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반가운 편지글이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바로 그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편지글은 예전에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한집>이나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 새로 나온 서한집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으나, 다자이 오사무의 서한집은 꽤 눈길이 갔다.

다자이 오사무는 내게 적어도 청춘의 작가이다. 이십대 후반에 <인간 실격>을 읽고 얼마나 빠졌던지, 그 무렵에는 그의 작품을 구하는 대로 다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은 <인간 실격>은 예전처럼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언제는 그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성이 못 견딜 것 같기도 하더라. 내가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이 사람은 왜 늘 이렇게 징징대나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부터 다자이 오사무 책을 더는 읽지 않은 것 같다.  

두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나란히 받아 읽었다. 무엇부터 볼까 싶은데 아무래도 좀 더 새로운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부터 읽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밤 읽는 편지글은 이상하게도 가슴을 울린다. 편지라는 글이 그렇다. 주고받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속삭임, 고백, 다정한 말투……. 나는 언제 이런 편지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자우편과 메신저, 핸드폰 문자 등이 등장하고는 편지 쓸 일이 없다. 그러나 그 전에는 나도 편지를 종종 썼던 사람인데……. 아날로그적 감성에 젖어 남의 편지를 읽는 밤이 하릴없이 깊어만 간다.


요즘 자주 눈물이 난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야. 수다를 떠는 거지.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고 혼자서 주절주절 지껄이고 있는 거야. 천마디 말 중에 한마디 진실을 찾아준다면 죽도록 기쁘겠네.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었어. 사색도 아니었다. 학문도 아니었고. 포즈도 아니었다. 애정이다.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84쪽)


편지글에서도 다자이 오사무는 곧잘 징징거린다. 자주 눈물이 난다고, 슬퍼서 울었다고, 분해서 울었다고 거리낌 없이 잘도 말한다. 그는 외롭고 고독하고, 애정을 갈구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상당하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편히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삶은 왜 이다지도 곤궁하고 고달프기만 한지, 친구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돈 빌려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20엔만 빌려주십시오, 몇 월 며칠까지는 꼭 갚겠습니다. 지금 쓰는 작품 원고료가 언제 들어옵니다, 지금 쓰는 작품이 잘 되면 꼭 갚겠습니다 등등.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돈 빌려달라는 소리인 것 같다. 그만큼 삶이 곤궁하고 고달픈 그.
 

저도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타인이 쓴 훌륭한 소설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읽는 데 전념할 생각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49쪽)

불멸의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언제나 잊어선 안 돼. 그저 거만해지라는 뜻이 아니야. 죽을 만큼 공부하라는 뜻이지.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75쪽)


물론 온통 돈 빌려 달라는 말만 있다면 이 서한집이 세상에 굳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지 속에서 그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자신을 다그친다. 어떤 날은 작품이 잘 쓰여서 기분이 좋고, 또 그렇지 않은 날은 그래서 우울하다. 잘하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깊은 실망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이미 유명해서 아쿠타가와 상은 앞으로도 안 될 거다. 어설픈 이류 삼류 후보자들과 같이 이름이 올랐다는 게 불쾌할 뿐’(78쪽)이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참다못해 상을 달라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한다.


물질을 고통이 쌓이고 또 쌓여 죽을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10년만 더 살고 싶어 죽을 지경입니다. 저는 괜찮은 인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운이 나빠 죽기일보 직전까지 와버렸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는다면 저는 인간의 따뜻한 정에 울음을 터트릴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그 어떤 괴로움과도 싸워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사토 하루오에게 쓴 편지, 110쪽)

<만년> 한 권 제1회 아쿠타가와 상을 타게 될까요.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상금, 제 반 년치 여비입니다. 늙은 어머니와 가여운 아내를 단 한 번만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명예를 주십시오. <만년> 한 권만은 부끄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쓴 편지, 152쪽)


이렇게 구걸(?)할 정도로 상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서한집을 읽노라면 그가 인정욕구에 꽤 시달렸으며, 그것은 또 애정, 순수한 애정에 굶주린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돈에 쪼들렸기에 상금을 받아 편안하게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그토록 고통스러운 생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싸워서, 살아 이겨 내고 싶어 한 그의 간절한 소망이자 바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떤 편지에서 그는 몸을 해쳐 누워 있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직까지 조금도 일다운 일을 남기지 못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어떻게든 겨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마흔까지는 살아 있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난 다자이 오사무였기에 이 살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더불어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다는 그의 또 다른 편지글에서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오랜만에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일, 이것이 샹냥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부끄러움으로 저와 제 몸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363쪽)


나쓰메 소세키 편지글은 다자이 오사무의 편지와는 그 어조부터 사뭇 다르다. 나쓰메 소세키는 교사도, 교수도, 박사도 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사는 인생에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만 써서 먹고 살아야 했던 다자이 오사무보다는 조금 속이 편했던 것 같기는 하다. 절친한 벗이었던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문하생 및 제자 등 주변에 사람도 늘 많은 편이라서 그런지 인정욕구 같은 것에 시달리는 모습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은 ‘청년 시절-영국 유학 시절-도쿄대 교수 시절-아사히 신문사 시절-만년’으로 세분화 된다. 청년 시절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가 주를 이루고, 영국 유학 시절에는 아내나 장인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자주 보인다. 그중에서도 영국 유학을 떠나 있어, 시키의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 애달픈 마음을 하이쿠로 써서 담아낸 편지가 인상 깊다. 무척 담담해서 오히려 마음이 저린 글이다.


런던에서 시키의 부고를 듣고

양복 차림에 가을 장례 행렬도 따르지 못해
올려 마땅한 향 하나 없는 채로 저무는 가을
노오란 안개 자욱한 도시에서 춤추는 음영
함께 시 읊던 오래전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불러주는 이 없는 참억새밭에 돌아가려네.


친구나 문하생 및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스승이었지만 편지를 통해 본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정다감한 모습은커녕 멀리 있는 아내에게도 편지로 잔소리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계속 ‘틀니는 넣도록 하시오, 머리는 둥글게 틀어 올려 묶지 않는 게 좋겠소. 자주 감으시오.’ 등등 애정 표현은커녕 잔소리꾼도 이런 잔소리꾼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문학자가 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박사도 교수도 되고 싶지 않아요. 인간은 먹고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대단한 저술도 결국 시간과 돈 문제이니,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딱히 상관없습니다.’ 토로하기도 한다. 돈을 주워 글만 쓰고 살고 싶다는 너무나 솔직한 표현에는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일본에 돌아가 어학 교사 일에 쫓기다 보면 사색하거나 독서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돈 10만 엔을 주워 도서관을 세운 다음 거기서 책을 쓰는 상상까지 하곤 하니 참 한심하지요.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장인에게 쓴 편지, 157쪽)


문하생이나 제자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고, 여러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아낌없는 흠모를 받았던 소세키. 그 자신도 제자들의 그런 애정을 기꺼워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편지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소세키 스스로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나 같은 인간이 한 학생의 머릿속을 이렇게까지 점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그 편지를 보면 미에키치 군은 매일같이 내 생각을 하다가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 같더군. 내가 열일고여덟 먹은 아가씨라면 미에키치 군 생각에 드러누워 끙끙 앓았겠지만, 다행히 나는 요시하라에서 온 머릿기름 종지나 애지중지하는 긴양(소세키 본명인 ‘긴노스케’에서 따온 별명)이라 내 입장에선 약값을 아껴 무척 다행이다 싶네. 하지만 제아무리 소세키라도, 긴양이라도, 강사라도, 수염이 났다 해도 미에키치 군에게 이렇게까지 흠모를 받고 감사히 생각지 않는 건 아니라네. 감사함을 넘어 무서울 정도야. 미에키치 군은 내 아내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듯 하더군. (...) 나는 이래봬도 자부심 넘치는 사내라 내가 일부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을 가졌다고 자신하네만 이 정도까지 흠모 받을 줄은 몰랐다네. 자만하던 것 이상일세. 예상을 오십오륙 배 초과했어. 본디 사람은 흠모나 친애의 대상이 되면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기 마련일세. 그 흠모와 친애에 부합하는 자격을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내고 싶은 기분이 드는군.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186~187쪽)


그가 아끼던 제자 구메 마사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는 예전에 읽었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소세키는 그들에게 ‘공부는 하나요? 글은 쓰고 있습니까? 두 사람은 새 시대의 작가가 될 생각이겠지요. 나도 같은 생각으로 두 사람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부디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나 너무 초초해하면 안됩니다. 그저 소처럼 넉살좋게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416쪽) 말한다. 소처럼 넉살좋게 꾸준히 나아가라는 말은 꼭 소세키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새겨두기에 좋은 글이 아닌가 싶다.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썼다는 나쓰메 소세키. ‘한없이 이어져 저물 줄 모르는 긴긴 하루의 증거로서’(417쪽) 편지를 썼다는 소세키. 을씨년스러운 추위가 온몸을 파고드는 이 쓸쓸한 계절, 다정한 이에게 까닭 없이 긴 편지를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꽤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소가 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늘 어떻게든 말이 되고자 하지만, 좀처럼 완전히 소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처럼 노회한 사람도 이제 막 소와 말이 교미하여 잉태한 잡종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끙끙대면서 죽을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절대 상대를 만들어서 밀면 안 됩니다. 상대는 끝도 없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법입니다. 소는 초연히 밀고 나갑니다. 무엇을 미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해 드리지요. 인간을 미는 것입니다. 문사(文士)를 미는 것이 아닙니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421~4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