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문장이 매끄러웠더라면, 조금 더 감동이 클 텐데. 이런 아쉬움이 무척 많이 남는다.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이 작품이 '어머니'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올려보게 된다.
로맹 가리는 같은 작가에게는 절대로 두 번 상을 주지 않는다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각기 다른 필명으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로 유명하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폴란드에서 난민과 같은 생활을 하고, 프랑스에 이민, 공군 장교가 되고 프랑스
외교관이 되고, 문학적으로도 성공을 이루고, 영화감독도 되고 당대 유명 여배우 진 셰버그와 결혼, 이혼을 하는 등 꽤 화려한
생활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새벽의 약속>을 읽으면 이 모든 로맹 가리의 삶이 그의 어머니가 일구어낸 '성공'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고 최고의 작가가 되기까지- 언제나 그에겐 어머니의 철저한 자기희생과 사랑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도 늘 아들에게는 비프스테이크를 먹이던 어머니- '엄마는 왜 먹지 않느냐'며 물었더니 당신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로맹 가리는 부엌에서 어머니가 자신이 먹다 남긴 비프스테이크 접시 기름에 빵을
꼭꼭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다 이런 것일까.
찢어질 듯한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아들만큼은 최고의 멋진 남자, 성공하는 남자, 최고의 예술가로 자라주길 바랐던 어머니의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시도와 노력을 하는 로맹 가리의 눈물겨운 삶의 투쟁이 이 책 속에는 자세하게
기록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것도 어머니 때문이며, 절망 앞에서 쓰러질 때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로맹 가리는 그렇게 버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날 때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코끝이 찡해 온다.
로맹 가리의 자서전과 같은 이 책은 작가가 마흔네 살에 쓰인 것으로 그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의 삶(진 셰버그와의 결혼, 영화감독으로서의 삶 등등)과 무엇보다 '자살'을 하게 된 동기나 이유 등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로맹 가리가 그 특유의 재치와 위트,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 등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이 큰 역할을 했음을 추측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만약 그의 어머니가 로맹
가리보다 늦게 죽었다면 그는 절대로 자살하지 않았으리라.
로맹 가리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헌신,
아니 어머니의 로맹 가리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또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었는데, 제목부터가
<내 삶의 의미>이다. <새벽의 약속>과 함께 <내 삶의 의미>를 읽으면 로맹 가리, 이 위대한 작가이자,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한 사람을 만든 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음을 조금 더 또렷하게 알게 된다. 어머니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사랑,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 위대한 작가,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가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사랑으로 빚어진 그이기에 평생 사랑, 배려, 연민, 존중, 이해와 같은 여성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고, 그렇기에 명성이나 권력보다도 자신의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존중받기를 원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