬플레이로 피오나공주를 택한 것도 무수리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공주가 되어보고 싶어서다. 예정에도 없던 슈렉이 나타나 눈치 없이 키스를 해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하지만. 무수리로 돌아온 현실은 역시나 녹녹치 않다. 그래도 공주가 되려는 허황된 상상에만 목매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차츰 깨달아 간다.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 하는 철학적인 고민도 잠시 해보면서 말이다. 여울이의 최종 목표는 하루 빨리 가출을 하는 것이다. 어영부영 하는 틈에 다시 집으로 끌려 들어오는 여타 청소년의 가출이 아닌 완벽한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울이의 말을 빌리자면 가출이 아닌 출가! 그런 여울이 앞에서 언니, 오빠, 삼촌까지 먼저 집을 나가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다. 그야말로 가족들의 가출릴레이. 곪아버린 상처는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상처가 나면 곪기 전에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은데 당장 못 견딜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방치하곤 한다. 때론 미련할 정도로 상처를 방관하기도 한다. 그것이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여울이네 가족들이 모두 그랬나보다. 마음 한 구석에 불만을 잔뜩 품은 채 ‘어디 한 번 건드리기만 해봐’ 하는 심정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온 가족들. 한 번 불꽃이 튀기 시작하자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여울이를 당혹스럽게 한 건 가족들의 연이은 가출소동만이 아니다. 코스를 하면서 마음에 둔 세바스찬은 여울이가 아닌 여울이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고, 위태위태하던 아빠의 사업은 결국 수많은 리스크를 안은 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대책 없는 가족들 틈에서 여울이는 결국 할매와 단 둘이 남게 된다.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것. 함께 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슬슬 걱정이 된다. 모두가 선수를 치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여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 평생 엄마를 기다렸듯 이제는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그 가족들을 기다려야 할 차례. 모두들 가족의 형태를 띠며 살아가고 있지만 막상 들추어보면 제각각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울이네 만큼 찬란한 가족사를 지닌 가정 또한 분명 있을 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여울이는 소신 있고 당차다. 지금 이 시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줄 현실감 있는 캐릭터. 코스튬플레이로 자신만의 일탈을 즐기고 출가를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가족이 해체 상황에 이르자 소녀 가장으로 분한다. ‘진짜 용기를 내 출가한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p.195)' 갈 준비를 하는 건강한 청소년. 오합지졸 가족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가출 퍼레이드. 그 속에서 다양한 성장통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권여울. 『불량가족 레시피』는 가족의 해체를 통해 가족의 재탄생을 예고하는 쿨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개성강한 캐릭터와 작가의 순발력 넘치는 필치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완벽하게 빠져들게 한다. 가족이 아닌 것 같은 가족구성원들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소설.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저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