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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름을 닮은 야생동물 - 한국의 야생동물, 그 모든 이야기
유병호 지음 / 다른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동식물 가이드북 중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하는 이 책은 제목이 부적절한 것이 최대의 단점인 듯하다. 제목을 보나 부제를 보나 야생동물 전반 혹은 한국의 야생동물에 대한 막연한 해설서처럼만 느껴지게 지어놨으니 말이다. 책을 만들 때 제목 정하는 것은 거의 출판사 고위층의 고유권한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순전히 출판사 책임이다.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제목으로 위장한 이 책의 정체는 한국의 포유류 중 물짐승(기각목(물개, 물범 등)과 고래목)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 대한 상당히 잘 씌어진 해설서다. 어찌 보면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포유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이를 제대로 다룬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중 한 권이다. 여기에다가 '어쩌구 야생동물 저쩌구'라는 제목을 붙여놨으니... 새나 물고기도 다 야생동물인 줄은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안다.
위에서 말한 사정들이란 이렇다. 우선 어느 나라가 됐건 포유류의 종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조류, 심지어 곤충이나 식물과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기각목과 고래목을 다 합쳐도 102종이라고 한다. 그나마 이 적은 종의 상당수는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종 신세로 몰리고 말았고, 나머지도 그다지 쉽게 관찰할 수가 없다. 워낙 인간을 피해다니기 때문이다.(이는 순전히 인간이 그들을 살육해온 탓이다.) 산과 들을 어지간히 쏘다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람쥐와 청설모, 운이 좋아야 토끼와 고라니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개체수가 적지 않은 나머지 종의 상당수는 사람들이 별로 반가와하지 않는 것들이다(쥐 종류와 박쥐 종류 등).
이렇다보니 가장 사람에게 친숙할 법한 포유류야말로 사람이 가장 관찰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 결과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다시 그 결과 포유류에 대한 엉뚱한 오해만 무성하게 되어 더더욱 보호를 못 받고 멸종위기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야외에서 늑대를 만나면 죽은 목숨이다, 멧돼지는 사람만 보면 돌진해온다, 박쥐는 사람을 물며 병을 옮긴다 등등.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소중하다. 터무니없는 오해를 풀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형편에 처해있는 이 땅 포유류들의 진실을 이만큼 쉽고 친절한 본문과 적당한 분량으로 전해주는 책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량의 대다수는 각각의 종에 대한 해설에 바치는 한편 한국의 포유류 전반에 대한 설명 및 그 가치, 보전방안 등이 앞뒤로 곁들여져있는 구성이며, 적지 않은 분량의 사진들도 올컬러로 수록되어있다. 각각의 종에 대한 해설도 지루하고 딱딱한 전공서적 분위기가 아니라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되어있다. 생물학적 특성, 서식현황, 그들에 얽힌 옛이야기, 발자국 모양, 그리고 관련속담 모음까지. 그야말로 중학생 이상의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하다.
제목 외에 한두 가지 결점이라면 기각목 및 고래목이 제외되어있는 것과 책의 성격상 편집도 한눈에 들어오는 도감식이 아니라 서술식이라는 것 정도지만, 이 정도야 충분히 양해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런 결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해주고 있는 포유류 도감([한국의 포유동물], 동방미디어)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니 전공자나 보다 깊이있는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은 그 책을 추가로 구입하면 될 것이다. 가격이나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대다수의 일반인에게는 이 책을 먼저 권하고자 한다. 나온지 6년이 되도록 1쇄도 다 안 팔린 모양이지만,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