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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브르 - 1,2권 합본 (양장) ㅣ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3
발락 지음, 이슬레르 그림,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우선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이 만화는 2003년 4월말 현재 완간되지 않았다. 1/2권 합본이 2000년 9월에, 3/4권 합본이 같은 해 12월에 나온 후로 소식이 없다. 책 끝엔 분명 '5권에서 계속...'이라고 쓰여있다. 해적판도 아닌 자칭 '유럽 예술만화'가 나오다가 마는 이 해괴한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가능한 해석 하나는 '유럽만화 붐 일으키기 실패'라는 가설일 것 같다. 2000년 즈음에 한창 시도되었다가 별 재미를 못보고 만 이 작전은 그만큼 일본만화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준 셈이 아니었나 싶다. 유럽산 예술만화라고 해서 달랑 100쪽짜리에 1만원씩이나 주고 사봤더니, 단돈 500원이면 빌려볼 수 있는 일본만화보다 내용으로나 그림으로나 별 대단할 게 없더라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걸작도 있고 평작도 있게 마련이겠지만, 그거야 일본만화도 마찬가지더라는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의 질적 차이가 뒷받침되지 못한 '껍데기의 차별화'(올컬러 호화양장) 작전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겉치장만 요란한 뮤지컬들에 가족관객들이 몰리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만큼 만화독자들의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법하고.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은 작품 수준 자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권에서만 해도 제법 그럴싸하게 조성되었던 열기와 긴장감, 미스테리는 뒤로 갈수록 단순한 고열과 편두통, 아리송함으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장작더미같이 온통 검붉은 색조로 뒤덮힌 색채감이나 역사적 배경, 시적인 대사들은 뚜렷한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꿰지 못한 서말 구슬같은 인상도 남긴다. 한 마디로 감정과잉이라는 느낌이다. '낭만주의의 걸작' 운운하더니 그게 좋은 뜻이 아니었나보다. 스토리 전개는 상당히 산만하고, 그림체는 결코 노련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소재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책장을 덮은 뒤에 남는 기억은 이런 것들이다; 하여간 시종일관 불그르죽죽하구나, 이런 사랑 이런 감정 20대 초반만 됐어도 가산점 줬을지 모르겠다, 유럽에서야 이 정도 수준으로도 통할지 몰라도 숱한 걸작으로 한껏 눈을 단련시켜놓은 한일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을텐데, 근데 5권이 뒤늦게라도 나오면 그걸 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