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남자 만들기 -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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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씩씩한 남자가 된다?

‘몸짱’, ‘근육맨’으로 유명한 한 남자 가수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치고 복귀한 뒤 끊임없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와 관련된 기사 밑에는 언제나 ‘군대나 다시 제대로 다녀와라’라는 내용의 ‘악플’이 달리곤 한다. 다부진 몸,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체력과 운동신경은 그가 입대를 하기 전까지 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건전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었었다. 그런 그가 허리디스크로 현역이 아닌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입대를 하자 사람들은 ‘그가 우리를 속였다’, ‘그에 대한 병역판정이 불공정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 사건은 다른 몇몇 ‘몸짱’ 연예인들의 병역 문제와 관련지어 보면 매우 흥미롭다. 2001년 말에는 또 다른 ‘몸짱’ 가수가 미국 시민권 획득을 통해 병역을 회피하면서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었다. 그도 건강하고 건전한 청년 이미지를 자신의 근육질 몸을 통해 구현해 내고 있었다. 그 이미지에 걸맞게 미국 이민자였음에도 자신은 ‘대한의 남아로서 군대에 꼭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입대를 해야 할 시기가 되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함으로써 병역 면제 처분을 받아버렸다.일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덕분에 그는 아직까지도 연예활동은 물론 한국에 입국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반면, 역시 근육질의 몸매로 유명했던 모 탤런트는 브로커를 통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고 면제판정을 받았다가 결국 재검을 받고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다. 그는 입대 전까지는 무수한 비난과 지탄에 시달렸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예전 못지않은 인기와 명성을 얻어 작년 연말에는 모 방송사에서 연기상 대상을 받는 쾌거를 거두며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이 세 명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남성들의 군 입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군대를 ‘빼는’ 남자들에 대해선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하듯 비난을 쏟아 붓지만, 군대만 ‘제대로’ 다녀오면 그 전의 행동들은 모두 용서가 된다. 이 한국 땅에서는 평생 ‘병역 기피자’, ‘공익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대중적․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사느니, 정말 지금이라도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는 편이 연예인들로서는 훨씬 편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왜 그럴까? 물론 ‘평등’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불평등한 사회를 사람들은 참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힘은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다. 즉 대한민국의 이상적 남성상을 ‘군대를 다녀 온’ ‘씩씩한 남자’라고 여기는 풍조가 여전히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씩씩한 남자’처럼 보이는 몸짱 연예인이 군대에 가지 않는 ‘괴리’를 잘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씩씩한 남자 만들기》,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을 탐색하다

박노자 교수의 새 책 《씩씩한 남자 만들기》는 한국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바로 이러한 ‘씩씩한 남자’를 이상적 남성상으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 연원과 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에는 근육질의 군사화된 몸을 가진 남성보다 훌륭한 학력 자본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더 인기 있다. 그런 점에서 ‘씩씩한 남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미 낡은 구호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한 남자 만들기’에 대한 환상과 담론은 위의 사례들에서 보이듯 여전히 대중적으로 유효하다. 이는 구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특히 뚜렷하다. 이 책은 이 같은 관점 하에 한국에서 군사적 요소가 강한 육체적 훈련에 익숙하게 된 과정, ‘마음 닦는’ 방법으로 체육이 채택되게 된 배경, 근대 체육이 도입된 이래 오늘날까지 ‘스포츠 붐’이 이어져 온 사정에 대해 1890~1900년대 이전과 이후, 지배층과 피지배층, 이념과 실제, 유럽과 동아시아 등을 광범위하게 넘나들며 해명해 나간다. (하략, <씩씩한 남자 만들기> 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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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평류의 글을 쓰는 데에 적합한 인간형이 못된다. 가장 큰 이유는 '요약'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세미나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원책 못지 않게 긴 나의 발제문을 두려워 한다.^^

이는 두 차원에서의 지나친 '친절'과 '강박'의 발로인데, 하나는 원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의 논리적 흐름에서 뭐라도 빠트리면 왜곡, 은폐가 될 거란 생각, 다른 하나는 그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 사람들이 이해 못할 정도로 생략하면 예의가 아닐 거란 생각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의, 그것도 저명한 학자의 책에 대한 '발문'을 쓴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고 모험이었다. 어찌어찌 분량에 맞춰 발문을 썼지만, 그 책이 며칠 전에 나왔길래 새삼 내 발문을 다시 읽어보니 참 못마땅하다. 그의 책의 포인트들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것 같고, 책의 의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 같다. 매우 아쉽다.

 

몇번 만난 박노자교수의 한국에 대한 관심, 학문에 대한 열정은 나같은 범인의 '야코'를 팍 죽이는 면이 있다. 그의 종횡무진하는 지식의 스펙트럼 앞에서 나는 거의 반쯤 알아듣고 반쯤 그저 고개 끄덕이며 경청할 뿐이다. 그런 그가, 국내 한국학 학자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1910년대 잡지 영인본을 구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그렇게...그는 이역만리의 대학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한국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황스러움은 그래서 부끄러움, 열등감으로 순식간에 전화되었다. 한국학 연구자라면, 한국학계가 이런 학자를 갖고 있는 점에 대해 행운이라 여기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이번 책도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

 

발문에도 적었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비슷한 연구주제를 가진 사람으로서, 좋은 참고서를 제공해주었다는 점, 또 그만이 할 수 있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사료제시에 대해 고마움과 흥미로움을 느낀다. 특히 '남자'를 잘 모르는(ㅎ)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그도 '여자'는 잘 모르는 것(ㅎㅎ)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가 내 몫이 아니듯, '여자'는 그에게 미룰 일은 아니다.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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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09-1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좋네요. 오 누나의 발제문의 길이 속에 그런 깊은 뜻이! 쿄쿄
그리고, 저 선착순 2명 안에 들었던 것 기억하시죵? ㅋㅋ

somun 2009-09-18 07:43   좋아요 0 | URL
물롱이지.ㅎㅎ

LKH 2009-09-1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쁜 여자 만들기'도 아주아주 기대 만땅입니다. 남자가 꼭 남자를 상대화할 수 있고 여자가 꼭 여자를 상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사회의 의미있는 젠더론이 탄생할 것 같아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좋은 작업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somun 2009-09-18 07:43   좋아요 0 | URL
앗, 누구시길래...그 '대외비'를 알고 계시는 건지 궁금하네요.^^기대해 주시니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