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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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 순간 무너져 버릴 때가 있다. 실은 처음부터 옳지 않았는데 나만 옳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진실을 가장한 치밀한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형이 될 수 없는 한 때 사랑했었던 사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틈도 없이 우리는 각자가 되어 버렸다. 그 시절의 일을 떠올리면 그가 있다. 그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그 날이 따라온다. 해서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마음 깊은 곳에 여러 겹의 장막을 친 채 묻어두었던 일.

 살아가는 동안 문득문득 지난날의 상처와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뒤따르는 아픔들.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은 탓이다. 그냥 한 번 움찔,하면 고통 또한 지나감으로 굳이 치유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화해하지 못한 시간 속에 과거의 나와 옛 사람들과 그 사람이 방치되어 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싹둑 잘라버린 고통의 시간.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만났다. 서른 셋, 더 이상 청춘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모르는 나이에. 청춘이 아닌 시절로 넘어간다는 것. 더 이상 치기를 부리는 것도 더 이상 맹목적인 열정에 빠져드는 것도 더 이상 상처와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어쩌면 허락할 수 없는 나이. 그 나이가 되기 전에 푸르렀던 청춘시절 어디쯤 쳐 둔 회색커튼을 그만 거둬내고 싶다.

상처, 공유하면 치유될까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결국엔 엄마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살고 있는 정윤. 언니의 꿈을 무너뜨리고 결국엔 언니를 지키지 못한 상실감에 늘 자책하며 살아가는 미루. 어린 시절부터 윤의 곁에서 미루의 곁에서 각각 함께해온 단과 명서. 혼돈의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는 윤교수. 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되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시대의 혼란함과 마냥 사랑만 하고 살 수 없는 고단함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인공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지난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p.213)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상처를 공유하기도 전에 공유할 수 있는 관계들마저 끊어버렸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건 그 시간들로부터 무작정 도망쳤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이 한 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고부터 어떠한 소통도 쉽사리 허락하지 못하는 나. 푸르름으로 가득해야할 청춘의 한 시절이 그렇게 멍이 든 채 버려져 있다.

사랑,은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공유하는 슬픔이 더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함께 있으면 고통스런 기억이 떠올라 슬퍼하고 절망하게 된다. 하물며 끝끝내 속으로 삼키지 못하고 고백하고 만 외사랑은 어떨까. 이미 마음을 들켜버려 쑥스럽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불편한...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 불안한 관계. 주인공들이 사랑만 하기에는 시대 상황이 실로 어수선하다. 공유하는 상처 또한 쓰리기만 하다. 만약 아픔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사랑은 수월했을까. 그래서 더 깊어졌을까. 사랑을 하는데 이유가 없듯 때로는 사랑을 놓아버리는데도 이유가 없다. 돌이켜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우리는 마주잡은 두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다 지나가는데,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유 또한 다 지나갈지 모르는데, 순간을 참지 못해 우리는 무수한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치명적인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시 만나지는 인연도 있다. 바로 윤과 명서처럼. 나는,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게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만남과 헤어짐이 흔한 지금, 서로의 영혼 깊이 각인되는 풍경같은 사랑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일까.

언젠간, 서로의 크리스토프가 되어주기

 시대에 아프고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 치명적인 상실에 절망하는 사람들. 그 절망의 늪에 빠져 처참하게 허물어져 내리는 영혼들을 만나는 동안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은 인생의 어느 시기쯤 바래긴 해도 결코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광경과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뭘 했던가?(p.341)라고 끊임없이 자책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순간. 그 상황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른다 해도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잊고 싶다고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절망은 더 깊어지기 마련. 피하고 싶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무작정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음을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슬픔도 고통도 그 밑바닥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음을. 당장의 고통이 크기에 회피하고 싶었던 그 때. 상처받고 훼손되는 영혼은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사랑에 아파하고 상실에 좌절하는 순간이 와도 그 시간이 오래지 않기를, 고통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고통이라면 나누어야 한다. 혼자서 이겨내기에는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여행자(p.62)이기에 서로의 길을 안내해주는 크리스토프가 되어야 한다.


- 때로는 책을 읽는 과정이 힘겨울 때가 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지난날의 상처를 툭툭 건드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만큼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고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 온 몸을 경직시킬 때면 몹시도 당혹스럽다. 상처받은 그 순간으로부터 급하게 도망쳤기에, 관계의 사슬을 모두 끊어버렸기에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고문 같은 시간들. 왜 아프지 않은 척 연기하며 살았을까. 왜 한번쯤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한없이 움츠려들게 만드는 지난 시간들과 마주할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얻게 되었다. 더 이상은 영혼이 훼손되지 않도록 과거의 나와 화해를 시도해본다.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과거의 나일지 모르므로.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아프고 슬펐다. 그런데 놀랍도록 설렜다. 그때의 그 기쁨만큼 그때의 그 슬픔만큼 그때의 그 절망만큼.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고백을 얼마 만에 들어본 것일까. 이렇게 아픈 청춘들을 얼마 만에 만나본 것일까. 사랑도 사람도 일회성에 그치기 쉬운 요즘 깊고도 푸른 영혼들을 만난 것은 정말이지 귀한 경험이다. 상실과 슬픔이 없다면 청춘을 푸르다 말할 수 있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 준 신경숙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만히 읽다보면 고통이 치유되는 소설. 언젠가,라는 희망을 품어보게 만드는 소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게 만드는 소설. 내.가.그.쪽.으.로.갈.게 라고 말하고 싶게 하는 소설. 오늘을 잊지 않도록 소중하게 살고 싶게 만드는 소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를 간절히 찾는 전화가 잘못 걸려오더라도 짜증보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장을 덮으며 바래본다. 내 영혼이 한 뼘 더 성장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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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dy5 2011-12-2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의 그 기쁨만큼, 그때의 그 슬픔만큼, 그때의 그 절망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고백이 책을 읽은 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저도 계속 기억에 남아요. 이 서재 정말 좋아요. 제가 읽은 책도 많고 또 읽고 싶어지는 책도 많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