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라 보에시가 16세기 18세에 쓴 글이라는 <<자발적 복종>>은 권력과 복종의 관계를 권력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복종자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다. 한 마디로 권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종하는 자들에 의해 자리매김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점은 지배의 법칙인 복종의 연쇄라고 생각된다. 군주에 복종하는 상급 관료, 상급 관료에 복종하는 하급 관료 등 계속해서 줄세워지는 복종의 연쇄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발적으로 복종할까? 복종해야만 복종받을 수 있다는 이 복종의 연쇄야말로 지배의 법칙이지 않을까? 랑시에르가 말한 것처럼 우월한 열등자들의 연쇄 또한 이와 같은 복종의 연쇄를 지탱하는 중요한 논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월한 사람에게 머리 숙이며 열등한 사람에게 당당한 그런 우월한 열등자들말이다. 이 연쇄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라 보에시는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강조했지만 내가 보기에 복종하는 것을 그만두기 이전에 복종받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자유의지는 나와 같은 타자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그래야만 나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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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일요일은 제96주년 3·1절이다. ‘주년을 지키는 행사가 국가의 권위를 위해 과거를 단순히 기념한다면 현재의 우리를 확인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3·1절은 191931, 강제로 병합된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스스로 선언한 날이다. 그런데 독립은 누구의 간섭과 도움 없이 스스로 바로 서는 것이다. 한 민족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독립도 선언되지 않으면 안 된다. , ‘라는 개인도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나와 너를 넘어 공동체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다. 나아가 공동체의 독립은 우리들만의 독립을 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우리들의 독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독립은 독립된 개체간의 관계가 모든 공동체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1931일의 독립선언과 이후의 만세운동은 나와 너, 그리고 공동체들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범상치 않은 학생 세 명이 스스로를 증거 삼듯 어렴풋이 영남루가 보이는 밀양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명은 봇짐과 지팡이, 그리고 짚신을 신고 있고 다른 두 명은 두루마리 차림이다. , 여행가는 이와 그를 배웅하는 이가 증거를 남기듯 함께 영남루와 밀양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식민지 조선, 그것도 일본인들에 의해 점점 소외되고 있던 부산진 조선인마을에서 자라나 부산상업학교(부산상고의 전신, 현 개성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이들 세 사람(좌로부터 김인태, 왕치덕, 오택). 10대의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찍이 스스로 독립된 사고 속에 이웃 조선인들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며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아가 김인태는 우리와 같은 세계의 약소민족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1914년 여름, 세계 무전여행에 나섰고 이를 배웅하기 위해 왕치덕과 오택이 밀양까지 배웅했던 것이다. 김인태는 이를 계기로 중국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고 왕치덕, 오택도 역시 친구인 박재혁, 최천택 등과 함께 부산의 의열단원이 되어 의열투쟁 등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이 한 장의 사진은 스스로의 독립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세계 무전여행을 떠나고 배웅하던 10대들의 모습을 오늘날의 10대와 우리에게도 비춰볼 수 있게 고스란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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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NIE에 올해부터 연재하는 글을 옮겨 놓는다. 사진에 '재현된 지역'을 통해 내가 발딛고 있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한국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억하기와 사유하기라고 해두자.]


한국이 식민지로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장악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황제를 회유하여 영남과 관북으로의 순행을 진행했다. 순종황제의 이른바 남순행은 17일부터 13일까지 7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수행원 총 96(한국인 68, 일본인 28)을 거느린 순행은 남대문에서 궁정열차를 타고 대구(1)->부산(2)->마산(2)->대구(1)를 거쳐 다시 남대문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이때 순행은 주로 능행이나 원행이며 도성 주변과 경기도에 한정되던 이전 순행과는 사뭇 달랐다. 더불어 사전 논의 없이 통감과 통감부의 일본인들에 의해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통감을 비롯하여 일본인 관료가 직접 황제를 배종했다. 이는 순종황제의 순행이 통감부의 특별한 정치 기획이며, 일본의 의도와 계획 속에 진행된 이벤트임을 알 수 있다. 1909년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의병운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본에 저항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인들의 저항을 진압하지 못하면 한국의 식민지화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일본은 남한대토벌작전을 통해 의병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한편, 순종황제를 앞세운 순행이라는 정치 이벤트를 통해 한국인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18일 오전 1145분 부산역에 도착한 순종황제는 이틀에 걸쳐 동래부와 일본 제2함대 및 상품진열관을 방문했다. 동래부 행차는 연도 및 동래부 한국인들을 위무하며 통치 안정화를 꾀한 것이었다면, 군사적 침탈의 상징인 제2함대 및 경제적 침탈의 상징인 상품진열관 행차는 황제의 권위와 상징성을 동원하여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한 것이었다. 이는 통감부가 제작한 한국황제폐하행행기념엽서 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순종황제의 상품진열관 행차를 담은 이 사진은 한일우호를 강조하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된 장수통(, 광복로)을 지나가는 황제 일행과 이를 환영하는 길가의 지역민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순행행렬은 이토 통감 및 일본인들이 배종했고 환영인파도 대부분 일본인들이다. 물론 두루마리와 댕기머리의 한국인이 보이지만 소수이며 그마저 뒤편에 처져 있다. 이는 한일우호를 강조하지만 순행 및 환영의 주체가 오히려 일본과 일본인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순종황제의 부산 순행도 일본의 기획에 의해 식민지화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당한 정치 이벤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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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서적인쇄와 서적거래의 역사- 구텐베르크의 발명에서 1600년까지
프리드리히 카프 지음, 최경은 옮김 / 한국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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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는 국가가 국민을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만드는지를 전쟁과 동원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이때 국가는 민족국가는 아니고 제국-식민지국가이다. 하지만 국가라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하다. 한국과 북한이 국민과 인민을 한국전쟁을 통해 만든 것도 이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제국 연구라는 틀은 우리를 둘러싼 시공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이 책은 일제가 식민지민인 조선인을 병사로 동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한적이며 한정적인 참정권을 논의하는 과정을 지배정책을 통해 드러낸 책이다. 이를 통해 병사라는 의무와 참정권이라는 권리가 동전의 양면처럼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제시기는 그마저 전쟁 '동원'을 위한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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