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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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일렁인다. 마음의 고요와 평안을 불러오는 불빛이 반짝인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춘다. 촛불들이 모여서 이룬 불 밭은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붉은 꽃의 집단 서식지 같다. 그 꽃은 사람들을 모으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어떤 이에겐 커다란 두려움이기도 하다.




촛불시위를 처음 접한 것은 붉은 악마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2002년의 여름이었다. 여전히 덥고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였고 대형스크린이나 티브이를 놓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꽃다운 생명이 미국의 장갑차바퀴에 깔려서 소리 없이 죽음을 맞았고, 내 땅 우리나라에서 외국군대에게 밟혀 죽었어도 끽소리 못하고 서린 한을 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뒤늦게 인터넷이 아니었더라면 일부의 열성적인 이들 외에는 알지도 못한 채 조용히 묻혀버렸을 사건이었다. 11월 20일 미군의 무죄판결이 국민의 분노를 부추겼고 월드컵을 가슴에 안고 있던 붉은 악마에서 진화한 ‘앙마’가 촛불시위를 제안했고 수 시간 만에 촛불은 응원의 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수만의 촛불은 점점 커져서 수십만으로 확산되었고 미군의 오만방자함을 꾸짖고 소리 없이 스러진 두 영혼을 위로하는 모임은 시민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004년 3월 12일 야당 국회의원들(민주당, 한나라만, 자민련)의 입맛에 맞지 않고 우습지도 않은 주제로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대통령을 탄핵했다. 탄핵안이 가결되자 촛불은 다시 일어났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타당하지 못한 이유로 제멋대로 탄핵하는 국회의원들을 비판하는 불길이었다. 결국 헌재는 불가 결정을 내리고 자연이 사태의 국면은 해소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지나 정권이 바뀌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민의를 외면했던 그때. 또다시 학생을 주축으로 한 촛불들이 올랐고 이번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들과 예비군복의 아저씨들도 대거 참여했다. 분위기는 자연스러웠고 화기애애했다. 마치 축제 같은 그때. 두려워서 벌벌 떨던 이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약한 여자를 폭행했고, 마치 왜구라도 광화문으로 밀고 오는 것처럼 컨테이너로 그 넓은 도로를 완전히 막아 성을 쌓았고, 선동세력이던 좌파 정치세력이 소극적 참여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2008년 촛불‘이 바로 소설의 배경이다. FTA에 의거한 쇠고기 수입협상이 타결됨으로서 우리 국민은 광우병소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마치 ’먹으라면 먹을 것이지 웬 말이 많아‘의 태도를 가진 협상 주체들은 정작 자신들은 원산지를 꼼꼼히 따지며 웬만하면 비싸고 좋은 특등급 한우만을 먹는 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국민들에게 미국산 소의 품질 우수성을 홍보하는가 하면 검역주권을 가지고 있어서 광우병소를 완벽하게 차단할 것이라는 되도 않는 이야기를 힘주어 하기도 했다.




작가는 현실의 어두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소설의 플롯을 짠다. 좀 서투르지만(개인적으로는 시인이 더 ‘어울리는 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이어지는 끈에서 흐르는 어떤 느낌은 적당히 읽는 흥미를 돋우기도 한다.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지오다. 한때 한국과 연을 가지고 있던 할머니와 엄마에게 홀로 자란 아이는 15살이 되던 해 기념으로 여행을 혼자 떠나겠다고 한다. 꾸준히 설득한 끝에 한국으로의 여행을 허락 받았고 인터넷을 통해 미리알게 된 한국인 친구 희영을 만난다. 그녀를 통해 연우, 수아. 그리고 고등학생 둘. 사과. 떠돌이 개와 그의 원래 주인인 숙자씨(할머니)




공항도착에서 출발하는 소설은 이미 촛불정국으로 돌입한 한국이 시간적 배경이다.




당시, 난 어디 있었나. 진안 산골에서 집짓느라고 정신없었다. 진안 읍내에서 촛불행사를 한다고 했으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기엔 체력적 한계가 있었고 몇몇 정치인들이 참여한다는 이야기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하나.




1년 만에 연인을 만난 동수와 희영은 촛불을 아래로 모텔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나누고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촛불들을 미안해 하다가, 초 두개, 아니 하나 켜서 모텔에서 촛불을 든다. 사람들이 올려다보고 “우리 몫까지 사랑하세요” 하는 대목은 슬며시 웃음짓게 만든다. 현장의 상황이었다면, 다소 진지하게 시위하는 이들이라면 거부감이 들겠지만 이것이 지금 문화이고 앞으로의 시위방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촛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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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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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잔혹하고 비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무정한 사람들이 싫고 나를 혹사시키는 상사가 밉고 내가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카드 할부금 걱정을 하고, 약정기간의 위약금을 계산하고 융자금의 지출을 생각해야 하는 오늘이 싫다. 오르지 않는 월급과 나의 생활을 향상시켜줄 경제부흥을 이루지 못한 대통령을 원망한다.




커다란 눈망울. 눈꺼풀위에 달라붙은 파리들. 좆을 힘조차 없어서 가만히 누운 채로 눈만 껌벅인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이 뻗은 팔. 뼈와 뼈가 이어져 관절임을 쉽게 알게 해주는 불툭한 실루엣과 많이 먹어서라기보다 굶어서, 또는 세균과 기생충이 자리를 차지하는 볼록한 배.




많이 보아서 익숙한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져서라기보다,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너무 바빠서, 그리고 당장 울고 있는 처자식을 위로하기 위해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을 위로하는 나의 대리인, 흔히 내 친구 같고 항상 티브이만 켜면 만날 수 있는 탤런트, 배우들이 그곳에서 그들을 안아주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닌가.




살을 빼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칼로리는 줄이는 나와 한모금의 물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그들을 비교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구나. 누구는 많이 먹어서 병이 들게 하고 누구는 못 먹어서 세상을 원망하게 만드누나.




부의 불분배. 그들은 그 옛날에도 밥을 굶었을까? 제국주의가 낳고 자유무역주의가 가져온 폐해에 희생된 그들의 농업은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자신은 껴보지도 못할 다이아몬드를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생명들. 핸드폰의 자원을 위해 죽어가는 어린영혼들.




이제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된다.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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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미래 -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 동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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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전 인터뷰(오마이뉴스)를 접하고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팔로워에게 소개받은 여러 동영상들 중 하나였는데 얼굴만 봐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직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권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지, 상식과 정의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몸소 실천하려고 고통을 감내했던 분이었습니다. 떠난 뒤에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삶과 철학을 돌아보는 것은 어두워진 오늘의 현실과 한국이 맞이하게 될 내일을 비추어 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은 민주주의 교과서를 표방하고 있지만 교과서처럼 목차와 개념정리가 체계적이지 못합니다. 본래 기획했던 의도대로 나온 것이 아니라 연구 중 불의의 사고가 났고 함께 연구에 참여했던 이들의 뜻이 모여 미완의 책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책은 노무현의 글과 어록입니다. 글들은 민주주의를 연구하려고 만든 사이트를 통해서 대중을 향해서 쓴 것입니다. 뒤편에 나오는 어록은 2008년부터 2009년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아니 검찰조사의 압박이 거세졌던 봄까지 이어졌던 연구모임에서 했던 말을 고스란히 옮긴 것입니다.




그의 말과 글을 읽고 있으면 지금의 현실이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하죠. 오늘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란 과거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인가 봅니다. 상식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을 얻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이제야 알게 된 어리석음을 탓합니다.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할 가장 큰 기둥 들이 하늘로 떠나가고 땅위에는 강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삽질’의 울림만이 가득합니다.




대통령을 그만두고 시골 봉하마을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맞아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 외에 농촌에 대한 애정을 직접 몸소 실천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말로 풀어서 쓴 책을 내겠다는 소박함은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분의 고민이 가슴에 들어옵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습니다. 누가 그 나이 먹고 학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원로 학자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한답디까. 책의 초반부는 여태껏 풀지 못한 풀어야 할 문제를 묻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역할, 시민의 역할, 역사의 진보성 등의 주제들이 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툭툭 바닥에 던져져 있습니다. 누가 그런 물음을, 특히 대통령을 그만둔 이가 그런 의문을 가진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공부는 필요합니다. 준비된 지도자는 자신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여야 합니다. 그 신념은 보편타당한 상식을 근거로 해야 하며 대다수인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읽습니다. 읽는 것은 그분이 그리워서, 좋아서가 아닙니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시민’이 되지 못하는 오늘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입니다. 스스로에 생각과 철학에 책임을 지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더불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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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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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이나 깊은 계곡 넓게 펼쳐진 바다. 오밀조밀 어우러진 이국적인 골목의 모습, 중세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럽의 광장, 다리, 항구. 누가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고 했는가. 세상에 볼 곳도 많고 만날 이들도 많다. 영화로 보는 장면들은 아름다운 주인공과 어우러진 풍경이 이미지로 남는다. 그 곳에 가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매스컴을 통해 등장한 그의 ‘단정한’모습을 보았다. 자주 등장하게 되었을 때엔 수많은 영화평론가들 중에 그의 이름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인식한다. 그의 블로그. 사진과 글과 영화와 음악이 녹아 있는 그곳에 잠시 쉬었다가 나온다. 그가 그 곳에서 끄집어낸 것들이 한권의 책을 이룬다.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는 이동진의 수필과 같다. 영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그 주요한 배경이 되는 곳을 누비며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같은 꿈을 꾸어보기도 하는, 영화에 미쳤다. 영화를 보고 그 배경이 되는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곳에서 주인공이 했던 행위를 재연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곳에서 별을 보며 눕고, ‘원스’의 거리에서 음악 하는 이와 미소를 나누고, ‘스타워즈’의 외계도시를 꿈처럼 거닐어 보기도 한다.




‘맘마미아’의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섬의 항구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무인도에서 배구공과 친구하는 톰행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지 모누리키 섬에서 야숙을 하기도 한다. ‘폭풍의 언덕’, ‘잉마르 베리만의 무덤을 찾다’, ‘소나티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품고 있는 영국, 스웨덴, 일본 등지의 거리를 걷고 사진에 담는 일은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그 여정에서 행복하겠는가.

책을 보고 들뜬 나를 보면서, 왜 남이섬이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가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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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 - 느낌이 있는 국립공원 속살 탐방기
박경화 지음 / 양철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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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느끼는 여행이 유행이다. 과거 휴양, 소비위주의 여행에서 벗어나 좀더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과 나누고 싶은 여정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인데 ‘책임여행’, ‘공정여행’등의 단어가 여행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기획해서 상품으로 내 놓고 있을 정도니 색다른(?) 여행의 지원자가 꽤 되는 모양이다.




구지 돈을 들여 외국까지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내 것’부터 알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싶은 이들이라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웹에서 정보를 찾는 것이나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훌륭하지만 테마와 주제별로 한권에 묶은 여행서를 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사전답사는 없을 듯 하다.







그린벨트와 국립공원은 보호와 보존을 목적으로 한 제도다. 이 제도가 가져온 뜻밖의 결과에 대해 이제야 서서히 느끼고 있는 이들이 많다. ‘생각 없는’ 개발이 가져온 부작용들이 슬슬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결과물들을 내놓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존이 잘 되어 온 곳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인지 스스로 증명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연일 시즌을 맞은 국립공원들은 사람으로 산을 이룬다. 특히 서울에 있는 북한산은 도무지 국립공원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지나친 사람들의 입산으로 보존을 위한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 위치한 국립공원은 산과 바다에 있는 섬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누구나 너무도 잘 아는 지리산, 소백산, 계룡산, 태백산, 한라산 등과 태안반도, 부안, 한려수도의 바다를 접한 지역들은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곳이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내가 다녀온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닭벼슬을 쓴 용, 이것이 바로 계룡산인데, 여기서 닭의 벼슬은 관(冠)을 뜻하고 용은 임금이니 계룡산은 임금이 관을 쓴 것과 같다는 해석이다....중략.....계룡산이 예부터 영산으로 대접받은 것은, 태극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 산줄기는 남쪽을 향해 거침없이 내려와 지리산까지 장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다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이산, 대둔산으로 이어지면서 금남정맥을 이루는데, 계룡산은 그 끝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의 유래를 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한층 친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름의 유래를 아는 풀과 나무, 꽃들의 이름은 한번만 들어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산봉우리의 이름을 지을 때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로 불렀다. 산봉우리 모양이 글을 쓰는 붓 끝을 닮았다 하여 문필봉, 농기구의 써레처럼 생겼다 하여 서래봉이라 지었다.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다고 해서 시루봉, 장군의 투구를 닮았다 해서 투구봉, 단지를 엎어 놓은 드하여 단지봉이라 불렀다. 전설에 유래해서 이름 붙인 경우도 있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즐겼다 하여 신선봉, 은은한 향기가 쌓인다 하여 향적봉이라 불렀다.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이름도 있다. 관음봉, 문수봉, 비로봉은 대부분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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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가>,<오우가>의 윤선도선생이 오래 묵어 유명한 보길도. 선생이 손수 설계한 세연정과 세연지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섬의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영암에 사는 한 부자가 조상의 묘를 쓰려고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과 함께 섬을 찾았다.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닌 지관은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라는 결론을 내렸다. 섬에는 명당이 11곳 있는데, 10곳은 이미 다른 사람이 썼고, 한 곳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욕심많은 부자는 그 곳을 가르쳐 달라고 애걸복걸 햇다. 하지만 지관은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다. 그 뒤 사람들은 지관이 남긴 글자를 조함하여 ‘보길 甫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반면 국립공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들의 일상도 비춘다. 공원지역에 살면서 불편함과 공원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 대한 애정.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있기에 우리가 편안하게 등산이나 여행을 즐길수 있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외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큰 눈도 내리는데, 깊은 곳에서는 150cm나 쌓여 길과 계곡의 구별마저 사라진다. 이때 길을 아는 사람만이 ‘길을 틀 수’ 있다. 길을 내는 방법은 무척 단순하다. 한 사람이 앞서 걸으면 뒤따라 7~10명이 쭉 밀고 나간다. 그러나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배로 누르고 뛰면서 온몸으로 눈길을 뚫는 것이다. 이 작업은 뒤따라오는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지금 내가 눈꽃을 감상하며 편히 걷는 길, 이 높은 산에 길을 내기 위해 누군가는 이렇게 눈 속을 헤맸으리라.
 
   

 




국립공원에 여가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일들이 있다. 아무래도 인파가 지나간 곳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쓰레기처럼 치워지는 것외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도 있는 것이다. 쉽고 빠르게 공원의 깊숙한 곳으로 많은 이들이 접근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덕유산은 이제 누구에게나 만만한 산이 되었다. 그러나 덕유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편리한 시설물(곤돌라)로 쏠리는 바람에 향적봉은 점점 낮아질 지경이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서도 그렇고, 쉽게 올라갈 수 있어서도 그렇다. 기계는 사람의 힘으로는 못하는 일을 단숨에 해결해주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도리어 부메랑이 되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책은 생명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일부러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곳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 느낌을 간직하는 것이 좀더 먼 미래에도 공권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길이라 말하는 것 같다. 전국의 ‘잘 보존된 곳’을 듣기만하니 좀이 쑤신다. 자연을 괴롭히지 않고 온전히 공원이 주는 기운을 받아 돌아오려면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곳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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