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엔도 슈샤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드디어 꺼내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에리크 뷔야르의 <7월 14일>  때문이다. 두 책 모두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 관점은 서로 다르다.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을 이끈 주역들로 글을 모르는 사람,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푼돈을 버는 노동자, 백수건달, 시골 사람 등 아주 평범한 민중을 내세운다. 그런데 엔도 슈사쿠는 그 혁명에서 타도의 대상이었던, 왕족 일가- 그중에서도 왕비였던 한 여성, ‘마리 앙투아네트’에 초점을 맞춰 그 시대를 돌아본다. 두 작품 모두 실재 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역사서는 아니다. 문학, 즉 소설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츠바이크의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곁들여 읽노라면 이 세상에 과연 ‘역사’일지라도 완벽한 사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역사 자체도 하나의 소설,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이야기는 아닐까.

에리크 뷔야르는 ‘7월 14일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은 허술하거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태를 직면하려면 이름 없는 군중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글로 옮겨 지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7월 14일), 90쪽)면서 철저히 민중의 입장에서 프랑스혁명을 기술한다. ‘고관대작의 회계 장부는 항상 실제 수치보다 부풀려지고, 그들은 민중을 노예 삼아 빚을 떠넘’긴다고(36쪽), 그 무렵 프랑스는 ‘식민지와 산업과 광산 덕분에 부르주아지는 번성했으나 부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나라는 파산 지경인데 지주들은 불평거리가 없었고, 푼돈 벌려고 고생하는 쪽은 봉급생활자, 장인, 소상인, 제조업자, 굶주리고 쓸모없는 국민인 실업자’였고 ‘수많은 파리 사람은 빵을 살 돈조차 궁했다’(50쪽)면서 지배층의 사치와 낭비, 정치적 파탄을 건조한 어조이지만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과하지는 않으나 대부분 프랑스혁명을 말할 때 언급되는 비난-그때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비난도 포함되어 있다. ‘그날 악마를 잡자고 모인 사람이 20만 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기와 노인과 환자를 뺀다면 파리 시민의 절반인 셈’(78쪽)이라는 문장을 보면 지배층, 즉 프랑스 왕실을 ‘악마’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리크 뷔야르의 관점도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기존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혁명을 기술하는 것은 역사에 이름이 남은 중요한 인물들 위주로 서술한 역사와는 다르다고 자부할 수는 있으나, 그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시민 혁명’이라는 평가가 이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와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마다 프랑스혁명을 이제까지 알려졌던 역사적인 평가와는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색다른 책이 아닐까 싶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츠바이크의 앙투아네트 전기를 읽은 후 사두었다. 츠바이크의 전기를 읽고 나서야 나는 앙투아네트를 다시 보게 되었고, 여러 면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며, 역사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을 왜곡하여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렇다면 엔도 슈사쿠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츠바이크는 자신의 전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쓰는 것은 마치 원고와 피고가 서로 어긋나는 논쟁을 벌이며 100년이나 끌어온 재판을 다시 진행하는 일과 같다’고 운을 뗀다. 이윽고 이어지는 문장,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오로지 그녀의 여성성성을 격렬하게 공격해야만했다’는 츠바이크의 관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또 이어서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이 그려질 때, 여론의 친절한 앞잡이로부터 정의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요틴으로 보내려는 자들은 여러 신문, 팸플릿, 서적을 통해 모든 악덕, 온갖 도덕적 타락, 저열한 풍자를 이 ‘오스트리아 암컷’에게 덮어 씌워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23쪽)고 지적한다.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다고, 그저 ‘매우 평범한 성격에 뛰어나게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작은 의지 또한 없는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치 않은 인물-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범함을 거듭 이야기하면서 평범하고 나약한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비극이 발생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비극을 더 인간적이고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겪는 이런 수난이 영웅의 비장한 고뇌보다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고도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은 그런 수난을 혼자 참고 버티어 이겨내야만 하며, 예술가들처럼 고통을 작품이나 다른 지속적인 어떤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축복받은 구원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혁명이 밀어닥치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시대 수많은 여인들처럼 그저 그렇게 무심히 살아갔을 마리 앙투아네트-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라는 말을 남긴 마리 앙투아네트. 츠바이크는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극히 평범했던 한 여인이 ‘성장’하고 비극 속에서 의연히 죽어가는 과정을 명징하게 그려나간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츠바이크의 이런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왕녀로서 자유가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주목한다. ‘만약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집 마르그리트와 같은 서민이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청년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녀의 삶이 결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오스트리아 왕녀와 프랑스 왕세자의 결혼은 그냥 평범한 처녀 총각의 결혼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며, 정치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과 운명으로부터 왕녀는 도망칠 수 없다.”(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1권 30쪽)는 문장은 엔도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와 외교상의 실패, 재정 파탄은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프랑스 국가재정이 적자에 허덕인 것도 왕비의 과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의 고통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증오의 대상을 색출해야만 했다. 그 대상이 마리 앙투아네트였던 것” (2권 24쪽)이라는 문장에서는 더더욱 또렷하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츠바이크의 전기와 달리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시기하는 평범한 여인 ‘마르그리트’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가는 ‘아녜스 수녀’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특히 이 아녜스 수녀는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혁명을 지지하지만 그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흥분한 채 살기를 띤 군중들을 보며 “하느님, 이게..... 이게 제가 바라던 그 혁명입니까.”(2권 64쪽) 절규하기도 하고, 국왕과 왕비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분 다 너무나 순진”했다는 평가와 함께 “태생, 자라난 과정, 그리고 환경 탓에” “백성들이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굶주림으로 인해 기쁨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런 프랑스의 실상을 알지” 못했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순진하다는 게 곧 무죄임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왕이고 왕비이므로 하나의 상징이며, 혁명이 타도해야 할 상징, 그런 상징인 이상 역시 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죄를 죽음으로 보상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이 “자진해서 왕위를 버려야 한다”고 그러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을 죽이는 게 과연 이 혁명에 꼭 필요할까요? 상징은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일부 과격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인간을 정치적인 면에서만 바라보고 하나의 인간으로서는 바라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인간을 단순히 정치의 도구로만 여기고 인격으로 간주하지 않는 혁명이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제겐 정말 끔찍한 것으로 여겨져요.” (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2권 200~201쪽)


수녀 또한 혁명에는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혁명에는 윤리적인 이상과 더불어 위엄과 품위도 동반”되어야 하며 혁명이 “인간의 천박한 본능- 폭력과 복수심을 채우기 위한 혁명”이라면 그것은 이미 혁명의 정신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귀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건 여자건 구분 없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것은 비록 혁명이라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2권 273쪽)는 것이 아녜스 수녀의 생각으로 그녀의 “혁명은 옳아. 하지만 그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해서지 인간을 모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2권 292쪽)라는 말은 엔도 슈사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이런 문장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비판했던 에드먼드 버크의 몇몇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버크는 <프랑스혁명 성찰>에서 “만약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냉혹하고 잔인한 폭군이었고, 그들이 국민의회를 학살하기 위한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몇몇 출판물에서 비슷하게 암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게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을 감금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한 일이 행해졌어야 했는데, 내 생각에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진짜 폭군들의 처벌은 고상하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인간 정신에 위안이 된다고도 정당하게 말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사악한 왕을 처벌해야 한다면, 나는 죄에 대해 복수하면서 존엄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 성찰>, 125쪽)라고 말한 바 있다. 버크 또한 아녜스 수녀처럼 확신에 젖어 모든 것을 적폐로 몰고 청산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인간이 신을 가장한다면, 머지않아 악마처럼 행동한다.”고 우려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배신과 살인을 정당화한다면, 공공의 이익은 곧 핑계가 되고 배신과 살인이 목적이 될 것입니다. 약탈, 적의, 복수 그리고 복수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만족할 줄 모르는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킬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러한 인권 개선 행진의 화려함 속에서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자연스런 감각을 잃어버린 결과는 분명 그와 같기 마련”이라면서 프랑스혁명의 이후 폭력과 파괴, 살육과 전쟁, 독재자의 출현이 이어질 것을 예측하기도 했다.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제3신분 대표로 혁명을 옹호했던 미라보조차 어느 순간 ‘더 이상 민중들을 마음대로 봉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미라보는 ‘더 이상 민중들에게 피 냄새를 맡게 하고 피에 굶주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의 희생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희생자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것이다. 국왕 가족들도 분명 그 피의 축제에 끌려 나가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서 그 자신이 격렬한 혁명 사상을 설파했으면서도 혁명이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독주하는 데 혐오감을 느낀다.(2권 85쪽) 그 혁명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결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었을까. 루이 16세보다 철저하게 기만당하고 조롱당했으며 더 처참하게 살해당한 여자, 온갖 음란한 유언비어로도 부족해 끝끝내 근친상간의 죄까지 뒤집어썼던 여자 마리 앙투아네트. “그들에게 그 여자는 모든 악의 상징이다. 그들을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여자, 그들의 고통에 냉담하기 짝이 없었던 여자, 불평등, 불합리, 그런 모든 것들의 원흉이었던 여자.”(2권 328쪽) 츠바이크와 엔도 슈사쿠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노라면 ‘여자’라는 이 단어에 유독 눈길이 간다. 아니, 갈 수밖에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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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2-02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7월14일 책때문에 마리앙투아네트를 다시 읽으신 거였군요. 저는 학교에서 ˝사치스럽고 허영에 찬 대표적인 여성˝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배운 후 그냥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흥미로워요. 츠바이크도 엔도 슈샤쿠도 읽고 싶네요 ㅠㅠ

잠자냥 2022-12-02 14:20   좋아요 2 | URL
네, 책 읽은 순서대로 하자면 ㅎㅎ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7월 14일>-엔도 슈사쿠 <마리 앙투아네트> 순이 되겠습니다요. 저도 츠바이크 전기 읽기 전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런 여자인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사치스럽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이 프랑스 재정을 휘청거리게 만든 주요인이었다고는 보기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몇몇 유명한 사건은 날조된 것이더군요. 특히 그 유명한 목걸이 사건..... ㅠㅠ 전기적인 면에서는 엔도 슈사쿠보다는 츠바이크의 전기를 좀 더 추천합니다.

다락방 2022-12-0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 <7월 14일>표지도 정말 읽기 싫게 생겼네요.
이 페이퍼 읽고 나니 잠자냥 님의 지성미가 철철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습니다.

우 윳 빛 깔 잠 자 냥 !!

예나 지금이나 여자 욕하고 처형하기 너무 쉽네요. 미워할 이유도 금세 만들어지고요. 동조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

아이참 그런데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얼른 읽고 싶은데 마틴 에덴 2권과 빌레뜨와 실낙원과 기타 등등이 줄 서고 있어서 그것참..

잠자냥 2022-12-02 15:26   좋아요 0 | URL
<7월 14일> 표지는 참 그렇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에게는 <7월 14일>보다는 사두신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권합니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일단 마틴 에덴 2권 읽고..... 생각해봅시다. <7월 14일>은 패스하셔도 될 거 같............ㅋ

공쟝쟝 2022-12-02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사랑해요! 역시 잠자냥이 아는 최고의 페미니스트가 잠자냥인 거 같아요!!!

저는 정말로 요즘의 정치 비판을 보면서 (굥보다 굥 부인을 더 혐오하고 조국도 조국의 부인이 문제가 되는… 사실 박근혜도 그렇고요) 내가 아는 어쩌면 근대 가 추앙하는 프랑스 시민혁명도 여성혐오가 동력 아니었나, 그게 근대의 한계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던 차였어요! 이 리뷰를 읽으니 확실히 의심이 ㅋㅋㅋ 굳어지고!! 그리고, 이런 시선들이 더 풍부해져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아주 많이 들어요.

매즈 미켈슨이 주연한 <로얄 어페어>라는 영화가 있어요. 덴마크의 개혁적인 정치가가 왕비와 손잡고 정치하려다 스캔들에 휩싸이는 내용인데 당시의 여성혐오적인 상황이 (전 그 스캔들이 실화가 아닐거라고 생각함) 좀 마음 아팠거든요? 페이퍼랑 연관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천재 잠자냥! 지성미 뿜뿜💕

잠자냥 2022-12-02 16:21   좋아요 1 | URL
프랑스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성을 향한 혐오가 아주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는 해요.
날조된 사건마저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국민의 증오를 가라앉히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사건 때문에 왕비는 더 나락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그 죄는 루이16세와 그 전의 루이15세, 루이14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역사도 국민도 루이 16세에게는 참 온정적입니다. 그저 검소하고 소박하고 왕에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 운운............. -_-

루이16세가 성적불능이라는 소문조차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음란함을 부각하는 요소로 작동.........
아니 루이15세는 문란 그 자체였는데!

공쟝쟝 2022-12-02 16:05   좋아요 1 | URL
제가 언급한 영화에서도 왕비를 완존 ㅠㅠㅠㅠㅠ 진짜 왜 그렇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혁명의 유리바닥… 너무 싫어요. 사실 지금도 너무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ㅠㅠ 가야할 길이 멉니다… 인류의 역사여 ㅠㅠㅠㅠㅠㅠ

바람돌이 2022-12-02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으로서의 마리 앙트와네뜨와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왕비로서의 마리 앙트와네뜨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혁명기 마리 앙뜨와네뜨에게 가해진 공격들은 정말 말도 안되는 치졸하고 어이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렇게 됐던데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프랑스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결성되고 있던 유럽왕실들의 대프랑스 연합군의 상징적 빌미가 되었다는것도 크다고 생각해요.(그 연합군의 가장 중심국가가 오스트리아거든요.) 프랑스 민중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서 프랑스혁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터로 끌고 가야하는데 그에 대한 동력 이런걸 추동하기 위해서 마리 앙트와네트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가 철저하게 짓밟히고 이용당했던......
어쨌든 이런 혁명기를 보면 개인의 운명이 자신의 생각이나 뜻한바와는 전혀 다르게 휩쓸려 가는 것들이 항상 슬프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읽고, 집에 사놓고 읽지 않은 츠바이크의 책도 읽고..... 어찌나 읽을 책이 많은지 행복합니다. ㅎㅎ

잠자냥 2022-12-02 20:32   좋아요 1 | URL
네 하필이면 또 그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이라서 혐오가 더 깊어진 거 같습니다. 츠바이크는 진짜 전기 잘 쓰는 작가 같아요. 발자크 전기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바람돌이 님 말씀처럼 읽을 책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2-12-02 17: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있는 저로서는, 잠자냥님의 이 페이퍼는 저를 위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제게 감사하세요. 저를 위한 페이퍼였습니다. 헤헤헤.

잠자냥 2022-12-02 20:34   좋아요 1 | URL
옴머나! 벌써 읽으세요! 짝짝짝 단발머리 님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네 단발머리 님을 위한 페이퍼였습니다! 헤헤헤.

책읽는나무 2022-12-0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사서로만 접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였었는데 뮤지컬로 접하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이용당한 한 여성으로 비춰져 너무 마음이 아팠었던...ㅜㅜ
친구들이랑 나오면서 역사는 어쩌면 저랬을 수도 있었겠다고 곁에 친구랑 둘이서 침울하게 극장을 나왔었네요. 저는 좀 울기도ㅋㅋㅋ
책 읽으면 또 흥분될 것 같아 안 읽으려고 했었는데 아....잠자냥님은 못 말려!!!!
읽어야겠군요!!!
츠바이크 편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재밌다구요?? 다미여 끝나면 읽어보려구요^^

잠자냥 2022-12-03 10:12   좋아요 1 | URL
네 역사책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참 회의가 들더라고요. 나무님 츠바이크 마리 앙트와네트는 진짜 재미 있습니다. 강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