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Pack 9 싱가포르
비비안 리튼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책자 자체로만 보면 별 세 개쯤 줘도 큰무리는 없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가이드북을 들고 여행갈 사람들이 누구일지 생각한다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대개들 유럽이나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과 묶어서 며칠 정도의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할 것 아닌가.

이 책의 장점은 올컬러판이라 그럴싸하다는 것, 그리고 커다란 부록지도가 들어있다는 것 정도다. 끝. 다음, 단점을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배낭여행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개되어있는 숙소나 식당은 사업차 방문한 바이어들이 참고하면 딱 좋을 것들이다. 배낭여행자용의 값싼 숙소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싱가포르의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는 점을 상기하실 것!) 여행자들의 땀이 배인 자잘한 팁과 뒷얘기들도 없다. 반면 비싼 식당과 가게 리스트는 몇십쪽이나 된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가면 푸드 코트(백화점 지하같은)가 도처에 널려있어서 배낭여행자들은 끼니의 대부분을 이런 곳에서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식당 리스트란 건 애당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마 이것 한권만 가지고 가실 경우와 그나마 여행 게시판들을 뒤져 건보를 보완해서 가실 경우의 비용 차이는 2배쯤 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싱가포르는 규모도 작고 역사랄 것도 거의 없는 신생 도시국가이고, 대부분이 한며칠 머물고 떠나는 기착지이므로 대단한 가이드북으로 무장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기왕 돈주고 가이드북을 살 거라면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참고로 싱가포르 공항에 내리면 170쪽 정도의 올컬러 '공식 가이드북'이 비치되어있다. 공짜다. 그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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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에게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호빗]은 [반지]의 대서사를 감당하기 위한 가볍고도 아기자기한 몸풀기가 될 듯하다. 그렇다고 반드시 [호빗]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앞 이야기는 이랬다더라'는 식은 다른 시리즈들을 통해 이미 익숙해져있고([대부], [스타 워즈], [애니매트릭스], 나아가 [건담]까지), 어차피 여기가 맨앞도 아니니까. 오히려 [반지]에서는 스치듯 회상되고 마는 이름과 사건들, 그러니까 참나무방패 소린이나 베오른, 바르드, 스마우그, 다섯 군대의 전투 등의 실체를 뒤늦게 확인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과를 먼저 보고 원인을 캐어나가는 재미는 범죄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둘 다 읽지 않은 독자에게라면, 역시 [호빗]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훨씬 덜한 부담감은 1/6 정도의 분량만이 아니다. 소문만 듣고 덜컥 [반지]를 집어든 사람들이 가장 골탕을 먹는 그 지리한 풍경묘사도 없고, 누천년에 이르는 역사와 이름들에 짓눌려 세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염려도 없다. [반지]의 온갖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그야말로 절묘한 수위로 샘플링되어있는 걸 확인하다보면 애초부터 톨킨의 머리 속에는 '모든 것'이 계획되어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 읽은 건데도.)

그렇게 준비운동을 가뿐히 마친 독자들에게는 [반지]라는 가슴 뛰는 본게임이 준비되어있을 것이고, 어쩌다 본게임을 먼저 치른 독자들에게는 [호빗]이라는 유쾌한 뒷풀이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 된다. 행여라도 어느 한쪽만 맛보고 마는 우를 범하지는 마시길. 보다 동화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결코 유치해보이지 않을 만큼 완성도는 탄탄하며, 이 판본의 경우 편집이나 번역문체 또한 동화책같은 구석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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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 칼비노 선집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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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무척 환상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따져보면 낯설 것은 사실 하나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과거 서사문학들은 어느 정도씩 비현실적인 부분들을 담고 있었으니까.(예를 들면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었다가 용궁 답사를 거쳐 연꽃에서 튀어나왔다든가.) 단 한 구절도 '자연과학적 상식'에 위배되지 않는 소설들이야말로 오히려 문학사적으로는 드물고 새로운 축이 아닐까.

마르께스와 보르헤스에 뒤이어 관심을 가져봐야 할 인물로 많은 사람들이 이탈로 깔비노를 꼽는다. 책을 읽어보면 과연 그럴 만하구나 싶을 만큼 만만치 않은 내공이다. <백년동안의 고독>같은 희대의 걸작까지는 아니라지만, 딴은 그만한 작품이 줄줄이 쏟아진다면 '희대'라고 할 수도 없을 터이므로,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쯤으로 절충을 보기로 하자.

본작은 그렇게까지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이지는 않다. 한 남자(이자 남작)가 열두 살때부터 죽을 때까지 나무 위에서만 산다는 게 전부다. 그나마 한 그루도 아니고, 나무가 아주 많은 고장인지라 행동반경도 꽤 넓다. 이 정도라면 마술보다는 기술에 가까울 테니 '기술적 리얼리즘'으로 개명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동계열의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설정이 의미하는 바다. 꼬마 남작이 '무엇'을 '왜' 거부하고 '무얼' 위해 '어디'로 향했느냐에 고루고루 비중이 분산배치되어있는 반면, '어떻게'--즉, 얼마나 대단한 마술을 부렸느냐--는 그야말로 기술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이런 맥락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괴짜들이 씨줄로,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근대초 유럽의 역사가 날줄로 짜이면서 생각할 거리를 하나가득 벌여놓는 것이다.(이 '벌여만 놓는' 것도 환상적 리얼리즘 특유의 방식이자 매력포인트겠다.) 계몽주의의 허와 실, 변질된 대혁명, 산업화와 자연파괴, 사회적 포용성의 문제 등등... 열거할수록 원래의 빛과 색을 잃는 것 같아 계속하지는 못하겠지만.

남미, 동유럽 등 거의 제3세계 고유의 것으로 인식되어온 환상적 리얼리즘 계열의 대가 한 사람을 이탈리아라는 제1세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도 부가적인 기쁨이다. 반면 그의 수다한 작품들이 거의 1쇄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절판되어가는 상황은 적잖은 아쉬움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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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브르 - 1,2권 합본 (양장) ㅣ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3
발락 지음, 이슬레르 그림,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우선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이 만화는 2003년 4월말 현재 완간되지 않았다. 1/2권 합본이 2000년 9월에, 3/4권 합본이 같은 해 12월에 나온 후로 소식이 없다. 책 끝엔 분명 '5권에서 계속...'이라고 쓰여있다. 해적판도 아닌 자칭 '유럽 예술만화'가 나오다가 마는 이 해괴한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가능한 해석 하나는 '유럽만화 붐 일으키기 실패'라는 가설일 것 같다. 2000년 즈음에 한창 시도되었다가 별 재미를 못보고 만 이 작전은 그만큼 일본만화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준 셈이 아니었나 싶다. 유럽산 예술만화라고 해서 달랑 100쪽짜리에 1만원씩이나 주고 사봤더니, 단돈 500원이면 빌려볼 수 있는 일본만화보다 내용으로나 그림으로나 별 대단할 게 없더라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걸작도 있고 평작도 있게 마련이겠지만, 그거야 일본만화도 마찬가지더라는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의 질적 차이가 뒷받침되지 못한 '껍데기의 차별화'(올컬러 호화양장) 작전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겉치장만 요란한 뮤지컬들에 가족관객들이 몰리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만큼 만화독자들의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법하고.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은 작품 수준 자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권에서만 해도 제법 그럴싸하게 조성되었던 열기와 긴장감, 미스테리는 뒤로 갈수록 단순한 고열과 편두통, 아리송함으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장작더미같이 온통 검붉은 색조로 뒤덮힌 색채감이나 역사적 배경, 시적인 대사들은 뚜렷한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꿰지 못한 서말 구슬같은 인상도 남긴다. 한 마디로 감정과잉이라는 느낌이다. '낭만주의의 걸작' 운운하더니 그게 좋은 뜻이 아니었나보다. 스토리 전개는 상당히 산만하고, 그림체는 결코 노련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소재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책장을 덮은 뒤에 남는 기억은 이런 것들이다; 하여간 시종일관 불그르죽죽하구나, 이런 사랑 이런 감정 20대 초반만 됐어도 가산점 줬을지 모르겠다, 유럽에서야 이 정도 수준으로도 통할지 몰라도 숱한 걸작으로 한껏 눈을 단련시켜놓은 한일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을텐데, 근데 5권이 뒤늦게라도 나오면 그걸 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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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ㅣ 미래사 한국대표시인 100인선 100
미래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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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양장본으로 다시 나온 신판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구판은 미래사의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의 제1탄으로 발간되어 상당히 팔려나갔다. 지금은 거의 아무도 이렇게 쓰지 않는 시, 그런데 여전히 제일 많이 읽히는 시, 누가 잘못된 걸까? 각설하고, 책은 총3부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1,2부가 원래의 <진달래꽃>에서 선별된 것이고, 3부는 그외의 작품들에서 선별된 것이다. 어지간히 유명한 작품들은 원판 <진달래꽃> 수록작이든 아니든 다 들어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야말로 무난한 선집, 무난한 편집이다. 윤동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명짜한 대표작들과 여타 작품들 사이의 수준차이가 적지 않은 것은 늘 아쉬운 대목이다. 그들의 대표작들이 워낙 높아서인 건지, 아니면 대다수 시인들의 작품이 낮게 평평해서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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