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NIE에 올해부터 연재하는 글을 옮겨 놓는다. 사진에 '재현된 지역'을 통해 내가 발딛고 있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한국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억하기와 사유하기라고 해두자.]


한국이 식민지로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장악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황제를 회유하여 영남과 관북으로의 순행을 진행했다. 순종황제의 이른바 남순행은 17일부터 13일까지 7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수행원 총 96(한국인 68, 일본인 28)을 거느린 순행은 남대문에서 궁정열차를 타고 대구(1)->부산(2)->마산(2)->대구(1)를 거쳐 다시 남대문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이때 순행은 주로 능행이나 원행이며 도성 주변과 경기도에 한정되던 이전 순행과는 사뭇 달랐다. 더불어 사전 논의 없이 통감과 통감부의 일본인들에 의해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통감을 비롯하여 일본인 관료가 직접 황제를 배종했다. 이는 순종황제의 순행이 통감부의 특별한 정치 기획이며, 일본의 의도와 계획 속에 진행된 이벤트임을 알 수 있다. 1909년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의병운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본에 저항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인들의 저항을 진압하지 못하면 한국의 식민지화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일본은 남한대토벌작전을 통해 의병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한편, 순종황제를 앞세운 순행이라는 정치 이벤트를 통해 한국인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18일 오전 1145분 부산역에 도착한 순종황제는 이틀에 걸쳐 동래부와 일본 제2함대 및 상품진열관을 방문했다. 동래부 행차는 연도 및 동래부 한국인들을 위무하며 통치 안정화를 꾀한 것이었다면, 군사적 침탈의 상징인 제2함대 및 경제적 침탈의 상징인 상품진열관 행차는 황제의 권위와 상징성을 동원하여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한 것이었다. 이는 통감부가 제작한 한국황제폐하행행기념엽서 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순종황제의 상품진열관 행차를 담은 이 사진은 한일우호를 강조하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된 장수통(, 광복로)을 지나가는 황제 일행과 이를 환영하는 길가의 지역민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순행행렬은 이토 통감 및 일본인들이 배종했고 환영인파도 대부분 일본인들이다. 물론 두루마리와 댕기머리의 한국인이 보이지만 소수이며 그마저 뒤편에 처져 있다. 이는 한일우호를 강조하지만 순행 및 환영의 주체가 오히려 일본과 일본인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순종황제의 부산 순행도 일본의 기획에 의해 식민지화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당한 정치 이벤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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