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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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편이 좋아요. 산뜻한 게 오래가죠.” (27p)


”플랫폼에는 들어가지 않을래요. 안녕”하고 고마코는 대합실 안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니까 초라한 한촌(寒村) 과일 가게의 뿌연 유리상자 속에 이상한 과일이 달랑 하나 잊혀진 채 남은 것 같았다. (75p)

“알 수 없어, 도쿄 사람은 마음이 복잡해. 주변이 어수선하니까 마음이 흩어지는 거죠?”
“모든 게 흩어지고 말지.” (102p)



두 번째로 이 책을 읽다. 처음 읽은 것은 10대. 처음 읽은 이 작품은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설국>은 플롯 중심의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장과 묘사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설국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미지는 눈(雪)-

눈은 이 작품에서 정화나 순수를 상징한다. 눈은 모든 것을 순백으로 하얗게 덮는다. 깨끗하게 감춘다. 세상의 속된 것, 더러운 것을 일순간 덮는다. 일 년에 한번쯤은 이 설국을 찾는 ‘시마무라’는 세상의 속된 것, 번거로운 것, 때 묻은 것을 피해 이 설국에 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마코’가 있다. 이 여자는 눈의 고장에 사는 여자로 시마무라가 일 년에 한 번쯤은 꼭 봐야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뜨거워진다. 설국. 차가운 눈(雪)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마무라를 향해 뜨거워지고, 바로 그럴 즈음 시마무라는 더 이상 눈의 고장에 오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마지막에 불이 나는 장면은 바로 그런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눈 속에서, 불이 나고 그 불에 타죽는 ‘요코’는 시마무라가 동경했던 또 하나의 여인이다. 고마코보다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눈의 고장에서 드물게 난 화재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는다.

차가움과 뜨거움, 순수와 정열, 허무와 욕망, 그 사이에서 요코는 숨지고 고마코는 남고, 시마무라는 다시는 이 고장을 찾지 않게 되리라.



그런 오늘은 눈 대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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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2-19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이렇게 짧은 리뷰라니??
저 몇년 전에 이 소설 대차게 깠던 기억이 나는군요 ㅎㅎㅎㅎ

독서괭 2024-02-19 14:54   좋아요 0 | URL
앗 이 댓글 쓰고 보니 6년전 오늘 쓴 글로 뜨네요?!

잠자냥 2024-02-19 15:21   좋아요 1 | URL
ㅋㅋㅋ 리뷰라기보다는 혼자 끼적여본 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짧으니까 읽기 편하죠?
괭님 리뷰 읽어보고 왔는데, 리커버로 읽었군요? (6년전 오늘 찌찌뽕! ㅋㅋㅋ)
암튼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은 대부분 현대 여성이 읽기에는 빡치는 부분 많기는 합니다.

새파랑 2024-02-19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비오는데 창문 열고 주차했더니 차가 물바다됨...

우리나라는 ‘우국‘ ?

잠자냥 2024-02-19 15:27   좋아요 2 | URL
술파랑 아직도 술취한 것으로 밝혀져.......

은오 2024-02-20 12:1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ㅌㅌ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2-22 08:09   좋아요 0 | URL
우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2-1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에 한번 꼭 봐야하는 여자인데 그 여자가 자기 좋아하니까 이제 안봐야지 하는건가요? 뭐야...나쁘다ㅠㅠ

잠자냥 2024-02-19 16:38   좋아요 0 | URL
그건 안 알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2-19 16:47   좋아요 0 | URL
헐 별로 안 궁금했는데 안 알랴줌에 갑자기 궁금해지잖아욧😤

그레이스 2024-02-1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의 주검을 눈위에서 안고있는 그위로 무수한 별이 그위로 쏟아지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왜 아름답지? 유미주의의 극치네 했었습니다.

은오 2024-02-20 1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결혼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여자는 한껏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는 듯이,
˝잠자냥님, 잠자냥니임ー˝

독서괭 2024-02-20 12: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빵 터짐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2-20 12:26   좋아요 1 | URL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대합실 유리가 빛나고 은오의 얼굴은 그 빛 속에 확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눈 온 아침의 거울 속에서와 똑같은 새빨간 뺨이었다. 잠자냥에게는 또 한 번 현실과의 이별을 알리는 색이었다.
“저도 그런 편이 좋아요. 산뜻한 게 오래가죠.”

은오 2024-02-20 12:31   좋아요 1 | URL
-_-
현실은 소설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