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던 후보가 이제는 50대, 60대 이상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희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이자 한계일 것이다. 문국현, 이명박-안철수로 이어지는 기업가 출신 대통령 후보에 국민은 환호한다. 신선하다, 능력있다며 치켜세우기 바쁘다. 나 또한 그런 신기루를 찾던 적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이명박은 아니었다.

기업가는 기업가. 최대한 이윤을 남기는 일에 목적을 두고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만 숙고했어도 그런 신기루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나도 예전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읽고 그를 좋게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그 책은 몇 년 전에 팔아버렸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 안철수와 국민의당 행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했더니 친구가 자못 놀라서 '원래 안철수 좋아했잖아?' 한다. 어 그랬지. 그랬다. 하지만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짓이 가관인 인간을 계속 좋아해야 한단 말인가? 그거야말로 눈먼 사랑이고 일부 '노사모' '박사모' 등등 '~사모'들의 가장 큰 폐단이 아닐지.

몇 년 사이 내가 변한 것일까, 그가 변한 것일까. 아니, 나도 그도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잘못 봤거나, 오해했거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겠지. 2017년 대선에서 나는 그의 여러 민낯을 본다.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해 성주 군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그는 가볍게 묵살하고 자리를 뜬다. 내 의견에 어긋나면 무시해도 된다는 그 태도도 태도지만, 무시도 모자라 살짝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정말 극혐이다.


문득,사람은 '그가 하는 짓'을 보고 따져야 한다던 강유원 선생의 어느 책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정치인을 볼 때 맹목적으로 좋아하지 말고, 그가 하는 짓을 보고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질 텐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마치 아이돌을 사랑하듯이, 정치인을 향한 눈먼 사랑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니..... 올해 대선도 왠지 암담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암담하구나.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기준이 대체로 이렇다. 사람 자체보다 그가 하는 짓을 따진다. 그가 나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이용할 것인지 등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난 소위 ‘인간적 관계’로 얽힌 사람이 별로 없다. 담담하게 사람을 만날 뿐이다. 정이 별로 없다.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으며 각별히 아끼는 사람도 없다. 하는 짓이 미워서 멀리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한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고 하니 난 그런 종류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사람 자체에 집착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뽑을 때도 ‘인물’보고 찍는다. 인물을 보고 찍는다는 건 그가 했던 짓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채 자기 맘에 들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러다보니 한번 그 사람과 엮이면 쉽사리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하는 짓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사람 보고 쫓아다닌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도리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거 같은데, 그런 건 도저히 못하겠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하는 짓 봐서 자를 건 잘라야 한다.

(강유원,<몸으로 하는 공부>, 160~161쪽, 여름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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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4-15 15:44   좋아요 1 | URL
으아......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무릎팍 도사 보고 나서 아마 저도 혹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컴퓨터에 깔려있는 V3 백신만 봐도 부들부들 다른 백신으로 갈아타야겠습니다. -_- 게다가 요즘 궁물당으로 모이는 사람들 보니 정말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습니다.

cyrus 2017-04-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뉴스에서 본건데, 친구끼리 술 마시다가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먹질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 한 명은 중태..

잠자냥 2017-04-17 09:31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고요. 에고... 다 부질없는 일이지요. 의미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