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을 읽은 지 한 달쯤 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도 ‘힐디치’, 그가 생각난다.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분명 ‘펠리시아’다. 그러나 그 대척점에는 힐디치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듯이 이 작품에서 함께 한다. 가족 몰래 집을 나와 조니를 찾아 길을 떠난 순진한 펠리시아는 낯선 영국 땅에서 처음 힐디치 씨를 만난다. 그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퉁퉁한 체구에 안경을 쓴 단정한 외모의 중년 남성이다. 오갈 데 없이 곤경에 처한 펠리시아를 눈여겨보고 그녀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한다. 다만 그 도움이 진정으로 그녀를 위한 것인지 의아한데, 펠리시아는 경계하면서도 사람을 잘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의 도움을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그처럼 친절한 사람은 드물리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한다.
힐디치에게도 어쩌면 처음에는 진심으로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펠리시아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을 ‘도와’주었다. 남편에게 학대당해 집을 나왔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심리적으로 무너진 상태에 있는 여자들에게 접근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따뜻한 차나 음식을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런데 이 도움은 상대를 위했다기보다는, 상대를 위한다는 착각 때문에 결국 순수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한, 선을 가장한 악이 되고 만다. 게다가 그가 아무리 그들에게 잘해주어도, 그들의 눈 속에는 다른 사람이 담겨 있었고, 마침내는 그의 곁을 떠난다. 펠리시아처럼.
힐디치에게도 선이 그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내비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처럼 관목 숲에 둘러싸인 단독주택에서 평생 고독 속에 방치된 채 타인과 정상적인 소통도 할 줄 모르고, 인간관계를 제대로 하는 방법도 모른 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탐욕스러운 식욕으로 달래며 몸만 점점 비대해진 덜 자란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사랑다운 사랑이나, 존중다운 존중을 받아본 적 없는 이 안쓰러운 남자는 공장의 나이 어린 직원들이 회사 동료, 그것도 나이 든 사람에게 응당 대하는 예의를 자신에 대한 존경이나 애정, 신뢰로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여전히 혼자인 채 쓸쓸하게 살아간다. 엘시, 샤론, 베스, 게이, 재키 등 하이에나처럼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며…….
트레버의 작품은 누구도 섣불리 단죄하지 않고, 그 누구의 삶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아주 쓸모없는 이의 삶도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힐디치는 분명 소름끼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많은 거짓말을 너무나 교묘하게 하고, 그것으로 욕망을 채웠으며, 해서는 안 될 행동도 여러 차례 했을 것이다. 펠리시아에게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 소름끼치는 인물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커다란 집에서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라곤 엄마밖에 없던 어린 힐디치. 정상적인 남성으로 자랄 본보기가 될 만한 성인 남자를 본 적이 없는 외로운 소년 힐디치. 그런 데다가 자신을 바로 잡아주고 제대로 된 사랑과 보호를 해야 할 엄마는 그릇된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한다. 이렇게 비뚤어진 세계에서 자란 힐디치는 누군가의 애정과 관심, 존중에 목이 마르기만 하다. 그가 아무런 사이도 아닌 펠리시아를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혐오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가엾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펠리시아가 선의 모습을 했지만 결코 선은 아니었던, 온갖 이기적인 각자의 욕망에 상처받다가도 마침내 아주 평범하지만 오롯이 선 그자체로 빛나는 선을 마주하고 위안을 얻은 것처럼 힐디치에게도 그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이전에 그런 선한 손길이 뻗쳤더라면, 그는 그토록 끔찍하고 거짓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죽음을 마땅한 인과응보라고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 죽음에서도 한없이 쓸쓸한 그림자를 본다. 그 작은 한줄기 선함조차 닿지 않아 그렇게 끝내 타인을 고통의 수렁에 몰아넣고, 또 자기 자신도 지옥으로 몰아가게 되는 안타까운 삶. 이 나쁜 남자조차도 이렇게 연민어린 눈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트레버의 시선이야말로 또 다른 선함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