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사람과 고기>(2025)를 보았다. 개봉 당시에는 왠지 뻔할 거 같은 느낌적 느낌 때문에 패스했는데 극장에서 보고 온 동생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한번 보라고 권해서 일단 왓챠 보관함에 담아뒀다. 한데 이 영화는 다름 아닌 폐지 줍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라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퍽퍽한 한국에서 그 퍽퍽한 삶의 단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폐지 줍는 노인들 이야기를 화면으로 굳이 봐야 하는가 하는 내적 갈등이 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의 장점은 자막을 볼 필요가 없으므로 (집에서) 뭘 먹으면서(ex 술) 보기에 괜찮다는 것. 이런 이유로 마침내 주말에 술 마시면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보다가 너무 웃기고 슬퍼서 껄껄 웃고 꺼이꺼이 울다가 맥주를 여러 번 뿜을 뻔했다........

영화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폐지 줍는 노인 ‘형준(박근형)’은 그날도 익숙하게 폐지를 주우며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또 다른 폐지 줍는 노인 ‘우식(장용)’을 만난다. 이 둘이 만나게 된 건 필연이랄까. 서로 같은 동네에서 폐지를 줍다 보니 동선이 비슷해서 마주치게 되었고 하필이면 버려진 박스 하나로 서로 내가 먼저 찜했다, 아니다 이건 내 것이다 옥신각신 싸움이 붙은 것이다. 급기야 서로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다가 한 사람이 넘어지는데 그 쓰러지는 장소가 하필이면 야채를 파는 여성 노인 ‘화진(예수정)’의 가판이었던 것. 세 사람은 이렇게 좋지 않은 일로 처음 서로를 알게 된다.
그 후로도 폐지를 줍다가 마주친 형준과 우식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나이를 묻고 통성명을 하게 되어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형준은 일도 힘들 텐데 우리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우식을 끌고 간다. 차는 무슨 차... 하면서도 따라나선 우식. 그런데 우식은 형준의 집 앞에서 입이 벌어진다. “진짜 여기 사는 거 맞아?” 마당까지 있는 번듯한 양옥집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우식은 갑자기 쪼그라들어서 형준의 집 마루에 발을 디딘다(이때 카메라는 구멍 난 우식의 양말을 보여준다). 부엌에서 노란 맥심 커피 2개를 갖고 오는 형준. 이때 형준네 거실 탁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거기에는 부탄가스버너와 낡은 주전자 한 대가 놓여 있다. 하우스푸어네 하우스푸어.... 가스도 끊긴 거 아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우식도 의아한지 묻는다. “가스렌지 없어?” “있지, 있는데 혼자 살 땐 이게 더 편해.”라며 말을 대충 얼버무리는 형준. “자식 없어?? 혼자 살아? 이 큰 집에?” 이어지는 우식의 질문. 한때는 잘살던 형준, 자식 둘은 프랑스와 브라질에 유학까지 보내서 거기에서 뿌리를 내리게 한 것 같은데 와이프는 유방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단다. “자식들이 생활비 안 보내줘?” 우식은 부아가 나는지 화를 내며 묻는다. 말끝을 흐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형준. 자식들하고 인연이 끊긴 지 십 수 년은 된 듯하다. 그러니까 아무리 큰 집에 살면 뭐하나? 젊을 땐 자식한테 올인해서 유학까지 보냈지만 이제 늙어 수입이 없는 노인은 폐지를 줍는다.
노란 믹스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우식이 묻는다. “커피 말고 밥 없어?” 짠하지 않을 수가. 사실 이 장면 전후로 우식의 생활이 잠깐 화면에 등장하는데 이 노인은 폐지를 판 돈으로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려고 기웃기웃하다가 정육 코너에서 삼겹살도 들었다가 내려놓고는 서울우유 500ml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그 우유를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 나비의 접시에 부어주고 남은 걸 마시면서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 이 노인이 몇 날 몇 끼를 제대로 못 먹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별다른 찬 없이 형준이 가져온 밥과 김치만으로도 게걸스럽게 한 끼를 해치운 우식. 갑자기 이렇게 묻는다. “우리 내일은 소고기뭇국 끓여먹을까? 고기는 내가 살게.” 아니 이 노인이, 슈퍼마켓에서 삼겹살도 내려놓더니 소고기뭇국에 들어갈 고기를 어떻게 산다는 걸까? 수입산으로 사도 폐지 판 돈에 비하면 턱없이 비쌀 텐데.....
갑자기 이쯤에서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최저임금 시급으로 5,580원을 보장받는다. 그렇지만 몇몇 노인(老人)들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우며 300원에서 1,000원 정도의 시급을 벌고 있다. 2012년의 10월, A(여성, 82세)는 오전 7시부터 서울의 인사동을 비롯한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폐지를 주웠다. 오후 4시쯤에 “카트에 폐박스와 신문지를 겹겹이 싣고” 고물상에 왔다. 계량하니 48kg의 폐지였고, 모두 고물상에 팔아 3,400원(폐지 1kg당 약 71원)을 받았다. 정확히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폐지를 주웠는지는 모르지만,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돌아다녔다고 가정하고 시급으로 환산하면 380원이 안 된다. 2014년의 12월, 수원에 사는 B(여성, 67세)는 손수레 한 대가 가득 찰 정도(약 60kg에 해당)로 폐지를 수집하는데 4,000원 정도의 돈을 번다. 2015년인 요즘도 다르지 않다. C(여성, 77세)가 고물상에 가져온 폐지와 옷가지를 계량하니 “신문이 30kg(2,400원)”, “옷이 6kg(3,000원)”, “박스 59kg(3,540원)” 정도다. 무려 95kg에 달하는 양을 수집하고 고물상으로 운반했지만 “8,940원”을 버는 정도다. C는 하루에 한 번 고물상에 오지는 못한다. B나 C는 언론에서 주목한 사례로 노동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무리겠지만 B나 C가 하루에 8시간 동안 노동한다고 가정하고 시급을 계산한다면, B는 500원이며 C는 1,118원이다. -소준철, <가난의 문법>
사정이 이러하니 우식이 고기는 자신이 산다는 말에 내가 다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이 두 노인의 소고기뭇국 끓여먹기 프로젝트 실행! 형준은 야채를 파는 화진을 찾아가 무를 사면서 소고기뭇국 끓이는 방법을 묻기 시작한다. 무도 필요하고, 파, 마늘, 조선간장.... 아 복잡하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형준은 화진에게 우리 집에 와서 소고기뭇국 좀 끓여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아놔 이 미친 노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어디서 다른 여자한테 뭇국 타령이야. 나도 어처구니없고 화진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냉큼 썩 꺼지라고 화를 내는데... 그래도 좀 솔깃한 모양이다. 고기는 우식이 준비해온다는 소리에 “폐지 주워서 고기 살 돈이 있어?” 고기라는 말에 솔깃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외로운 노인들이라 셋이 모여서 따뜻한 밥 한 끼 만들어먹자는 소리에 마지못해 넘어간 듯 형준의 집을 찾아온다. 그런데 화진도 형준의 집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는 마찬가지. 아니 서울에 집이 있는데 폐지를 주워?
한편 우식은 고기를 준비하려고 정육점을 찾는다. 뭇국 끓여먹기 좋은 부위로 (심지어 한우로!) 좀 달라는 우식. 아니, 이 노인 지금까지 모은 돈 뭇국에 다 쏟아부을 것인가? 옆에서 같이 보던 집사2는 설마 고깃값 대충도 모르는 거 아냐? 조마조마… 게다가 이 노인 보게, 양지를 무려 한 근이나 달란다?! 헐...... 한우 양지를 한 근이나? 정말 저 할아버지 고깃값 모르는 거 아냐? 어떡해! 싶은데 더 필요한 거 없느냐고 묻는 정육점 주인에게 한 술 더 떠서 “소꼬리 같은 건 없냐?” 되묻는다. 헐 폐지 팔아 모은 돈, 오늘 다 탕진하나요? 정육점 주인은 소꼬리요? 하면서 가게 저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 이미 양지 한 덩어리를 넘겨받았던 우식은 그길로 냅다 도망치는 것이다. 으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사2와 함께 경악. 어떡해! 달려! 아니 그러면 안 돼! 아니 달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빨리 달리라고 소리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저 사람 왠지 과거에 이런저런 잡범 저지른 범죄자였을 거 같지 않니?” 이런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되는 장면.
형준의 집에 모인 세 사람은 그렇게 고기가 듬뿍 들어간(진짜 듬뿍 덩어리째 들어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고기뭇국과 흰쌀밥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는데 이때의 표정들이 진짜 하... 왜케 다들 연기만랩이십니까? 소고기뭇국을 너무나 감동 어린 표정으로 먹는 장면에서 나는 또 왜 눈물이 터지는가. “너 왜 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옆에서 보던 집사2가 당황해서 묻는다. 아니 그냥 너무.... 글썽글썽.... ㅋㅋㅋㅋㅋㅋ 저 세 노인(특히 남성 노인 둘)은 대체 언제 저런 따뜻한 밥상을 받아봤을까? 국 타령 한남 가부장 짜증나면서도(실제로 국 타령하는 장면에서 나는 욕을 욕을 했다. 아, 국 없으면 밥을 못 먹냐? 니가 끓여먹어!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막상 그들이 따뜻하게 먹는 장면을 보니 눈물 터지는 K 감성 잠자냥.... -_-
그렇게 소고기뭇국을 맛나게 싹싹 비운 그들- 그런데 우식이 흐뭇한 얼굴로 묻는다. “물에 빠진 고기는 진짜가 아니지. 구워야 진짜지. 내일 저녁에 다들 뭐하슈? 고기나 먹으러 갈까? 내가 살게.” 이 할애비 보게 숨겨둔 돈을 진짜 이제야 푸는 것인가? 싶어진다. 우식이 고기 쏜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나. 소고기뭇국 밥상 앞에서 서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다음 날 의기투합해서 구운 고기! 그러니까 삼겹살집으로 출동을 한다. 이 노인들이 구운 고기를 먹은 게 얼마만일까...? 가늠하기도 어려운데, 삽겹살 3인분에 소주 한 병을 셋이서 맛나게 비우고 넉넉해진 마음으로 이제 일어서려고 하는 찰나 우식이 말한다. “나 돈 없어. 내 말 잘 들어 이제부터가 중요해. 형님은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척하고, 여사님은 화장실 가는 척 그길로 내빼!” (휴... 다행히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었다) 헐...........ㅋㅋㅋㅋㅋㅋ 우식은 심지어 고기 1인분을 더 주문하고 고기를 굽는 척하다가 밖에서 기다라던 형준과 함께 냅다 달리기! 헐....... 어떡해! 달려! 아니 그러면 안 돼! 아니 달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빨리 달리라고 소리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저 사람 잡범 맞네, 맞아....” 아까의 합리적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화진과 형준은 일단 도망치기는 했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 훔친 고기가 더 맛있다, 이 도둑질 첫 경험이 당황스럽고 쓰디쓰고 양심에 찔려 입맛이 쓰다. 화진은 더욱 길길이 뛴다. 내가 이런 인간들하고 엮여서 미쳤지 미쳤어! 그래서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훔친 고기가 더 맛있다로 그쳤다면 영화는 30분 만에 끝났을 것이다. 이 삼인조는 어쩌다 보니 고깃집 무전취식 먹튀 행위를 끊지 못하고 계속 하게 되는데…. 이들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어떡해! 달려! 아니 그러면 안 돼! 아니 더 빨리 달려요!” 외치면서 계속 보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세 노인 각자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폐지를 줍는 삶이 되었을지 알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웃음 끝에 눈물 꺼이꺼이... 그러다가 서늘해진다.
인간 모두가 늙어가기 때문이고 한국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형태와 계급 차이가 조금씩 있을지는 몰라도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화면 속 그들의 삶이 단지 먼,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다가온다. 형준의 경우 서울에 번듯한 양옥집을 자가로 소유하고 있다. 그는 근데 왜 폐지를 줍는가? 한때 미모가 빛났으리라 추측되는 화진은 대학생인 손자(...그래서 할머니한테 돈 달라고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도 있다. 화진의 지나간 삶을 얼핏 들어보니 그 미모 때문에 한 남자로부터 사랑도 받고. 그 부유한 남자의 재산에 기대어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딸도 낳고 손주도 보고..... 그런데 그는 지금 길거리에서 가판을 펼치고 야채를 판다. 우식은 또 어떤가? 범죄를 저질렀으리라는 나의 추측과는 달리 그는.... 범죄와는 어쩌면 가장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셋 중 가장 많이 배운 식자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지금 가족도 없이 길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폐지를 줍는다. 이들의 젊은 시절 삶을 보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젊었을 때 펑펑 놀아서 노인이 되어 가진 거 한 푼 없이 폐지나 줍고 무전취식이나 하면서 식충이처럼 산다고 손가락질하기가 멋쩍어진다.
<가난의 문법>에서 저자 소준철은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빈곤층의 처참한 삶을 보면서 여유로운 삶은 보장된 것이 아니고 오늘 성공했다고 내일 실패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게 타당하다.”고, 그리고 폐지를 줍는 빈곤층의 삶을 단지 연민과 감동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사회를 위한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들을 향한 ‘동정과 시혜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전체 인구 중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의 비율)은 17.4%로,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소준철, <가난의 문법>
한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소득 수준이 높은 매우 잘사는 국가이다. 그런데 왜 노인이 되면 저토록 다들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젊었을 때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인가? 열심히 산다는 기준은 대체 뭔가? 돈을 많이 버는 것?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도 열심히, 성실히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가 애초부터 가진 게 없어서 갑자기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정망 없이 휘청대다 쓰러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서도 부모 잘 만나서 고깃집을 운영하면서 노인혐오 발언을 내뱉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말 자수성가한 열심히 산 인물인가? 이 영화에 관한 평을 보면서도 좀 씁쓸했던 게 노인들의 무전취식을 낭만화했다,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았다 등등 비난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 그 지적도 맞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면서 이게 옳다 그르다 공평, 정의 부르짖으면서 그런 자기 자신을 끔찍이도 자랑스러워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들이 너무나 많구나. 그런 당신들에게도 노년은 온다.
최근 읽은 <불안하게 태어난 사람들>에서도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악순환의 출발점이 되어 사회적 불평등은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불안 장애등 온갖 스트레스를 유전자적으로 각인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 태어나 살면서, 이 불안에서 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대체 얼마나 될까?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사회적 불평등의 사다리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지위의 다른 부분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득은 한 가족이 임금으로 벌어 오는 돈의 액수는 포착하지만, 물려받은 돈, 어려운 시기에 안전망이 되어줄 부모, 보유 부동산 같은 전체적인 부는 전혀 포착하지 못한다. 바로 이런 소득이 아닌 부의 차이가 세대 간 사회 이동성을 줄이는 큰 요인이다. 그것은 충격을 완화해줄 완충재나 안전망의 유무에 기인한다. 특정 시기에 넉넉한 급여를 받고 있어도 경제적 주변부에 더 가까운 사람과 달리 부유한 집안 사람들은 직장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의료 비용 같은 경제적 충격이 닥쳐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 그런 안전망 없이 안 좋은 시기에 안 좋은 충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모든 게 곤두박질칠 수 있다. 높은 급여를 받던 직장을 잃으면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되고, 그 때문에 집을 잃거나 우울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형편이 얼마나 어려워질지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위험한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 그런 걱정은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커진다. 여차하면 사다리의 여러 단 아래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면 추락에 대한 공포는 더 크기 때문이다. - 대니얼 키팅, <불안하게 태어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