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열렬히 믿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까. 때로는 그런 굳건한 믿음이 부럽기도 하다. 믿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흔들리더라도 믿는 것인가. 신이 존재하는가? 나는 답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런 얼굴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 말하는 신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종교를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질 생각도 없지만(그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나 스스로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그 어떤 종교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가질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럼에도 궁금하다.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을 믿는 것일까. 그들이 믿고 기대고 의지하는 신은 과연 어떤 신인가.

요즘 손석춘의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를 읽고 있다. ‘기독교를 바로 알기 위한 12개의 인문학적 통찰’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그 안에서 신과 예수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저자는 기독교 목회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기자 시절 국내 성직자들과 로마를 비롯한 유럽, 미국, 러시아의 기독교인들을 취재하며 기사와 칼럼을 썼고, 대학으로 옮긴 후에는 ‘종교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책으로 펴내왔다. 이런 점들이 나 같은 독자, 즉 ‘교양’으로서 기독교를 공부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을 두 범주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노라고 밝힌다. 첫째는 “기독교를 ‘개독교’로 낮춰 보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부르대는 사람이나 망언과 성 추문으로 종종 지탄받는 목사들을 보며 기독교란 으레 그런 종교로 치부하는 사람들” “개중에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적대적인 사람”- 이 첫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 “더러는 모태 신앙, 더러는 기독교가 세운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교회를 나간 사람” “개중에는 방언을 하는 사람”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 이 두 범주 가운데 하나라면, 꼭 이 책을 정독하길 바란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전자라면 기독교를 더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고, 후자라면 더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이어 말한다. “자신이 주님의 뜻을 확신하는 ‘얕은 예단’은 기독교를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종교’라고 보는 ‘좁은 속단’ 못지않게 잘못되고 위험한 믿음”이라고. 이런 말만으로도 어쩐지 속이 시원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철저히 첫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좀처럼 좋아할 수 없는 편협한 인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앙을 열렬히 간증하며 강요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 같다.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가치관이 맞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을 만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결국 이런저런 모순, 서로 결코 화할 수 없는 지점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더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예수만 믿으면 이 현세에서 어떤 짓을 저질러도 천국에 갈 수 있노라 자만하는 자들이 싫다. 신을, 하나님을, 예수를 입에 담으면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또 때로는 성적으로 착취하는 신을 대리한다는 자들, 목사들, 그리고 그들의 종교가 싫다. 간음하지 말라 부르짖으면서 정작 자신의 일상에서는 부정부패를 일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자위하는 자들이 싫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을, 예수를 믿기에, 교회에 나가서 헌금을 하기에 천국에 간다고 자부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마주친 이 땅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그랬다. 당신 주변의 그들은 좀 나은가? 게다가 이제 그들은 정치 세력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알기 마련인 대형 교회들은 어떻게 저렇게 세를 불릴 수 있었을까. 일종의 종교 사업이다. 신을 믿고 예수를 믿노라 성경 구절을 설파하면서 그렇게 막대하게 쌓은 부를 세습하면서까지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들이 그토록 맹신하는 성경에서 이르길 “부자가 천국에 들어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데도. 그들은 예수천국이라 천국행이 언제든 가능한 것인가? 쓴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스트인 미하일 바쿠닌이 말하는 신은, 종교는 내가 미워하는 신, 내가 혐오하는 종교의 모습과 닮았다. 바쿠닌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를 폐지해야 한다.” (미하일 바쿠닌, <신과 국가>, p,45) 단언한다. 그에게 신은, 종교는, 그리고 그런 신과 종교를 앞세우는 국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억압하고 그렇게 길들여 착취하기 때문이다. 바쿠닌이 말하는 신의 모습은 야비하다. “그는 수십억에 이르는 가련한 인간들의 삶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그들을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은 다음에야 비로소 남은 자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이 신성하고 영원한 사랑을, 마찬가지로 신성하고 영원한 분노와 조화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늘 피와 희생을 갈망하는 자기 분노를 달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속죄의 제물로 보낸다.” 그리고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약속한 천국에는 오직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즉 오늘날과 미래 세대의 압도적 다수는 영원한 지옥 불에 타게 될 것이다.” 바쿠닌은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과 괴물 같은 교리들을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한복판에도 여전히 유럽 전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정부의 명령에 따라 공공연히 말해지고 가르쳐지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정부야말로 “조직적으로 인민 대중을 독살하고, 고의적으로 어리석게 만들며 자기 이익을 위해 그들을 우민화하는 주범들”(같은 책, p,30~31)이다.

바쿠닌이 보는 신과 종교의 폐단은 명확하다. “종교는 인간 해방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이성을 민중 안에서 말살하고 민중을 어리석음에 빠뜨림으로써 노예 상태의 필수 조건을 만들어낸다. 종교는 인간 노동의 존엄을 훼손하고 인간의 노동을 굴욕과 예속의 징표이자 근원으로 만든다. 종교는 인간 정의에 대한 개념과 감각을 파괴하며, 항상 그 저울추를 승리한 악당들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그들은 신의 은총을 입은 특권적 존재로 간주된다. 종교는 인간의 자긍심과 존엄을 죽이고 오직 굽실거리는 자들과 비천한 자들만을 보호한다. 종교는 민중의 가슴속에서 인간적 형제애의 감정을 질식시키고, 그 자리를 잔혹함으로 채운다.”(같은 책, p.42)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즉 불복종과 지식이라는 행위 다시 말해 반항과 사유를 통해 자신의 역사, 즉 인간 고유의 발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전혀 갖지 못하도록, 영원히 짐승처럼 무지한 존재로, 그리하여 자신이 인간의 창조주이자 주인이 되어 노예처럼 부려야 하기에 인간이 사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쿠닌이 보기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당연히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최고 권위를 가진 주인일 것이고 그런 주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노예이다. 인간이 노예라면, 정의도, 평등도, 형제애도, 번영도 불가능하다. 바쿠닌은 인간의 자유를 사랑하고 열망하며 인간의 그 자유가 인류 안에서 우리가 경배하고 존중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 조건이라 믿기에 마침내 이렇게 선언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노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책, p.41)

아나키스트이므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두 가지 권위로서 신과 국가를 고발하는 미하일 바쿠닌. 그에게 이 두 축은 인간 해방을 위해 반드시 부정되어야 할 권위이다. 초월자인 신, 그리고 종교는 쉽게 독단으로 타락할 수 있고, 국가는 쉽게 폭력으로 타락하며, 교육은 종종 교화로 변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쿠닌이 말하는 신과 종교는 그것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도구화하면서 잘못 사용했기에 타락한 것은 아닌가? 손석춘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종교의 폐단을 언급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기독교는 ‘지배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대다수 민중에게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착하게 살면 죽은 뒤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교하는데, 그 법과 질서는 지배계급이 만든 것으로 그들의 재산과 이권을 수호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레닌-스탈린 체제 러시아에서는 기독교(정교회)가 위와 같은 관점에서 체제의 적이자, 억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체제 내 결속을 위해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 억압 속에서도 러시아인 대다수는 정교회를 버리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질문에 한 러시아인은 이렇게 말한다.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힘을 주니까요.” 이 소박하한 대답에서 나는 인간이 신을 믿는,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손석춘 또한 이 대답에서, 자신의 오랜 의문이 풀렸노라 밝힌다. 비단 러시아인들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인생에서 절망을 느끼거나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힘을 줄 수 있다고.

손석춘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인구가 급성장한 까닭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를 국시처럼 삼았으며 미군이 38선 남쪽에 진주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미국 개신교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이 지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교회를 나가면, 작게는 초콜릿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크게는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 개신교의 ‘인맥’은 ‘입신양명’의 튼튼한 ‘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인구가 절반 아래로 줄었고(약 48%), 기독교인조차도 기독교인을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다. 

손석춘은 묻는다. “구성원들이 성경을 많이 사랑하는 사회가 도덕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빈곤을 사실상 퇴치한 사회가 도덕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많은 구성원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회가 윤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린이와 노인, 고아의 복지를 위해 전문적인 보살핌을 제공해주는 사회가 윤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개신교인 루터교의 전통 속에서 오래 살아왔던 대다수 북유럽 사람들은 성경이 신의 말씀을 그대로 적은 책이라거나, 예수가 처녀에게 태어났고 죽은 뒤 부활했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더는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고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일, 그것이 북유럽 사람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고갱이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고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일, 이것은 예수가 말한 마태의 기록에 정확히 언급되어 있다.”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복음 25:31~46)


내가 처음 신의 존재를, 예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궁금해 하기 시작했던 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인 때문도 아니고 같이 교회를 가자고, 성당을 가자고 권유 또는 강요했던 주변 인물 때문도 아니었다. 오래전 읽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는 신을 양파라고 부르는 ‘오쓰’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말한다.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엔도 슈사쿠, <깊은 강>, p.177)이라고. 오쓰는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거창하고 절대적인 신이 아닌, 껍질을 벗겨내도 끝내 눈물을 자아내는 양파야말로 예수의 참모습이라고 말한다. 양파 같은 신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인간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내어주는 존재이다.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같은 책, p.94)

손석춘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예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자기 성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면서 성경에서 예수가 지상에서 가르친 고갱이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랑”임을 거듭 강조한다. 오쓰의 양파 이론과 맞닿는 지점이다.


신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신 안에 살며 신도 그 사람 안에 살고 있다.(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요한1서 4:16)

   
바쿠닌은 “흔들리고 흐릿한 불빛은 아예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 빛은 뒤따르는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신과 국가>,p.99)라고 말했다. 지금 여기 이 땅의 신은, 기독교는 흔들리고 흐릿한 불빛은 아닐까. 나는 그 흔들리는 불빛만을 보고 신을 안다고 예수를 안다고 말했던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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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9-14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 시절 충실히 교회를 다녔고, 그래서 교회를 미워합니다. 제가 미워하는 건, 신이 아니라 교회인데요, 왜냐하면 그 교회 안에는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선함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그런데 정말 뭐 다를 바가 없고, 그 안에서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며, 어차피 똑같이 폭력이 일어나니까요. 게다가 무엇보다 싫은건, 특히나 기독교인들의 경우,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한다는거에요. 그게 진짜 제일 싫어요. 그렇지만, 저는 믿는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그가 무엇인가를 믿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힘이 있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뚜벅뚜벅 가면서 옳은 일을 행하려는 자들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그래서 저 역시도 종교와 신앙에 관한 책을 간혹 궁금해져서 읽거나 사곤 합니다.

저는 정희진 선생님에 대해서도 왜 대학에서 하필 종교학을 선택했을까, 하고 종교학을 학문으로서도 좀 알고 싶어요. 거기엔 어떤 까닭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학문으로써의 종교학은 어떤것일까. 아, 세상엔 왜이렇게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을까요?

좋은 페이퍼 잘 읽고 장바구니에 또 책 담아갑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도 있어서, 없는 책 담아갑니다. 이만 총총.

잠자냥 2026-09-14 15:28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교회에 단 한 번도 발 들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저도 어린 시절에 친구 따라 가보기도 하고 철들고 나서는 사귀는 사람 따라서 가보기도 하고(성당/교회) 그랬지만 거기서 주로 목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었던 거 같습니다... 목사들의 설교도 그렇고요. 아마 그 사람들이 싫어서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크게 혐오감을 갖게 된 것 같고요. 아무튼 종교는 좀 죄의식으로 사람을 억압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죄의식조자 없으면 인간은 또 얼마나 오만방자한 존재가 될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도 정희진 선생님이 학부에서 전공을 종교학 선택한 거 참 궁금했어요. 단지 학력고사 점수 때문은 아닐 거 같고....

망고 2026-09-14 20:30   좋아요 0 | URL
우와 잠자냥님 사귀는 사람 따라서 교회도 가셨어요? 제가 생각하는 잠자냥님 이미지랑 달라서 깜놀ㅋㅋㅋㅋ 사귀는 사람이 ˝교회가자˝ 하면 시크하게 ˝너나 가˝ 이럴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잠자냥 2026-09-15 09:44   좋아요 0 | URL
사귀는 사람한테는 웬만하면 맞춰주는 편입니다~ 관대한 편 ㅋㅋㅋ 그래도 교회는 좀 싫어서 계속 거절했는데.... 너무 졸라대서 몇 달 같이 다녀준 적 있어요. 무작정 비판 말고 조금이라도 알고 비판하자 싶은 심리도 있었고 성경은 학문적으로 궁금했거든요 아무튼 몇 달 다니고 이젠 도저히 못 가겠다! 했는데 몇 달이라도 같이 가줘서 고맙다고 했다능...
그리고 저는 그 수확으로 ㅋㅋㅋㅋ 교회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떨어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저는 좋아하는 작품임..(엥?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9-15 10:27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이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상대방에게 웬만하면 맞춰 주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한가봅니다. 오래 가는 관계는 다 이유가 있는것 같아요. 짧게 끝나는 관계가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요. 멋지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락방 2026-09-1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잠자냥 님은 너무 지적이야. 지적이고 운동하고... 완전 내 스타일 ㅠㅠ

잠자냥 2026-09-14 15:29   좋아요 0 | URL
전완근이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9-15 14:27   좋아요 1 | URL
🤣🤣🤣 내스타일이란 말에 바로 방어한다 ㅋㅋ

바람돌이 2026-09-1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 동네 교회 집사님 겸 친구 아빠. 그분이 꼬드겨서 교회를 갔는데 왜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안 가게 되었어요. 그 이후 한 학년에 2학급밖에 없던 이 시골 학교에서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만 보면 왜 교회 안 나오느냐고, 자꾸 물어보심. 지금 생각하면 참 온화하고 좋은 분이었는데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 선생님 피해다녔고, 친구 집에도 놀러가지 않음요. ㅎㅎ 내가 지금 궁금한건 그 때 당시 교회는 과자도 주고 했는데 왜 안갔지? 그 어릴 때도 나는 주체적이고 과자 따위의 작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영혼이었나? 저는 그 때의 제가 더 궁금합니다. ㅎㅎ

지금의 저는 종교는 일종의 인간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특정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인간이 정말로 외롭고 힘들고 우울해질 때 주변에 어떤 종교인이라고 있고, 그기 나의 손을 잡아주면 ㄱ냥 본능적으로 따라가게 되지 않나. 그래서 종교는 지상천국이 도래하지 않는 한, 아니 인간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으리라 보고요. 그래서 그냥 존재를 받아들이고 깊게 생각하지 말자 뭐 그렇습니다.


잠자냥 2026-09-15 09:56   좋아요 1 | URL
저는 근데 선생님이 종교 강요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미션스쿨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릴 때. 근데 국내에는 미션(기독교를 기반으로 한)스쿨 정말 많지요? 대학에서도 그래서 교양으로 꼭 들어야 하고 막...... 에휴

과자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로운 꼬마 바람돌이! ㅋㅋㅋ 귀엽네요.

요즘에도 부활절 기간엔 길에서 막 삶은 계란 나눠주고 그러던데... 전 속으로 그런 생각해요. 요즘에 누가 아무나 막 주는 걸 먹을까...? 저 계란은 한 판에 몇 천 원하는 난각번호 4번! 완전 질 낮은 계란이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09-15 10:30   좋아요 1 | URL
저 꼬꼬마일때는 학교에서 뭐든 가능했으니까요. ㅎㅎ 요즘 시대에도 미션 스쿨이 종교수업을 하면서 남아있
는건 저도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애들이 학교를 선택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일반 인문계는 뺑뺑이 돌려서 가는데 말이죠. 학교에서 종교수업은 전면 폐지해야 된다고 쭈욱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 정말 힘이 세요. ㅠ.ㅠ

부활절 길에서 나눠주는 계란에 대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했는데, 그냥 먹을 거 주는건 좋은거지라고.... ㅎㅎ 앞으로는 안 받아먹겠습니다. 난각번호 4번일지도라니.... 음 그건 좀....

건수하 2026-09-14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어머니에게 이끌려 성당에 꼬박꼬박 다녔고, 주일학교에서 자꾸 질문해서 수녀님들이 좀 꺼리기도 했는데요...
예전엔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면, 요즘은 차라리 ‘진심으로 믿을 수 있으면 편하겠다‘ 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 중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요즘 내세 혹은 평행우주를 너무 당연시하는 말을 많이 듣다보니, 이 사람들 혹시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그것도 믿고싶어지네요.

잠자냥 2026-09-15 09:53   좋아요 1 | URL
성당 다니시는구나. 성당은 그래도 좀 거부감 없는 편입니다. 성당에도 몇 달 다녀봤는데요(20대 초반에 ㅋㅋ) 전 앉았다 일어났다 여러 번 해야 하는 것만 빼고는 괜찮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9-15 10:02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때까지는 꼬박꼬박 다녔고 중학교 때부터 잘 안가고 엄마가 끌고 가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쯤 되니까 가서 계속 졸아서 부끄럽다고 가자고 안 하시더라고요? ㅋㅋㅋ 그 뒤로는 안갔습니다.
저처럼 영세받고 안 다니는 사람을 ‘냉담자‘ 라고 부르는데 30년 가까이 안 갔으니 요즘엔 그냥 무교라고 합니다.

잠자냥 2026-09-15 10:55   좋아요 1 | URL
계속 졸아서.... 🤣ㅋㅋㅋㅋㅋ 작전 아니었습니까!?
냉담자&건수하 잘 어울려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6-09-15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첫번째 부류인데요 한번도 교회든 성당이든 다녀본 적 없고 믿어본 적도 믿을 생각도 없고.. 신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는 진짜 힘들어보지 않아서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 거라고도 하던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맞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근데 미국 와서 교회를 벌써 여러번 갔는데요 ㅋㅋㅋ 애들 여름캠프를 싸게 보낼 수 있다는 목적과 ㅋㅋ 미국교회는 한번 가보면 좋다는 추천에 궁금해서요. 미국 교회 가서 서비스 참여도 해봤는데 찬양이 콘서트 분위기라 재밌었고 목사님 설교는 듣기평가 하는 기분으로 들었는데 나름 좋더라구요? 저도 종교 믿을 생각은 여전히 없지만 학문적으로는 좀 알아야하지 않나 하는 분야라.. 아무튼 잠자냥님 비롯 여러분들의 종교 히스토리(?)를 들으니 흥미진진하네요 ㅎㅎ

잠자냥 2026-09-15 14:58   좋아요 1 | URL
듣기 평가 ㅋㅋㅋㅋ 미국 교회 체험판!! ㅋㅋㅋ
여름캠프를 싸게 보낼 수도 있군요! 교회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나이 들어 노년이 되면 왜 다들 교회에 찾아 가는가 좀 궁금하기도 했는데(인적 교류가 적어지니까 외로워서? 정말 천국 가고 싶어서? 이런 추측만 했거든요), 소준철 <가난의 문법> 읽다 보니 자신의 장례 때 사람이 많이 오기를 바라는 심리도 있고, 독거노인 같은 경우는 교회에서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고 심지어 묫자리를 제공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이런 점들이 혼자 사는 노인들한테는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더군요.

다락방 2026-09-15 16:25   좋아요 1 | URL
특히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교회는 친목을 다질 수 잇는 장소이기도 해요. 그곳에서 또래 분들을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럽니다. 저는 그래서 친구 없는 우리 아빠가.. 더 교회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빠는 안다니시고.. 워낙 사교적인 저희 엄마는 교회를 다니시고..

저 싱가폴 있을때 현지 친구가 전혀 없었잖아요. 베트남에서 온 학급 친구가 저에게 교회 다니라고 하더라고요. 교회 가면 친구 생긴다고, 그래서 자기도 싱가폴 와서 교회다닌다고 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가진 않았습니다. ㅋ

독서괭 2026-09-16 08:37   좋아요 0 | URL
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완전히 문화로 자리잡아서 일요일에 교회 가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오픈된 느낌이고 그냥 누구나 와서 놀다 가~ 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한인들은 한인교회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저는 안 다닐 거긴 합니다만 .. ㅋㅋ

케이 2026-09-16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쩌다 보니 구한말부터 기독교를 믿었던 증조할아버지를 둔 집안에서 태어나 신을 믿게 된 사람인데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절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그 경계를 넘으면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곡 중에 XTC의 Dear.God 이라는 곡이 있는데 신 너는 인간이 만들었고 너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고 너 때문에 세상에 빈곤이 존재하고 질병이 존재하고 난 너를 절대 절대 안믿어!!! 라는 가사거든요.
그런데 결국 이 노래를 쓴 사람이 슬픔에 빠져 원망하고 울부짖는 대상은 신이잖아요. 무신론자라면 신한테 편지를 쓰지도 않았겠죠.
저도 이 가사를 쓴 사람과 같은 것 같아요. 평소에는 니가 교회를 다닌다고??? 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지만, 궁지에 몰리면 결국 기도하고 제 정신 차리는 것 보면 난 영원히 무신론자로 살 수 없단 생각이 듭니다.
저희 시어머니가 대한민국에서 최고 큰 교회에 다녀서 하는 수없이 딱 한번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요. 그들의 셀링 포인트는 우리는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이더군요. 그들이 믿는 건 교회도 목사도 아닙니다. ㅋㅋㅋㅋ 쪽수죠. 그냥 그 다수의 힘을 믿는 것 같아요. 으윽. 저는 교회를 다니지만 그들이 너무 싫습니다. 근데 또 성경을 믿기에 언젠가는 그 교회가 돌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라고 믿고 있어요 ㅋㅋㅋㅋ (어처구니없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음.)
특히 통성기도 시간은 모태신앙인 제가 보기에도 기괴하고요. ㅜㅜ 하지만 또 결국에는 기도를 하게 되겠지요??? Dear.God 노래처럼. 통성기도는 죽어도 안하겠지만.
신이 뭔지도 모르면서 믿는 게 신기한데 저는 그렇네요. 말씀하신 책을 교회 다니는 제가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잠자냥 2026-09-16 14:20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대형 교회들은 인맥과 출세(또는 결혼 ㅋㅋㅋㅋ)를 위한 도구가 된 지 오래인 것 같은데... 뭐 제가 대형 교회를 직접 다닌 것은 아니라서 추측일 뿐입니다만.... 아 제가 전에 몇 달 다닌 교회에 바로 그 유명한 대형 교회에서 옮겨오신 분이 있었는데요. ㅋㅋㅋㅋㅋㅋ 그분이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긴 거기 교회 출신이라고 늘 자랑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교인들이 뒤에서 욕하는 걸 들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특유의 요란한 통성 기도를 하는 것도 다들 못마땅해 하더라고요(다행인지 제가 잠깐 다닌 그 교회는 그런 분위기는 아닌 터라).

저는 신을 믿는다고 꼭 다 교회를 가야하는가 싶기도 해요. 자기 안에 신이 있으면 자신의 집도 자기만의 교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