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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채식주의자]가 기이하고 탐미적인 물음표 투성이의 관음 경험이었고 [소년이 온다]가 꼼짝 없이 붙들려 기꺼이 감내하는 고통의 체험이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눈보라 치는 숲을 밤새 헤맨 듯한 모호함의 여정이었다.
1부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얼마큼쯤 자전적인 요소들도 흥미를 유발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오가는 시간대를 엮어내는 작가의 역량에 다시금 탄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가닿은 2부, 아마도 정말로 하고 싶었을 혹독한 옛이야기에 와서 모든 것은 폭설 속의 숲길에서처럼 방향을 잃는다.
현실인지 환상인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가 중요하다. 얼마나 심한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가 중요하다. 70년도 더 된 사건을 '외지인'의 입장에서 다루기 위해 작가/주인공은 친구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옆에 없는 듯이 있고 있는 듯이 없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증언도 간접경험 이상은 아니다.
그것을 듣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작가/주인공의 긴 4년간을, 앵무새와 눈에 관한 교본 수준의 정보들을, 어이 없이 험난한 1박 2일의 여정을 모두 헤쳐나온 댓가로 듣게 되는 이야기는 분명 절절하고 가슴 아픈 것이되 처음 듣는 놀라움도 남다른 생생함도 유다른 통찰도 없었다. 본인으로선 오랜 친분에 기인한 폭설과 같은 공감에 뒤덮였을지 모르나 그것이 타자에게까지 닿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설득력 부족이다.
아마도 [소년이 온다]와 그 후의 4년을 통해 작가는 진이 빠졌던 모양이다. 치밀하고 처절한 모든 것에 학을 떼어 이번엔 한껏 풀어헤쳐보자고 마음 먹지 않았을까. 아예 다른 작품인 듯한 1부와 2부의 이격, 유럽 아트필름처럼 모호한 마무리, 수다로 느껴질 만큼 번다한 이야기의 갈래까지 단단하게 마무리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하나의 스타일이겠지만 나의 취향은 앞의 두 작품 쪽 손을 들어주게 된다. 다만 그 기호가 상대적인 것임은 짚어두어야겠다. 매혹적인 서정의 눈발은 300여쪽 내내 넉넉히 날렸고, 4.3과 보도연맹을 연관지어 다룬 시도는 각별했다. 작가의 대표작 리스트에 함께 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다만 맨윗줄엔 다른 제목을 올리고 싶을 뿐이다. 차라리 1부와 3부만 있었다면, 두 주인공 자신에만 집중했다면 더 와닿았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