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UM KOREA - 매그넘이 본 한국
매그넘 지음 / 한겨레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충분한 사전지식 없이 "외국의 유명한 사진가들이 한국에 우르르 몰려와서 찍은 사진이라더라"는 정도의 호기심과 기대만으로, 한편으로 한국의 진지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찍은 결과물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채 이 사진집을 대한다면 즐겁고 인상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정가 10만원이라는 막대한 액수를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지 막막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매그넘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여러 매체에서 되풀이해 접해왔던 그 압도적인 실력, 다큐멘터리 사진의 금메달리스트 집단, 20세기 후반 다큐사진을 이끌어온 거대한 카리스마... 확인할 방법은 간단하다. 매그넘 60주년 기념 사진집인 [매그넘 매그넘]이라는 책이 이미 국내에 나와있다. 정가 16만원으로 더욱 비싸지만 대신 위의 책보다 분량이 2배 가까이 두껍다. 너무 부담스럽다면 [현장에서 만난 20th C : 매그넘 1947~2006]이라는 것도 있다. 훨씬 싸긴 하지만, 대신 싸게 생겼다.

물론 이 책들을 직접비교할 이유는 없다. [매그넘 매그넘] 등은 지난 60년간의 대표작 모음이고, [매그넘 코리아]는 하나의 프로젝트 결과물이므로 아예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그 동안 봐왔던 매그넘의 대표작들에 비해 너무 많이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작업시간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주최측(한겨레신문)이 최대한 많은 수의 사진가를 불러와 양적 규모를 부풀리려다보니 사진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국내용 주간지에나 싣자는 수준이다. 대부분이 생전 처음 와보는 나라일텐데 달랑 2주라니, 오가고 인사하고 행사 한두 개 참석하면 10일도 안될 시간 동안 뭘 하란 말인가. 다큐사진가와 단체관광객을 혼동이라도 한 건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병, 질보다 양이다 병, 사진의 퀄리티에 대해 별로 고민할 줄 모르는 일간지 사진부의 한계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일 것이다.

사진은 한순간 번뜩이는 섬광 따위와는 거리가 먼 작업이다. 보다 많이 돌아다니고, 보다 많이 시간을 들이고, 보다 많이 찍는 게 보다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매그넘 작가들이 "한결같이 작업시간에 아쉬움을 표했다"는 한겨레 기사를 보면서 나 또한 아쉬움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잠깐 다녀간 외국의 거장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결과물이 더 나아보인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레이소다, 포토비 등의 온라인 갤러리에서 이런 사진들을 적잖이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둘을 뒤섞어놓고 어떤 게 매그넘의 것인지 골라보라고 하면 난감한 결과가 나올 거라 호언장담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어쨌든 매그넘의 유명사진가들이 한국을 찍었다는 기념될 만한 사실에 있다. 사진집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분,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집을 이미 구비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번 '기념사진집'도 하나 더 갖출 만할 것이다. 하지만 여차하면 10만원을 호가하는 사진집 가격에 익숙치 않다면, 더구나 아직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집을 갖고 있지 않다면 위에서 밝힌 다른 책들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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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윤 2008-11-0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매그넘에 대해 알고 있지만 매그넘 책을 살까 고민하던 중에
유랑단자님께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해결책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