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일로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을 수도 있고 자기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음에도 어쩌다 보니 휩쓸려 그렇게 되기도 한다. 궤적의 크기가 매우 커서 또렷하게 알 수 있을 때도 있고 너무나 미미해 곧 그 흔적이 사라지고 기억에서 쉬이 잊히기도 한다. 때로는 기억 속에 남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몹시 사소할지언정 조금이라도 삶의 궤적을 바꿔놓았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안톤 체호프. 이 미치광이 같은 남자는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그 뜻하지 않은 일, 그 미미한 균열을 포착해 묘사하는 데 가히 천재와도 같은 솜씨를 발휘한다. 체호프를 나는 이제 미치광이 같은 남자라고 서슴지 않고 부르겠다. 이 세계에서 단편 소설 좀 쓴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작가로 꼽으며 흠모하고 사랑하다 못해 그를 뛰어넘어보고자 애 쓰지만 결국 그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끝내 체호프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외치며 그에게 바치는 듯한 무수한 단편을 남기고 죽어가는 그 심경을 나는 새삼 또 절감했다. 스물 또는 서른 그즈음에는 느낄 수 없던 그 무엇을 느끼며. 그만큼 내가 인생을 더 살았기 때문인지, 이제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살아온 시절들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인간의 생에 불쑥 끼어드는 그 뜻하지 않은 일의 ‘위력’을-때로는 미미할지라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인지 이 검은 단편집 <낯선 여인의 키스>는 한없이 강렬하게 남는다.
키스 이야기부터 해보자. 표제작인 ‘낯선 여인의 키스’는 체호프 마니아를 자처하며, 그의 (국내에 번역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노라 자부하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그의 단편집을 다시 읽었고(‘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벌써 몇 번째인가!), 그로 인해 체호프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다시, 그것도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었음을 행운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다시 키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간에게는 누구나(는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나이길 바란다) 첫 키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애 최초의 키스이기도 하고(이것은 말 그대로 첫 키스이다), 어떤 대상과의 첫 키스이기도 하다(이것은 대상이 달라질 때마다 매번 그 또는 그녀와의 첫 키스로 갱신된다). 그런데 이 첫 키스를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관계에서도 그렇다. 눈에 두드러진 변화가 있기도 하지만 몹시 사소해 제 자신도 모를....(수가 있나? 싶지만 아무튼 둔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다 치자)만 한 변화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떻든 대부분의 이들에게 첫 키스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 이런 구절이 그래서 널리 애송되는 것이 아닐까.
<낯선 여인의 키스>에도 그런 이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라보비치’- 너무나 평범하고 애매하게 생겨 도무지 누군가의 애정은커녕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이 남자는 우연히 초대받은 무도회에서 한 여인의 열정적인 키스를 받게 된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받은 키스라면 더 없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어두운 장소에서 급박하게 이뤄진 짧은 입맞춤- 단언컨대 그에게 입을 맞추고 사라진 여인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도리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퍼붓고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어쩌면 좋으랴, 이 남자는 분명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흠모해 남몰래 입을 맞추고 사라진 것이라 믿고 그날부터 꿈꾸듯 몽상에 잠긴다. 삶이 새롭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누구일까 공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군가 그를 다정하게 대했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어리석지만 특별한,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그는 꿈속에서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p.183) 못한다.
그런 데다가 자신감까지 생겨난다. 그 흔한 로맨스는커녕 부대에서 동료들에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 소심한 남자는 낯선 여인의 단 한순간 뜨거운 입맞춤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들, 그러나 어쩐지 자기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본질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 자기도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의 평범한 인생 그 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얻는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모두가 겪는 일을 겪게 될 거야"(p.189). 자신이 평범하며 자기 삶 또한 평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쁘고 힘이 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라보비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이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간직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그 기쁨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라보비치처럼 원하던 대상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첫 키스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녀가 누구일까, 과연 나를 사랑하고 흠모해서 일어난 일일까, 나의 로맨스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홀로 상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한 순간 일어난 농담 같은 운명의 기적은 곧 사그라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게 된 지금, 입맞춤과 관련된 일화, 자신의 조바심, 불확실한 희망과 실망이 또렷하게 교차’하면서 삶은 다시 지리멸렬하고 보잘것없으며 무료하며 초라한 그것으로 남기 마련이다. ‘온 세상과 그의 삶이 이해할 수 없고 목적도 없는 농담’(p.195) 같기만 하다.
리보비치의 삶만 그러하지는 않다. 매일 썰매를 타러 가서 썰매를 탄 채 아래로 내려갈 때만 작은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해요, 나쟈!"라고 외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 고백을 들으며 바람이 들려준 소리인지 등 뒤의 남자가 고백한 소리인지 또렷하게 알 수 없음에도 그 소리에 포도주나 모르핀에 중독되듯 중독되는 ‘나’와 ‘나젠카’(<농담>), 그들은 이제 이 말을 하지 않고 듣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썰매로 산비탈을 내려오는 건 무섭지만, 공포와 위험은 수수께끼로 남아 나젠카 그녀를 괴롭히는 그 말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한다. ‘나’와 바람 중 누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제 나젠카는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잔에 술을 따라 마시든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p.19)
약속어음을 받으러 찾아간 여자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진창’같은 일에 얽매이는 두 남자(<진창>)도 있다. 그들은 돈을 받아내기는커녕 여자에게 홀린 듯 마음까지 빼앗겨 버린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구로프’와 ‘안나’는 또 어떠한가! 우연히 만난 바닷가에서 나눈 몇 차례의 대화가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녀 또한 다른 여성들과 똑같이 기억에서 잊히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한겨울이 되어도 기억 속 그녀는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또렷하고 오히려 기억은 점점 더 생생해진다. 벽난로 속에서 눈보라 소리가 들릴 때면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이 떠오른다. 그 짧은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마치 낯선 여인의 키스를 받은 라보비치가 꿈꾸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구로프와 안나에게도 그 꿈같은 날이 부서지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 나면 여전히 단조롭고 느리며 근심 없는 나날이 이어지리라......
구름 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바람이 슬픈 듯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연도 울음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인간의 단조로운 일상을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수산나나 약속어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양심에 찔려서 이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대신 그들은 그때 일을 회상하고 그녀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들의 삶에 우연히 발생한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그 일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노년에 떠올리면 기분 좋을 법한 일화인 것처럼....(p.80)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정원에 쏟았지 내 꿈에는 사과나무와 배나무만 나올 정도야. 물론 이건 좋은 일이고,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가끔은 단조로운 삶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어.” (p.118) <검은 수사>의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도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체호프가 자신의 작품에서 말하듯이 인생은 ‘하찮거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게다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p.162)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평범한 학자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15년을 공부하고 밤낮으로 연구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불행한 결혼을 견디고 온갖 종류의 바보 같은 짓과 잊고 싶은 부당한 일을’(p.162) 저지른 후에야 자신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 아닌가. 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출구도 없는 덫에 걸려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그의 의지와 달리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게 되는데도 도무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면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그가 알고 싶은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을 듣게‘(p.226)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체호프는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에 때로 “운명이 뜻하지 않게 낯선 여인의 얼굴로 그를 다정하게” 대한다는 것, 바로 우리를 다정하게 대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있음으로 인간은 이 생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체호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여름날의 꿈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비록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 꿈에 기대어 또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 안을 서성이며 추억을 더듬고 미소를” 지으며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p.39) 변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생이 흘러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