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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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읽어봤어?” 단편을 좋아하는 나에게 언젠가 J가 어떤 책을 건넸다. 러시아 단편 소설을 묶은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라는 책이었다. 제목부터 아름다웠다. 책을 훑어보니 몇몇 작품은 이미 읽어본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J는 콕 집어서 ‘추운 가을’이라는 작품을 읽어 보았느냐고 한 번 더 물었다. 이반 부닌.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아니’라고 말하니, ‘꼭 읽어봐’ 한다.

그때는 바로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그 작품이 문득 떠올라 책장을 넘겼다. 그 단편을 다 읽었을 무렵, 가슴에서 무언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연인의 이야기로 매우 짧은 단편이었지만 완벽했다. 체호프를 좋아하던 내게 이반 부닌이라는 이름은 그 작품 하나로 각인되었다. 체호프보다 서정적이잖아? 그랬다. 체호프와 비슷하면서도 체호프에게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낭만과 아름다움이 부닌의 작품에는 있었다. 그 뒤 기회가 닿는 대로 이반 부닌의 작품을 모았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출간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은 그런 목마름을 채워주고도 남는 작품이다. 물론 이반 부닌은 단편만으로도 문학이 줄 수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니 어쩌면 단편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또한 그러할까? 반신반의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몇 쪽 읽지도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에서는 ‘아름답다’는 단어가 몇 번이나 맴돌았다. 부닌의 문장은 시(詩)와 같다. 그의 문장에는 어릴 시절의 향수가 담겼고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그윽한 추억이 담겨있다. 볕에 잘 말린 포근한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던 다락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비오는 날 촉촉이 젖은 나뭇가지들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아름다운 문장들로 부닌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려간다. 그의 이름은 아르세니예프-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나고 자라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문학청년’이다. 그의 일생이 어린 시절부터 유년 시절, 십대를 거쳐 청년에 이르기까지 조용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특별하게 큰 사건이나 어떤 극적 전개가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러시아 몰락한 귀족 집안의, 문학을 꿈꾸는 한 청년의 삶이 왜 이토록 멀리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아르세니예프 그의 삶이, 그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모두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저러한 보편적인 느낌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가족의 사랑이 평범하게(그리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존재하는 집안에서 자연을 벗삼아 자유롭게 자라나고, 조금은 괴롭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학교생활을 어쩔 수 없이 시작하고, 서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지 깨달아 그것에 몸담게 되는 삶. 물론 그런 가운데 가족이나 주위의 비난이 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용한 지지가 따라오기도 한다.

물에 젖은 잡초를 헤치며 채소밭으로 달려가 무를 뽑아서 짙푸른 진흙이 묻어 있는 무 꼬랑지를 탐욕스럽게 깨물던 순간, 그런 순간은 내 인생에서 드물었다..... (27쪽)

“넌 나이가 들면 어딘가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겠지. 또 조금씩 저축해서 집을 살 거야.” 갑자기 나는 미래의 온갖 공포와 비속함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고 울음을 터뜨렸다..... (63쪽)

그렇게 그는 자라고 성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의 비밀- ‘나는 나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235쪽)’을 깨달아 간다.

그 또한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열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순간적인 정열에 매혹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리카.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의 제5권 제목을 ‘리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을 만큼 ‘리카’는 이 작품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아르세니예프는, 리카를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뼈아픈 진실을 더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한다! (21쪽)’는 그러한 진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을 읽노라면 인생의 아름다운 한때, 찬란했던 한때가 언젠가는 사라지고, 그 순간이 소멸해서 기억 속으로 차츰 퇴색해 갈 것을 모두가 알기에, 그 찬란한 한때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도 어쩐지 슬픔이 밀려온다. '진흙 묻은 무 꼬랑지를 탐욕스럽게 먹던 시절'은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시없을 아름다운 한때임을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떨리는 첫 만남도, 또 오해로 인한 고통스러운 다툼도 그 순간은 그저 삶을 이루는 한 부분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그렇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한때임을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안다. 그래서 왠지 부닌이 그려내는 이 사소한,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청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내 인생도, 내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사는 삶이지만, 그렇기에 그 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고. ‘세상과 인생에 대한 사랑,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달콤한 사랑이 안겨준 지극한 부드러움과 고통을 느끼면서(176쪽)’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우리 삶에 ‘리카’로 부를 수 있는 그 모든 순간은 오직 그때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이반 부닌 그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아르세니예프’ 한 문학청년의 삶을 그리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스토너의 삶은 줄곧 황량한 고독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문학 속으로 침잠했다고 한다면 아르세니예프의 삶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평범한 순간들을 살며 문학을, 글을 쓰는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은 평범했지만 촘촘히 아름다운 한때로 이어져 있다. 또한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슬프도록 아름답다. 아마도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이반 부닌의 서정성 짙은 문체가 큰 몫을 했으리라. 부닌은 그의 작품이 주는 울림과 깊은 감동에 비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조금 알려졌다.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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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17-11-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회사가 갑자기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알라딘 블로그도 버려두고 이러고 있네요. 처음 시작할 때는 밀리지 말고 쓰리라 결심했는데... ㅜㅜ
잠자냥님이 이 책에 대해 쓰신 걸 보고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드디어 어제 다 읽었어요. 정말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소설이었어요. 좋은 소설 소개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7-11-30 13:06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글이 안 보여서 바쁘신가 했어요. ㅎㅎ 이 책 정말 아름답죠!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었어요. 쌀쌀한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요...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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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책. 아무리 아름다운 책이라도 언젠가는 마지막 장을 덮어야 함을 알듯이,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도 늘 끝이 있음을. 그러기에 삶이란 어딘가 슬픈 빛을 띄고 있음을 이 책은 전한다. 부닌이 써내려간 아주 길고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한편의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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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16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한한 인생이고 끝이 있기에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핀 꽃은 작년에 핀 꽃도 아니고 내년에 필 꽃은 올해 핀 꽃이 아니기에 순간순간의 기억이 소중한 것이겠죠. 그 기억들이 모여져 음악이 된다면, 그림이 된다면, 글이 된다면 나라는 개체의 끝이 오더라도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이기에 그런 기억을 많이 남기시는 잠자냥님이 부러워요. ^^

잠자냥 2023-03-16 17:26   좋아요 1 | URL
댁 님도 ㅋㅋㅋ 쭉쭉 쓰세요!

DYDADDY 2023-03-16 17:58   좋아요 1 | URL
아직 자기혐오와 허무주의의 중력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chatGPT처럼 공허하거나 관념적인 글을 쓰게 되더군요. 그래도 여기서 다른 분들이 쓰시는 글을 읽으며 추진력을 얻어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요. 항상 주체적이고 몸으로 쓰는 글을 올려주셔서 고마워요. ^^
 
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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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늙음과 젊음,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 또는 영원히 욕망한다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한편의 기품 있는 우화. 짧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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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 - 메타젠더로 본 세상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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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다름을 사유할 수 있기를, 약자의 시선으로 이 세상 모든 관념을 뒤집어 볼 수 있기를 깨우치게 해주는 그녀의 글들.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각인해본다. "모든 인식의 시작은 '다름'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며, 앎은 그 과정 자체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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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문장이 매끄러웠더라면, 조금 더 감동이 클 텐데. 이런 아쉬움이 무척 많이 남는다.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이 작품이 '어머니'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올려보게 된다.


로맹 가리는 같은 작가에게는 절대로 두 번 상을 주지 않는다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각기 다른 필명으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로 유명하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폴란드에서 난민과 같은 생활을 하고, 프랑스에 이민, 공군 장교가 되고 프랑스 외교관이 되고, 문학적으로도 성공을 이루고, 영화감독도 되고 당대 유명 여배우 진 셰버그와 결혼, 이혼을 하는 등 꽤 화려한 생활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새벽의 약속>을 읽으면 이 모든 로맹 가리의 삶이 그의 어머니가 일구어낸 '성공'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고 최고의 작가가 되기까지- 언제나 그에겐 어머니의 철저한 자기희생과 사랑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도 늘 아들에게는 비프스테이크를 먹이던 어머니- '엄마는 왜 먹지 않느냐'며 물었더니 당신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로맹 가리는 부엌에서 어머니가 자신이 먹다 남긴 비프스테이크 접시 기름에 빵을 꼭꼭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다 이런 것일까.


찢어질 듯한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아들만큼은 최고의 멋진 남자, 성공하는 남자, 최고의 예술가로 자라주길 바랐던 어머니의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시도와 노력을 하는 로맹 가리의 눈물겨운 삶의 투쟁이 이 책 속에는 자세하게 기록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것도 어머니 때문이며, 절망 앞에서 쓰러질 때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로맹 가리는 그렇게 버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날 때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코끝이 찡해 온다.


로맹 가리의 자서전과 같은 이 책은 작가가 마흔네 살에 쓰인 것으로 그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의 삶(진 셰버그와의 결혼, 영화감독으로서의 삶 등등)과 무엇보다 '자살'을 하게 된 동기나 이유 등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로맹 가리가 그 특유의 재치와 위트,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 등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이 큰 역할을 했음을 추측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만약 그의 어머니가 로맹 가리보다 늦게 죽었다면 그는 절대로 자살하지 않았으리라.


로맹 가리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헌신, 아니 어머니의 로맹 가리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또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었는데, 제목부터가 <내 삶의 의미>이다. <새벽의 약속>과 함께 <내 삶의 의미>를 읽으면 로맹 가리, 이 위대한 작가이자,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한 사람을 만든 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음을 조금 더 또렷하게 알게 된다. 어머니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사랑,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 위대한 작가,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가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사랑으로 빚어진 그이기에 평생 사랑, 배려, 연민, 존중, 이해와 같은 여성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고, 그렇기에 명성이나 권력보다도 자신의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존중받기를 원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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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두 번인가 읽다가 결국 다 못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지 싶습니다.

그래도 로맹 가리 마더의 골루아주 담배,
스테이크 스토리 등등은 오래 기억에 남네요.

잠자냥 2017-07-13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읽을 때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서 좀 고생했습니다. ㅎㅎ 그래도 다 읽으니 감동은 남더라고요. ㅎㅎ

이수 2017-09-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님께서 쓰신 글제목이 궁금해 들어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님의 글 중에 ˝언제나 그에겐 어머니의 철저한 자기희생과 사랑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도 늘 아들에게는 비프스테이크를 먹이던 어머니- ‘엄마는 왜 먹지 않느냐‘며 물었더니 당신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로맹 가리는 부엌에서 어머니가 자신이 먹다 남긴 비프스테이크 접시 기름에 빵을 꼭꼭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다 이런 것일까.˝
저는 왜 이 구절이 불편하게 느껴졌을까요? 아마도 제가 이런 엄마가 못되기 때문인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여자들)는 알게모르게 자식을 위한 자기 희생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았던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란 그래야 한다. 라는 생각들 말이죠.
자신의 어머니의 희생으로 자란 사람. 멋지고,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그런 아들을 그의 어머니가 원했다면 그 어머니도 뜻한 바를 이루었으니 성공한 삶을 사신거겠죠.
그런데 저 모습이 좋아보이시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저의 어머니라면, 저렇게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스테이크를 먹어야지요. 어머니가 굶고 있는데 아들은 맛있게 먹겠습니까. 물론 그걸 알기에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겠지만, 저는 저의 어머니가 고기를 좋아하시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성공하기를 원하셨다면, 아들은 어머니도 맛있는 고기를 드시길 바랬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물론, 어머니들은 자식 입에 맛있는 것이 들어갈 때 가장 기쁩니다. 그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지요. 어머니의 사랑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로맹 가리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책도 읽어보지 않아서 아마도 어떤 오해에서 불거진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난한고 남루한 생활에서 스테이크를 먹인다는 것도 좀 불편했고(뭔가 형편에 맞지 않는 경험이 그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어머니의 희생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다 잘자라는건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면 너무 오버일까요.
글 쓰신 분은 좋은 의도로 분명 쓰셨을텐데, 제가 좀 딴지를 걸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그냥 혹시 잠자냥님이
남자라면 주변 여자분들에게 그런걸 무의식적으로 강요 또는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잠자냥님이 여자라면 그런 생각들로 인해 어떤 의무감을 느끼게 되진 아닐까 라는 괜한 기우로 이런 글을 남겨봅니다.

잠자냥 2017-09-14 16:32   좋아요 1 | URL
일단은 문제적으로 느껴지셨다는 저 구절은 <새벽의 약속>에 나온 구절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고요.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 출신 가난한 유대인으로 엄마가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한 사람입니다. 로맹 가리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프랑스에서(프랑스로 이주한 것 자체도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서였지요)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가 어릴 때부터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전통적인(전통적이라는 표현조차도 거슬리실지 모르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어머니 상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전통적인 어머니들은 그랬죠. 그런데 그게 옳다/그르다의 판단은 저는 이 글을 쓸 때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로맹 가리가 어떻게 느꼈는지 어머니와 그의 관계에 중심해서 봤을 뿐입니다. 지금도 저는 그게 옳다/그르다 가치 판단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당연히 어머니는 그런 존재로,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어머니들도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어머니의 행동자체를 제 가치관으로 옳다/그르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다 이런 것일까‘라는 문장이 거슬리셨다면 그래야 한다는 제 생각이 실린 게 아니라 보통 그래왔던 어머니들에 대한 언급임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 어머니조차도 맛있는 게 있으면 자식 먼저 먹이시는 분이거든요(물론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맛있는 게 많아서 같이 먹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스테이크 사건은 로맹 가리가 엄마의 희생이나 사랑을 깨닫게 된 회한에 가까운 감정으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스테이크를 2인분 사서 먹을 수 있는 형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그럴 형편이었다면 로맹 가리 어머니도 당연히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맹 가리 어린 시절 형편은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게 저 일화가 좋아보이느냐고 물으신다면 저 일화 자체에서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맹 가리가 그런 일화를 통해서 어머니의 사랑과 더불어 여성의 위대함을 깨닫는 과정이 자연스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모든 어머니들이 희생해야 마땅하다‘로 읽혔다면 잘못 읽으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로맹 가리 또한 그런 의도로 저 글을 쓰지는 않았을 테고요. 더욱이 이수 님의 염려(?)와는 달리 로맹 가리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으니 어머니의 희생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지는 않은 것 같군요.

끝으로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마지막에 제 성별에 대한 추측으로 남기신 글은 굉장한 ‘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도 제 엄마가 부엌에서 남은 찬밥을 먹는 엄마는 아니길 바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