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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당신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
-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자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내포하고 있는 말. 하지만 오늘날의 자살은 더 이상 자발적인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가해오는 타인의 말과 행동이 한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분명 ‘A'라는 사람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B'로 인식한다. 처음에는 ‘아니다’라고 부정을 한다. 그러다 점점 ‘그런가?’ 라며 스스로도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에는 ‘그럴지도 몰라’라는 자괴감에 빠져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현실을 인정해버린다. 한 사람의 세 치 혀에서 시작된 장난, 그 장난에 동조하는 아이들의 영악한 놀이. 3년 가까이 지속된 이 놀이가 오늘, 천지를 죽였다.
『우아한 거짓말』은 2008년 『완득이』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김려령 작가의 책으로 한 청소년의 자살을 통해 본 학교 내 왕따 문제와 이 사회에 만연된 가십 문제를 꼬집고 있다. 5학년 때 전학 온 천지를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화연이다. 남들이 보기에 화연이 만큼 천지를 챙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화연은 천지와 가까이 하려는 사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친구로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천지를 철저히 고립시켜 완벽한 왕따로 만들기 위한 고단수 전략이다. 화연의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를 점점 더 궁지로 내몰아 간다.
천지는 잘못된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한때 언니와 엄마 혹은 다른 누군가가 바꾸어주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이젠 희망을 놓아버렸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잘 지내겠지 라며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이라도 잘 지내니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주어야 한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형식적인 안부만을 확인하며 살다보니 마음속의 말들은 쌓여가고 병은 깊어만 간다.
천지는 속으로 곪아갈수록 겉으로는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성적이 좋아야 신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상위권을 유지하려 애썼고, 무던해 보이기 위해 소설책을 읽는 척하며 뜨개질에 몰두했다. 그저 문제없는 평범한 아이. 천지는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잘못된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아이의 현실은 고단하다. 결국 자살을 준비하는 천지. 이 세상에 다섯 개의 털실 뭉치를 남겨 놓는다.
『우아한 거짓말』은 작가의 네임벨류 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이 책은 나를 김려령 작가의 완벽한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완득이’의 톡톡 튀는 발랄함과는 달리 읽는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소설. 벼랑 끝에 선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마음에 와 닿아 편치 않다. 어른 세계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세계는 이 사회의 아픈 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가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자의 고백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래서일까. 열네 살, 이미 죽은 자가 되어버린 천지의 독백은 처절하기보다 처연하다. 천지의 독백, 동생이 죽은 이유를 밝히려는 언니 만지의 추적, 천지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숨은 노력들, 천지 가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도.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소설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 긴박하고 때론 절박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한 필치로 잡아낸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 덕분에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 더 이상 방치될 아이가 없어야 하므로. 더 이상 방치될 어른 또한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