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김윤식, 김현 지음 / 민음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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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오기 전의 판본이라 새까맣게 한문으로 뒤덮혀있는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73년에 나온 초판을 수십 년째 그대로 찍어내다가 그나마 96년에 한글개정판으로 바꿨다니 늦은 감이 있으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한국문학사'가 한문으로 뒤덮혀있는 것을 중국인들이 보면 뭐라고 할런지, 아마 73년의 양김씨는 고민해보지 않았을 줄로 믿는다.

어쨌거나 한국 근현대(특히 근대)문학을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 이 책은 국문학과 학생들에게는 거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그 내용과 시각의 효용성에 앞서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을 사회와 반드시 연관시켜 설명하는 방식(매 장의 첫 번째 절은 항상 당시 사회상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이것이 끝나고 나서야 그 시대의 문학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한국 근대문학을 17세기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관점, 당시로서는 대담하게도 일제시대의 좌익계 문인들을 다루고 있는 점 등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학사 서술 방법론으로 많은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상식이 된 이러한 면면들을 상식이 되게끔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지금에 와서 보자면 30여년 전의 이 책은 전공자의 기초연구자료로서는 확실히 부족하다. 근대 이전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나와있지 않거니와(제목을 '한국문학사'라고 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본다. 왜 '통사'라고 해야 비로소 고중세사가 포함되는 것인가?), 70년대 초반 이후의 문학에 대해서도 물론 일언반구가 있을 리 없다. 한문을 한글로 바꾼 것 외에는 이후 30년여년간 문학계의 흐름도, 연구성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좌익계 문인, 월북문인은 물론 납북문인과 원래 고향이 북한이어서 북한에 남은 재북문인들에 대한 연구는 80년대 중반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건만. 여러 모로 이 책은 '과거의 명저, 전환점을 마련한 역저'로 평가되어야지, 지금도 변함없이 떠받들어야 할 기초자료로 오판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짚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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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1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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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만화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토 준지에 대한 관심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본 것이 [소용돌이]였고 결국 그게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본 이토 준지 만화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못 그린 그림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만화라는 것은 글과 그림의 결합일텐대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림이 떨어진다면 잘해야 반타작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나마 [멋지다 마사루]처럼 의도적인 것이라면 또 모르지만 본작은 나의 기준으로는 영 아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조금이라도 더 징그럽게 보이려고 애쓴 흔적밖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스토리와 상상력 또한 엽기적이기 짝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엽기 취향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아줘도 이건 그저 기괴함을 위한 기괴함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독특해보이려는 몸부림만이 전부랄까? 결론적으로 나로서는 아무런 장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 요즘 세상의 유행이라면 할 수 없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꿋꿋하게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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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 정다운네 만화 홈페이지
홍승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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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화라고 하면 흔히 무턱대고 가족의 소중함, 눈물콧물, 곧죽어도 내 새끼 내 부모같은 것이 강조되어버리기 일쑤다. 한편 한겨레에 실리는 만화라고 하면 거개가 시사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이쪽은 얼굴도 잘 생기고 잘못하는 일이란 결코 없는 데 반해 저쪽은 생긴 것부터가 험상궂거나 야비하고 하는 짓마다 죄받기 딱 좋은 짓만 골라 하는 이분법으로 도배된 것이곤 했다. [비빔툰]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다 유쾌하게 뛰어넘은 흔치 않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비법은 쓸데 없는 선입견과 전제들을 일절 배제하고 작가와 주변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최대한 밀착했던 실사구시 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만화에서 이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는 비법이 또 뭐가 있을까?

처음 연재될 때만 해도 연인 사이였던 처녀 총각은 이제 애 둘 딸린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다. 다운이와 겨운이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덧 둘이 티격태격하며 말도 잘하고 뛰어다니기도 잘한다. 꼭 친구네 집 애들이 크는 모습을 보는 것마냥 친숙하고 자연스러워져버렸다. 아이들은 계속 클 것이고,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겪고 급기야는 연애사업 끝에 만화가 처음 연재되던 당시의 컷을 재현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돌고 우리는 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건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이 되면 다운이가 일단 동거부터 시작하고 볼지, 겨운이가 미혼모 선언을 하게 될지는. 홍승우라면 이런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비빔툰이(비록 한때 잠깐 휴지기를 갖기도 했지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이어져온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생생한 상황들, 한국이라는 나라와 90~00년대라는 시대로부터 한 걸음도 너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친화감. TV 드라마에서 재벌2세가 경리 아가씨와 섬씽을 스페셜하게 지피던 말던, 우리는 이렇게 산다.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나아지는 세상을 내 가진 두 발로 디뎌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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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피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류임정 옮김 / 시공사(만화)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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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는 '액션'으로 제대로 분류를 해놓았지만, 이 만화를 간혹 순정의 대열에 합류시키고 있는 분류법이나 글들을 보면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제도 그림도 상당히 하드보일드한 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미소년 주인공과 동성애적 코드 때문에 순정으로 분류한다면... 그럼 [반지의 제왕]도 순정물이 되고 마는 걸까? 이 작품에서의 미소년 주인공과 동성애적 코드는 오히려 작품 전반에 내내 흐르는 비주류적 경향의 일부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범죄/액션물이라는 주류적 장르를 비주류적 시각으로 '윤색'해냈다는 점에서 본작은 얼핏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냄새는 퍽 다르지만 둘 다 처음에는 대중의 외면을 가혹하게 받았다는 것도, 그런 만큼 반대급부적으로 매니아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완결편까지 다 보기 전에는 수면장애을 일으키는 성격의 만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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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e 4집 - The The Band
더더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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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기저기서 하도 호평을 안겨준지라 뒤늦게 첨언하기도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음반이 2003년 한국 메이저 대중음악계 최대의 수확이라는 세평에 나도 전혀 이견이 없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잘 만들고 대중성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 음반이 어쩌면 그렇게 안 팔렸느냐는 것이다. 댄스와 발라드가 아니면 안된다고? 그럼 빅 마마나 드렁큰 타이거나 체리 필터는 뭘까? 이들이 모두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을 감안한다면 이 음반도 최소한 5만장은 넘겼어야 마땅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못했던 모양이다. 만일 그 이유가 '매니지먼트 부족'이라면 나로서 해줄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한국의 메이저 음악계는 더 폭삭 망해야 정신을 차리고 갱생할 거라는 악담. 어쨌거나 무척 완성도가 높은 '슬픈 모던 락' 음반이다. 무엇보다도 곡이 좋으며, 노래-연주-편곡-녹음 모두 일정수준 이상이다. 모던 락 팬이라면 뒤늦게라도 꼭 주목해야 할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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