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것은 명제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죽는다. 노년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인도, 노년의 삶도 모두 자기와는 동떨어진 현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 그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젊으면 젊을수록 더 그렇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살아온 나날을 헤아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나 싶은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노년의 삶은 아직 좀 먼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아니 지금의 나이보다 열 살만 더 어렸다면 노년의 삶을 다룬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뜻밖의 우정>이라는, 삼십대 후반의 젊은이와 노인들의 우정의 기록을 담은 책을 읽게 된 것일까.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상실을 경험하기. 그것도 거듭되는 상실을 겪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그런 생각이 요즘 더 강하게 들었던 까닭은 최근에 내 둘째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늙음은 사람의 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여러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열 살을 넘긴 녀석들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노라면 고양이의 얼굴에도 몸에도 늙음의 흔적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작이 느려지고 활동량이 줄어들고, 혼자 있기 싫어하는 습성 등은 사람에게서나 내 늙은 고양이에게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노년의 증거이다.
내 나이 서른 즈음보다는 노년의 과정에 놓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없던 질병이 생기고 그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내 둘째 고양이처럼 어느 날 무심히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이, 동물이 마주하는 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쓸쓸함과 허무함을 견디기가 싫어 젊은 날에 생을 접어버릴 수도 없으니, 묵묵히 저 노년으로 가는 과정을 나 또한 걸어갈 수밖에는 없겠지, 그런 생각에 이 책을 읽은 것도 같다.
처음에는 유쾌했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검도를 배운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이제 일흔이다. 30여 년 전, 검도장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가 무슨, 검도를? 얼마나 나오겠어? 무시와 경멸의 시선을 받던 그녀는 예순일곱 살에 검도 6단을 취득했고, 여전히 검도를 하는 대단한 ‘할머니’로 늙어,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를 잇는 할머니들의 사연도 유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결성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에서 새 멤버를 뽑는단다. ‘수니와 칠공주’의 평균 나이는 85세. 새 멤버를 뽑는 이유는 기존 래퍼의 노환으로 인한 죽음 때문이다.... 오디션은 자기소개에 이어 한글 실력을 검증하는 받아쓰기, 랩 따라 하기, 글짓기, 가창력과 춤 실력을 보는 애창곡 부르기와 막춤 추기 등으로 진행된다. 새 멤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정열 할머니는 과연 래퍼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세 번째로 소개된 ‘승기’의 사연에서 아, 내 노년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이자 영화광이다. 승기 할아버지는 저자와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기도 한데, 아마도 그 수많은 책과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공감과 소통의 활로를 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화로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와 <룸 넥스트 도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꼽는다. 이 작품들은 나 또한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퍼펙트 데이즈>는 좀 더 남다른데, 아마 ‘승기’ 할아버지도 이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에게 깊이 공명하면서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자기만의 정확한 생활 루틴이 있고, 그 루틴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근해 묵묵히 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깨끗이 청소한 방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삶.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와 <뜻밖의 우정>의 ‘승기’,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잠자냥’의 삶은 그렇게 닮아있을 것이다.
“들판을 보고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가난하게 버스를 타고, 여관을 떠올리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는구나. 이렇게 사는 게 결국 내 인생이었던 거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거야. 다들 자기 삶을 자기대로 사는 것뿐 아니겠냐. 어떤 이는 나보고 청승맞다고 하지. 세상에 남길 거라곤 헌책과 DVD뿐인 내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 삶은 실패한 삶일까...... (p.59)
‘승기’ 할아버지에게는 몇 천 권의 책과 몇백 장의 DVD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자 전 재산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던 이 애서가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은 가난하게 살았노라 말한다. 똑같은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에 여관을 지을 생각을 했던 친구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부자 친구가 늙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죽을 맛이라고 한다. 반면 승기는 바쁘다. 영화도 보러 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하루하루가 알차다. “여전히 읽을 책이 많이 남았다는 게 사는 기쁨”(p.57)이라 말하는 승기 할아버지의 그 심정을, 삶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일흔쯤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직도 읽을 책이, 들을 음반이, 영화가 내 앞에 이렇게 쌓였는데 하루가 너무 짧구나. 인생이 너무 휙휙 지나가는구나 한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 역시 지금의 나이에도 전 재산이랄 것이 가득 쌓여있는 책과 음반뿐인데 앞으로라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어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회의감에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 성정상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박봉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직업을 은퇴할 때까지는 할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나날을 보내지 않을까. 집사2는 은퇴하면, 아니 지금이라도 너만의 출판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책을 세상에 내놓으라고 북돋는데 그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그냥 원 없이 읽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내 삶도 존중해준다. 한 15년 후면 고양이들도 우리 곁을 다 떠나서 돌볼 존재가 사라질 텐데 그때쯤엔 정말 나 자신을 더 돌보는 삶을 살게 되려나. 일흔에도 검도를 하는 할머니처럼, 여든에도 래퍼를 꿈꾸는 할머니처럼 그 나이쯤에도 테니스를 치고 좋아하는 밴드 공연장은 찾아가서 즐기고 싶다는 바람은 가져본다.
선생님은 내게 삶을 긍정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좋은 이야기는 결국 삶에서 희망을 보게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삶의 고비마다, 슬픔과 좌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울게 했던 좋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 믿을 수 있었다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은 결국 희미한 빛을 보여주리라. 내가 희망을 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는 내게 당부하듯 말했다. 너도 좋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라. 그런 다음 좋은 이야기를 쓰거라. (p.61)
<뜻밖의 우정>에는 이렇게 저마다 개별적인 생활을 꾸려가는 다양한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을 마주하며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기도 하고, 늙음이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로구나,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싶어서 오늘의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통화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지? 그들은 왜 그렇게 대중교통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기둥처럼 붙잡는 것일까? 그들은 왜 깔끔하지 못할까? 차가운 시선을 던지던 내게 아프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일들은 생명을 지니고 늙어가는 모든 존재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피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이 책에는 ‘북새’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 또한 할머니들에게 익힌 말이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시간을 북새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노년을 북새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간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그 북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뜻밖의 우정>은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 승기 할아버지의 조언처럼 좋은 이야기 속에 살고, 그리하여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