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헨리 제임스의 <비둘기의 날개>(아토북, 2022)가 출간되었다. 내게 헨리 제임스는 재미없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작가 그래서 결국 읽게 되는 작가 중 하나였으므로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연했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는데.....! 읽을수록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헨리 제임스의 문장은 애초부터 종속절도 많고 우회적인 수사가 많기에 원문 및 변역문장 모두 딱히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책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번역 책에서 오역을 지적하거나 문장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별 불만 없이 읽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토북에서 출간한 <비둘기의 날개>는 한국어 문장의 주술 호응 자체가 전혀 안 되는 엉망진창 책이었다. 중간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반납. 그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100자평을 남긴 적이 있다. 그 이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의 평점은 2점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다들 얼마나 고통스럽게 읽다가 포기했는지 100자평 자체가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궁금하신 분들은 (저 아래에서) 책 클릭. 그리고 문제의 번역 상태가 궁금하신 분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어보시라. 호기심에 구입 절대 금지!
아무튼 조금 지나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겠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산세계문학 <비둘기의 날개 1, 2>로 출간되었으니 “어머 이건 사야 해!” 읽기를 마친 지금, 이런 지경의 현란한 문장이니 저 출판사에서 번역가 둘이 진짜 번역을 했든 아니면 번역기를 돌렸든 말이 안 되는 한국어 문장으로 뚱땅뚱땅 책을 펴낸 것이로구나 싶었다(한데 저 번역가들은 정말 번역한 게 맞을까? 편집자는 문장 감수도 하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비둘기의 날개>는 헨리 제임스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헨리 제임스는 후기로 갈수록 그 꼰 문장 또 꼬기 지극히 현란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 뇌와 눈알 후리기 신공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비둘기의 날개> 읽다가 그 모호한 문장들- 그러니까 이게 그건지 그게 그건지 도대체 등장인물들이 왜 말을 콕 찝어서 제대로 하지 않는지 답답함에 속이 터져서 몇 번이나 아니, 복숭아가 먹고 싶으면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라고! 복숭아가 먹고 싶은데 “여름이면 왠지 털복숭이가 떠오르고는 하지 않아요?” 이러고 있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일어났으며,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비둘기가 더 싫어지려고 했다.....
그럼에도 1, 2권 합해서 장장 860쪽에 이르는 이 작품을 주말 이틀 동안 다 읽어버렸다. 헨리 제임스 작품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인간이 그런 꼰 문장 또 꼬기 신공으로 펼치는 이야기들은 마치 일일드라마, 그것도 막장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많기 때문이다(그 신공을 전수받아 오늘날 화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작가가 바로 21세기 게이로맨스계의 헨리 제임스, 앨런 홀링허스트이다). <비둘기의 날개>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설거지하던 어무니도 고무장갑 낀 채로 물 뚝뚝 떨어뜨리며 텔레비전 앞에 서게 앉게 만드는 일일드라마, 막장 드라마처럼 흥미진진, 그러나 대사는 참........ 복숭아를 복숭아라 말하지 않고 땀방울 송송 그 여름의 털복숭이라 운운하며 흐른다.
여기 세 가지 인생이 있다.
세 사람이 있다. 막대한 재산과 그에 어울리는 기품과 미모를 지닌 여자가 있다. 나이도 젊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녀, ‘밀리’에게 부족한 것은 삶이다. 이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삶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칭송할 만한, 부러워할 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 ‘케이트’-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말 그대로 “수려하다.” 젊음도 그녀의 것이며 이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건강하기까지 하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하겠노라 맹세하는 연인까지 있다. 그런데 신은 공평한지 케이트에게는 집안이 지옥이다. 그녀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던 엄마는 먼저 세상을 뜨고 불한당 같은 아버지와 그녀의 언니-오! 가난하고 재능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 줄줄이 아이를 낳고 구질하게 살면서 호시탐탐 동생 케이트에게 기대어 살 궁리만 하는 짐 덩어리 언니 ‘메리언’이 있다.
헨리 제임스는 이 불한당 아버지를 묘사할 때도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몹쓸 짓을 했는지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그에 관해 묘사하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호하다. 케이트의 가족들에게 커다란 망신을 주었으며 ‘어리석고 잔인하고 사악하기까지’ 했으며 그래서 케이트의 엄마는 상처받고 버림받고 망가져 무능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케이트는 그저 자신이 열다섯 살쯤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져서 아버지가 전혀 가망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결론적으로 느끼기엔 그가 화려하게 꾸미고 다닐지언정 속은 빈 깡통 같은 인물, 먹고사는 데 열심이기보다는 번지르르 꾸미고 다니면서 일평생 한량 짓만 하는 그런 기생충 같은 인물임을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신은 케이트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아서 그녀에게는 부유한 이모라는 존재를 선물한다(‘모드 이모’). 이모는 첫째 조카 ‘메리언’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고 케이트를 점찍어 물질적 후원을 해주면서 그녀를 런던의 상류층으로 이끌어주고자 마음먹는다. 케이트는 그에 어울릴 만한 미모와 재능-그러니까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수완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구질구질한 집안을 벗어나 이모의 눈과 마음에 쏙 드는 생활을 해나간다면, 케이트의 삶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드 이모는 천사인가 싶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이모 또한 케이트에게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자신의 노년을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 케이트의 가치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바로 케이트를 사랑해마지 않는 남자, ‘머튼 덴셔’가 문젯거리이다. 수려한 케이트에게 어울릴만한 매력적인 외모, 그러니까 한마디로 매우 잘생긴 외모를 지닌 이 남자, 또한 젊고 건강하며 똑똑하다는 재능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가난뱅이 신세였다. 조카를 상류층으로 이끌어주겠다는 모드 이모의 눈에 그는 거지나 다름없어 못마땅함을 떠나서 떼어내 버려야 할 암 덩어리 같은 존재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생을 살겠는가?
막대한 부(富), 젊음과 미모를 가졌지만 질병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누구나 인정하는 수려한 외모에 젊음, 건강을 가졌지만 가난한 데다 진드기 같은 가족이 들러붙어 있는, 그러나 부유한 친척이 너만큼은 도와주겠노라(단, 내 말을 듣는 조건 아래) 약속한 상태인 인생, 빼어난 외모와 똑똑함이라는 재능까지 지녔으나 가난뱅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 이 세 가지의 삶 중 당신이라면 어떤 생을 선택해서 살겠는가? 현대라면 케이트와 덴셔의 조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둘 다 외모가 빼어나고 젊으니까 그 외모를 자원 삼아 부를 쌓을 수도 있고(연예인/아이돌 데뷔/부자와 결혼하기 등등), 덴셔의 경우에는 똑똑하기에 그 머리를 이용해서 차곡차곡 성장&성공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때는 20세기 초반, 신분이나 지위, 계급 격차가 너무도 뚜렷하고 그것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영국의 런던이다. 케이트는 아무리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할지라도 집안이 형편없기에 좋은 가문의 남자와 결혼해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어렵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직업을 구해 먹고살기도 버겁다. 머튼 덴셔의 처지 또한 케이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젊고 잘생기면 뭐하나?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기엔 애초에 글렀다. 그의 신분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면 뭐하나? 집안에서 밀어줄 수가 없어서 좋은 교육을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나라면.... 밀리의 인생, 저 막대한 부를 지닌 밀리의 인생이 차라리 괜찮지 않나 싶다. 어차피 언제고 한 번은 죽을 인생. 남보다 조금(?) 일찍 죽는다는 것뿐… 저토록 엄청난 부를 지녔으니 살아 있는 동안 실컷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남들보다 일찍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밀리도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살던 미국 뉴욕을 떠나 신대륙에서 구대륙인 유럽으로, 런던, 이탈리아로…. 그리고 그곳에서 케이트를 만난다. 밀리는 수려하고 당당한 케이트에게 한눈에 반하다시피해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내 애인을 빌려드립니다
가난뱅이 연인 케이트와 덴셔는 모드 이모의 반대로 대놓고 사랑을 속삭이지는 못한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수완을 갖춘 케이트는 언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가난한 덴셔와 결혼하는 것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시궁창을 걷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모드 이모는 종용한다. 덴셔와 멀어져라, 내가 원하는 남자, 너에게 어울릴 만한 남자, 런던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위와 부를 가진 남자를 만나야 한다…. 케이트는 이모의 재산, 이모가 가진 부가 탐나지만 그렇다고 덴셔를 하루아침에 버릴 만큼 냉정하지도 못하다. 그러기엔 그를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이 수완가가 생각해내는 것이 “내 애인 빌려주기”였으니....
덴셔는 타고난 재능으로 어찌어찌 기자가 되어 미국의 한 신문사에 취업,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던 중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우연히 밀리를 알게 되고 잠시 친분을 나눈 전력이 있다. 그런데 이 잘생기고 똑똑한 남자한테 밀리가 호감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까. 이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는 비상한(?) 머리를 굴려 꾀를 짜내고 덴셔에게 말한다. 그녀, 밀리를 유혹하라고, 밀리의 마음을 차지해버리라고 그래서 그녀와 결혼하라고. 어차피 그녀는 곧 죽을 것이므로, 그러고 나면 그 재산은 온통 너의 차지가 될 것이고, 그러면 너는 그 막대한 재산을 갖고 나를 찾아와, 나와 다시 결혼하면 된다고. 우리 사이에 그깟 몇 년 참지 못하느냐고…. <비둘기의 날개>는 이런 막장 아닌 듯한 막장스토리로 흘러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이미 그것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면 폭로하기보다 차라리 도와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비굴함의 주된 면모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녀 쪽에서 아무리 우회적일지라도 오로지 이득을 보려는 어떤 계획을 세웠다면 당연히 그 무엇보다 충성심이 요구되니까 말이다. (<비둘기의 날개>, 2권, p.93)
비둘기 한 마리 두고 모두가 잇속을 차리는구나
저게 가능할까? 케이트가 덴셔에게 하는 제안을 보며 생각해본다. 애정이 식은 것도 아니고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과 단지 지금 결혼할 처지가 못 되므로 조금 지나서 얼마쯤 조건을 갖춘 다음에 결혼하자고, 그런데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나 대신 다른 사람, 부자인 사람과 결혼했다가 다시 오라는 제안-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내가 케이트라면 나는 저런 제안을 하지 못한다. 내가 덴셔라고 해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요즘이야 뭐 스와핑이니 뭐니 부부끼리 섹파도 바꾸고 그걸 관람까지 하는 일도 종종 있다지만… 글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꼴을 지켜보라고?! 만일, 밀리가 죽지 않는다면?(애매모호의 달인 헨리 제임스는 이 책에서 밀리의 병명을 끝끝내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백도인지 황도인지 천도인지 신비인지 말하지 않고 그저 여름 털복숭이에서 끝나고 마는 얄미운 제임스여......). 밀리와 덴셔 둘 사이에 애라도 생긴다면? 그 막대한 부를 이용해서 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 죽 쒀서 남 주는 일 아닌가?
덴셔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홀딱 반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척 연기하라고? 심지어 결혼생활을 하라고? 저 사람, 밀리라는 여자가 나에게 아무리 호감이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불을 켜지 못하는 대상이라면, 내 욕망에 불을 지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의 연기는 얼마나 고통이며 지옥이겠는가. 게다가 덴셔는 그렇게까지 파렴치한은 아니라서 눈 딱 감고 밀리에게 호감이 있는 척, 사랑하는 척하기가 어려운 부류의 인간이다. 그 여자와 말이 조금 통했고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이며 아픈 사람이라 연민이 들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 사랑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종종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엉뚱하고도 엄청나고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케이트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리는 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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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셔가 그런 아스트랄한 제안을 확 물어버리는 것은 오직. 그녀, 케이트와 결혼하기 위해서이다. 덴셔는 잘생기고 똑똑하고 파렴치한은 아니지만 우유부단해서 케이트가 하라는 대로 하는 좀 나약한 인물이다. 그래서 주변의 여자들-케이트, 밀리, 모드 이모, 밀리의 샤프롱 수전 셰퍼드에게조차 내내 휘둘린다. 케이트의 저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제안도 조금 고민 끝에 덥석 물어버리는데, 그러면서 그가 내 거는 조건이 있다. 끝없이 케이트에게 조르는 것이다. 뭘? 에이, 다 알면서..... 케이트여, 제발 단 둘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와요! 내 거처로 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여기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저놈이 그냥 자기 집에 와서 놀자는 것인가? 방에 들어가서 둘만 알콩달콩 놀자는 것인가?
덴셔는 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면 당신이 찬장 열쇠를 차지하고서 나한테 한 덩이씩 배급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서 만날 수도 없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바깥에서 할 만큼은 다 해본 마당에, 이틀 동안 생각해보니 지난 화요일처럼 어쩌다 생기는 기회라도 난파선에서 나온 널빤지같이 없는 것보다 나아 보이던데. 하지만 그 친구들이 이 집에 그렇게까지 의무감이 있다면 그럼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네요. 그러면 끔찍한 지연이라는 우리의 관에 고맙게도 못 하나가 더 박히는 거군요.”
“그러니까 여하간 이렇게 계속해나갈 수 없다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비둘기의 날개> 2권, pp.24~25)
뭔 소리래? 현대의 잠자냥어로 번역해보겠다.
“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야금야금 손 잡고 뽀뽀만 하는 것도 지쳤다.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숫총각으로 관짝에 들어갈 판이다. 제발 자자!!!!!!! 다른 여자 유혹하라고 이렇게 어려운 걸 시키면서 섹스도 안 해주다니! 섹스 안 해주면 나 안 해!”
아무튼 덴셔, 이놈아 복숭아가 먹고 싶다면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똑바로 말을 해야지! 딱복 물복 황도 천도 백도 신비 운운도 아니고 시방 여름의 털복숭이 찾을 때인가? 저기 가서 한 수 좀 배우로 오거라! 이름은 없지만 욕망은 많은 주드처럼 이렇게 말해야지! “같이 자자! 섹스하자!”는 아니고.... “내가 자기를 사랑한 만큼 자기는 날 결코 사랑하지 않았소. 결코! 자기의 가슴은 열정적인 가슴이 못 되오. 자기의 가슴은 불꽃 속에서 타지 않소! 자기는 대체로 요정이거나 정령의 일종이지, 여자가 아니오.” (번역: 나랑 섹스하고 싶지 않으면 넌 여자 아님. 요정 아니면 정령임). “수, 난 자기를 사랑하오. 그러나 자기에게 오랫동안 시중을 들었는데 보상은 너무 초라해요.” ㅋㅋㅋㅋㅋㅋㅋ (번역: 난 너무 기다렸다. 기다린 보상으로 너를, 너의 몸을 달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야 할 것 아니여?! 답답하구먼. (feat. 위 인용은 토머스 하디, <이름 없는 주드>에서 가져옴)
혈기왕성한 이십 대의 두 남녀, 게다가 서로 사랑해 마지않는 이 커플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단둘이 있기조차 참으로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연인이 아닌 척 숨기고 눈짓으로만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부족한데,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는 모드 이모의 눈을 피해 한 30분 정도 둘만 좀 있으려고 치면 케이트는 밀리를 꾀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덴셔에게 늘 그 이야기뿐… 뽀뽀라도 좀 해주지, 그 예쁜 입술로 허구한 날 계략만 짜기 바쁘다. 그러니 이 애정....... 또는 성욕이 끓어오르는 남자 덴셔는 케이트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서 안달복달. 그래서 조른다. 당신 말 들을게요, 그러니까 내가 사는 집에 오라니까요! 그걸 안 주면(응? 뭘?) 도저히 이 남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주기로 결심한 케이트는 마침내..........
재치나 성격의 측면이라면 개의치 않겠지만 그녀가 자신보다 웅숭깊은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떳떳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독립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녀를 두고 싶었다. 그 결과 그는 곧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겠어요?” 그 말투에 담긴 진실함에 그녀의 얼굴이 약간 파리해졌다. (2권, p.27)
거의 화를 내듯 그녀를 와락 붙들고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정말 그래요? 정말?” (2권, p.27)
여기서 다시 잠자냥어로 번역기 돌아간다....
“웅숭깊은 것” = 섹스 (참나, 헨리 제임스, 이 양반 섹스를 웅숭깊은 것이라곸ㅋㅋㅋㅋㅋㅋ)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 같이 알몸이 되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 “섹스도 안 해주면서 나 사랑해 진짜?”
그러다 그래서 결국 갑자기 모닥불.... 갑자기 불멍.....

위 지문에서 섹스를 암시하는 단어를 찾아보시오.

위 지문을 읽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해보시오......
했네. 했어. 아니 근데 나는 이 부분 한참 생각했다니까. 한 거야? 했니 니네? 한 거겠지..? 아닌가? 설마? 음… 마치 동시대의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에서 ‘채리티’와 ‘하니’가 만나면 키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채리티가 덜컥 임신해서 깜짝 놀란 그 기분…. 암중모색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 섹스신(엥?)이 내가 알기로는 여태껏 내가 읽은 헨리 제임스 작품((feat, <나사의 회전>, <데이지 밀러>, <워싱턴 스퀘어>, <보스턴 사람들>)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육체적 접촉을 묘사한 획기적인 장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화끈한 작품인가! 그러나 너무 애매모호 암중모색이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고난도의 섹스신.... 헨리 제임스 이 나쁜 사람.... 그의 이 안갯속의 펜 끝은 여러 차례 그 신공을 발휘한다. 우리는 작품이 끝나도 알지 못한다. 밀리의 질병도, 케이트 아버지의 그 악덕도, 밀리의 편지도, 마크 경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도, 그래서 케이트와 덴셔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
그러나 생각해보면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그저 좀 안다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믿고 살아가는 것일 뿐, 인생도 사람도 사랑도 실체를, 전모를 다 알 수는 없는 법. 나는 책장을 덮고도 끝끝내 밀리의 그 마음이 궁금하다.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자신의 날갯짓이 불러올 파장을 다 내다본 선견지명의 달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수 그 자체라서 세상사람 모두가 다 자기 같을 것이라고 굳게 믿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몰랑, 머리 복잡한 사람은 문제의 책 100자평과 함께 잠시 웃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