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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평점 :
위로,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 이철환, 『위로』를 읽고
한낮의 부산함이 모두 사그라들고,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침묵의 시간이 찾아오면 소리들이 명징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귓전을 울리는 나직하지만 선명한 소리들. 그것은 세상의 소리이자 내면에서 들려오는 나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 소리들과 마주할 때면 마음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정신이 또렷해지기도 한다. 대체 얼마만큼의 소란스러움 안에 갇혀 살았기에 주변을 맴도는 이 소리들을 듣지 못했을까 싶다가도 이제라도 말을 건네 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내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이 있다. 바로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의 신작 『위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 때의 함박웃음을 잃는 일이기도하다. 아이는 하루 온종일 세상을 탐색하느라 바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깔깔 웃고 걱정 없이 잘 자고 바지런히 움직인다.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다른 것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어른이 되면 다르다. 무엇을 해도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쓰게 된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삶을 맞추려하다 보니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바로 불치병에 가까운 ‘비교병’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 파란나비 피터 역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자신이 가진 파란날개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모른 채 붉은 날개만을 동경한다. 원하던 것을 갖게 되면 과연 행복해질까. 결론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진 것에 대한 만족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늘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위로』는 재미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교과서처럼 바르지만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다보면 세상의 진리와 순리를 깨닫게 된다. 조목조목 자세하고 친절한 가르침에 자주 밑줄을 긋게 된다. 그런 면에서 교과서와 비슷하지만 교과서에는 없는 감동이 있다. 파란나비 피터의 여정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위기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 피터는 붉은 날개를 갖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불신 오해 약육강식 소통의 부재 권력의 쓸쓸한 이면 등을 경험하게 된다.
쓰라린 고통 뒤에 마침내 깨닫게 되는 이해 배려 소통에 관한 이야기. 고정관념이 얼마나 치명적인 편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높이 올라가는 삶보다 깊이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해본다. 존재의 욕망과 이중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단순히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 따라 세상이 얼마만큼 달라질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위로’라는 말을 떠올리면 날 선 생각들이 경계 없이 허물어진다.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단단히 옭아맸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게 된다. 내 안에 내제된 이중성과 양면성으로부터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홀가분하게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누군가 내게 따듯한 위로를 건네 온다면 정말이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로를 건네는 일도 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으려는 듯 저마다 철옹성 같은 벽을 쌓은 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어느 순간, 타인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때가 찾아와도 ‘나 좀 위로해 주세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위로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단 한 번의 손길, 단 한 번의 눈빛이면 충분한데 우리는 그것을 받지 못해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위로를 건네는 일에도 위로를 받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은 어찌 보면 서글픈 인생들. 이 책을 읽고 나면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위로받지 못해 헛헛한 마음을 누군가를 위로하며 채울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생길지도. 슬프지만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책, 이철환의 『위로』를 읽고 자신부터 위로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