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퍼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7
앨리스 워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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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절판된 책이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컬러 퍼플>이 얼마 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명성은 익히 들었으니,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가고도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읽기를 마친 후에는 그래, 당연하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런 작품이 고전으로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책이 들어가겠는가.

서간체로 이루어졌는지도, 또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인 줄도 몰랐다. 그렇다. <컬러 퍼플>은 흡인력이 상당해서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뜻밖에도 재미가 있어서 며칠 만에 읽기를 마쳤다. ‘재미’라는 말은 어쩌면 모순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스토리는 흥미진진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읽기에는 고통스럽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첫 시작부터 끔찍하다. 열네 살 셀리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강간당한다. 휴.... (책을 읽으면서도 괴로웠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또 한 번 고통의 한숨을 내쉰다). ‘대신한다’는 말도 모순이 있는데, 몸이 아픈 엄마가 부부 관계를 거절하자 아버지가 엄마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열네 살 밖에 안 된 딸을 강간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프니까 너라도 해야 한다고.

그 후로 아버지의 강간은 습관적으로 일어나고 셀리는 임신하게 되고 아이까지 낳는 지경에 이른다. 자기 자식이자 동생인 아이들을 셀리의 아버지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에게 줘버린다.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자기 죄의 씨앗은 차마 마주보기 힘들었는가 싶기도 하다. 그 사이 아픈 엄마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이 인간 말종은 이제 셀리가 아닌 셀리의 여동생 네티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한다. 셀리는 네티도 그런 일을 겪을까 봐 불안하기만 하다. 동생은 지켜주고 싶다. 셀리에 비해 네티는 예쁘고 영리하고 똑똑하다. 그런 동생이 아버지의 손에 유린당할까 셀리는 그저 좌불안석.

네티를 탐내는 사람은 또 있다. 셀리가 이 작품에서 늘 00 씨라고 부르는 앨버트가 그러하다. 앨버트는 셀리의 아버지를 찾아와 네티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단칼에 거절한다. 네티는 절대 안 된다고. 자기가 차지할 속셈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휴....( 여기서 또 한 번 한숨과 온갖 육두문자를 중얼거린다). 대신 저 못생긴 애를 데려가라면서 셀리를 가리킨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일을 잘하고, 애를 잘 돌본다는 것이다. 앨버트는 애들을 잘 돌본다는 말에 이제 스물이 된 셀리를 가축마냥 데리고 간다. 그는 애가 넷이나 딸린 홀아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셀리는 짐승 같은 아버지 손을 벗어나 또 다른 짐승인 남편의 손으로 넘겨진 것이다. 셀리의 지옥과도 같은 삶은 끝날 줄 모른다. 그 사이 네티는 자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아버지와 형부를 피해 달아난다.

이렇게 <컬러 퍼플>은 셀리가 처음에는 하느님에게 보낸 편지로,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헤어진 동생 네티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진다. 셀리와 네티는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이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셀리는 온전히 한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이 작품은 자매의 고통스러운 삶을 몇 십 년에 걸쳐 보여준다. 여기에 또 다른 여성들, 셀리의 며느리인 ‘소피아’, 앨버트의 애인이었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앨버트가 사랑하는 ‘슈그’, ‘올리비아’, ‘타시’ 등등 또 다른 흑인 여성들의 삶이 겹쳐지면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흑인 여성들이 싸우고 연대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고통스럽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나간다.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컬러 퍼플>은 ‘색깔’, 그러니까 흑백갈등에, 인종차별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은 사실 성차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폭력적인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몇몇 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부장제 아래서 신음하며 살아간다. 남자인 앨버트나 그의 아들 하포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또한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순종적이고 자기 목소리라고는 조금도 낼 수 없었던, 그저 착하기만 한, 어리숙한 주인공 셀리는 그 누구보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아버지로부터 남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강간과 구타가 그녀의 일상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몹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순응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셀리가 그토록 사랑한 동생 네티는 언니와 달리 똑똑했고 공부를 멈추지 않아 자기만의 목소리와 생각을 지녔고, 그렇기에 언니에게 늘 “싸워야 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셀리는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저는 싸우는 법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법뿐’이라고 고백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꾸 사람들은, 아니 셀리 주변 여성들은 그녀에게 싸우라고 말한다. “셀리 식구들하고 싸워야 해.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어. 스스로 싸워야 해.” 심지어 앨버트의 아들 하포가 결혼한 ‘소피아’도 시어머니인 셀리에게 싸우라고 말한다. 매를 맞는 데 익숙해져서 ‘지상이 삶은 금방 끝나고 천국은 영원하다’ 말하는 셀리에게 소피아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 머리부터 깨버리세요. 천국은 나중에 생각하고요.”(72쪽)


저는 평생 동안 싸워왔어요. 저는 아빠하고 싸워야 했어요. 남자형제들하고도 싸워야 했고요. 사촌들, 삼촌들하고도 싸워야 했어요. 남자들이 많은 집안에서 여자애는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집에서도 싸워야 할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숨을 훅 내쉬웠어요. 저는 하포를 사랑해요. 그녀가 말했어요. 그건 정말이에요. 하지만 하포에게 맞고 사느니 그를 죽여 버리겠어요. (<컬러 퍼플>, 70쪽)


이렇게 주변의 당찬 여성들이 셀리에게 남편과 남편의 자식들에 맞서 싸우라고 요구해도 순종적인 셀리가 쉽사리 변하기는 어렵다. 싸우고 달아났지만 네티가 목숨을 잃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순종적으로 시키는 대로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자신이 차라리 나은 게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은 여자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은 놀랍게도 남편 앨버트가 사랑하는 여자 ‘슈그’이다. 병든 슈그가 앨버트와 함께 셀리의 집으로 오면서 셋이 한 집에 사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런 상황보다도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더 기묘하다. 남편 앨버트처럼 셀리도 슈그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슈그 또한 셀리를 처음에는 무시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셀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저 자연의 위대한 색인 ‘보라빛’으로 물들이는 데 앞장서게 된다.

처음에는 남편의 애인을 사랑하는 셀리의 마음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동경인가 아니면 너무나도 노예 같은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처지에 익숙해졌나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어리숙했고, 나날이 힘겹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정체성 같은 것을 조금도 생각해 볼 틈이 없던 한 여인이 직접 부딪히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그런 사랑으로 자신도 저 들판을 물들인 아름다운 자연의 색깔처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어쨌건 내가 기도하고  편지를 썼던 신은 남자야. 내가 아는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행동해. 찌질하고 게으르고 비열하지. 그 남자가 불쌍한 흑인 여자의 말에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야.(<컬러 퍼플>, 255쪽)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한 신. 그런 신은 셀리가 아무리 간절히 편지를 써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셀리는 이 끔찍한 삶을 저주하면서 신을 모독했다. 그러나 슈그는 다정히 속삭인다. 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그것’일 뿐이라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이라고.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며, 그렇기에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260쪽)를 낼 것이라고. 아마 그즈음부터 셀리는 하느님에게 편지 쓰기를 그만두고 동생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남자, 그러니까 신을 신경 쓰느라 신이 만든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 남자 대신 꽃, 바람, 물, 바위를 생각하는 셀리. 그리고 셀리는 이제 남편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 장면은 얼마나 통쾌한가.


나는 가난하고, 흑인이고, 못생겼고, 요리도 못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세상 만물에게 어떤 목소리가 말했어. 하지만 나는 여기 살아 있어. (<컬러 퍼플>, 273쪽)


<컬러 퍼플>은 처음에는 읽기 고통스러운 책이다. 셀리의 삶 자체가 줄곧 그러했기에. 그러나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는다. 삶을 바꿀 수 있다. 셀리의 인생이 증명한다. ‘비난에 맞서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소피아의 말은 셀리 뿐만 아니라, 네티, 소피아, 슈그, 애그니스, 올리비아, 타시 등등 이 세상 모든 여성에게 유효하다. 여성이여, 흑인이여, 싸우고, 연대해서 살아남으라. 그리고 더 소리 높여 목소리를 내라.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은 그렇게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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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1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의 절반쯤을 어제 읽다 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히 인종차별도 다뤘지만 성차별을 진하게 다뤘더라고요. 오래전에 영화로 봐서 성차별에 대한 건 기억하고 있긴했는데 슈그와의 사랑은 제가 기억도, 짐작도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아,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저도 처음에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소피아가 남편을 때릴 때, 맞지 않고 맞서 싸울 때 너무 신났어요! 읽기 힘든 책임은 분명하지만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06-15 14:58   좋아요 0 | URL
전 오래 전, 영화는 차마 못봤어요. 영화도 좋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슈그와의 동성애는 처음에 모호하게 그려져서 이게 그게 맞나 저도 가물가물했는데, 아마도 셀리 그녀 자신도 몰랐던 거니까 그렇게 그렸던 거 같아요. 그런 목소리의 변화를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앨리스 워커가 글로리아 스타이넘하고 80년대에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 편집인으로 활동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인종차별보다 성차별이 더 두드러진 작품을 쓴 거 같아요. 전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어요. 소피아가 하포 두들겨 패는 장면도 너무 통쾌하고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하고 이 책을 어떻게 엮어서 읽으셨을지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0-06-15 15:00   좋아요 1 | URL
흑인 페미니즘 사상 때문에 늘 미뤄두기만 했던 이 책을 읽게된 건 사실인데, 저는 컬러 퍼플 책장 넘기자마자 오히려 에코페미니즘 생각이 더 났어요. 컬러 퍼플 다 읽으면 페이퍼 써볼게요.

잠자냥 2020-06-15 15:03   좋아요 0 | URL
오! 기대됩니다! ㅎㅎ

Falstaff 2020-06-15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안정효 번역으로 읽었습지요.
남자도 첫 부분 읽으면 으윽! 이걸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쇼크 먹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제가 보기에 ‘슈그‘더라고요.
어쩄든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모든 인류가, 가해자 인종이든 피해자 인종이든, 여자든 남자든 간을 불문하고 다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0-06-15 15:19   좋아요 1 | URL
안정효 번역본은 셀리의 말에 충실해서 맞춤법 같은 거 원문처럼 엉성하게 번역한 거 같더라고요.
읽기는 좀 힘들어도 그것도 나름 흥미로웠을 거 같아요.
암튼 첫 부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렇게 센 시작은.... 으으.....
슈그 정말 자유롭고 따뜻한 사람이죠.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eBook]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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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이 책으로 인해 무척 즐거웠다.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싶은 그런 책이다. 서머싯 몸, 정말 얄밉게도 글 잘 쓴다. 모두 80장인 이 작품은 각 장이 단 몇 페이지로 이루어져 짧게 끝난다. 20분짜리 일일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아, 한 회만 더, 한 회만 더 이렇게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 같다.

 

시작부터 상당하다. 여자와 남자가 밀회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군가가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그들이 부부이고, 자신들의 집에 있는 거라면 이렇게 놀랄 일이 없다. 하녀나 하인 중 한 사람이겠지, 남자가 다독이자 여자가 말한다. 이 시간에 그들은 여기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월터일지도 모른다면서 공포에 질린다. 남자의 신발을 가리키고, 모자는 대체 어디에 뒀냐고 묻고, 남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숨을 곳을 찾고……. 딱 봐도 불륜이다. 그런데 남편인 월터가 한낮에 갑자기 집에 온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시작 부분 단 몇 쪽에서 펼쳐진다.

 

여자의 이름은 키티, 남자는 찰스. 여자는 유부녀여도, 남자는 총각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 또한 아내가 있다. 전형적인 잘생기고 능글능글한, 자아도취적인 바람둥이 유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남자, 뭐가 좋아서 반했을까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유형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렇다고 키티이 여자가 호감 가는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신분 상승 욕구와 허영 많은 엄마 때문에 그렇게 길들여져서 남자들 눈길을 즐기고, 돈 많고 잘생기고 집안 좋고 지위도 좋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인, 자기의 엄마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그런 여자로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온갖 남자들의 구애를 즐기면서 아무나 상대할 수 없다고 뿌리치면서 도도하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꽉 차서, 아니 그마저도 자칫 지나가 버릴 거 같다. 이제는 구혼자들도 늙은 남자뿐이고 그마저도 드물다. 그런 중에 자기보다 못나고, 그래서 엄마에게 구박만 받아 온 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될 것 같다. , 이걸 어쩌지! 초초하다. 엄마도 이제는 큰딸 키티를 냉대한다.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월터’- 이 남자는 키티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얼마나 희미했는지 몇 번이나 춤을 춘 사이이지만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관심 있는 것 같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고 음울하다. 그런데 어느 날 월터가 그녀에게 청혼한다. 키티는 엄마의 냉대도, 구혼자 없이 나이 들어가는 처량한 처지도,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도 견딜 수가 없던 차에, 월터의 청혼을 허락하고 만다. 그를 눈곱만치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예의도 바르고, 생긴 것도 딱히 크게 문제 삼을 것 없고, 남들 평판도 그만하면 괜찮다. 게다가 키티를 거의 숭배하듯이 사랑한다. 그런데, 키티는 그에게 전혀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 관심사도 서로 너무나 다르고, 이야기를 나눠도 도무지 즐겁지 않다. 세균학자인 월터를 따라 결혼 후 홍콩으로 오게 된 키티는 그곳에서 찰스를 만나고, 이 능글맞은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키티에게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찰스에게는 그저 욕정 풀이 대상이었을 뿐인 그런 관계.

 

그런데, 키티와 찰스가 밀회를 즐긴 그 오후에 집안에서 문을 돌리던 소리의 주인은 하인이나 하녀가 아닌, 월터가 맞을까? 벌써 들킬 리가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서머싯 몸은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는다. 그 생각을 깨뜨려버린다. 그렇다. 그날 문을 열려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 한낮에 집에 돌아왔다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알게 된 사람은 월터였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배신에 크게 고통받은 월터는 아내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찰스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키티는 자신만만하다. 찰스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의 아내와 당장 이혼할 것이고 자신과 곧 결혼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찰스가 결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능글맞고, 호색한에, 키티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어떤 여자와도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남자라는 걸 뻔히 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오직 이 세상에 키티 뿐이다. 월터마저도 찰스가 그런 싸구려 인간임을 알기에 그런 제안을 쉽사리 한 것이다. 복수심에 가득차서 냉소 가득한 얼굴로. 실제로 키티가 모든 상황을 찰스에게 털어놓자, 이 능글남은 자신은 절대 이혼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라며, 키티를 설득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가라고……. 그렇다. 자기만 살자는 거다.

 

찰스의 배신과 월터의 증오, 콜레라가 창궐하는 지역으로 끌고 가 자신을 죽이고야말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미움과 증오에 부르르 떨던 키티는 결국 월터를 따라서 중국 오지로 떠난다. 그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다. 사랑이나 욕망, 배신, 질투 이런 인간의 감정들이 사치에 가까워 보인다. 월터와 키티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아니 월터는 그런 중에도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이 죽음의 마을에서 형식적인 부부로 함께 지낸다. 그 사이 키티는 수녀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봉사를 시작하고, 워딩턴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허영기 많던 그 철없는 여인에서 조금씩 변모한다. 오직 죽음만이 넘치는 이 공간에서 인간의 세속적 욕망들은 그저 덧없어 보인다.

 

, 그러면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 이렇게 변한 키티가 월터의 참된 면모, 그러니까 이타성과 신의, 지성과 감성 등 위대한 품성을 갖춘 그의 진면목을 깨달아서 두 사람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말로 가는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서머싯 몸은 얼마나 잔인한지, 아니 얼마나 인간을 잘 아는지,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꿰뚫어본다. 마치 월터가 키티의 그 경박한 속성을 다 알고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듯이, 서머싯 몸 또한 인간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고, 얼마나 얕고 천박하며 이기적이며, 또 비속한 존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사랑의 속성도.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지 않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인생의 베일> 96~97)


월터의 키티를 향한 이 호소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절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키티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필 수 없으리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사랑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랑은 동정이나 연민아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세균학자로, 의사로 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생각하는 이타성 넘치는 인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고, 고결한 취미에, 똑똑한 지능을 갖추었더라도, 키티에게는 사랑을,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월터가 키티의 경박함과 매력적이지 않은 속성들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듯 키티 또한 잘생겼지만 그것 빼곤 딱히 볼 게 없는 찰스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는 고마움조차 모를 수도 있어요.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루함만 느낄 테니까요.”라고 말했듯이 키티는 월터가 자신을 사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함부로 대한다. , 인간이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베일>사랑은 있으나 진짜 사랑이라고 이를 만한 것은 없는 기묘한 소설이다. 월터는 죽어가는 순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나도 알고,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한 인간, 그러니까 친구가 죽어갈 때 느낄 법한 연민이나 슬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마음이지 설레고 들뜨고, 안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그를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랑이 결코 아님을. 월터 그 자신 또한 알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죽은 것은 개에 물린 사람이 아니고 개였다. 쓸쓸히 말한 것이리라.

 

키티는 영국을 떠나 홍콩에서 지낸 후, 다시 홍콩을 떠나 중국 오지로 가면서 서서히 변화했다. 그 사이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경험한다. 스스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서머싯 몸은 그런 인간의 얄팍한 속성을 또 얼마나 잘 아는지! 키티는 찰스와 재회하고 그토록 혐오스럽다던 그 인간과 또다시 놀아나고 만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한심한 여자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키티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느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혐오는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나 보다. 키티 그녀도 찰스와 다시 육체관계를 맺고는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그래, 그래야 마땅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저 욕정일 뿐. 그래,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에서, 서로 싸늘한 월터와 육체관계를 맺었을 리는 없고 그랬다면 그처럼 오래 참았으니 욕정에 들끓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해하자……. 그래도 아이고 이 여자야 싶어진다. 못마땅하다. 그럼에도 서머싯 몸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는 감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마지막에 키티가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나라로 떠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진실로 홀로서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부모, 특히 엄마로 인해 허영심 많은 여자, 그저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워진 키티. 그녀가 자기 딸만큼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거라는 결심을 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오롯이 혼자해쳐나가는 결말이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 서머싯 몸도 불완전한 인간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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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6-11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 진짜 최고의 2류라니까요!
어찌 책마다 그렇게 맛있게 쓰는지....라고 열라 생각했다가, <어센든>까지 가면 글쎄 흑흑... 폭망입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1 14:43   좋아요 0 | URL
헉! <어센든>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으로 나왔기에 한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꼬마요정 2020-06-11 15:05   좋아요 0 | URL
헉, 저 그저께 샀는데요...ㅠㅠ

Falstaff 2020-06-11 15:07   좋아요 1 | URL
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씀입죠. 그래도 이름 값이 있는데요.
작가 자신이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스파이 출신이잖아요. 그래도 세월이 많이 지나고, 헐리우드 스파이 물을 충분히 경험한 요새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 하여튼 그렇습니다. ^^;;

잠자냥 2020-06-11 15: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그래도 한번 직접 읽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몸의 <과자와 맥주> 좀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음....

Falstaff 2020-06-11 15:52   좋아요 1 | URL
흑흑흑... 제가 읽은 <어센덴>도 그 출판사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재미가 덜했을까요? 신상웅이던가, 그 양반이 일본 태생이라 워낙 일본어에 능통해서요. ㅎㅎㅎ

다락방 2020-06-1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리뷰 읽어보니 다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
그리고 어센든..몰랐는데, 뭐라고요? 저도 한 번 검색해보겠습니다. ㅋㅋ

(잠시후) 검색했는데 이 책을 추천마법사가 다락방님께 추천한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2 10:48   좋아요 0 | URL
정말 또 오랜만에 재미난 책 읽었어요. 전 전자책으로 읽고도 왠지 종이책 사고 싶어지더라니까요. ㅋㅋㅋㅋ
어센든! 추천 마법사의 추천이 과연 잘 맞아떨어질지! 두둥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0-06-13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독서모임에서 이 책 만나고
나서 영화로도 구해서 본 기억
이 나네요.

정말 재밌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모옴이라는 냥반이 정말 당대
로맨스를 그리는데 있어 대단한
실력가이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잠자냥 2020-06-14 08: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참에 영화도 한번 버려고요. ㅎㅎ

coolcat329 2020-07-1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ㅋ 저도 그 문제의 장면에서 이 한심한 여자야...미쳤구나 미쳤어...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진짜 인간의 사는 모습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의 잔인한 모습이 독자는 또 좋잖아요 ㅎㅎ

잠자냥 2020-07-13 21:54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그 장면 진짜 아하 이 여자를 어이할꼬 하다가도 그런 게 인간이지 싶고... 암튼 몸이 참 잘 썼어요. ㅎㅎ
 
그녀들의 이야기 -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루이자 메이 올콧 외 지음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그녀들의 이야기》 이 단편 모음집에서 케이트 쇼팽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이디스 워튼 <다른 두 사람>은 이미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읽은 작품이다. 그밖에도 루이자 메이 올컷이나, 제인 오스틴, 윌라 캐더, 샬럿 퍼킨스 길먼, 캐서린 맨스필드, 버지니아 울프 등의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다른 작품들로 만나본 작가들이다. 그래서 처음 이 단편집을 봤을 때, 꼭 사서 읽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좋은 작가의, 괜찮은 작품들이 있을지 몰라. 그런 작가와 작품을 발굴한다고 생각하고 한번 읽어볼까 싶은 마음. 다행히 그 예상은 기분 좋게 적중했다.

첫 두 편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올컷의 <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는 올컷이 ‘말동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어느 집의 하녀 생활을 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독립적이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애를 쓰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바로 올컷 자신이다. 하녀 일을 하겠다고 나선 딸을 말리면서 루이자의 어머니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네 자존심이 너무 세지 않니”라고 말하는데, 거기에 루이자는 “저는 빈둥거리면서 얹혀살기에 자존심이 너무 센 거예요. 차라리 바닥을 닦고 빨래를 하겠어요.” 답한다. 이런 부분이 속시원하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누이의 ‘말동무’가 되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가온 ‘요세푸스 목사’가 루이자가 정작 찾아가자 누이의 말동무는커녕 그 자신이 루이자를 자기 하녀처럼 부리며 온갖 일을 시키는 장면이다. 그렇게 위선적이면서도 말은 얼마나 교묘히 잘하는지 역겨울 정도인데, 거기에  루이자는 당당히 응수한다.

두 번째 작품인 <세 자매>는 제인 오스틴 특유의 결혼과 로맨스에 대한 신랄한 냉소가 넘친다. 나는 제인 오스틴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많이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하기는 뭐하지만,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성의 로맨스와 결혼 이야기에는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로맨스나 결혼 아니면 쓸 이야기가 없는가? 하는 반감이 들어 잘 읽게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제인 오스틴 장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세 자매 중 누구하고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돈만’ 많은 남자의 구애를 두고 세 자매가 고민에 빠지는 내용이 그려진다. 그중 이 결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첫째 메리로, 그녀는 이 결혼으로 자신이 원하는 부와 지위를 얻으리라 기대하지만, 결혼 상대인 남자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존재다. 그런 메리를 보며 “그 사람이 메리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진 못하겠지만, 그 사람 돈과 가문과 저택과 마차는 행복하게 해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막내의 시선이 꽤 신랄하다. 읽다 보면 오직 돈과 지위, 명예 등 ‘사랑’이 아닌 ‘필요’ 때문에 이루어지는 결혼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씁쓸한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별 감흥 없이 읽어나가다가, 앗! 바로 이거야, 하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가 바로 그렇다. 이 단편을 읽고 작가의 다른 국내 번역작을 찾아봤는데 이렇다 할 작품을 발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평생 서른 권이 넘는 단편집과 소설을 출간했고, 소설 속 여성 인물들에게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고 노력했다는 작가, 심지어 1926년에는 여성 최초로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5년에 한 번 그 시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가에게 주는 메달을 받았다는 작가. 그런데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너무나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뉴잉글랜드의 수녀>에는 루이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잘 가꾸어진 집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하루가 저물 때 쯤 그녀의 집에 조 다겟이 찾아온다. 보아하니 둘은 연인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연인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다정한 대화나 포옹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색한 상태에서 몇 마디 나누다가 다겟이 탁자 위에 놓인 루이자의 책과 잡지를 뒤적이며 살펴본다. 그러다가 다겟은 그걸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바로 그때 루이자는 어색하지만 단호하게 책과 잡지가 원래 놓였던 순서, 그러니까 다겟이 오기 전, 자신이 정갈하게 의도를 갖고 배치해놓았던 순서대로 돌려놓는다. 다겟은 머쓱해져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어떤 책이 위에 있는지가 중요해?” 그러자 루이자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답한다. “항상 이렇게 놓거든.”

아, 난 이 장면을 보고, 루이자와 다겟의 미묘한 사이, 그리고 루이자이 성격까지 단번에 파악했다. 루이자는 무엇보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가 세워놓은 일상의 가지런한 질서와 규율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사랑(?)하는 이가 오더라도 자기 공간에서 자신의 물건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그 배열 순서를 망치는 행동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허락은 하더라도 원래 모습 그대로 돌려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조 다겟은 루이자의 집을 나서면서 ‘자신이 마치 도자기 가게에서 나온 악의라곤 전혀 없던 순진한 곰처럼’ 느낀다. 반면 루이자는 ‘오랫동안 시달린 친절한 도자기 가게 주인이 곰이 나간 후 느꼈을 법한 기분’을 느낀다. 그가 나가자마자 양탄자에 묻은 흙을 ‘그럴 줄 알았다’면서 털어내기 바쁘다.

조 다겟은 일주일에 두 번 루이자를 찾아왔고, ‘섬세하게 꾸며진 그녀의 예쁜 방에 앉을 때마다 레이스로 만들어진 울타리’에 갇힌 기분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투박한 손과 발이 혹시나 요정의 거미줄에 걸릴까 봐 움직이기 두려웠고, 루이자 역시 똑같은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구절을 읽고, 루이자를 탓할 수도 있으리라. 연인 사이라면서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그런 시간을 즐기면서도 어떻게 연인이 자신의 방을 어질러놓고, 물건을 헤집어 놓는 일에 신경 쓰느라 서로에게 몰두하지 못할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이렇게 생각하리라. 실제로 두 사람 사이는 미묘하다. 그들은 한 달 안에 결혼할 예정이다. 한때는 서로 사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글쎄.... 약혼 기간이 무려 15년이나 이어졌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느낀 것은 무려 15년 전이다. 15년 중 14년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편지도 주고받지 못했다. 그 긴 세월 내내 다겟은 호주에 있었다. 한몫 잡는다고 호주로 떠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며 자신을 기다린 여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루이자의 어머니와 오빠가 죽었고,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15년 동안 이어진 약혼, 14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연인 아닌, 연인, 그리고 홀로 남겨져 그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사는 조용하고 정갈한 삶에 익숙해진 여인. 그런 여인 앞에 어느 날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만 남은 약혼자가 돌아온 것이다. 조 다겟이 돌아왔을 때 루이자가 받은 첫 느낌은 곤혹스러움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4년도 아닌 14년이다. 서로 얼굴을 보기는커녕 편지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이 긴 세월 동안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속임수며 기만이 아닐까. 심지어 루이자는 이제 행복한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녀의 지난 세월, 특히 최근 7년간의 삶은 잔잔한 행복으로 그득했고, 그녀는 연인이 곁에 없다고 단 한 번도 불안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뉴잉글랜드의 수녀>, 111쪽). 그런데 갑자기 결혼해서 남자의 집으로 옮겨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루이자는 혼자 사는 집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에 예술에 가까운 열정을 느꼈다. 그녀는 보석처럼 빛날 때까지 광을 낸 창틀을 보면 진정한 승리감으로 두근거렸고, 말끔한 서랍장 속에 청결히 개켜진 채로 라벤더와 전동싸리와 완벽한 순수의 향을 풍기는 옷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것들을 지킬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녀의 뇌리에 어떤 이미지가 스쳤는데, 너무 놀란 그녀는 거의 천박하다고 여기며 생각을 떨쳐냈다. 그것은 투박한 남편의 물건이 끝없이 널려 있는 광경, 섬세한 조화 속에 거친 남자의 물건이 끼어들며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킬 먼지와 혼돈이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 113~114쪽)


루이자는 이 고요한 혼자만의 삶을 뒤로하고 조 다겟과 결혼해 그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될까? 사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그렇고, 전개되는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독자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결말로 나아가기까지 뜻밖의 사건이 일정 역할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루이자가 다겟과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자기만의 독립적인 삶을 계속 꾸려나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요와 평온한 협소함 자체가 그녀의 타고난 권리’가 되고 ‘하루하루가 똑같으며 이렇게 매끈하고 무결하고 순수할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기분. 그래서 ‘수도원에서 해방된 수녀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헤아리는 루이자. 그 결말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인 <뉴잉글랜드의 수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그렸기에 ‘뉴잉글랜드의 수녀’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아니 애초부터 그러한 길을 걷지 않음으로써 ‘수도원에서 해방된 수녀’와 같은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 무척 역설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누런 벽지>로 유명한 샬럿 퍼킨스 길먼의 <변심>도 짧지만 강렬하다. 역시! 하고 감탄하게 된다. 크게 놀라운 내용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완벽해 보이는 부부. 그들의 집에 젊고 아름다운 하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예상 가능한 전개. 알고 보니 남편이 하녀를 겁탈해서 임신하게 만들고 뭐 그런 내용이 펼쳐진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과 하녀의 관계를 알게 되는 장면이 매우 기발하고 절묘하며 스릴(?) 넘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편과 하녀 게르타의 관계를 알게 된 매로너 부인의 태도에, 더불어 그토록 오래 전에 ‘이런’ 작품을 쓴 작가에게 감탄하게 된다.

처음에 매로너 부인은 남편과 하녀의 관계를 알고는 분노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하녀는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는가! 매로너 부인은 불쾌함과 분노에 휩싸여 울며 애원하는 하녀 게르타에게 차갑게 말한다. “방으로 가서 짐을 싸.”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 후 혼자서 차분히 생각에 잠긴 매로너 부인은 곧 자신의 태도를 후회한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28년 동안 받은 훈련, 학생으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그녀 스스로 이루어 낸 독립적인 성장 덕분에 그녀의 정신은 게르타의 정신과는 전혀 다르게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다. 한 여자는 아내였다. 사랑이 넘치고 신뢰했으며 다정했다. 다른 한 명은 하녀였다. 사랑이 넘치고 신뢰했으며 다정했다. 어린 소녀였다. 낯선 나라에 홀로 와서 이 집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친절도 고마워하는 이 아이는 어떤 훈련도 교육도 받지 못했고 어린애 같았다. 물론 그녀는 유혹을 뿌리쳤어야 했다. 하지만 매로너 부인은 신뢰하는 사람이 우정의 가면을 쓰고 유혹할 때 그것을 알아보기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정도로 현명했다. 잡화점의 점원이었다면 게르타가 잘 뿌리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매로너 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여러 명을 뿌리쳤다. 하지만 존중해야 할 사람을 그녀가 어떻게 비난했겠는가? 복종해야 할 사람을 그녀가 어떻게 거부했겠는가? (<변심>, 155쪽)


그러니까 매로너 부인은 남편과 하녀의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다. 하녀에게 네가 내 남편을 꼬셨지! 나쁜 년! 운운하며 집을 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주인의 얼굴을 하고서 하녀를 유혹해 자기 욕망을 채운 남편의 비열함을 알아차린다. 그 비열하기 짝이 없는 남편은 이런 짓을 그녀가 사는 집의 지붕 아래에서 저질렀다. 그러고 나서도 떳떳하게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밝힌 다음, 아내와 헤어지고 재혼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그저 순수하고 단순하게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남편은 본인의 쾌락을 위해 게르타의 행복들, 그러니까 ‘깨끗하고 젊은 아름다움, 행복한 삶의 희망, 결혼과 모성, 명예로운 독립’ 등등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매로너 부인은 남편의 피해자임이 명백한 게르타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감정이 밀려오며 말 그대로 그녀를 벌떡 일어나게 한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곧추세우며 걸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지은 죄야.” 그녀가 말했다. “이것은 여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모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아기에게 저지른 죄야.”(<변심>, 157쪽)


매로너 부인은 게르타의 방으로 돌아가 그저 울고만 있는 이 어린 소녀를 위로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는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둔다. 아무튼 꽤 통쾌한 결말이다. 게다가 100여 년 전에 남성의 그루밍 성폭력 범죄를 꿰뚫어 보고 힘없는 어린 소녀에 대한 연민과 연대, 그로써 비열한 범죄자인 남편을 단죄하는, 그리고 그런 응징을 위해서는 여성이 깨어있어야 함을, 통찰력 있게 써내려간 샬럿 퍼킨스 길먼에게 그저 찬사를 보낼 뿐이다.   

이렇게 여성 간의 연대를 강조한 작품으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희곡인 수전 글래스펠 <사소한 것들> 또한 빛난다. 이 작품에는 남편을 살해한 것이 틀림없는 여성을 섣불리 단죄하기보다는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이해하려는 ‘피터스 부인’과 ‘해일 부인’이 등장한다.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인 보안관과 검사 등은 자기들만의 객관적이라는 관점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면서 부인들이 주목하는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며 그녀들의 그런 태도를 비웃기 바쁘다. 그러나 사실 그 ‘사소한 것들’ 안에는 존 라이트의 아내가 왜 남편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중요한 단서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도-종류가 다를 뿐이지 다 똑같아요. 나라면 그녀에게 병이 다 깨졌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터지지 않았다고 말해요. 전부 말짱하다고요.”라는 해일 부인의 말은 그래서 여성의 이해심과 직관, 연민, 배려가 오롯이 담긴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읽고 수전 글레스펠의 작품을 더 찾아보고, 그이의 희곡 <앨리슨의 집>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은 당연한 순서랄까.

조라 닐 허스턴의 <땀>도 강렬하다. 백인들의 세탁물을 빨래해주며 근근이 살아가는 딜리아. 그런데 그녀의 남편 사이크는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주제에 바람까지 피우고, 게다가 걸핏하면 딜리아를 두들겨 팬다. 15년 전만 해도 딜리아가 자길 떠날까 봐 벌벌 떨었던 인간이 이제는 아내를 향해 온갖 욕설과 구타 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웃에서도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보고는 “곰한테 내장을 내줄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말한다. 딜리아는 뼈 빠지게 일하면서 ‘뜬눈으로 누워서 그들의 지난 결혼생활에 널려 있는 파편들을 응시’한다. ‘멀쩡한 건 하나도 없었다. 꽃 같은 것은 그녀의 가슴에서 새어 나온 짭짤한 물에 오래 전에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땀, 그녀의 피. 그녀는 결혼에 사랑을 가져왔지만 그는 성욕만을 가져왔다.’(<땀>, 195쪽). 딜리아는 이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과정이 강렬하게 그려진다.


“인간이 올곧지 않으면 세상 어느 법도 그 사람을 올곧게 만들 수 없어. 아내를 사탕수수처럼 취급하는 놈들이 세상에 숱하다고. 처음에는 영글게 즙이 꽉 차서 달콤하지. 하지만 쥐어짜고 짓이기고, 비틀어서 단물을 쏙 빼먹어. 성이 찰 때까지 빨아먹은 다음에 사탕수수 껍질처럼 그냥 내버리는 거야. 그러는 동안 그놈들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혐오해. 그래도 그놈들은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계속 쥐어짜. 그러고 나서 사탕수수 껍질처럼 말라비틀어진 여자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다고 싫어하는 거야.” (<땀>, 198쪽)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런 작가와 작품들을 새로 발견한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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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08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잠자냥 님이 극찬하신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샬롯 퍼킨스 길먼과 메리 월킨스 프리먼의 작품이요. 너무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땀은 제목만으로도 뭔가 훅- 오네요.

저도 언젠가 얘기하려고 했는데 제인 오스틴을 딱히 좋아하지 않거든요. 너무나 유명한 작품<오만과 편견>도 저는 딱히 좋지를 않았고요. <엠마>도 별로였어요. 엠마는 읽다가 엠마 성격 마음에 안들어서 대차게 깠던 기억도 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죄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잠자냥 님도 당연히(!)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너무 반가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름 제인 오스틴 작품을 여러권 읽긴 했네요. 설득, 오만과 편견, 엠마, 노생거 사원까지. 많이 읽었다. ㅎㅎㅎㅎ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보다는 제인 오스틴에 관련된 것들이 더 재미있었어요. <비커밍 제인>이나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라거나. 후훗. 이런 재미있는 작품들이 만들어진걸 보면 제인 오스틴이 정말 큰 사람이긴 했는가봐요.

이번달 월급날에는 오늘 리뷰쓰신 이 책을 사야겠어요. 후훗. 책 사는 날들의 연속이네요. 하핫. 언제나 그랬듯이..



잠자냥 2020-06-08 15:09   좋아요 0 | URL
와 그래도 제인 오스틴 작품 많이 읽으셨네요. 전 그렇게 많이 읽을 생각조차 들지 않더라고요. 제가 사실 빅토리아시대 여성 작가들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로맨스와 결혼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 정말 따분하고 재미없............ 남녀가 핑퐁하는 그런 거 노관심.... 사랑하든가 말든가 노관심..... -_-;; 그 시절을 다룬 영화, 특히 제인 오스틴 작품을 영화로 만든 그런 영화들도 지루해서 미쳐버릴 거 같은;;; 그냥 생각만 해도 그 대사들이 막 오그라들어요;;; 휴........ 정신 차려! 사랑과 결혼이 전부냐 싶어서;;; -_-;; 암튼 다락방 님 반가워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08 15:15   좋아요 1 | URL
이렇게나 인기 많은 제인 오스틴인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권 읽었지만 전 제인 오스틴은 아닌걸로..... 그렇지만 새로 나온 민음사의 맨스필드 파크를 읽어보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음..써놓고 보니 읽어보고 싶다기 보다는 사고 싶은 거네요? 민음사 책장에 깔맞춤하기 위함인가...

정말 반가워요 잠자냥 님. 엉엉 ㅠㅠ 문학 좋아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안좋아하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20-06-14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4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5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5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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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0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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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1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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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7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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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누운 채로 느슨하게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벌떡 일어났다. 흥미롭고 놀라웠다. 《뒤렌마트 희곡선》에는 <노부인의 방문>, <물리학자들> 두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노부인의 방문>을  읽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극의 설정 자체에 감탄했다. ‘노부인’ 캐릭터도 강렬하다. 큭큭 곳곳에서 웃음도 터진다. 처음에는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참 섬뜩해진다. 그러고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몰락한 소도시 귈렌, 이곳은 쇠락할 대로 쇠락해서 기차도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평소에는 정차하지 않는 특급 열차가 멈춰 선다. 이유는 오직 하나 노부인 ‘클레어 자하나시안’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 세계가 주목하는 대부호이다. 이 노부인이 왜 이 마을을 찾았느냐고? 사실 귈렌은 그녀가 태어나고 10대 시절을 보낸 곳이다. 클레어, 이 노부인은 45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은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귈렌 시는 파산 직전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대부호가 된 클레어가 고향을 찾는다니, 이 노부인으로부터 한몫 단단히 챙기길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환대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시민 대표로 시장, 고등학교 교장, 목사, 의사, 경찰 등이 역 앞에 몰려나온다.

여기까지는 조금 평범(?)한 설정이다. 이 성공한 노부인은 늘그막에 이르러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왔고, 순박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녀의 돈을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노부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열차가 서지 않는 귈렌에 특급 열차를 강제로 세우는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승무원은 막무가내로 기차를 세우는 클레어에게 항의한다. 그러나 노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클레어 자하나시안’이야! 그 한마디에 승무원의 태도는 확 변한다. 몰라 뵈었다면서 이곳에서 열차를 세우는 건 지당하고 또 지당하십니다, 굽실굽실. 땅콩회항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부인은 그렇게 부자라면서 왜 열차를 타고 왔을까? 자기 차 없어? 의문이 드는데, 이윽고 역으로 마중 나온 이들을 통해 클레어의 비밀 아닌 비밀이 드러난다. 사실 그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의족을 한 상태이고 그래서 그 뒤로는 기차만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거의 온몸이 의족 상태인 것처럼 차디차다. 노부인과 오늘 함께 귈렌을 찾은 사람은 무려 그녀의 일곱 번째 남편이다. ‘오늘’이라고 말한 까닭은, 이 극에서도 클레어는 계속 남편을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더 재미난 것은 사람들에게 남편을 소개할 때이다. “일곱 번째 남편을 소개할게요. 모비 이리와요. 사실 진짜 이름은 페드로예요. 하지만 모비가 더 나아서요. 집사 이름인 보비와도 잘 어울리고요. 어쨌든 집사는 평생 필요하니 남편들이 집사 이름에 맞춰야죠.” 집사는 평생 필요하니까 남편들이 집사 이름에 맞추라고 하다니, 껄껄 웃음이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통쾌하다.

사고를 당한 후로 클레어는 가마로만 움직인다. 열차에서 내린 그녀를 위해 ‘로비’와 ‘토비’ 두 가마꾼이 달려온다. 이들은 맨해튼 출신의 갱 단원들로 사형 선고를 받고 뉴욕의 싱싱 감옥에 갇혀 있던 것을 클레어가 손을 써서 빼냈다. 한 사람당 100만 달러를 주고 오직 가마꾼으로 쓰려고 말이다. 이들이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는 이 극을 보면 알 수 있다. 클레어가 타고 다니는 가마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것으로 프랑스 대통령이 선물했다. 이런 설정들이 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준다. 그런데 클레어가 호텔로 옮겨간 뒤 그녀 뒤를 따르는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에 쓰이는 ‘관’이 아닌가? 이 관은 대체 무엇이며, 클레어는 왜 관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마을 사람들도 궁금하지만, 독자도 궁금해진다. 이 관은 <노부인의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윽고 벌어진 환영식에서 시장은 클레어에 관해 재빨리 입수한 정보를 갖고 작성한 연설문을 읊는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그의 연설에 따르면 지난날 클레어는 가난하고 늙은 과부에게 식량을 마련해 준 적이 있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감자를 사서 굶어 죽게 된 과부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붉은 곱슬머리 말괄량이는 이제 이 세상을 선행으로 넘치게 하는 부인이 되었다. 클레어는 수많은 여성 요양소, 무료 급식소, 예술가 원조 기금, 탁아소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입 발린 찬사가 끝나고 노부인은 흡족해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클레어는 별다른 감흥 없는 얼굴로 시장의 연설에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다.


클레어 : 나는 시장의 연설에 나온 아이와는 좀 달랐어요. 학교에선 매를 맞았고, 과부 볼에게 주었던 감자는 훔친 것이었죠. 일 씨와 함께 말이에요. 그 뚜쟁이가 굶어죽을까 봐 그랬던 게 아니라 일 씨와 잘 침대가 필요했던 겁니다. 숲이나 페터네 헛간보다 침대가 편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즉시 공표하기로 하죠. 나는 귈렌에 10억을 제공할 용의가 있어요. 5억은 시에 기부하고, 나머지 5억은 귈렌의 각 가정에 분배하겠어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10억을 주고 정의를 사겠습니다. 나는 정의를 원해요. 10억짜리 정의를  (<노부인의 방문>, 47~48쪽)


학교에서는 매를 맞았고, 연인과 함께 하룻밤 잘 침대가 필요해 훔친 감자를 이웃에게 주었던 지난날의 클레어. 그녀는 수많은 재산을 가진 대부호답게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지, 자기의 치부마저도 별 부끄러움 없이 밝힌다. 그러면서 귈렌 시에 10억을 제공하겠단다. 시에 5억을, 각 가정마다 5억을 나눠주겠단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정의’를 사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녀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이며, 그녀는 이 10억으로 ‘정의’를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클레어가 내건 ‘그 조건’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클레어의 이 제안 후,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사치스러워진다. 여자들은 외모를 꾸미고 남자들도 멋지게 차려입고, 다들 빚을 내서 평소에는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마치 5억이 벌써 분배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괴테가 이곳에서 머물렀고, 브람스가 사중주곡을 만든 인문주의 전통을 지닌 귈렌 시는 클레어의 10억 제안에 서서히 무너져 간다. 교장의 말대로 ‘유혹은 너무 크고 우리의 가난은 너무 혹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귈렌 시의 이 몰락은 원래 그렇지 않은 마을이 돈 앞에서 무너져 가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애초부터 그렇게 물질 앞에서는 한없이 이기적인 것일까.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뒤렌마트는 10억과 ‘정의’ 실현이라는 발칙한 제안으로 인간성과 공동체, 정의와 자본의 문제를 질문한다.


클레어 : 인간성이란 말입니다. 신사 양반들, 부호들의 돈주머니에나 적당한 겁니다. 내가 가진 재력이 세상 질서를 만들어 내지. 세상이 날 창녀로 만들었으니, 이제 내가 세상을 유곽으로 만들겠어요.  (<노부인의 방문>, 100쪽)


두 번째 작품인 <물리학자들>의 배경은 어느 요양소이다. 이곳은 사실 정신 병원이나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을 앓는 고위층 인사들을 수용하고 있다. 이중 특별한 병동이 있는데, 이곳에는 과대망상증이나 정신분열증에 걸린 물리학자 세 명이 격리 수용되고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이 뉴턴이라고 생각해서 18세기 초 복장으로 그 시절처럼 가발을 쓰고 지낸다. 또 다른 사람은 스스로 아인슈타인이라고 생각하며 틈이 날 때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나머지 한 명인 주인공 ‘뫼비우스’는 솔로몬 왕이 나타나 우주의 비밀을 계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틀어박혀 살아간다. 이 병원 의사인 찬트 박사는 이 물리학자들이 온순하고 말썽 부리지 않는 환자들이라고 보증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희곡은 뜻하지 않은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반전 등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면서, 사회 속의 개인이라는 철학적 질문과 함께  기괴한 상황설정을 통해 섬뜩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흔히 그렇듯이 병원 안에 갇힌 자들이 비정상인지, 아니면 병원 밖 세상이 비정상인지 질문하기도 한다.

이 물리학자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있지만 전략이 다를 뿐이다. 한 사람의 목표는 물리학의 발전이다. 그는 물리학의 자유를 보존하려고 하지만 물리학의 책임은 부인한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은 특정한 나라의 권력 정치에 대한 책임이란 명목으로 물리학에 의무를 지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의 이론의 위험성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신 병원에 유폐시켰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 사람의 대비를 통해 이 작품은 과학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인류의 책임 문제를 질문한다. <뒤렌마트 희곡선>의 두 작품은 모두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 흥미롭게 읽힌다. 그로테스크한 설정으로 인해 ‘저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폭주하는 자본과 과학 앞에서 개인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빛나는 작품은 날카롭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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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05-1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글만으로도 흥미가 생기네요^^ 중간 중간에 웃음도 나오네요 ㅋㅋ

잠자냥 2020-05-19 15:48   좋아요 1 | URL
실제로 읽어보시면 아주 마음에 들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ㅎㅎ

초란공 2020-05-1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글이 재미있어서 저혼자 웃었네요 ..^^

Falstaff 2020-05-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골때리는 블랙 코미딥니다.
이 여사님의 성姓 ‘자하나시안‘이 돈 많은 세 명의 남자, 무기재벌 자하로프, 선박왕 오나시스, 석유재벌 굴벤키안의 합성이라더군요. ㅋㅋㅋ 저도 주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잠자냥 2020-05-19 16:38   좋아요 0 | URL
푸하하 ㅋㅋㅋㅋㅋ 어쩐지 성이 좀 이상타했더니 ㅋㅋㅋㅋㅋ
암튼 다른 작품도 다 찾아 읽으려고요.

다락방 2020-05-20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 정의가 어떤건지, 마을 사람들이 또 마을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요. 잠자냥 님 리뷰 읽을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그 책을 찜해가지고 돌아가니 참 큰일입니다. 방금전에도 저는 책을 주문했는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독서인생이란...뭘까요?

그나저나 최근에 민음사 고전 안산지가 좀 된 것 같은데, 이 책 덕분에 민음사 고전들 사이에 한 권 더 꽂아 넣을 수 있겠네요. 이 고전전집이라는 것이 모아두면 참 뽀대가 나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핫

잠자냥 2020-05-20 09:1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ㅎㅎ 여기저기 웃기는 부분도 많고요. ㅎㅎ
와 방금 전에도 책 주문하셨어요? 부럽 ㅋㅋㅋㅋㅋ(전 아주 자제중... 극기 또 극기! ㅋㅋㅋ)

저도 민음사 고전 시리즈 안 산지 좀 됐어요. 이것도 예전에 사둔 책. 그래도 이런 고전전집은 사두면 이렇게 언젠가 읽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뽀대 나기도 하고요. ㅎㅎ
 
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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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운명 같은 게 있다. 아니, 운명이라기보다는 잘 알지 못하는데도 왠지 호감이 가는 그런 책. 처음 보는데도 분위기나 느낌이 좋아서 왠지 눈길이 가고 그래서 알고 싶고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 같은 책. 그래서 급기야 읽게 되는 책. 읽고 나서는 아, 그래 역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어, 확인하게 되는 책.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가 내겐 그런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음에도 이 책은 왠지 눈길이 갔고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그런 중에 현대 러시아, 그것도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면서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톨스토이 등 대문호라는 그들의 작품 중에 그려진 러시아 여성이 정말 러시아 여성의 표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모습과는 또 다를 것이다. <티끌 같은 나>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러시아 세계를 황홀하게 거닐게 된다.  

표제작인 ‘티끌 같은 나’에는 그동안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만나지 못한 새로운 여성이 등장한다. 천사에서 유래한 이름인 ‘안젤라’는 카자흐인 마을인 마르트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한때 교사였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이제는 소를 돌보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게을러서 거의 방 안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이 작은 마을은 꿈을 이루기에는 한없이 좁은 우물일 뿐이다. 안젤라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자 무작정 모스크바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키라 세르게예브나’를 알게 되고 그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기거하면서 가수가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지만 재능보다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안젤라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가 없고, 안젤라는 이 큰 도시에서 계속 가사도우미, 청소부, 비서, 심부름꾼 역할 등을 하며 노동에 지쳐만 간다. 청소, 다림질, 풀 먹인 셔츠가 꿈에 나올 지경이다. ‘노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 한 마리를 잡겠다며 남이 싸 놓은 똥을 치우고 끊임없이 닦고 청소하느라 세월을 낭비’한다. 과연 안젤라는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중편은 그야말로 ‘티끌 같은’ 안젤라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러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과정을 지난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안젤라’라는 캐릭터는 지금까지 러시아 문학에서 본 여성 인물과 조금 다르다. 젊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돈 맛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당근이 가장 달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이다. 순박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착취만 당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연코 싫다고 말할 줄도 안다. 그녀의 당당한 면은 가수 오디션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무작정 “옷을 벗으라”는 요구에 “왜요?”라고 묻는 장면이나 자신을 좋아하게 된 부잣집 남자 ‘니콜라이’에게 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그 집의 부유한 집주인의 정부가 된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안젤라는 그 부자 남자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키라는 니콜라이의 정부가 된 안젤라에게 부자를 낚았으니 이제는 그의 아이를 낳아 그를 오래도록 잡아두라고 말하는데, 안젤라는 되묻는다. “뭐 하러 그렇게해요?” 사실 니콜라이 또한 안젤라가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돈 많은 친구들을 보면 애인들이 앞 다투어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돈과 안락한 생활을 아이를 앞세워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안젤라는 다르다. 아이는 언제든 또 낳을 수 있다며 아이를 낙태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니콜라이는 내게 돈이 많은데 대체 왜 아이를 지웠느냐고 묻는다. 안젤라는 자신은 ‘무일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자 애인은 있지만 그의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닌 것이다. 니콜라이를 얻은 그녀에게 그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안젤라는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만의 성공, 그 길을 가기까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노동하고, 사랑하고, 자기 재능을 꽃 피우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그런 모습들이 인상 깊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심은 ‘키라 세르게예브나’가 맡고 있다. 키라는 남편과 함께 살았는데 이름은 인노켄치로, 그는 안젤라 아버지와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다 모두 빈둥거리면서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키라는 하나뿐인 아들을 애써서 대학 철학부에 입학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온갖 현학적인 용어나 철학 사조는 잘 알아도 무능력한 탓에 여자가 오래 붙어 있지 못한다. 때문에 안젤라처럼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일도 잘하고 재능도 있는 (그러나 돈은 없는 가여운) 아이가 자기 아들의 짝이 되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둘을 이어주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티끌 같은 나’를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일하지 않고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라서 게으르고 무능력하지만 폭력을 쓴다든가 등등 ‘악한’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들 또한 이 작품에 나오는 여성 못지않게 인생에 시달리는 나약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키라 세르게예브나는 평생 거물을 낚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잉여 인간 취급을 받는 인노켄치와 함께 살았다. 사실 그 대단한 거물들은 막상 가까이에서 겪어 보면 하나같이 배신자에다 비열한 인간뿐이었다. 반면 인노켄치는 한결같이 믿음직했다. 즉 완벽한 사람은 없다.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수도 없이 갈등하게 된다. 옷으로 비유하면 리더십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외출복이고 인품은 평상복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 몫이다. (‘티끌 같은 나’, 27쪽)

그녀는 두 부류의 남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돈 많은 남자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일이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티끌 같은 나’, 96쪽)


나는 첫 번째 작품인 ‘티끌 같은 나’보다 두 번째 작품 ‘이유’가 좀 더 좋았다. ‘이유’의 주인공 또한 여성이다. ‘마리나 이바노브나 구시코’는 바쿠의 평범한 러시아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청소년기를 지나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교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삶은 그리 쉽지 않다. 남편은 자신을 온몸으로 사랑해주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그녀는 살아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 사랑을 나눌 때도 어디 가서 돈을 구할지, 내일 아침에는 뭘 만들지 시험을 어떻게 볼지 등을 고민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태어나고 딸이 태어나고 그녀의 삶은 한층 더 버거워진다. 더는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한 마리나는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하는데, 그러자 남편은 곧 그녀를 떠난다.


모성애는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돈과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있고 아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힘만 든다면 스스로 사람이 아닌 비 맞는 한 마리 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유’, 182쪽)


젊은 나이에 남편이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마리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는 중에 루스탐이라는 새로운 사랑도 찾아온다. 이 사랑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모든 게 그녀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보니 아들도, 딸도 자기가 바란 대로 자라지 않았고, 심지어 알코올중독 며느리에 범죄와 연루된 사위까지 가족이 되어 있다. 왜 다른 이들은 사람답게 사는데 내 자식들만 이 모양일까? 도대체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러시아 지식인들이 자주하는 질문인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려 봐도 이미 늦었다. 그토록 사랑한 루스탐과도 종교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고 이제 완전히 홀로 남겨진 마리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그렇게 죽고 말 것인가.

‘이유’의 마리나는 조금 자기멋대로인 구석이 있지만 억척스러우면서도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성품이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생(아니 여러 사람을)을 구한다. ‘루스탐’과 ‘안나’가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절망에 빠져 죽고 싶은 순간에 루스탐이나 안나가 마리나를 살게 해주기도 했다. 마리나와 안나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속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루스탐과 마리나가 재회하는 장면이다. 루스탐과 마리나의 관계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나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그 시절의 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불륜이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그들. 젊음도 청춘도 모두 사라진 뒤 생의 온갖 고통을 겪고 다시 만난 그들의 모습에서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루스탐은 마리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서 과거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다름 아닌 젊음의 눈부심이었다. 대신 희미하나마 슬라브인 특유의 선이나 파란 눈은 여전했다. 루스탐은 서서히 그녀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삶은 그들을 찌그러뜨리는가 하면 포옹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집시들처럼 소중한 것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고 아픈 데도 없으며 몸 안에는 마트료시카처럼 옛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이유’, 317쪽)



루스탐과 마리나 뿐만이 아니다. ‘첫 번째 시도’의 ‘마라’와 ‘디미치카’, 서로 헤어졌지만, 중년이 되어 한 사람은 아픈 몸이 되고, 그런 그 사람 곁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돌봐주다가 허무하게 돌아가는 또 다른 한 쪽의 모습. 그 장면 또한 연민 가득하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하는 전남편이 약병을 놓고 간다. 그걸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차림새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가 전남편의 모습을 쫓는 마라. 마라는 열차 맞은편에서 그를 발견한다. 그는 시선에 초점이 없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 볼 수없는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거였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기운이 빠지면서 절망과 고독이 그를 덮친 것이다. 디미치카는 아내가 배신해도, 뻔뻔해도, 반송장이어도 그녀만 있으면 됐다. 무너진 남편의 모습,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마라는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 그저 목이 메어 온다. 한때 사랑했지만 헤어진 채로 늙어버린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은 인생의 모든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눈물이 난다.

이렇게 진지하게 썼지만 <티끌 같은 나>는 뜻밖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위트와 유머러스함도 빛난다. 조용조용 담담하게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꿈과 욕망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다정한 어조로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인용이 다른 때보다 많다. 그 문장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지치고 매일 입는 작업복처럼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내 미래는 스텝 지역처럼 길고도 단조로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동안 서로 낯선 사라처럼 말없이 걷기만 했다. 어쩌면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었다. 내 삶이 딱해서 아이가 우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시도’, 358쪽)

바다 멀리, 한편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깊은 바다에 배가 떠 있었다. 선장이 망원경으로 바닷가와 그곳에서 조용히 회전하는 발레리나를 발견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대지와 바다, 슬픔, 새, 사람 그리고 그날 하루와 작별 인사를 했다. 하늘 곳곳이 분홍색과 산딸기 색으로 어지러이 물들었다. 어찌나 아름답고 충만한지 누군가와 이별을 앞둔 것 같았다. (‘남이랑 우리가 무슨 상관이죠’. 411쪽)

 
요즘 나는 신간을 사보면 곧 중고로 되판다. 넘치는 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뒤 책꽂이에 잘 꽂아두었다. 세월이 흘러 읽으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그때는 문장, 문장 연필로 밑줄을 그을 것이며, 내가 만일 필사를 한다면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이 작품들을 할 것 같다. 이 이의 다른 작품을 장바구니에 바로 담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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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덕에 이렇게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번역된 다른 작품들도 있군요. 역시 덕분에 저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저는 일단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저도 러시아 여자작가의 글은 읽어본 기억이 없지 뭡니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러시아에 여자 작가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요.
아무튼 조만간 이 책에 대한 땡투가 들어온다면 저임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훗.

잠자냥 2020-05-14 14: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어도 러시아 여성 작가 글을 읽어본 게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 책이 다락방 님 마음에도 꼭 들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땡투 감사합니다. ^____________^

krasibaya 2020-05-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어봐주시고, 훌륭한 리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잠자냥 2020-05-20 14:18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읽어 보니 이 책과 관련이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출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11-01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