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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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를 구하라, 용서하라! 구원을 구하라, 구원하라! 

- 파울로 코엘료, 『알레프』를 읽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믿음의 유무일까 경험의 차이일까. 여기에 이대로 머무를 것인가.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나의 왕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파울로 코엘료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하고 팬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그의 작품에 열광적으로 빠져들지는 못해도 열성적이긴 하니까. 그의 책을 습관적으로 사 모으고 습관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낯설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의 작품은 매순간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언제나 가닿을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의 새 작품을 읽지 않고 지나치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미 한 사람의 작가를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므로.

알레프. 기(氣)의 세계.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 그곳에서라면 전생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해도 실마리를 발견할 수는 있다. 이 생에서 안고 살아가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인지. 9288 킬로미터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 안에 알레프가 있다. 현재로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 한 번은 제대로 통과해야 할 문, 알레프.

현실은 빠듯하다. 그런데 영적 세계라니. 마법 전승 전생 환생 표지 평행우주 같은 단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다. 계획한 일과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런 신기루 같은 이야기에 탐닉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끝까지 『알레프』에 귀를 기울인 건 ‘가끔은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 될 필요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는 관찰자가 되어 삶을 들여다보는 것.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보아야 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삶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지만 내 삶이 아닌 것들. 온전히 내 것도 아니면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는 과거, 전생. 쉰아홉의 작가는 이미 스무 살 초입에 마법의 세계에 입문했다. 여러 번 전생을 경험했고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은 채 살아간다. 속죄하고 싶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속죄해야 할 지 모른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의심들, 불신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갑자기 나타나 여행에 동참시켜줄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힐랄 이라는 터키 여인과 함께. 그가 다시 경험하게 되는 알레프. 그녀가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알레프. 그것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을까.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알레프’를 만난 것이 그랬다(물론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보이지도 않는 전생을 나는 감히 상상해본다. 전생을 상상해본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경험이다. 그 때 저지른 나의 죄와 행했던 나의 옳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이 지금 이 생의 나를 어떻게 이루고 있는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물론 어떠한 답도 얻을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를 되돌아보고 성찰해보는 것.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 거기에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어떠한 답이 있을 수도 있다. 삶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미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의 결과’이므로.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무수히 많은 말들이 갑자기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이 떨림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뿐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선택받지 못한 것은 결국 배제된다. 나는 이 책을 내 인생을 위해 선택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영적 세계로 입문하려거나 환생을 쫒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면으로의 여행, 성찰과 고찰.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기울여야봐야겠다는 말이다.

현실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이렇게 팍팍한 현실에서 영적 수행 운운하는 건 대부분의 삶에서 불가능하다. 대신 우리 각자에게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해 보이는 현상만을 쫒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훌쩍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지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줄 아는 지혜. 내면의 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때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 거창한 무언가를 이룩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미약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조금씩 물들여갈 수 있다. 이 생에서 안 된다면 다음 생으로 또 그 다음 생으로 이어나가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생은 기차지 기차역이 아니'잖은가. '이 칸에 탔다가 때로는 저 칸에 타고, 꿈을 꾸거나 기이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해야 한다. ‘내가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할 것. 그것이 영적 수행이든, 현실 고행이든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야 삶의 어느 순간 중국 대나무처럼 갑자기 약 25미터 높이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나는 나의 왕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발견에 달려 있다.


『알레프』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신비롭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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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아직 어른이 되기 두려운 그대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가슴 따뜻한 격려
정희재 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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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어른으로 잘 살고 있나요?
- 정희재,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읽고

 살다보면 가끔 위로가 필요한 날이 찾아온다. 그런 날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오랜만에 펼쳐든 일기장 가득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하고,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생각에 잠겨들기도 한다. 책장을 정리하거나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빛바랜 편지들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언제였을까.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아마 한창 책읽기에 빠져들었던 중학생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수하고 순진했다. 세상의 밝은 면을 더 많이 알고 있었던 소녀였던 시절. 어린왕자는 맑고 투명한 빛으로 다가왔다. 처음 그 빛을 만났을 땐 그저 환하다 생각했다. 세상에 이처럼 밝은 빛이 또 있을까 싶어 그저 신비로웠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는 동안 다시 만나게 된 어린왕자는 빛이 지닌 고유의 온기로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어 주었다.

 돌아가야 할 근원을 일깨워주는 동화 <어린왕자>. 어린왕자가 말한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이 까무룩 잊힐 때면 그는 늘 나타나곤 했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수많은 ‘다름’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은 아이. 그 ‘어린왕자’가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통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린왕자>는 특별한 해석 없이도 술술 잘 읽히는 동화다.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굳이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 ‘다시 읽기’나 ‘재해석’같은 고리타분한 고증이 아니다. 귀소본능.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태초에 품은 순수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본능적인 마음을 되짚어주고 있다. 바로 ‘어린왕자’를 통해서 말이다.

 지구상에 어린왕자를 나만큼이나 특별히 생각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어떤 사람이기에 늘 어린왕자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까. 아마 어린왕자가 생각하는 ‘정말 이상한 어른’은 아닐 것 같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조금은 고단하고 조금은 외로웠을 것 같기도 하다. 내적 방랑기를 무던히도 견뎌냈을 것 같은 사람. 그래도 마음속에 꿈과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고 살았을 것 같은 사람. 다른 별에서는 평판이 좋다고 소문난 '지구별'이라지만, 이곳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사실 녹록치 않다. 웃어도 보고 울어도 봤을 것이다. 타협도 해보고 협상도 해봤을 것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삶의 이야기들. '사랑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꿈은 불투명한 시대에 띄우는 어린왕자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생의 모든 것 앞에 '不(아닐 불)'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고단함에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그 또한 불안하고 불확실하며 불투명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이므로.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는 <어린왕자>를 어른의 시각에서 더 깊이 공감하게 해준다. <어린왕자>이야기가 한 단락 끝나면 지구별 어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왕자>와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끊임없는 고뇌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때론 울컥 하기도 한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라며 허물어져 내리는 마음에 당황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계 없이 마음을 놓아버리다니. 그래도 괜찮다. 어린왕자 앞이니까. 어린 왕자를 나만큼이나 사랑하는 지구별 어른 앞이니까.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과 미래와 꿈에 대해 그리고 시대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 책을 읽는 동안 밑줄은 늘어만 가고 그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처음 만나는 ‘정희재’라는 저자의 필력과 생각에 이처럼 깊이 공감하게 될 줄이야. 속절없는 이끌림. 어린왕자 이야기이기에, 지구별 어른 이야기이기에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었나 보다.

 살아가는 것이 고단해도, 삶이 가끔 나를 속여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 주저하지도 포기하지도 말 것.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삶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정말 이상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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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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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해체를 통해 깨닫게 된 진정한 가족의 의미
-손현주, 『불량가족 레시피』를 읽고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 자유로울 것 같다. 전에 없던 자신감도 생길 것 같다. 치기어린 반항도 해보고 부조리에 반기도 들어볼 것 같다. 한마디로 일탈, 한마디로 비상!

 여기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일탈을 꿈꾸는 소녀가 있다. 소원여고 1학년 5반 권여울.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배다른 형제들 틈에서 막내로 자라났다. 일반적인 가정의 막내와는 달리 권씨 집안에서는 완벽한 천덕꾸러기다. 자신만 보면 욕을 퍼부어대는 거친 입을 가진 언니와 ‘송장 칠 나이에 똥 걸레 빨게 한 년(p.15)’이라며 온갖 잔소리와 타박을 해대는 할머니 밑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 거기에 다발경화증이라는 병 때문에 늘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오빠와 뇌경색을 앓고 있는 주식폐인 삼촌도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집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빠다. 채권 추심 하청 일을 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 살고 있는 집마저도 위태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한 아빠. 일도 문제지만 아빠의 최대 맹점은 여자를 너무 밝힌다는 것. 두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동거의 결과물인 여울이네 기이한 형제관계가 그 증거다.

 모든 상황이 여울이를 힘들게 한다. 어디로 가든 낭떠러지 뿐.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여울이가 2년 째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것도 다 살기 위해서다. 늘 그립기만 한 엄마의 빈자리도 잠시 잊어볼 겸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전혀 다른 세상에서 느끼는 행복. 충만하진 않지만 짜릿하긴 할 것이 같다. 코스튬플레이로 피오나공주를 택한 것도 무수리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공주가 되어보고 싶어서다. 예정에도 없던 슈렉이 나타나 눈치 없이 키스를 해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하지만. 무수리로 돌아온 현실은 역시나 녹녹치 않다. 그래도 공주가 되려는 허황된 상상에만 목매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차츰 깨달아 간다.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 하는 철학적인 고민도 잠시 해보면서 말이다.

 여울이의 최종 목표는 하루 빨리 가출을 하는 것이다. 어영부영 하는 틈에 다시 집으로 끌려 들어오는 여타 청소년의 가출이 아닌 완벽한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울이의 말을 빌리자면 가출이 아닌 출가! 그런 여울이 앞에서 언니, 오빠, 삼촌까지 먼저 집을 나가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다. 그야말로 가족들의 가출릴레이. 곪아버린 상처는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상처가 나면 곪기 전에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은데 당장 못 견딜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방치하곤 한다. 때론 미련할 정도로 상처를 방관하기도 한다. 그것이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여울이네 가족들이 모두 그랬나보다. 마음 한 구석에 불만을 잔뜩 품은 채 ‘어디 한 번 건드리기만 해봐’ 하는 심정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온 가족들. 한 번 불꽃이 튀기 시작하자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여울이를 당혹스럽게 한 건 가족들의 연이은 가출소동만이 아니다. 코스를 하면서 마음에 둔 세바스찬은 여울이가 아닌 여울이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고, 위태위태하던 아빠의 사업은 결국 수많은 리스크를 안은 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대책 없는 가족들 틈에서 여울이는 결국 할매와 단 둘이 남게 된다.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것. 함께 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슬슬 걱정이 된다. 모두가 선수를 치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여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 평생 엄마를 기다렸듯 이제는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그 가족들을 기다려야 할 차례.

 모두들 가족의 형태를 띠며 살아가고 있지만 막상 들추어보면 제각각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울이네 만큼 찬란한 가족사를 지닌 가정 또한 분명 있을 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여울이는 소신 있고 당차다. 지금 이 시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줄 현실감 있는 캐릭터. 코스튬플레이로 자신만의 일탈을 즐기고 출가를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가족이 해체 상황에 이르자 소녀 가장으로 분한다. ‘진짜 용기를 내 출가한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p.195)' 갈 준비를 하는 건강한 청소년.

 오합지졸 가족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가출 퍼레이드. 그 속에서 다양한 성장통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권여울. 『불량가족 레시피』는 가족의 해체를 통해 가족의 재탄생을 예고하는 쿨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개성강한 캐릭터와 작가의 순발력 넘치는 필치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완벽하게 빠져들게 한다. 가족이 아닌 것 같은 가족구성원들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소설.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저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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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빠진 그녀들의 특별한 여행

편견을 벗은 와인의 소박함을 오감으로 느끼다!

 

 와인, 아름다운 기다림  

최정은&김민송 / 북스캔 

 

... 댓글이벤트 당첨 선물 ...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나무를 키운다면적어도 30년은 기다려야 한다.

거기다 포도를 수확하고 만들기까지 2~3년은 더 공을 들여야 한다.

게다가 다 만들어진 와인이라 할지라도 제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 따라 적게는 1~2년 많게는 10~20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시기까지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머리말 중에서...

 

 

호사품도 아니고 격식을 따져야만 먹을 수 있는 술도 아닌 친근한 와인...

프랑스 와인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만나기 위해 떠난

두 여인의 프랑스 와인 여행기!

프랑스 시골 마을의 포토밭... 그 밭고랑 사이를 직접 거니는 사이

프랑스 와인은 서서히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어깨의 힘을 빼고 편히 즐길 수 있는 와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두 여인,

그녀들을 따라 프랑스 와인 속으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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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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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
-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자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내포하고 있는 말. 하지만 오늘날의 자살은 더 이상 자발적인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가해오는 타인의 말과 행동이 한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분명 ‘A'라는 사람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B'로 인식한다. 처음에는 ‘아니다’라고 부정을 한다. 그러다 점점 ‘그런가?’ 라며 스스로도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에는 ‘그럴지도 몰라’라는 자괴감에 빠져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현실을 인정해버린다. 한 사람의 세 치 혀에서 시작된 장난, 그 장난에 동조하는 아이들의 영악한 놀이. 3년 가까이 지속된 이 놀이가 오늘, 천지를 죽였다.

『우아한 거짓말』은 2008년 『완득이』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김려령 작가의 책으로 한 청소년의 자살을 통해 본 학교 내 왕따 문제와 이 사회에 만연된 가십 문제를 꼬집고 있다. 5학년 때 전학 온 천지를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화연이다. 남들이 보기에 화연이 만큼 천지를 챙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화연은 천지와 가까이 하려는 사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친구로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천지를 철저히 고립시켜 완벽한 왕따로 만들기 위한 고단수 전략이다. 화연의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를 점점 더 궁지로 내몰아 간다.

천지는 잘못된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한때 언니와 엄마 혹은 다른 누군가가 바꾸어주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이젠 희망을 놓아버렸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잘 지내겠지 라며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이라도 잘 지내니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주어야 한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형식적인 안부만을 확인하며 살다보니 마음속의 말들은 쌓여가고 병은 깊어만 간다.

천지는 속으로 곪아갈수록 겉으로는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성적이 좋아야 신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상위권을 유지하려 애썼고, 무던해 보이기 위해 소설책을 읽는 척하며 뜨개질에 몰두했다. 그저 문제없는 평범한 아이. 천지는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잘못된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아이의 현실은 고단하다. 결국 자살을 준비하는 천지. 이 세상에 다섯 개의 털실 뭉치를 남겨 놓는다.

『우아한 거짓말』은 작가의 네임벨류 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이 책은 나를 김려령 작가의 완벽한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완득이’의 톡톡 튀는 발랄함과는 달리 읽는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소설. 벼랑 끝에 선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마음에 와 닿아 편치 않다. 어른 세계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세계는 이 사회의 아픈 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가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자의 고백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래서일까. 열네 살, 이미 죽은 자가 되어버린 천지의 독백은 처절하기보다 처연하다. 천지의 독백, 동생이 죽은 이유를 밝히려는 언니 만지의 추적, 천지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숨은 노력들, 천지 가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도.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소설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 긴박하고 때론 절박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한 필치로 잡아낸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 덕분에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 더 이상 방치될 아이가 없어야 하므로. 더 이상 방치될 어른 또한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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