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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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은 어디서나 스파게티를 접할 수 있고 아이들이 외식메뉴의 하나로 당당히 피자, 돈가스, 햄버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스파게티가 대중화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일부에게 기호음식이긴 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중음식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중국집 정도나 흔하지는 않고 배달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자장면보다 높이 쳐주지 않나. 이탈리아 스타일의 소스국수를 일컽는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한 종류이다. 네발짐승 아래 개, 사자, 고양이가 분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스타 밑에 스파게티, 라쟈냐 등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파스타(이탈리아어: Pasta)는 밀가루 반죽과 물 을 이용해서 만드는 이탈리아 의 국수 요리 로, 피자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요리이면서 이탈리아인들의 주식이다.




요즘 드라마 <파스타>를 즐겨보고 있다. 요리사의 꿈을 위해 억센 남자들이 득시글한 주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억척여성 서유경(공효진역)과 요리사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주방여성(?)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마초 셰프 최현욱(이선균역)의 러브라인이 흥미로운 드라마다. 여기에 물론 사장 김산(알렉스역)과 오세영 셰프(이하늬)의 사랑과 욕망이 얽혀서 갈등을 조장한다. 드라마는 ‘맛’으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매회 등장하는 파스타의 먹음직스러운 모습, 요리사로서의 자아성취를 위한 노력, 사랑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인간, 돈과 명예를 위한 부정행위 등의 조화. 삶의 ‘맛’이다. 주방에서는 요리도 만들어지고 사랑도 만들어진다.






파스타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파스타는 큰 요리의 명칭이며 하위분류로 들어가는 것이 ‘스파게티’라는 사실을 알고 살짝 부끄러워졌다. 나는 스파게티와 파스타로 면요리를 분류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파스타가 피자와 함께 이탈리아 요리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라 한다. 하긴, 먹어 봤어야 알지. 기껏 나는 ‘스파게티’라는 단어가 포함된 간판을 가지고 있는 가게만 다녀봤지 ‘파스타’가 전면에 내세워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구경을 해보지 못했단 말이다.(시골 살이 6년째다)

기껏 신문 잡지에서 나오는 요리코너에 관심을 가지고 혹시 촌스러움을 티내지 않기 위해 와인의 구분법을 입으로 중얼거리거나 새롭게 부상하는 일본라멘과 동남 아시아계 요리들의 발음도 안 되는 요리들의 명칭을 머리에서 열심히 굴리기도 했었다.




<보통날의 파스타>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온 박찬일 셰프가 쓴 글과 레시피가 들어있는 파스타에 관한 에세이다. 글은 맛은 보지 못했지만 정평이 나있는 그의 파스타솜씨만큼이나 ‘맛’이 있다. 벌써 와인, 이탈리아 요리수업에 관한 내용에 이어 3권 째 책을 내는 글쟁이다.




피클은 없는 이탈리안 파스타, 봉골레 스파게티에 쓰이는 바지락과 모시조개, 마늘과 면만 가지고 만드는 알리오 올리오 이야기는 드라마 <파스타>에서 직접 인용되어 드라마 소재로 쓰였다. ‘알리오 올리오’에 관한 한편, ‘봉골레’에 관한 한편, 이런 식이다. 이탈리아 유학파와 국내파로 양분된 주방의 전쟁터같은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데에 책의 저자가 자문역할을 했다고 한다.




   
  봉골레 스파게티는 스파게티 삶는 물에 넣는 소금과 조개 고유의 소금이 만나 절정의 맛을 낸다. 당신이 최고의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려면, 좋은 조개를 사고 그 다음으로는 좋은 소금을 구해야 한다. 시칠리아의 천일염도 좋고,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게랑드 소금도 좋다. 그렇지만 한국의 서해안, 세계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의 토판염을 써도 좋다.
 
   

 




요리사는 장인(匠人)이 되어야 한다. 재료를 고르는 데에 재료를 다듬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마지막으로 접시에 올리고 나가는 순간까지 매만지기에 정성을 다한다. 소금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는 것이 맛을 중요시 하는 프로 요리사의 사명이다. ‘절정의 맛’은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요리의 재료가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리행위에 관한 철학도 중요하다. 레시피를 고집하는 사람과 손님의 기호에 맞추어 음식을 내는 이중 누가 더 좋은 요리사인가.




   
  뜨거운 프라이팬에 신선한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 한 쪽을 으깨 넣는다. 그리고 마늘이 잘 구워지도록 기다린다. 마늘이 맛있게 구워지면 모든 해물을 넣고 재빨리 볶는다. 수분이 마르기 전에 화이트와인을 붓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이 들어간다. 일인분이라면 반 컵의 와인이 필요하다. 이때 어떤 와인을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해물 향을 확 살려주고 바다 한가운데로 먹는 사람을 이끌어가려면 이탈리아의 화이트와인을 넣어야 한다. 품종이나 지역은 상관없다. 이탈리아산만 지키면 된다. 당신이라면,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일본 된장을 넣겠는가.
 
   

 




‘정통’을 강조하는 요리계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위해서 재료를 이탈리아에서 공수하는 일은 신선도와 가격문제가 걸린다. 물론 박찬일 요리사는 우리 시장에서 고른 재료로 요리하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스승에게 배운 철학이라나. 물론 예외는 있는 모양이다. 이탈리아 와인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사실 그림만 보면 별것도 아닌 ‘알리오 올리오‘. 이 메뉴는 요즘 드라마 덕택에 엄청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처음 접하는 이들이 오히려 토마토, 크림소스가 가득 담겨서 풍부함을 뽐내는 스파게티가 우리에겐 익숙하다. 무색의 매끈한 면만을 자랑하는 파스타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게다가 마늘은 우리가 잘 먹고 좋아하는 양념중 하나 아니던가. 적은 재료로 훌륭한 맛을 내는 파스타.




   
  수산시장에서 고등어를 사는 건 때로는 약간의 흥분이 동반된다. 푸른 등줄기와 미끈한 몸통, 새침한 입 꼬리의 그 생선은 싱싱하면 침을 꼴깍 삼킬 만큼 멋지지만, 종종 빠른 부패 때문에 나 같은 얼치기 요리사의 뒤통수를 친다. 늦잠을 자다 늦어서 새벽이 아닌 아침에 들르면 등판의 선명한 물결무늬가 활력을 잃은, 막 부패를 시작한 녀석들이 내 몫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생선은 잡혀서 죽는 순간부터 부패한다. 그 부패를 늦추기 위해 인간은 얼음과 냉장고를 이용한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시간은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식당의 요리사나 구매 담당자는 새벽잠이 없어야 한다.
 
   

 




고등어. 고등어 파스타라고? 고등어 김치찌개면 몰라도 고등어로 파스타를 요리하다니 고등어의 비릿한 바다 향과 파스타의 둥근 면발이 조화될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만 가지의 종류를 가진 파스타는 그야말로 상상하는 데로 만들어진다. 어떤 소스와 어떤 부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파스타가 될 수 있음을 상상한다.




   
  자 파스타의 기본적인 종류를 알아보자. 스파게티, 스파게티니, 카펠리니, 페투치네, 탈리아텔레, 라지아니테, 라자니에, 파파르델레, 루오테, 콘길리에, 타야린, 라비올리, 토르텔리니.......끝도 없다. 대충 세어 봐도 2백종은 넘는 것 같다. 이게 전부냐? 그렇지 않다. 조리법과 소스에 따라 각 파스타가 분화하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만 봐도 소스의 종류에 따라 2,3백 종은 되는 것 같다.
 
   

 




아, 머리아프다. 그렇게 많은 종류를 다 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맛있는 파스타 몇가지만 외워서 머릿속에 넣고 다니면 되겠지. 오늘, 저녁은 스파게티면을 삶아다가 마늘,고추와 볶아서 '알리오 올리오'를 시도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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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이승규 - 세계 최고 간이식 드림팀을 이끄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지음 / 허원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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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에서 시작해서 <그레이스아나토미>로 이어지는 메디컬 드라마 관람기를 이야기하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는 항상 보는 이를 흥분시킨다. 일단 피가 흥건하고(?), 다양한 인격의 칼잡이들이 등장하며, 칼을 휘두르면 죽던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 사명감이 투철한 의사들과 백색가운아래 인간적인 면을 감추고 냉철함을 드러내는 수술장에서의 카리스마를 보노라면 '오~과연 이중인격자들'이라는 경외의 농담을 날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드라마는 의사로서의 삶과 고통, 연애에 중점을 두지만 이 책 은 외과의 이승규의 삶과 그의 삶속에서 등장하는 조연들의 의학적인 이야기가 전부이다. 재미없을 것 같다고? 더럽게 재미없다. 자서전과 다름없는 이승규의 의사로서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기술하고 있고 결국 놀라운 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병원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자찬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승규의 병원에서의 연애담이나 간호사나 다른 여의사와의 썸씽이 없으니 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무척 유익하다. 불과 십수년 만에 국내의학을 세계 간이식분야의 선두로 올려놓은 과정이며 지금도 비슷한 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이었던 이승규는 뒤떨어져 있던 국내 '이식수술' 분야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배우기위해서라면 안자고 안 먹고, 자존심도 버리고 배워서 들어와 연습한다. 보통 사람의 혈관을 연결하는 시술이 제일 까다로운데 혈관크기가 훨씬 가는 쥐로 훈련을 한다고 하니 <뉴하트>에서 인형을 꿰매는 연습하던 레지던트는 한쪽에 찌그러져야 할 듯하다.


현실은 '수술을 통해서 살 수 있는'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30년을 이어온 간이식 국내정착과 성공의 드라마다. 그의 드림팀은 96%라는 경이적인 성공률로 국내 간이식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어렵고, 힘들고, 돈 안 되는 외과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천생 의사이거나 의학을 위해 사는 모든 분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적인 즐거움과 쾌락 가족과의 여유로운 시간을 희생해서 한명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 큰 가치를 두는 '진짜' 의사,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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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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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꽤 두툼하다. 이런 책을 손에 쥐면 일단은 부담스럽다. 게다가 몇 아름은 될 것 같은 나무들이 들어찬 숲을 배경으로 곰이 이빨과 발톱을 감춘 채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집에 난 창 위로 쫑긋 내민 곰의 얼굴을 보았을 때처럼, 좀, 당황스럽다. 표지는 정말 너무 아니다. 표지를 벗기고 나니 노란색의 커버가 나온다. 심플하게 제목을 은빛 박스에 가두어 놓은 것이 안정감을 준다. 차라리 이게 낫다.


표지에 왜 집착하느냐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용에 앞서 책의 표지를 자세히 살피는 편이다. 온라인을 통해서 책을 살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용을 알고서 사는 경우와 달리 저자와 주제만으로 책을 고를 때의 기준이랄까. 표지에 그 책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함축해 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실은 두꺼운 책일수록 표지에 시간을 더 많이 들이게 된다)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하는 이들은 책의 내용과 연관한 디자인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인데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가지 않듯이 책표지와 전혀 다른 내용을 보여주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기는 하다.


책은 미국의 산맥종주 기행문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백두대간 이지만 미국의 종주코스이니 실재 규모와 길이 면에서 비교가 되지는 않는다) 종주코스를 두 뚱뚱한(통통한?) 백인 둘이 걷는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종주하는 사람은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여기에81kg 이나 되는 흑곰이 캠프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에서 암흑의 텐트 안에 당신 혼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라. 텐트 크기만한 엉덩이를 텐트 천에 쓱쓱 문대는 소리와 함께 들려 오는 거친 숨소리, 육중한 발바닥, 찐득찐득한 혓바닥, 곰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주전자나 냄비의 덜거덕거리는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괴이하게 킁킁거리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당신과 흑곰 사이에는 바람에 떨리는 얇은 텐트 천밖에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곰이 텐트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순간 팔 한 쪽이 따끔하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을 느낄 때 솟구치는 뜨거운 아드레날린을 한번 상상해 보라. 곰이 텐트 입구 안쪽에 받쳐 놓은 배낭을 뒤질 때 갑자기 당신은 생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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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히죽대는데 저자의 시니컬한 유머 때문이다. ‘나를 부르는 숲’과 같은 다소 경건한 제목과 대비되는 숲속에서 온갖 사소하고, 지저분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가벼우면서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세부적인 상세를 놓치지 않는 그의 호기심과 관찰력 때문에 읽는 내내 그와 함께 옆자리에서 걷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굴만 봐도 통통할 것 같은 저자와 같이 동행하는 ‘카츠‘의 뚱뚱함의 묘사는 과연 그런 힘든 일을 이 두 사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결국 완주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계속되는 산행에 대한 의지는 본인들이 산·자연에 대한 교류에 관한 과정의 묘사이기도 하다. 좀 더 의지가 강한 저자가 앞서고 친구 ‘카츠’와 한참 뒤에 따라가는 산행. 찢어지고, 버리고, 쓰러지고, 깨지면서 포기할줄 모르게 만드는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가. 몇 개월간의 장정 속에 산에서 만남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잘 묘사되어 있다.


   
  내 가 아는 범위에서 거의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아무데도 걸어 다니려 하지 않는다. 500미터 떨어진 직장가지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을 알고 있다. 400미터 떨어진 대학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에 올라타기 위해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여자를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차라리 체육관까지 걸어가서 러닝머신을 5분정도 덜 타는 게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트레일 걷기는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인 동시에 지금 인간이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다. 여행서이지만 사뭇 날카로움이 베어 있는 저자의 비판이 이 책을 좀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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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이계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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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봐도 소용없다. 발을 허우적 대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서서히 빠져드는 몸. 그곳에는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발버둥치지만 점점 더 절망으로 이끌 뿐이다. 개미지옥이다.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깔때기 모양의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커다란 입이 혀를 날름 내밀어 잡아먹어 버린다.


누가 봐도 지옥은 지옥이다. 현실은 그래서 수많은 자살자들과, 자식까지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뜨려서 먼저 죽는 꼴을 보고 죽는 동반자살자들과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경찰들과 사회계층의 아랫부분에 있는 서민들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좀 나누어서 먹고 살자는 지방의 눈물을 온갖 술수와 그럴듯한 눈가림으로 무마시키고 자신들이 몸담은 ‘중앙’과 ‘메인스트림’의 몸집만 키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위정자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자신과 손잡은 이들의 안위에 애정을 쏟는다. 악어의 눈물처럼, 뒤로는 짓누르고 가면 쓴 얼굴이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광고로는 지금의 민심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 책이 제시한 방향에도 이견이 충분히 있을 듯하지만 서울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느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비판에는 동의할 부분이 적지 않다.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14세기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와 칼레 시민이었던 생피에르에 얽힌 일화다. 에드워드 3세가 칼레시에 진군하여 전 시민을 몰살하라는 명을 내리자 아량과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결국 관용과 자비로 6명의 시민을 선발해오면 처벌하겠다는 가혹한 명을 내린다.


누가 사형대에 자진해서 서겠는가. 투표를 해서, 제비뽑기를 해서, 범죄자, 사형수를 내세워서. 칼레시의 거부 생피에르는 자진해서 나선다. 그 뒤를 잇는 정치가, 부자, 법률가 등의 귀족들. 7명이 되자 처형장에 늦게 나타나는 자를 제외하기로 한다. 날이 밝자 생피에르가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집에서 자결했다. 자신이 죽어서 나머지 지원자들의 용기를 북돋으려는 의로운 죽음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이를 알게 된 에드워드 3세는 형을 중지하고 시민모두에게 살수 있는 권리는 주게 된다.


로댕의 작품으로도 유명한 ‘칼레의 시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거 한반도에 존재하던 귀족다운 고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돈 있는 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면죄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법을 집행하는 이들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있는 지금. 우린 지옥이거나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간 계쯤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서 말배우기 시작하면 온갖 교재의 압박에 유치원에서 영어를 시작하고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두세 학원을 거쳐 바쁜 일정을 자랑하는 우리 ‘어린이들‘. 놀이를 모르고 공부는 벌써 지겨운 것, 힘든 것, 평생을 지고 가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도 나아질 것은 없다. 또 다시 취업을 위해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보통 수십 대일의 경쟁을 거치는 일자리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비인간화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아주 제격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운이 좋은 자식들은 부모님이 주신 돈에 억 단위의 대출을 보태 겨우 전세마련 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다. 졸업 후 갚아야 할 등록금 대출이 있는 이라면 집을 위한 돈을 모으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주거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직장생활을 통해서 자아성취를 이루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집 없이 전전긍긍하는 삶속에서 불안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만 키우는 것은 국가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은 노후에 대한 불안과 직접 연관된다. 변변한 보험이나 연금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은 곧바로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 돈못벌고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노년의 슬픔을 알아야 한다. 그 많은 수들의 노인들을 젊은 세대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은 심각한 노소간의 갈등을 조장한다.


심각한 갈등과 분열은 국가를 운영하는 리더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것에 돈 많고 힘 있는 이들도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동조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가는 높은 분들이 좀더 포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양극화, 계층화된 지금에 신뢰라는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비정규직에게 오히려 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주고 지배층이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환원할 줄 아는 사회가 되자고 역설하는 저자에 적극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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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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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 회의를 가졌다. 그 회의의 빌미는 군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당한 폭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불합리와 버물어진 폭력에 치를 떨었다. 도대체 군대가 왜 필요한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물음을 몸속에 넣어 삭히고 제대하여 학교에 복학하자 오히려 구속 없는 자유가 불편해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국가부도를 맞았다. 졸업이 다가오는 학교의 풍경은 더 이상 여유 넘치는 학생들의 표정을 찾기 힘들었다.


과거 원서를 받아서 하늘로 뿌려 손위에 떨어지는 것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마치 고대의 마늘만 먹은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정도나 현실감이 떨어졌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를 서성거렸다.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굳어진 표정위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것 정도는 그래도 나았다.


구조조정, 대량해고, 넘치는 실업자, 거리에 초점 없이 서성대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고 나는 양복대신 청바지를 입고 학교 도서관에 출퇴근했다. 어디든 입사하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고 4년의 도제과정을 거친 건축전공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대학입학때와 마찬가지로 취업 때도 영어시험성적이 도왔다. 벤처기업의 영국회사와의 교류창구역할을 하다가 1년 즈음 회사와 정들고 일도 마음에 들 때가 되었을 때 각 부서별 몇 명씩 강제로 해고되었다.


영국과 손을 떼고 일본과 손을 잡아가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해고 일 순위를 차지했고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회사를 나와서 그와 전혀 다른 업무의 이름만 비슷한 다른 회사로 입사했다. 8개월. 그리고 나왔다. 도대체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내 일은 할 수 없고 주체적으로 일하기는 불가능했다. 시키는 데로 하고 그것도 불규칙하고, 불합리로 가득했다.


그렇게 3년이 흐른 뒤 나는 시골로 떠났다. 그 삼년간 텔레마케팅, 보험, 아이티 관련 영업의 회사에서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을 근무하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악착같아야 한다. 그 악착같음이 없이 느긋하기만 한 성격의 나는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하는 타입의 인간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돈을 벌어서 시골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도서관에서 수많은 철학서와 인문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확신을 얻었다. 내 삶은 주변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아니며 내가 마음먹은 대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5년이 되었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도시에서 맛보지 못한 행복을 맛보고 있다. 도시에서 불안하고 경계하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에 매우 만족하면서.


   
  여기기생충을 연구한 덕분에 교수 행세도 하며 꽤 오래 재미있게 일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고. 졸업 즈음에 내게 다가와준 기생충들이 고마워 죽겠다고.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들아, 이게 다 너희들 덕분이다.―서민 기생충학 교수


나는 요즘도 시간만 나면 TV채널을 돌리고 만화책을 일고 영화를 본다. 누가 뭐라 하면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지금 내 전공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오.”―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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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는 각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어 살고 있는 이들이 후배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겠다는 이들에게는 자신감을, 그렇지 않고 미지의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글들을 모았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분명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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