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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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는 걷는다. '아무것도 아닌 세계로' 그는 또 걷는다. '보잘것없고, 보잘것없는 그런 미미한 세계로' 그러나 그 걸음 걸음에서 시가 탄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태어난다. 로베르트 발저의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그렇기에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42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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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던 후보가 이제는 50대, 60대 이상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희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이자 한계일 것이다. 문국현, 이명박-안철수로 이어지는 기업가 출신 대통령 후보에 국민은 환호한다. 신선하다, 능력있다며 치켜세우기 바쁘다. 나 또한 그런 신기루를 찾던 적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이명박은 아니었다.

기업가는 기업가. 최대한 이윤을 남기는 일에 목적을 두고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만 숙고했어도 그런 신기루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나도 예전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읽고 그를 좋게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그 책은 몇 년 전에 팔아버렸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 안철수와 국민의당 행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했더니 친구가 자못 놀라서 '원래 안철수 좋아했잖아?' 한다. 어 그랬지. 그랬다. 하지만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짓이 가관인 인간을 계속 좋아해야 한단 말인가? 그거야말로 눈먼 사랑이고 일부 '노사모' '박사모' 등등 '~사모'들의 가장 큰 폐단이 아닐지.

몇 년 사이 내가 변한 것일까, 그가 변한 것일까. 아니, 나도 그도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잘못 봤거나, 오해했거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겠지. 2017년 대선에서 나는 그의 여러 민낯을 본다.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해 성주 군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그는 가볍게 묵살하고 자리를 뜬다. 내 의견에 어긋나면 무시해도 된다는 그 태도도 태도지만, 무시도 모자라 살짝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정말 극혐이다.


문득,사람은 '그가 하는 짓'을 보고 따져야 한다던 강유원 선생의 어느 책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정치인을 볼 때 맹목적으로 좋아하지 말고, 그가 하는 짓을 보고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질 텐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마치 아이돌을 사랑하듯이, 정치인을 향한 눈먼 사랑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니..... 올해 대선도 왠지 암담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암담하구나.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기준이 대체로 이렇다. 사람 자체보다 그가 하는 짓을 따진다. 그가 나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이용할 것인지 등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난 소위 ‘인간적 관계’로 얽힌 사람이 별로 없다. 담담하게 사람을 만날 뿐이다. 정이 별로 없다.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으며 각별히 아끼는 사람도 없다. 하는 짓이 미워서 멀리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한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고 하니 난 그런 종류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사람 자체에 집착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뽑을 때도 ‘인물’보고 찍는다. 인물을 보고 찍는다는 건 그가 했던 짓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채 자기 맘에 들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러다보니 한번 그 사람과 엮이면 쉽사리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하는 짓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사람 보고 쫓아다닌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도리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거 같은데, 그런 건 도저히 못하겠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하는 짓 봐서 자를 건 잘라야 한다.

(강유원,<몸으로 하는 공부>, 160~161쪽, 여름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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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4-15 15:44   좋아요 1 | URL
으아......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무릎팍 도사 보고 나서 아마 저도 혹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컴퓨터에 깔려있는 V3 백신만 봐도 부들부들 다른 백신으로 갈아타야겠습니다. -_- 게다가 요즘 궁물당으로 모이는 사람들 보니 정말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습니다.

cyrus 2017-04-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뉴스에서 본건데, 친구끼리 술 마시다가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먹질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 한 명은 중태..

잠자냥 2017-04-17 09:31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고요. 에고... 다 부질없는 일이지요. 의미없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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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신문을 끊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세월 동안 사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도 뉴스를 잘 보지 않았다. 그들 얼굴만 보면 뭔가 치밀어올라서.... 그러다가 작년부터 시절이 하 수상하여 뉴스를 이것저것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하- 거참. 뉴스라고 하기 뭐한 일종의 찌라시 같은 기사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카더라 하는 식의 확인되지도 않은 기사는 또 어찌나 많은지. 아님 말고 하는 식도 많다. 대선을 앞두고도 이런 기사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연예인 관련 기사는 말할 것도 없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신문 기사, 방송 보도 등 저널리즘과 기자라는 이들, 저널리스트들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은 지는 꽤 되었다. 예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여배우의 자살 사건 이후 뭔가에 꽂힌 듯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이 요즘 문득 눈에 다시 들어온 까닭은, 바로 그 황색 저널리즘의 행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읽는 내내 그때 그 배우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자살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라 하더라’ ‘~라더라’ 등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 루머가 그녀를 괴롭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황색 언론은 여전히 ‘~ 더라’를 찾아 헤맸다. 더 자극적인 먹이를 찾아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하이에나들처럼. 그 배우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연예인처럼 대중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언론이 만만하게 여기는 대상은 쉽사리 희생양이 되곤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27살의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저 ‘평범하다’고 말하기 좀 어려운 점이 있다면 눈에 뜨일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 정도? 어쩌면 27살에 이혼 경력이 있다는 것도 블룸이 살던 시대에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가 일간지 ‘기자’를 살인하고 제 발로 경찰에 찾아와 자신이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자백한다.

성실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의 사랑을 받던 27살의 가정부 카타리나 블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일간지 기자를 총으로 쏴 죽이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블룸은 댄스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난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상형에 가깝던 그 남자는 알고 보니 은행 강도와 살인 혐의까지 있는 인물로 언론과 경찰에 쫓기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블룸의 집에서 안전하게 도주한 그 남자 때문에 그녀는 순간 세간의 호기심이 된다.

황색 언론은 이 미모의 27살 이혼녀를 두고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주변 인물 인터뷰에서 얻은 기삿거리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고, 편집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의 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사들’의 방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었고, 그녀를 도와주던 지인들마저 ‘과격한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다. 기자들이 그녀의 삶, 그녀의 인생을 조작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의 ‘소설’로 각색하는 장면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황색 언론에서 얻은 정보로 그녀를 ‘살인자의 정부’ ‘음탕한 공산주의자’ 등으로 단죄하기 시작한 시민들은 블룸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치욕적인 성적 발언 등을 가득 담은 익명의 우편물을 보내기 시작한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그녀의 말보다 황색 언론을 믿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에서는 인터넷 뒤에 숨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속한 말들을 쏟아내는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인터넷 찌질이들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블룸은 결국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를 총으로 쏴 버린다. 물론 그 기자는 평소 블룸에 대해 악랄한 기사를 쓰던 기자였다. 그를 총으로 쏴 죽여도 평범하게 행복했던 그녀의 인생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그녀가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소설 속 주인공 블룸이 아닌 그 여배우는 타인에게 총구를 겨누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책의 부제는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저속한 호기심,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 내는 저널리스트와 황색 언론….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카타리나 블룸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하인리히 뵐의 짧지만, 강렬하고 묵직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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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책 좀 읽는다는 소문이 나면 아주 가끔 그런 질문을 받곤 한다. "좋은 책 좀 있으면 소개해줘~" 사실 나는 이 질문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취향과 내 취향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런 질문을 받으면 웃어넘기는 편이다. 그래도 가끔 나처럼 소설이나 희곡 작품을 즐겨 읽는 사람(바로 내동생 -_-;) 같은 이가 뭐 재미난 책 없어?  물어보면 그래도 조심스럽게 추천할 수는 있다. 이 리스트는 그때 동생에게 알려준 순전히 개인적 취향의 리스트.



테네시 윌리엄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 유리 동물원>


맨 처음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나중에 결국은 책을 샀다. 살면서 두고두고 몇 번은 더 읽지 않을까 싶다. 테네시 윌리엄스 작품은 영어 공부한다 생각하고 원서로 다 사두고 읽어보고 싶은데 문제는 원서를 사두면 늘 초반 몇 장만 읽다가 만다는 거. -_-; <유리 동물원>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처럼 황폐한 가족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좀 더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또한 그렇고.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작가가 마구 좋아질 정도로 좋았던 작품. 쓸쓸하지만 왠지 아름다운 느낌이 오래 남는다.



유진 오닐 <느릅 나무 아래 욕망>


희곡하면 또 유진 오닐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데, 그냥 묻히기에는 아깝다. 줄거리는 굉장히 흔할 수 있는데, 작품을 이루고 있는 분위기가 상당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그의 <밤으로의 긴 여로>와 비슷하지만 욕망으로 끈적끈적한 분위기와 조금은 더 충격적인 내용으로 한층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비극적이면서도 슬프고 강렬하면서도 아름답다.



제임스 설터 <어젯밤>


이 책은 벌써 몇 년 전에 읽고 리뷰를 엄청나게 흥분해서 썼던 기억이 난다. 그해 발견한 작가 중 하나로 꼽고 난리도 아니었다. 설터의 책도 원서로 구해서 읽어보고 싶었다(‘이 작품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내겐 최고의 작품이라는 증거).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구구절절한 문장도 싫고, 작가가 크게 개입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도 싫다.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읽는 사람이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작품,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예리한 작품을 쓰고 싶다. 단편 하나하나가 매혹적이고 강렬하다. 이 작품으로 나는 설터 작품이 출간되면 모두 사서 보는 지경이 되었다.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카포티 작품인데도 무서울까봐; 읽기를 미뤘던 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읽으면서 좀 오싹오싹해지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인간이 잔혹해지려면 이렇게 잔혹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인간의 본성이 원래 악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계속 생각해보지만 쉽게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실제 살인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하고 그걸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소설화한 카포티의 재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흥미진진하게 읽다 보면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갖가지 질문이 남는 묵직한 작품.



세르게이 도블라또프 <여행가방>


‘세르게이 도블라또프’- 그의 작품을 여럿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까지 국내 번역된 작품은 이 단 한 권 뿐인 듯하여 무척 아쉽다. 러시아 소설하면 왠지 무겁고 심오하고 이념적일 거라 여겨져 선뜻 읽기가 꺼려지는데 도블라또프의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단편이라 읽기 부담 없고 유쾌하다. 그러면서 감동적이다. 체호프보다 더 힘을 뺀 스타일의 단편이랄까. 낄낄낄 웃다보면 왠지 코끝이 찡하고 슬퍼진다.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이 인간에게, 인간의 삶에 남긴 상처를 톡톡 건드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밀란 쿤데라 <농담>


세르게이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이 체제나 이념이 인간의 삶에 남긴 상처를 가볍게(유머러스하게) 톡톡 건드리고 있다면 쿤데라의 <농담>은 묵직하게 정면으로 그 문제를 건드린다. 아주 가벼운 ‘농담’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경직된 사회, 이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이 어긋나버리는지 이 작품은 보여준다. 등장 인물간의 사랑이야기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어 묵직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쿤데라 작품 중에선 가장 좋았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아가씨와 철학자>


이 책 역시 굉장히 좋았다. 피츠제럴드 작품 역시 원서로 읽고 싶은 욕망이 든다(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 많아지는 건 좋기도 하지만 꼭 좋지만은 않아 ㅋㅋ). 이 책의 서문에서는 여기 담긴 단편은 대부분 피츠제럴드 초기작으로 좀 질이 떨어진다고 했던데 이게 질이 떨어진다니!! 나는 여기 실린 단편 하나하나가 다 좋았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모든 인생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다 뒤로 한 번 물러나는 일이 바로 이 한 문장,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 생겨나죠.”처럼 낭만적인 문장들이 넘쳐난다!



미시마 유키오 <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작품 중 <금각사>랑 갈등 하던 끝에 <사랑의 갈증>을 최종 선택. <금각사>도 좋았지만 왠지 이 작품이 더 끌린다. 일단 미시마 유키오가 여자가 아님에도 ‘여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크게 주고 싶다. 어찌 보면 삼류 로맨스 드라마 같은 내용인데도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좌절됐을 때의 인간 심리, 행동 등이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서걱서걱 모래밭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계속 잊히지 않는다.


존 치버 <팔코너>


존 치버의 <팔코너>는 읽었을 때 이건 베스트 감이야! 하고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예전에 읽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감옥에 갇힌 마약 환자의 이야기로 사람들이 흔히 보고 싶어하지 않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꽤 공감이 간다.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연민도 알게 모르게 생기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나보코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수다쟁이다. 그것도 나르시시즘 쩌는 수다쟁이. <롤리타>의 험버트가 그랬고, <절망>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그런데 왠지 그 수다가 밉지 않다. 자기와 너무나도 닮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이 생각나면서 어떤 면에서는 그 작품보다 훨씬 매혹적으로 기억된다. 나보코프의 작품은 다른 작가가 썼으면 굉장히 흔했을 소재인데도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게 작가의 개성이고 곧 역량이겠지.


줄리언 반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줄리언 반스 작품은 언제나 굉장히 흥미롭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히 더 그랬다. 낄낄낄 웃음이 나는 부분도 많았고, 심각하게 그래서 인류의 역사란 대체 뭘까? 하고 생각하게도 한다. 줄리언 반스는 해박하고, 재치 있으면서 위트있고 그러면서도 잘 쓴다. 역사란 어차피 전하는 자의 취사선택에 따른 픽션이 아닌가?! 누가 보기에 따라 그 역사는 진실일 수도 있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해봤다.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작품을 내가 이토록 아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내가 어떤 단편을 쓴다면 이런 작품을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더라. 게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으로 또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고. 작품 속에서 작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텍스트는 한없이 열려 있고, 그러니까 독자는 한없이 즐거워진다. 꼭 다시 읽어 볼 작품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의 또 다른 작품인 <이별 여행 / 당연한 의심>과 <초조한 마음>을 두고 막판까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최후의 손을 들어 줌. ㅋㅋㅋ 재미면에서는 최고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작품. 이 책은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연민>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는데, 나는 그 책으로 읽었다. 그즈음 읽었던 포스터의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과 함께 ‘아아~ 책 읽기란 정말로 재미있어! 즐거워!’라는 감정을 흠뻑 느끼게 했다. 사람의 심리를 정말 꿰뚫어 보고 있는 이 작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던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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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4-12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터의 <어젯밤>은 정말 소설집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츠바이크의 소설은 읽기는 시작했는데 초반에 깔짝거리다가
더 진도를 못내고 있네요.
줄리언 반스의 책도 그렇고요.

카포티의 책도 도전해 보고 싶네요.

설렉션 잘 보고 갑니다.

잠자냥 2017-04-12 16:14   좋아요 0 | URL
네, 설터의 <어젯밤>은 그의 작품 가운데 저도 최고로 꼽습니다. 츠바이크의 저 작품이나, 줄리언 반스 작품은 초반을 잘 넘기시면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ㅎㅎ 꼭 다시 읽어보세요! 카포티의 책도 그러하고요.

즐거운 봄날 오후 보내시길 바랄게요~

자목련 2017-04-1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은 두 권뿐이네요. 저 역시 제임스 설터가 있어 좋고, 소장만 하고 있는 책도 보여 반갑네요. 궁금한 책도 있구요, ㅎ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추천해요.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도 좋고 장편도 다 좋아요.

잠자냥 2017-04-13 09:41   좋아요 0 | URL
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좀 늦게 만난 편인데 <그저 좋은 사람> 읽고 홀딱 반해서 장편도 읽어보려고 몇 권 사두었습니다. ^_^

cyrus 2017-04-1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대방한테 책 추천 안 해요. 상대방의 독서 취향을 맞춰가면서 책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요. 게다가 책을 소개해봤자 상대방이 그 책을 한 번이라도 읽을지 알 수도 없어요.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계속 읽어보면 아스트랄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ㅎㅎㅎ

잠자냥 2017-04-14 09:18   좋아요 0 | URL
네 조목조목 맞는 말씀입니다. 책 추천처럼 어려운 것도 없어요. ㅎㅎ 정말 상대방이 그래서 읽었을지도 의문이고요. ㅎㅎ
<율리시스>는 언젠가.... 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17-04-13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 콜드 블러드와 어젯밤 꼭 읽어 보고 싶네요. 책 추천 잘 봤습니다.:D

잠자냥 2017-04-14 09:18   좋아요 0 | URL
네~ 두 작품 모두 훌륭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
 
고문진보 전집 - 제2판 을유세계사상고전
황견 엮음, 이장우.우재호.장세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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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려울 것 같지만, 한글전용세대인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무리가 없다. 중국고전 중 명문장만 모은 그야말로 보물같은 책. 읽다 보면 고즈넉한 숲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아름답다. 머리맡에 두고 목침처럼 쓰다가 틈틈이 읽어도 좋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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