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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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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 자연스레 딱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나쓰메 소세키는 사람을 싫어했던 게 틀림없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우울한 작품만 골라 읽었던 터라 이번에는 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만나보자 싶었다. <도련님>을 읽노라니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고독하거나 이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를 우울하지 않은 어조로 풀어놓아 살짝 다르게 느껴지지만 <도련님> 또한 ‘인간이란 경멸스러운 존재’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다. 경멸감이 아니더라도 뭐랄까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란 순수함을 간직하고 정직하게,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애를 쓰는 존재라기보다는 그 순수함을 쉽게 잃어버리고 오히려 그런 점을 간직한 사람을 보면 파괴하지 못해 안달 난 존재라고 보는 듯하다.

인간이 이럴진대 사람이 모인 사회라는 공간은 더 말해 무엇 할까. 시골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한 ‘나’가 겪는 짧은 기간의 이야기를 담은 <도련님>에서는 그런 오합지졸 인간 군상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시골이라는 한적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고 겉으로는 품위와 순수 고결함을 지향하지만 그 속내는 썩을 대로 썩었다. 그런 이들이 오히려 도쿄에서 온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라고 비아냥대며 그들 사회에 걸맞은 인물로 만들고자 애를 쓴다.

고집불통에 단순하고 강직한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싫고 못마땅할 뿐이다. 어느 날은 좋은 사람인 듯한데 뒤돌아서 보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 같고 뒤죽박죽이다. 그렇게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자니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주던 하녀 ‘기요’만 생각날 뿐이다. 기요는 겉과 속이 다르지도 않고 늘 한결같다. 집에서도 싫어하던 자기를 변함없이 아껴주었다.

세상이 다 ‘기요’와 ‘도련님’같은 사람들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언제나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다. ‘도련님’이 시골 학교에서 유일하게 호감을 품었던 인물인 ‘끝물 호박’은 결국 그런 이들의 농간에 사랑하는 여자도 빼앗기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인물은 역시 ‘도련님’이나 ‘기요’, ‘끝물 호박’ 같은 사람인데 그들의 결말은 영 순탄하지 않으니 입맛이 쓰다. 역시, 현실이나 소설이나 마찬가지구나 싶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읽으며 웃었던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은 읽으면서 몇 번 웃음이 팍 터졌다. 도련님이 사람을 비꼬는 방식도 재미있고 강직하지만 어딘가 삐뚤어진 듯한 태도에서 나오는 거친 독설도 시원했다. 게다가 남보고 뭐라고 비꼬는 도련님, 그도 어딘지 엉성해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그렇게 묘사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살짝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과 같은 장면도 많아 ‘하이고 이놈아, 너부터 잘해!’ 하는 말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했고.

시골 학교의 중학생이라면 마냥 순진하고 순박할 것이라는 관념을 깨는 묘사도 좋았다. 인간을 만들어 준다는 ‘학교’가 결국 사람을 망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도 그렇고. 사실 그렇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이들이 교사랍시고 남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도대체 뭘 배울 게 있을까 싶다. 돌아보면 오히려 학교에서 인간의 안 좋은 버릇은 더 배운 것 같다.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그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기 시작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에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몰염치함이나 뻔뻔함 등에 관심을 두다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인간 내면의 질투, 시기, 사랑 등 근원적 욕망에서 비롯된 윤리적 문제에 집착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뭔가 우울한 기운이 가득한 그의 작품이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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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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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페크는이 작품을 1920년에 썼다! 지금 읽어도 혁명적인 작품이다. 로봇이라는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로봇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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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안 읽었다’는 글을 써볼까 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얼마 전 지인에게 내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안 읽었다고 하니 그 친구를 비롯하여 다들 놀라더라. 나 같은 독서광(?)이! <백년의 고독>을 안 읽었다니! 그런 분위기였달까. 그래서 난 의외로 그런 책이 많다고 고백했을 뿐이고. 그런 책 리스트를 한 번 뽑아보았다. 사실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읽었을 법한 책들 가운데 안 읽은 책이 제법 많다. 그리고 나름 이유도 있다....


1. 내겐 너무 극복 불가능한 의식의 흐름
독서광이라면 당근 읽었을 법한 책으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작품은 늘 꼽힌다. 그러나 나는 제임스 조이스 작품 읽은 게 <더블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없다. 조이스의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읽지 않았다. 그나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제목 때문에 은근 끌려(지가 젊은 예술가라 생각한 어처구니없던 시절 끌렸음. 푸하하 ㅠ) 집어 들었으나(집에 책도 있음), 도저히 몇 장 못 넘기고 살포시 내려두었다. 그나마 버지니아 울프는 좀 낫다. <자기만의 방>이랑 <세월>은 읽었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은 안 읽었다. 이 두 사람의 특징은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의 선두주자(응?)로 꼽힌다는 점. 난 이 기법이 정말 싫다. 재미없다. 난해해. <세월>과 <자기만의 방>도 딱히 좋지 않았다.




















2. 중남미 환상 소설
문제의 <백년의 고독>이 여기에 속한다. 나는 판타지나 SF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유명한 작품이라면 좀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거짓말을 대놓고 하는 듯해서 손이 안 간다. 중남미 환상 소설, 마술적 리얼리즘. 이런 문장 들어간 책은 그래서 덩달아 잘 안 읽는다. 마르케스 작품은 그런 이유로 외면해왔다. 그나마 읽은 건 이 사람이 다 늙어서 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하나 딸랑인데 별로 좋지 않았기에 더 기피하게 된 작가인 듯. 이 부류엔 보르헤스도 들어간다. 책 좀 읽네 하는 사람들 중 보르헤스 책 안 읽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난 보르헤스 작품 하나도 안 읽었다. 그다지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한번쯤은 그래도 읽어볼까 싶어서 사두었지만, 아직도 손대지 않고 있다. <백년의 고독>도 마찬가지다. 책은 서가에 살포시 꽂혀 있는데.....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한번 도전해볼까 싶지만,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다.




















3. 영국 빅토리아 시대 문학
난 이 시기가 매력적이지 않다. 일단 여자들이 주렁주렁 치마 입고 우아하게 차 마시며 가식 떠는 모습을 보는 게 그다지 흥미 없다. 아마도 이런 시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마다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다고 여긴 적이 많기에 문학작품도 그러리라는 편견이 생긴 듯하다. 그 좋다는 제인 오스틴 작품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엠마> 등등 하나도 읽은 게 없다. 앞으로도 과연 읽게 될지; 같은 이유로 브론테 자매의 작품도 덩달아 안 읽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안 읽었음. 그나마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재미있게 읽었다.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카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의 찰스 디킨스 작품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지만  디킨스의 작품은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하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크다.


































4. (영화로 너무 많이 봐서) 이미 내용을 다 아는 작품
그렇다. 디킨스의 책은 그렇기에 잘 안 읽게 된다. <위대한 유산>을 비롯하여 <올리버 트위스트>도 그렇고 <크리스마스 캐럴>이야 말해 무엇 할까! 영화로 너무 많이 봤기에 책을 읽을 감흥이 떨어진다. 이미 영화로 매년 스포일러 당했어! 게다가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작품은 어릴 때 동화로 많이 읽었기에 성인이 되어 다시 또 읽게 되지는 않는 듯하다(생각해 보면 이런 작품도 꽤 많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그렇다.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이미 읽었지, 게다가 툭하면 텔레비전에서 영화로 나오지. ㅠ_ㅠ 도저히 다시 책으로 읽을 기분이 안 난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도 그런 축에 속한다. 나는 이 영화를 엄청 재미나게 봤기에 아직도 몇몇 장면은 기억이 난다. 책으로 읽어볼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살포시 내려놓기를 반복.



































5. 흑인이 주인공이거나 흑인이 쓴 문학 작품

이 분류만 보면 내가 인종차별주의자 같아 보인다. 그런 건 아니고;; 이런 장르(?)에도 크게 흥미가 없다. 그냥 내용이 뻔해 보인다. -_-;; 인종차별 속에서 핍박받는 이야기가 왠지 주된 내용일 거 같은 편견. 문학 작품만이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흑인이 주인공이거나 흑인으로서의 삶을 주된 내용으로 다룬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와 같은 작품 및 토니 모리슨의 작품도 하나도 안 읽었다. 그래도 요즘은 토니 모리슨 작품은 좀 읽어보고 싶어졌다. <빌러브드>부터 읽어 볼 생각.


















6. 제목을 하도 많이 봐서 책을 다 읽은 느낌이 드는 작품
이 부류에는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아들과 연인>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갖고 있던 소설 전집에 이 책들이 있었다. 난 그 전집을 이것저것 살펴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어느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부터 야릇한 기운이 감돌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책은 왠지 내가 읽는다는 걸(심지어 제목이라도)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는 책이라고! 책 표지에 격정 로맨스가 어떻고 외설이 어떻고 이런 말이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간이 작아서 읽어볼 엄두는 안 났고 그저 책 표지만 날마다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내 언젠가 크면 꼭 이걸 읽으리... 하며... 그런데 그렇게 제목과 책 표지만 보다가 너무 질렸나보다. 크고 나니 더 이상 관심이 없어;;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 그러다 몇 해 전에 이 두 작품은 읽었다!!!




















7. 너무 너무 길어서 엄두가 나지 않네
대하장편소설 읽기 힘들다. 한국문학 중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가 여기에 속한다. <태백산맥>은 1권까지만 읽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이건 도서대출 시스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장편을 굳이 사서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대학 때 도서관에 가면 이 책들은 항상 대출 중이었다. 1권 읽었다 싶으면 2, 3권은 누가 가져갔고. 이런 시스템 속에서 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그럼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젠가 꼭 읽을 테야!!! (언제?).


































8. 그리고
성경


이렇게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결국 ‘편견’ 때문에 치우친 독서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좋은 독서를 하려면 저 편견을 넘어서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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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7-02-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구텐베르그가 인쇄기계를 발명해서 최초로 찍은 책, <성경>을 아직 안 읽어봤습죠. 누가 누굴 낳고, 누가 누굴 낳고.... 하루 온종일 낳고, 또 낳는 이야기만 몇 번 읽은 거 같네요. ㅋㅋㅋ

잠자냥 2017-02-15 14:09   좋아요 0 | URL
ㅋ 그러게요. 하루 온종일 낳고, 또 낳고 ㅋㅋㅋ

cyrus 2017-02-1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소개된 책들 중에 제가 안 읽은 게 아주 많아요. ^^

잠자냥 2017-02-15 14:41   좋아요 0 | URL
cyrus 님도 안 읽으신 책이 많다니 왠지 위안이 됩니다. ㅎㅎ

Falstaff 2017-02-17 0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말 나온 김에 이 책들에 관한 짧은 소감 한 마디씩만....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는 스무살 때 읽어봐서 지금 기억 안 나 다시 읽어보려 책 샀음. <율리시즈> 17편의 짧은 이야기와 1개의 희곡으로 생각하고 읽으니까 뭐 그 정도는 ㅎㅎㅎ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해골 흔들림. <댈러웨이...>도 중간중간 번역 되게 후짐. 그래도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음. 하여간 조이스와 울프보다 대한민국의 오정희가 의식의 흐름을 훨 잘 구사함.
중남미 환상문학: 폴스타프 왈 ‘아몰랑주의 문학‘들. <100년의 고독>은 소싯적에 재미나게 읽었는데 보르헤스는 읽다가 하도 어지러워 토할 뻔했음. 여기서 주목. 읽기 더러워 토할 뻔한 게 아니라 하도 골 때려서 어지러워 토할 뻔했다는 거. 보르헤스 팬들은 양해하시압. 푸엔테스의 <아우라>는 아, 멋있음.
빅토리아 시대 문학: 그 시대 최고 작가는 누가 뭐래도 엘리자베스 캐스켈과 조지 엘리엇.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신 디킨스. 나머지는 뽕짝. 내가 흔히 쓰는 말. ˝우라질 빅토리아 시대˝ 운운. 특히 샬럿 브론테는 쓰레기.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호오.
영화로 나온 책들 가운데 <위대한 유산>과 <양철북>은 그래도 책이 훨 남. 일독 권유.
하도 많이 들어본 제목이라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필독서이긴 한데 될 수 있으면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것을 권함. 대가리 터지게 법정소송해서 출판 가능하게 만든 출판사가 바로 펭귄. 거기다가 도리스 레싱이 쓴 서문이 기막힘. 다른 버젼으로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의 수박만 한 젖가슴이 압권!
흑인문학: 글로리아 네일러가 쓴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강추. 리처드 라이트 <미국의 아들>은 창비 세계문학 넘버 2로 찍은 책. 랠프 앨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은 민음사에서 다시 찍어야 살 수 있는데 요새 나왔나 아직인가는 잘 모르겠음. 생각보다 흑인문학 나름 진지함. <뿌리> 노추.
너무 길어서...: <토지>는 길어서가 아니라 길기만 하고 재미 존나 없어서 비추. <태백산맥> <아리랑>은 괜찮으나, 우리나라 최고의 장편 대하소설은 단연 최명희의 <혼불>. 그러나 아쉽게도 미완성. 해외 장편대하는 <티보가의 사람들>이 대빵인데 민음사가 절판을 해소할 기미가 안 보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미련하게 완독했지만(국일미디어 김창석 역. 번역 죽임) 확실히 과대평가됨. 이거 읽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범으로 독방에 한 1년 수감되는 것. 그거 말고 이책을 첨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사료됨. 나? 나야 며칠 잠깐 미쳤으니까 완독 했음.

잠자냥 2017-02-16 15:11   좋아요 0 | URL
길고 자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양철북>은 그래도 꼭 읽을 생각으로 책은 사놓고 아직 못 봤네요. 조만간 읽을 예정입니다!
조지 엘리엇 소설도 읽어보고 싶고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민음사판으로 읽어버렸네요 0_0;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서 민음사판이랑 펭귄 버전 중에 뭘로 읽을까 고민하다가. 펭귄 버전에서 샤낭터지기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는 거 보고 김이 확 새서..(전 번역하면서 굳이 사투리로 옮기면서 충청도 사투리로 옮기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흑인문학 중엔 <미국의 아들>은 폴스타프 님 리뷰 보고 사두었고요, <보이지 않는 인간> 민음사판도 사실 예전에 사둔 게 있습니다. 다행이죠 ㅋㅋ

장편 중에 <혼불>은 읽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티보가의 사람들>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책이라서 민음사 버전으로 다 갖고 있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0-01-20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 본문 글도 재밌고 폴스타프님 댓글도 재미가 터집니다~~
 
진실에 눈을 뜨다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
해리 크라이슬러 지음, 이재원 옮김 / 이마고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해리 클라이슬러 <진실에 눈을 뜨다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을 읽었다. 이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왔던 <휴머니스트를 위하여 : 경계를 넘어선 세계 지성 27인과의 대화>와 비슷한 책이다. 다만 <휴머니스트를 위하여>는 ‘경계를 넘어선’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좌우를 넘나들어 세계적인 명사들과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반면 <진실에 눈을 뜨다>는 그런 명사들 중에서 흔히 좌파라고 불리기 쉬운, 진보적인 가치관을 내세우고 살아가는 명사들과의 대담집이다.


이 책은 ‘진실에 눈을 뜨다’와 ‘정치적 각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명의 명사들이 어느 순간 세계의 진실(결국은 이 세상의 모순)을 깨닫고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촘스키, 하워드 진, 대니얼 엘스버그, 오에 겐자부로 등등 20명의 대담자들은 어린 시절 영향을 준 사람을 비롯하여 교육 환경은 어땠는지, 어떤 계기로 지금과 같은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등등을 질문 받고 이에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과 대답으로 베트남 전쟁,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등 굵직한 현대 세계사를 훑으며 이를 통해 인종차별, 제국주의, 자본주의, 반전과 평화, 이슬람, 페미니즘, 환경, 예술, 계급, 인권의 가치 등을 다룬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생소한 이름도 보인다. 그러나 스무 명의 대담자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모습은 ‘더 나은 삶,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끊임없는 노력한다는 점이다.

‘나만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닌, 이 세상의 모순을 깨닫고 그것을 타파하여 사회적 약자도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해온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보면(정치적으로 각성하는 순간을 비롯하여) 결국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란 한국에서 하는 입시위주 암기식 교육, 사교육전쟁, 우리 아이만 1등해서 좋은 대학 가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자리 하나 꿰차서 성공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하는 그런 교육은 절대 아니다.

스무 명의 대담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는 현상은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부모’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식에게 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것, 말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버릇, 이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질문, ‘왜?’라는 질문을 항상 하도록 가르쳤다. 게다가 그것을 ‘입으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평소 자신들의 생활 태도 자체가 그랬다. 때문에 스무 명 중 대부분은 부모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그렇게 컸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가까이에 그런 영향을 주는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촘스키는 자신이 지금처럼 자랄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모부가 운영하던 신문가판대를 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신문을 읽고, 신문을 사러 온 사람들이 나누는 토론을 들으며 자기만의 세계관을 형성해나갔다.

책을 많이 읽는 습관 또한 중요했다. 대부분의 대담자들이 ‘책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어릴 때부터 책속에 파묻혀 살았다. 하워드 진은 가난했던 부모가 쿠폰을 일일이 모아 한 권씩 사다준 디킨스 전집을 읽으며 계급의식을 키워갔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홉 살까지 책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는데, 대신 할머니가 전해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늘 곁에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처음 책을 선물 받았는데 무려 마크 트웨인의 책이었단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하여 <허클베리 핀>을 읽고 또 읽은 기억을 털어놓는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교육도 중요하고, 책읽기도 중요하고, 멘토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환경만큼 인간의 본성도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조금은 남들보다 ‘정의로운 유전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유전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유전자’ 등이 많았던 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이들 중 몇몇의 저작은 더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유쾌한 발견도 있었다. 반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들더라. 아무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한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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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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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쟁의 참혹함은 말할 것도 없고, 전후 독일은 왜 자국민의 처참한 희생에는 침묵했는지, 또 독일 문학가들은 몇몇을 제외하고 그 침묵에 동조했는지 제발트는 날카롭지만 그 특유의 우아한 문체로 비판한다.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 빠진" 독일에 대한 비판이자 문학의 의무를 생각케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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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 빠진˝.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잠자냥 2017-02-13 14:39   좋아요 0 | URL
네, 제대로 애도할 줄 아는 것도 인간의 고귀한 능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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