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반가운 편지글이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바로 그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편지글은 예전에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한집>이나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 새로 나온 서한집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으나, 다자이 오사무의 서한집은 꽤 눈길이 갔다.

다자이 오사무는 내게 적어도 청춘의 작가이다. 이십대 후반에 <인간 실격>을 읽고 얼마나 빠졌던지, 그 무렵에는 그의 작품을 구하는 대로 다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은 <인간 실격>은 예전처럼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언제는 그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성이 못 견딜 것 같기도 하더라. 내가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이 사람은 왜 늘 이렇게 징징대나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부터 다자이 오사무 책을 더는 읽지 않은 것 같다.  

두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나란히 받아 읽었다. 무엇부터 볼까 싶은데 아무래도 좀 더 새로운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부터 읽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밤 읽는 편지글은 이상하게도 가슴을 울린다. 편지라는 글이 그렇다. 주고받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속삭임, 고백, 다정한 말투……. 나는 언제 이런 편지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자우편과 메신저, 핸드폰 문자 등이 등장하고는 편지 쓸 일이 없다. 그러나 그 전에는 나도 편지를 종종 썼던 사람인데……. 아날로그적 감성에 젖어 남의 편지를 읽는 밤이 하릴없이 깊어만 간다.


요즘 자주 눈물이 난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야. 수다를 떠는 거지.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고 혼자서 주절주절 지껄이고 있는 거야. 천마디 말 중에 한마디 진실을 찾아준다면 죽도록 기쁘겠네.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었어. 사색도 아니었다. 학문도 아니었고. 포즈도 아니었다. 애정이다.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84쪽)


편지글에서도 다자이 오사무는 곧잘 징징거린다. 자주 눈물이 난다고, 슬퍼서 울었다고, 분해서 울었다고 거리낌 없이 잘도 말한다. 그는 외롭고 고독하고, 애정을 갈구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상당하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편히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삶은 왜 이다지도 곤궁하고 고달프기만 한지, 친구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돈 빌려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20엔만 빌려주십시오, 몇 월 며칠까지는 꼭 갚겠습니다. 지금 쓰는 작품 원고료가 언제 들어옵니다, 지금 쓰는 작품이 잘 되면 꼭 갚겠습니다 등등.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돈 빌려달라는 소리인 것 같다. 그만큼 삶이 곤궁하고 고달픈 그.
 

저도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타인이 쓴 훌륭한 소설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읽는 데 전념할 생각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49쪽)

불멸의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언제나 잊어선 안 돼. 그저 거만해지라는 뜻이 아니야. 죽을 만큼 공부하라는 뜻이지.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75쪽)


물론 온통 돈 빌려 달라는 말만 있다면 이 서한집이 세상에 굳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지 속에서 그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자신을 다그친다. 어떤 날은 작품이 잘 쓰여서 기분이 좋고, 또 그렇지 않은 날은 그래서 우울하다. 잘하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깊은 실망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이미 유명해서 아쿠타가와 상은 앞으로도 안 될 거다. 어설픈 이류 삼류 후보자들과 같이 이름이 올랐다는 게 불쾌할 뿐’(78쪽)이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참다못해 상을 달라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한다.


물질을 고통이 쌓이고 또 쌓여 죽을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10년만 더 살고 싶어 죽을 지경입니다. 저는 괜찮은 인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운이 나빠 죽기일보 직전까지 와버렸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는다면 저는 인간의 따뜻한 정에 울음을 터트릴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그 어떤 괴로움과도 싸워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사토 하루오에게 쓴 편지, 110쪽)

<만년> 한 권 제1회 아쿠타가와 상을 타게 될까요.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상금, 제 반 년치 여비입니다. 늙은 어머니와 가여운 아내를 단 한 번만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명예를 주십시오. <만년> 한 권만은 부끄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쓴 편지, 152쪽)


이렇게 구걸(?)할 정도로 상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서한집을 읽노라면 그가 인정욕구에 꽤 시달렸으며, 그것은 또 애정, 순수한 애정에 굶주린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돈에 쪼들렸기에 상금을 받아 편안하게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그토록 고통스러운 생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싸워서, 살아 이겨 내고 싶어 한 그의 간절한 소망이자 바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떤 편지에서 그는 몸을 해쳐 누워 있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직까지 조금도 일다운 일을 남기지 못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어떻게든 겨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마흔까지는 살아 있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난 다자이 오사무였기에 이 살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더불어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다는 그의 또 다른 편지글에서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오랜만에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일, 이것이 샹냥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부끄러움으로 저와 제 몸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363쪽)


나쓰메 소세키 편지글은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와는 그 어조부터 사뭇 다르다. 나쓰메 소세키는 교사도, 교수도, 박사도 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사는 인생에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만 써서 먹고 살아야 했던 다자이 오사무보다는 조금 속이 편했던 것 같기는 하다. 절친한 벗이었던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문하생 및 제자 등 주변에 사람도 늘 많은 편이라서 그런지 인정욕구 같은 것에 시달리는 모습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은 ‘청년 시절-영국 유학 시절-도쿄대 교수 시절-아사히 신문사 시절-만년’으로 세분화 된다. 청년 시절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가 주를 이루고, 영국 유학 시절에는 아내나 장인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자주 보인다. 그중에서도 영국 유학을 떠나 있어, 시키의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 애달픈 마음을 하이쿠로 써서 담아낸 편지가 인상 깊다. 무척 담담해서 오히려 마음이 저린 글이다.


런던에서 시키의 부고를 듣고

양복 차림에 가을 장례 행렬도 따르지 못해
올려 마땅한 향 하나 없는 채로 저무는 가을
노오란 안개 자욱한 도시에서 춤추는 음영
함께 시 읊던 오래전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불러주는 이 없는 참억새밭에 돌아가려네.


친구나 문하생 및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스승이었지만 편지를 통해 본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정다감한 모습은커녕 멀리 있는 아내에게도 편지로 잔소리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계속 ‘틀니는 넣도록 하시오, 머리는 둥글게 틀어 올려 묶지 않는 게 좋겠소. 자주 감으시오.’ 등등 애정 표현은커녕 잔소리꾼도 이런 잔소리꾼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문학자가 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박사도 교수도 되고 싶지 않아요. 인간은 먹고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대단한 저술도 결국 시간과 돈 문제이니,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딱히 상관없습니다.’ 토로하기도 한다. 돈을 주워 글만 쓰고 살고 싶다는 너무나 솔직한 표현에는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일본에 돌아가 어학 교사 일에 쫓기다 보면 사색하거나 독서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돈 10만 엔을 주워 도서관을 세운 다음 거기서 책을 쓰는 상상까지 하곤 하니 참 한심하지요.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장인에게 쓴 편지, 157쪽)


문하생이나 제자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고, 여러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아낌없는 흠모를 받았던 소세키. 그 자신도 제자들의 그런 애정을 기꺼워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편지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소세키 스스로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나 같은 인간이 한 학생의 머릿속을 이렇게까지 점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그 편지를 보면 미에키치 군은 매일같이 내 생각을 하다가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 같더군. 내가 열일고여덟 먹은 아가씨라면 미에키치 군 생각에 드러누워 끙끙 앓았겠지만, 다행히 나는 요시하라에서 온 머릿기름 종지나 애지중지하는 긴양(소세키 본명인 ‘긴노스케’에서 따온 별명)이라 내 입장에선 약값을 아껴 무척 다행이다 싶네. 하지만 제아무리 소세키라도, 긴양이라도, 강사라도, 수염이 났다 해도 미에키치 군에게 이렇게까지 흠모를 받고 감사히 생각지 않는 건 아니라네. 감사함을 넘어 무서울 정도야. 미에키치 군은 내 아내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듯 하더군.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하네만 이 정도까지 흠모 받을 줄은 몰랐다네. 자만하던 것 이상일세. 예상을 오십오륙 배 초과했어. 본디 사람은 흠모나 친애의 대상이 되면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기 마련일세. 그 흠모와 친애에 부합하는 자격을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내고 싶은 기분이 드는군.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186~187쪽)


그가 아끼던 제자 구메 마사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는 예전에 읽었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소세키는 그들에게 ‘공부는 하나요? 글은 쓰고 있습니까? 두 사람은 새 시대의 작가가 될 생각이겠지요. 나도 같은 생각으로 두 사람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부디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나 너무 초초해하면 안됩니다. 그저 소처럼 넉살좋게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416쪽) 말한다. 소처럼 넉살좋게 꾸준히 나아가라는 말은 꼭 소세키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새겨두기에 좋은 글이 아닌가 싶다.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썼다는 나쓰메 소세키. ‘한없이 이어져 저물 줄 모르는 긴긴 하루의 증거로서’(417쪽) 편지를 썼다는 소세키. 을씨년스러운 추위가 온몸을 파고드는 이 쓸쓸한 계절, 다정한 이에게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꽤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소가 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늘 어떻게든 말이 되고자 하지만, 좀처럼 완전히 소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처럼 노회한 사람도 이제 막 소와 말이 교미하여 잉태한 잡종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끙끙대면서 죽을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절대 상대를 만들어서 밀면 안 됩니다. 상대는 끝도 없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법입니다. 소는 초연히 밀고 나갑니다. 무엇을 미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해 드리지요. 인간을 미는 것입니다. 문사(文士)를 미는 것이 아닙니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421~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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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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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려 오락가락하는 늙은 공작과 그의 지위와 재산을 노린 모녀(라고 하기엔 딸은 희생양)의 한바탕 꿈 같은 결혼 소동. 도스토예프스키의 해학이 빛난다.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별 넷이지만, 다른 작가들 작품에 비하면 별 다섯. 그나저나 딸 ‘지나‘를 둘러싼 남자들 어쩜 하나같이 찌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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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2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데요 뭔데요 아 너무 읽고 싶다. 이거 그 영화 생각나요. 시고니 위버 주연의 <하트브레이커스> !!

잠자냥 2020-11-27 13:05   좋아요 0 | URL
아니 저는 그 영화 안 봤는데.... 아니 봤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것인가??? 다시 봐야겠다 =33
근데 이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 정말 욕 한바가지 해주고 싶어요. 도선생이 하긴 하지만 부족해.....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1-27 13:09   좋아요 1 | URL
하트브레이커스 도 모녀 사기단(?) 이 남자들 꼬셔서 돈 뜯어내거든요. 음..근데 마지막엔 진정한 사랑을 아마도 찾았을걸요? 뻔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억 잘 안난다.

아 맞다. 브루노 마스 노래 중에 <Natalie>라고 있는데요, 거기에 이런 가사 나와요.

Natalie, she ran away with all my money
And she did it for fun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엔 이럽니다.

Natalie, if you see her tell her Im coming
She better run

저는 노래 들으면서 외칩니다. 나탈리, 도망가! 잡히지마! 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상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재원 옮김 / 읻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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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편지가 많은데도, 다시 읽어도 좋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자기 문하생이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그 따스한 위로와 격려에 나도 모르게 힘을 얻는다. 절친한 벗 시키에게 보낸 편지는 여전히 눈물나게 만들고. 인간 소세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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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2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신착도서칸에서 봤는데 지나쳤거든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다시 가면 아직 있을까요?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잠자냥 2020-11-25 11: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어요. 예전에 읽은 편지들이 많아서 또 사긴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진지해 보이는 소세키가 나름 좀 웃긴 면도 있답니다. ㅋㅋㅋㅋ

scott 2020-11-2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와이프에게 폭군에 폭력도 휘둘렀는데 제자들에게 따스한 스승이였네요

잠자냥 2020-11-27 09:32   좋아요 0 | URL
네, 여기 편지에도 보면 부인에게는 다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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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잘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하루키는 어떠한가? 돌이켜 보면 나는 그의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종종 읽었어도 그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그 많은 에세이에서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 않다. 소설만 봐도 부모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때문에 하루키가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 하루키도 이제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인상 깊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 오후, 소년 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간다. 지금으로서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유기한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테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하루키가 아버지와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내 머릿속에도 유년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읽다가, 이 고양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오래전,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노랑 눈에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었다. 할머니는 녀석이 마당에 있는 쥐를 잘 잡는다면서 밥도 주면서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주 흔한 ‘나비’라는 이름도 당신이 몸소 붙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마당 장독대나 지붕 위에서 가르랑 거리는 녀석을 피해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마당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예뻐하던 막냇동생에게 물어보니 할머니가 가방에 담아서 버린다고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순한 녀석이다. 지금 키우는 내 고양이들은 병원에 가려고 케이지에 넣으려고 하면 몇 시간을 씨름해야 하는데, 할머니 혼자 그 검은 고양이를 가방에 넣었다니, 참으로 순한 녀석이 아닌가. 아니면 이 집에서 더는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비’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지 않았던 나는 그렇구나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동생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서 놀다 지겨워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붕 위에서 ‘나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제 온몸을 핥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천연덕스럽고 느긋해 보였다.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딜 가냐는 듯 참으로 당당했다. 한참 뒤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침 뚝 떼고 “할머니 어디 갔다 와?” 하니, “나비가 하도 시끄럽게 해서 저기 내다 버리고 왔다” 하신다. 동생들과 나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지붕 위를 가리켰다. 지붕 위를 쳐다 본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런, 저런 요물! 아주 멀리 내다버렸는데!”하시고는 당신이 졌다는 듯 꾸부정한 허리를 매만지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비’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역시 고양이는 남다른 데가 있구나, 무서운 존재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아버지와 함께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보다 먼저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루키는 아버지의 얼굴에 스치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둘 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버지는 이내 감탄하고 마지막에는 다소 안도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된다. 하루키는 이 일화와 아버지의 표정에서 아버지의 과거, 그가 살아온 생애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남이 아니었던 그는 그 옛날 형편이 어렵던 시절, 입 하나라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남의 집에 양자로 갔다가 파양되어 돌아온 경험이 있다. 하루키는 버려졌으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보며 안도하는 아버지 얼굴에서 이런 아버지의 삶을 유추해낸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운다. 어째서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행동 또한 아버지의 삶과 관계가 있다. 승려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한 경험을 한다. 그때 죽은 동료들을 위해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우는 아버지를 알게 되기까지 하루키에게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속했던 부대를 후쿠치야마 보병 제 20연대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군 이력을 자세히 조사하기까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가 속했다고 생각했던 보병 제20연대는 난징 함락 당시 가장 먼저 공격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 부대였고, 이 부대의 행동에는 유난히 피비린내 나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장 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오래도록 품었던 탓에 그의 종군 기록을 조사해보려는 결심을 좀처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양이를 버리러 간 기억, 돌아와 안도하는 표정, 불단 앞에서 매일 아침 불경을 외우던 아버지의 모습…….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중요한 상처 두 가지, 버림받은 기억과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아버지와 성격이 달랐던 하루키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불화하고, 이십 년이 넘도록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지경까지 간다. 마침내 그가 아버지와 어렵사리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아버지의 나이 아흔 살, 하루키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이 작은 책은 나에게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십 년 이상 대화하지 않은 아버지, 그가 죽기 직전에야 화해한 아들……. 내게도 이십 년 이상 대화는커녕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하루키처럼 대화를 나누며 화해할 생각도 들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그럼에도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정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하루키가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내게도 아버지와 얽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내 인생 첫 자전거를 사준 사람도, 기타가 갖고 싶다는 말에 고등학생 때 선뜻 통기타를 선물한 사람도, 대학 입학 기념으로 모토로라 타키온을 사온 사람도 모두 아버지였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그림 하나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나란히 있는 이 그림.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고, 나와 내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다. 피를 나눈 사이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존재들. 때로는 불화하기도 하는 존재들. 하루키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나이에 내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에 아버지와의 화해가 과연 가능할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아버지, 그리고 그를 낳은 할머니와 고양이에 얽힌 이런저런 상념을 깊은 밤에 불러일으킨다. 하루키가 아버지의 사소한 몸짓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상처나 아픔을 헤아렸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될 일이 과연 있을까. 내 아버지의 인생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금 이렇게 나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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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24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리뷰를 좋아해서 늘 읽곤 하지만 이 리뷰는 특히 좋네요. 이 책이 얼마나 얇은지 이미 들어왔는데, 그 안에서 이런 감상이 끌어올려지다니... 이 책이 더 궁금해지고요.
그런 한편 아버지란 존재는 대체 어떤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 나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오롯이 사랑할 수만은 없는 그런 감정에 대해서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버지랑 친한 사이이고 친구들이 그런 아버지와 저의 관계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 하면 거기에는 그렇다는 답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보다는 인간적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11-24 11:3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정말 얇아요. 작고 ㅎㅎ 그런데 후기에 보면 하루키가 이 책은 단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그게 좀 이해가 가요. 다른 글들하고 섞어서 엮어 내기 좀 뭐한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하루키의 그 심정도요...

전 가끔 다락방 님 글 읽다 보면 아버지랑 사이가 참 좋아 보여서 부럽기도 하고, 저런 감정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요. 그런 다락방 님에게도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요. ㅎㅎ 아버지에게 좀 복잡한 심정이 있는 사람은 이 책에서 느끼는 게 남다를 것 같아요.

이 책은 다 읽고 값 좋을 때 팔아야지 했는데, 왠지 갖고 있을 거 같습니다. ㅎㅎㅎㅎ

단발머리 2020-11-2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리뷰 & 불평 들었던것 같은데 잠자냥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이네요. 고양이에 대한 추억도 그렇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렇구요.마음이 촉촉해지면서도 말랑해지는 그런 리뷰에요. 무엇보다 저의 눈길을 끈 건 이 문장.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무서워 피해다니는 소녀는 그 무렵 이미 <검은 고양이>를 읽었단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잠자냥님이 된 것이죠^^

잠자냥 2020-11-24 11:54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에 대한 불평을 보면 대부분 책값에 비해 책이 얇다! 장삿속이 너무 심히다! 인데.... 저도 책을 읽기 전엔 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후기 보면 하루키가 이 글은 단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밝힌 부분이 있어요. 글을 읽고 나면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쯤으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ㅎ <검은 고양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 작품 때문에 그 시절부터 서른 넘기까지 고양이를 무서워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세 마리 집사이지만... 냥이들, 무섭기는커녕 그 하찮은 이빨만큼 하찮은 것들 ㅋㅋㅋㅋ 이젠 귀여워 죽겠어요. 인생이란 참 놀라운 반전 ㅎㅎㅎㅎㅎ
 
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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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정원’이 있는 대저택을 둘러싼 두 가족의 흥망성쇠를 담은 이야기. 바진은 이 두 가족 이야기를 쓰면서 문학이 그저 세상의 비참과 고통을 폭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랑과 용서, 화해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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