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지음, 공양희 옮김 / 민들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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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모임에 나갔습니다. 여섯 가족의 부모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죠. 사는 곳이 떨어져 있어서 모이려면 서로 한참 차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더불어 부모도 공부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였습니다. 한국 교육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공감하고 맞장구칩니다.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한 토론이 되었습니다. 교육을 고민하는 이 모임이 지향하는 바는 ‘작업장 학교’입니다. 스스로 독립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답니다. 모임에서 책을 같이 읽습니다. 그 책은 아주 귀한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 있는 이들은 자식을 유학을 보내고, 조금 있는 이들은 이사를 해서 좋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학교에 다니게 하고, 평범한 부모들은 애써서 학원과 과외비용을 지원하고, 돈이 없는 부모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지금의 대안인가요. 대안이라고 등장하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역시 돈에 의한 순위가 정해지고 계급이 세습됩니다. 돈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지금의 경쟁시스템에서 상위클래스에 들기는 힘들죠. 알면서도 끌려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선택할 방법이 있을까요. 돈이 없다면 선택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대안학교가 떠오릅니다. 요즘 여기도 입시학원화 되었다고 하던데요. 학부모들의 연합으로 학교가 초기의 인성과 사고의 ‘대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중평입니다. 게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의 경제력이 아니면 다니기 힘든 ‘귀족학교’라는 비아냥거림도 듣습니다.

두 번째,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의 차별로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몇 학교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몇 학교와 지방 시골학교들이 등장하고 있죠. 치열해지는 경쟁률과 부모의 개입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의미의)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죠.

세 번째,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분명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답니다. 아이가 ‘자율’에 대한 욕구로 결심하면 부모가 걸림돌이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설득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한 주관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서 있지 않은 경우 부모와 아이 모두 혼란을 겪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완전히 주변사람들과 독립해서 살아야 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누군가와의 만남조차 힘이 들게 됩니다.




힘듭니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은 죽었다. 학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교육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해볼까요. 학교를 다니고 훌륭한 대학을 나온 자녀가 어떻게 되길 바라십니까. 혹시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승승장구해서 ‘기득권’층에 편입되는 신분상승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것 아닙니까?




   
  그 기준은 성공의 척도를 신분상승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학교 책상과 교과서, 경쟁, 성적평가, 충분한 숙제 따위가 주어지기를 바랐다. 진짜 학교가 지닌 그런 장신구가 없다는 것은 이런 학교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이들이 사회의 저쪽 편에 대항해 경쟁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기르는데 충분한 토양이 되었다.  
   

 




미국 내 대안교육의 훌륭한 모델로 존재하는 알바니 프리스쿨의 관계자가 말하는 어려움의 하나입니다. 학부모들의 생각이 완고해서 자유로운,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옆집, 친척, 친구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제도권의 교육과정을 이수해나가는 동안 자신의 아이들이 빈둥거리는 것을 참아낼 부모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빈둥거림을 통해서 뭘 배우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회생활에서 경쟁해야할 수많은 경쟁자들에 뒤처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대한 불안감이죠.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지금 교육이 가진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봅니다. 그 선언은 그저 던지는 말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을 통해서 얻은 고귀한 결과들이 빚어낸 ‘물음’입니다. ‘지금 제도권 교육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겠다‘ 는 선언을 몸에 담고 살아야 하는 학생들은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초등학교로 점점 내려가는 경쟁의 강화는 ’일제고사‘라는 틀을 통해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남으려면 그저 이를 악물고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두려움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잠재된 정서다. 두려움은 두뇌가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며 자동적 생존반응이라는 옆길로 가게 한다. 이 자동적 생존반응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제멋대로의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교실로 돌아온다. 그 교사들 또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교장의 감독 밑에서 애태우며 견뎌내고 있는 처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두려움이 교육자들을 모두 휘감아 버리면 결국 불쌍해지는 학생들과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는 다수의 어른들을 만들고 이 어른들을 길들이기는 점점 더 쉬워집니다. 과감하게 두려움을 떨치고 아이들이 자율 속에서 공부하고 생각할 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동체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어른들이 될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기존의 틀이 가지고 있던 단단한 벽을 허물고 피부색이나 남녀, 돈의 많고 적음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 되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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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사진 잘 찍는 법 - 소중한 내 아기 감동의 한 컷
김남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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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3돌을 맞는 아이에게 뭔가 선물이 될만한 것을 준비해야 한다.

 

돌때 사진첩을 만들었다. 5부정도 양가 부모님네 한권씩 그리고 할아버님네 한권씩 돌리고 한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100일사진을 이야기 하다가 스튜디오 사진사에 맞기는것보다 직접 찍는것이 더 낫지는 않지만 훨씬 기념이 되지 않을까 해서 DSRL을 질렀다. 보급형 모델에 35미리 단렌즈로 맞추어서 3년째 들고 다닌다.

 

애 나와서 한해는 열심히 찍었으나 이후 좀 시들해지더니 요즘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면 여간해서 잘 들고 다니지 않게 된다.

 

책은 사진 잘 찍는 아마추어가(프로같기도 하고)자신의 경험과 노하루를 보기 좋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카메라 고르기, 렌즈 선택하기 부터 보정하는 간단한 방법까지 한권에 잘 넣었다.

 

요즘 사진하는 이들이 많아서 각 분야별로 관련 서적들이 홍수같이 쏟아지는데 특히 '아기'에 중점을 둔 책이라 '직찍'하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책을 보다보니 렌즈를 지르고 싶어진다. 참아야 한다. 지금 있는 렌즈로도 무리없이 잘 찍어왔지 않은가. 훌륭한 기능과 화각의 렌즈는 본체보다 비싸다. 아기뿐 아니라 아내도 잘 찍으려고 노력하면서 사진을 통한 대화를 시도해 보자.

 

사진은 마음을 담는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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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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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_위키디피아
 

 느려. 너무 느려. 어떻게 먹고 살지?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더라도 천천히 느릿느릿하다. 기껏 나뭇잎이나 가지를 먹고 살 뿐이다. 많이 움직이면 안된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 근육을 키워서 빨라지거나 다른 먹이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느리게 움직이고 소화도 느리게 시켜서 무려 한달이 걸릴 때도 있다. 똥을 쌀 때는 조심해야 한다. 냄새 때문에 천적의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 매달려(늘어져) 평생을 보낸다. 거의 자다가 깨면 느리게 움직여서 이동하기 때문에 몸에 난 털에 푸른 이끼가 끼는 것도 당연하다.




‘나무늘보’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엔 왜 저리 느린 동물이 있는 것일까. 곤충도 아니고 눈에 잘 띄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잡식동물이 저리 느려도 무리가 없는 걸까. 천적들에게 잡혀 (너무 잡기 쉬울 것 아닌가) 벌써 멸종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래도 여태 살아 남았다. 지구의 가장 큰 위협, 인간. 그들의 벌목으로 서식지를 위협받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나무늘보(Sloth)에게서 가져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저자도 그중 하나다. 그는 슬로 라이프라는 슬로건을 주창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삶과 문화, 환경과 생태의 중심에 있는 ‘나’와 ‘우리’는 공통의 가치를 통해서 지금 지구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느림(슬로우 Slow)’을 제시한다.




‘빠름’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과연 '느림'이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어렸을때부터 빠르고 신속함으로 단련된 학생기를 거쳐 군대에 가면 빠름이 최고의 가치로 등극하는 한국사회에서 마르고 닳은 어른이 이 느림의 가치로 복귀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나무늘보다움이란 대체 무엇일까? 움직임이 느린 것은 근육이 적기 때문인데, 그것은 저에너지로 살기 위한 지혜다. 근육이 적어서 가볍기 때문에 가는 나뭇가지에도 매달릴 수 있으며, 그만큼 적으로부터의 위협도 줄어든다. 7~8일에 한번, 그들은 주변에 위험이 없는지를 잘 살핀 뒤 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땅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배설한다. 이것이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나무늘보는 나뭇잎을 섭취하여 얻은 영양의 50퍼센트를 그 나무에 되돌려 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키워준 나무를 거꾸로 지원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느리고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람답지 못한 삶’의 근거로 질책의 대상이다. 일명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뉘앙스로만 쓰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서 서로 앞서 달려야만 행복을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당연시여기고 다른 가치를 배척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다.




여럿이 공유하는 가치와 떨어진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공포다. 며칠 전 고대를 나온 김예슬씨도 그 틀에서 벗어나기 까지 엄청난 고민과 지적 에너지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기. 그만큼 힘들다.




   
  애당초 경쟁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가 바로 공포다. 암흑 속에 존재하는 공포.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해질지 모른다’, ‘거지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혹은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가야 하는데, 어쩌면 병원에 갈 돈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넌 너무 게을러. 좀 부지런해야 하지.”




학교 다닐 때 듣던 말을 어른이 되어서도 듣는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와서 살면서 이곳저곳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착착 되어가지 않을 때는 이런 소리가 곱게 들리지 않는다. 먹고 살 땅을 놀리는 것에 대한 마을노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와 집짓기에 있어서 ‘생태적 집짓기‘의 의미를 그대로 실현하느라 비효율에 관한 충고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딱지가 앉았다. 무슨 소리를 해도 대범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한 것은 내 마음에 중심이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스스로가 흔들리니 주변 말이 내 마음을 더 어지럽히는 것이다.




‘뭘, 먹고 살지’

‘내년 일을 그만두면 보험료와 공과금은 어떻게 하지?’




1년 후에 일을 걱정하고 오늘 닥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다. 두려움. 공포가 뿌리 깊게 내린 결과다.




   
  빈곤이란 풍요로움의 환상이 빚어낸 병이다. 이 병을 치료하는 데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대립으로부터 해방되어, 대자연이라는 본래의 풍요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꿈을 꾸어야 한다. 지금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자. 과거에 시키는 대로 행해온 내 삶을 주체적으로 느리고 안정적으로 주변과 교감하는 안정적이고 내안에서 풍요로운 삶으로 말이다. 어떤 세속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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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쿨러 - 길이 학교고 삶이 텍스트인 아이들의 파란만장 삽질만발 탐구생활, 2009년 청소년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고글리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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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범벅의 옷벗은 중학교 졸업식의 난장판을 9시 뉴스로 접하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 아마도 자기 자식들은 성실하고 바르게만 자라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신의 과거를 잘 돌아보면 알겠지만 십대들은 온갖 불온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의 입시 시스템에 억눌려서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간에 갇힌 것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은밀하고 개인적인 곳에 보관하며 감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어른된 입장에서 알수나 있겠는가.




며칠 전 고대 3학년 김예슬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대자보로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본인이 그만 두게 된 심정을 표현한 것뿐이다. 기껏 하루지나 일부가 뜯기고 빨간 펜과 계란으로 오염된 모습을 접하고 말았다. 지도자들 부터 ‘이해’와 ‘용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임을 인정한다지만 ‘진보’를 믿는 이들에겐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여하튼 그 대자보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지금 사회가 강요하는 것에 우르르 모두가 따르는 일은 기껏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인간의 본성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뿐임을 깨달음이 명문대 경영학과의 자퇴라는 불명예나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질타보다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런 학생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명문대생이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옮기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게 학교를 그만두거나 하지만 상처받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라는 점을 깨달은 그가 대자보라는 언론을 통해 해낸 공론화의 성과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처럼 암울한 ‘88만원 세대‘인 20대와 더 깜깜한 10대들이 맞는 미래는 어떤 세상이 될까. 지금처럼 경쟁하고 낙오하고 떨어져 나가고 미워하고 속이는 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결국 쓸쓸하게 죽는 것을 바랄 이는 없을 거다.




10대를,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일은 지금 사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나 선생님들은 놔두고서라도 자식의 미래이거나 또는 앞으로 생기게 될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너무 개인주의적인가)




‘로드 스쿨러’는 지금 한국의 시스템에서 학생을 분류할 때 학생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벌써 수련중인 아이들이다. 이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보통의 인터뷰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열려있는 가슴으로 솔직하게 자신들을 드러내는 어떤 무언가,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이라는 게 있다. 그곳의 수상자들의 이력이 평범하지 않음에 의기투합한 이들이 문학모임을 꾸려서 소통하는 것. 그리고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서 조금씩 치유하고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여행이 있고, 자신의 알바 이야기도 있고, 가족과 갈등, 성정체성등의 온갖 비밀스러움이 가득한 이야기 단지다.




젊은이들이 항상 궁금했다. 내가 살아온 10대와 지금은 다를 거라는 막연한 상상만 가지고 그들의 생각과 삶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느낌이다. 비록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면의 생각을 끄집어내서 훌륭한 글로 포장하는 솜씨를 보면 기특하기(?) 짝이 없다. 선배로서의 대견함 이랄까. 나도 그렇게 삶을 일찍 전환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상상은 어떤가. 미래에 학생이 될 아이에게도 다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소통하고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마음사이를 이어준다면 그만큼 삶에 희망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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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없는 지구에서 쓰레기를 모아서 쌓는 일을 하는 로봇이 대사한마디 없이 따뜻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 <월E>, 초보 요리사를 쉐프의 경지에 올려놓는 생쥐가 주인공인 <라따뚜이>, 헤어진 아들을 찾아 바다 먼길을 떠나는 ‘흰동가리’와 친구들의 여행 <니모를 찾아서>, 경주용 자동차의 성장기 <카>,은퇴한 영웅들과 그의 자식들의 화려한 활약상의 <인크레더블>, 괴상한 괴물들이 모여 자신들의 세계에 에너지원인 아이들의 비명을 모으려다 웃음을 사게 된다는 <몬스터주식회사>, 온갖 곤충들의 삶을 그들 눈에서 보여주는 <벅스라이프>, 살아있는 장난감들의 삶 <토이스토리 1,2>를 보고 자랐다. 무한한 상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들. 혹시 다 보신분 있는가. 그럼 위의 영화들의 공통점은? 힌트는 제작과 관련있다. 거의 매년 한편씩 등장해서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점점 키워왔던 픽사(Pixar)의 2009년작 업을 보았다. 현실보다 현실같은 ‘만들어진 세계’를 보여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소재와 캐릭터, 배경의 문학적인 면이나 카메라워크, 조명, 효과음, 촬영, 의상 등의 기술적인 면 모두 어떤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다. 영화 <아바타>가 흥행 최고의 기록을 세운 오늘날, 3D로 만들어진 영화와 영상이 올해 이후를 가장 확실하게 잠식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업’은 최초의 픽사 3D(과거 질감과 명암을 표현한 애니는 3D 라 칭했다. 지금 3D는 안경을 쓰고 두개의 초점을 활용하는 기술)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표현과 기술에서 과거에서 진일보한 면들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아카데미가 업을 선택한 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와 영화적 기술, 그리고 관객과의 교감을 고로 평가한 결과다. 올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면‘이 개봉했고 안경을 쓰고 볼 수 있었다.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다소 ’너무 나간것’ 일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뭐 어떤가.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적어도 그런 동심과 판타지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킨다는 데에 있는 것 아닐까. ‘아바타’를 보면 그런 차이도 이제 슬슬 깨져 가는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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