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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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잘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하루키는 어떠한가? 돌이켜 보면 나는 그의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종종 읽었어도 그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그 많은 에세이에서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 않다. 소설만 봐도 부모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때문에 하루키가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 하루키도 이제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인상 깊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 오후, 소년 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간다. 지금으로서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유기한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테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하루키가 아버지와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내 머릿속에도 유년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읽다가, 이 고양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오래전,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노랑 눈에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었다. 할머니는 녀석이 마당에 있는 쥐를 잘 잡는다면서 밥도 주면서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주 흔한 ‘나비’라는 이름도 당신이 몸소 붙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마당 장독대나 지붕 위에서 가르랑 거리는 녀석을 피해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마당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예뻐하던 막냇동생에게 물어보니 할머니가 가방에 담아서 버린다고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순한 녀석이다. 지금 키우는 내 고양이들은 병원에 가려고 케이지에 넣으려고 하면 몇 시간을 씨름해야 하는데, 할머니 혼자 그 검은 고양이를 가방에 넣었다니, 참으로 순한 녀석이 아닌가. 아니면 이 집에서 더는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비’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지 않았던 나는 그렇구나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동생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서 놀다 지겨워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붕 위에서 ‘나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제 온몸을 핥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천연덕스럽고 느긋해 보였다.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딜 가냐는 듯 참으로 당당했다. 한참 뒤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침 뚝 떼고 “할머니 어디 갔다 와?” 하니, “나비가 하도 시끄럽게 해서 저기 내다 버리고 왔다” 하신다. 동생들과 나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지붕 위를 가리켰다. 지붕 위를 쳐다 본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런, 저런 요물! 아주 멀리 내다버렸는데!”하시고는 당신이 졌다는 듯 꾸부정한 허리를 매만지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비’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역시 고양이는 남다른 데가 있구나, 무서운 존재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아버지와 함께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보다 먼저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루키는 아버지의 얼굴에 스치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둘 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버지는 이내 감탄하고 마지막에는 다소 안도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된다. 하루키는 이 일화와 아버지의 표정에서 아버지의 과거, 그가 살아온 생애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남이 아니었던 그는 그 옛날 형편이 어렵던 시절, 입 하나라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남의 집에 양자로 갔다가 파양되어 돌아온 경험이 있다. 하루키는 버려졌으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보며 안도하는 아버지 얼굴에서 이런 아버지의 삶을 유추해낸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운다. 어째서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행동 또한 아버지의 삶과 관계가 있다. 승려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한 경험을 한다. 그때 죽은 동료들을 위해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우는 아버지를 알게 되기까지 하루키에게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속했던 부대를 후쿠치야마 보병 제 20연대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군 이력을 자세히 조사하기까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가 속했다고 생각했던 보병 제20연대는 난징 함락 당시 가장 먼저 공격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 부대였고, 이 부대의 행동에는 유난히 피비린내 나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장 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오래도록 품었던 탓에 그의 종군 기록을 조사해보려는 결심을 좀처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양이를 버리러 간 기억, 돌아와 안도하는 표정, 불단 앞에서 매일 아침 불경을 외우던 아버지의 모습…….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중요한 상처 두 가지, 버림받은 기억과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아버지와 성격이 달랐던 하루키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불화하고, 이십 년이 넘도록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지경까지 간다. 마침내 그가 아버지와 어렵사리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아버지의 나이 아흔 살, 하루키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이 작은 책은 나에게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십 년 이상 대화하지 않은 아버지, 그가 죽기 직전에야 화해한 아들……. 내게도 이십 년 이상 대화는커녕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하루키처럼 대화를 나누며 화해할 생각도 들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그럼에도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정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하루키가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내게도 아버지와 얽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내 인생 첫 자전거를 사준 사람도, 기타가 갖고 싶다는 말에 고등학생 때 선뜻 통기타를 선물한 사람도, 대학 입학 기념으로 모토로라 타키온을 사온 사람도 모두 아버지였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그림 하나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나란히 있는 이 그림.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고, 나와 내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다. 피를 나눈 사이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존재들. 때로는 불화하기도 하는 존재들. 하루키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나이에 내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에 아버지와의 화해가 과연 가능할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아버지, 그리고 그를 낳은 할머니와 고양이에 얽힌 이런저런 상념을 깊은 밤에 불러일으킨다. 하루키가 아버지의 사소한 몸짓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상처나 아픔을 헤아렸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될 일이 과연 있을까. 내 아버지의 인생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금 이렇게 나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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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24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리뷰를 좋아해서 늘 읽곤 하지만 이 리뷰는 특히 좋네요. 이 책이 얼마나 얇은지 이미 들어왔는데, 그 안에서 이런 감상이 끌어올려지다니... 이 책이 더 궁금해지고요.
그런 한편 아버지란 존재는 대체 어떤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 나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오롯이 사랑할 수만은 없는 그런 감정에 대해서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버지랑 친한 사이이고 친구들이 그런 아버지와 저의 관계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 하면 거기에는 그렇다는 답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보다는 인간적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11-24 11:3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정말 얇아요. 작고 ㅎㅎ 그런데 후기에 보면 하루키가 이 책은 단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그게 좀 이해가 가요. 다른 글들하고 섞어서 엮어 내기 좀 뭐한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하루키의 그 심정도요...

전 가끔 다락방 님 글 읽다 보면 아버지랑 사이가 참 좋아 보여서 부럽기도 하고, 저런 감정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요. 그런 다락방 님에게도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요. ㅎㅎ 아버지에게 좀 복잡한 심정이 있는 사람은 이 책에서 느끼는 게 남다를 것 같아요.

이 책은 다 읽고 값 좋을 때 팔아야지 했는데, 왠지 갖고 있을 거 같습니다. ㅎㅎㅎㅎ

단발머리 2020-11-2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리뷰 & 불평 들었던것 같은데 잠자냥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이네요. 고양이에 대한 추억도 그렇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렇구요.마음이 촉촉해지면서도 말랑해지는 그런 리뷰에요. 무엇보다 저의 눈길을 끈 건 이 문장.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무서워 피해다니는 소녀는 그 무렵 이미 <검은 고양이>를 읽었단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잠자냥님이 된 것이죠^^

잠자냥 2020-11-24 11:54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에 대한 불평을 보면 대부분 책값에 비해 책이 얇다! 장삿속이 너무 심히다! 인데.... 저도 책을 읽기 전엔 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후기 보면 하루키가 이 글은 단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밝힌 부분이 있어요. 글을 읽고 나면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쯤으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ㅎ <검은 고양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 작품 때문에 그 시절부터 서른 넘기까지 고양이를 무서워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세 마리 집사이지만... 냥이들, 무섭기는커녕 그 하찮은 이빨만큼 하찮은 것들 ㅋㅋㅋㅋ 이젠 귀여워 죽겠어요. 인생이란 참 놀라운 반전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