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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평점 :

누런 벽지
이와 같은... 누런 벽지로 가득 찬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파멸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작가의
현실 고발을 담은 책
이미 미쳤거나
미쳐가고 있는 중이거나
결국엔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단숨에 읽고 깊어지는
월간 내로라
누런 벽지
내로라 출판사에서
한 달에 한 편
영문 고전을 번역해
단편 소설 시리즈를 출간할 당시
거의 초창기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단편 소설
원서와 번역본 나란히 수록
번역자의 생각을 더한
더 깊어지는 페이지까지
읽는 내내 흥미롭고
읽고 나면 여운 가득한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입니다.

누구라도
이걸 읽는다면
미쳐 버릴 것이 분명하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될 것!
《누런 벽지》 출간 후 보스턴 주의
어느 의사가 'The Transcript'에 기고한 글
《누런 벽지》는 집안에 갇힌 채 미쳐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미쳐 있었거나 그 경계를 아슬하게 걷고 있는 중인 이 여성은 결국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요, 그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인칭 독백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감정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데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랍니다. 기필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1891년 책 출간 당시에는 신경 쇠약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휴식 치료법'을 적용했다고 해요.
환자의 완벽한 휴식을 목표로 6~8주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어떤 지적 활동이나 창의적 활동도 제한했고요. 영양 공급을 위해 고단백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습니다. 15킬로그램 체중 증가가 치료의 성공 지표였다고 해요.
누구라도...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상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몸보신,
여행, 신선한 공기, 운동,
뭐 이런 것들을 함께 처방했고,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모든 '일'을 절대 금지했어.
내 생각에, 그 처방은 틀렸어.
《누런 벽지》 p.27
의사 남편과
유명한 의사 오빠마저도
같은 처방을 내립니다.
야외 활동 금지
글 쓰는 것 금지
사람들과 교류 금지
아기와의 만남조차 금지
오로지 침대에서만 생활하기
무척이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유서 깊은 대저택의 맨 꼭대기 층
여름 한 철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
'지금까지 맡아본 냄새 중에서 가장 은은하고 또 오래가는' '정말 독특한 악취'를 풍기는 '누런 냄새'로 가득한 누런 벽지에 둘러싸인 공간.
'그 색깔은 혐오스럽고 역겹기까지'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햇볕을 받아 변색된 것 같은, 들끓는 불결한 누런색'.
'전반적으로 칙칙한 색인데, 군데군데 폭력적일 만큼 선명한 오렌지색이 섞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매캐한 유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누런 벽지로 둘러싸인 대저택의 최상층에 위치한 옥탑방 같은 곳.
그곳에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합니다.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분명 이 대저택의 아래층에는
아름다운 공간이 많이 있어요.
왜, 하필,
감옥 같은
이 방에서 지내야 할까요?
신중하고 다정한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
이런 공간에서
매일 더 미쳐가는 여주인공
몰래
글을 쓰는 것으로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열한 편의
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정말이지 읽는 내내
미쳐 버릴 거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왜? 왜? 왜?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광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닙니다.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썼습니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 The Forerunner 》에서 발췌
이 소설은 현실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작가 역시 심각한 신경 쇠약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의사는 책의 주인공에게 내린 처방과 같은 치료법을 작가에게 권했고 얼마간 충실히 따랐습니다.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어요. 더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홀로 방법을 모색합니다. 마침내 신경 쇠약에서 벗어난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합니다.

책이 출간된 이후
신경 쇠약증에 관한
다른 치료법이 도입되었다고 해요.
이전까지는 대부분 마시지 요법과 전기 충격 요법을 병행했고요, 마약 성분을 함유한 신경 안정제 주사는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중산층 여성들에게만 적용했다고 해요.
특히, 주인공 여성에게 적용했던 무자극 무활동 처방은 신경쇠약증 환자뿐 아니라 과하게 활동적이고 사회적인 여성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도 적용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런 시대에
출간된 《누런 벽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값진 승리이자
여성을 향한
편견에 반기를 드는
마중물 같은 책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누런 벽지》만 읽었다면
책의 의미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혼미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내로라 시리즈로 만난 책에는 작품을 쓴 경위와 그 당시 사회적 상황, 이 책이 일으킨 반향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로라 시리즈를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작품을 슬쩍 읽고 흘려보내게 하지 않습니다. 곱씹는 동안 의미를 더하게 만들지요.
작품을 알아가고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내로라 시리즈!

《누런 벽지》는
다소 기괴하고 찝찝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읽어요?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기에 읽어 보세요!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사회 문제를 직시한 소설!
자기 파멸적 상황을
뚫고 나온 작가가 쓴
이 소설 덕분에
신경 쇠약증에 관한
치료법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한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는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단숨에 읽고 깊어지자는
내로라 시리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이 광적인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_ 출판사 협찬도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