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일요일은 제96주년 3·1절이다. ‘주년을 지키는 행사가 국가의 권위를 위해 과거를 단순히 기념한다면 현재의 우리를 확인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3·1절은 191931, 강제로 병합된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스스로 선언한 날이다. 그런데 독립은 누구의 간섭과 도움 없이 스스로 바로 서는 것이다. 한 민족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독립도 선언되지 않으면 안 된다. , ‘라는 개인도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나와 너를 넘어 공동체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다. 나아가 공동체의 독립은 우리들만의 독립을 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우리들의 독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독립은 독립된 개체간의 관계가 모든 공동체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1931일의 독립선언과 이후의 만세운동은 나와 너, 그리고 공동체들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범상치 않은 학생 세 명이 스스로를 증거 삼듯 어렴풋이 영남루가 보이는 밀양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명은 봇짐과 지팡이, 그리고 짚신을 신고 있고 다른 두 명은 두루마리 차림이다. , 여행가는 이와 그를 배웅하는 이가 증거를 남기듯 함께 영남루와 밀양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식민지 조선, 그것도 일본인들에 의해 점점 소외되고 있던 부산진 조선인마을에서 자라나 부산상업학교(부산상고의 전신, 현 개성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이들 세 사람(좌로부터 김인태, 왕치덕, 오택). 10대의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찍이 스스로 독립된 사고 속에 이웃 조선인들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며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아가 김인태는 우리와 같은 세계의 약소민족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1914년 여름, 세계 무전여행에 나섰고 이를 배웅하기 위해 왕치덕과 오택이 밀양까지 배웅했던 것이다. 김인태는 이를 계기로 중국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고 왕치덕, 오택도 역시 친구인 박재혁, 최천택 등과 함께 부산의 의열단원이 되어 의열투쟁 등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이 한 장의 사진은 스스로의 독립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세계 무전여행을 떠나고 배웅하던 10대들의 모습을 오늘날의 10대와 우리에게도 비춰볼 수 있게 고스란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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