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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의 정치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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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세계체제 4- 중도적 자유주의의 승리, 1789-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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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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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세계체제 2- 중상주의와 유럽 세계경제의 공고화 1600-1750년, 제2판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재건 외 옮김 / 까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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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들을 발명해내기(에릭 홈스봄)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용어는 광범위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하지는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용어에는 실제로 발명되고 구성되어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전통들’은 물론이요, 그 기원을 쉽게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추정은 가능한 시기-대략 수년 사이-에 등장해 급속하게 확립된 ‘전통들’이 모두 포함된다.

‘만들어진 전통’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통상 공인된 규칙에 의해 지배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의례나 상징적 성격을 갖는 일련의 관행들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들은 특정한 가치와 행위규준을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내포한다. 즉 전통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인데도 불구하고 예전 상황들에 준거하는 형식을 띠거나, 아니면 거의 강제적인 반복을 통해 제 나름의 과거를 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을 이른바 ‘전통적’ 사회들을 지배하는 ‘관습’과 명백히 구별해야만 한다. 전통들이 준거하는 과거는, 실재하는 것이든 발명된 것이든 늘 반복되어 고착된 (보통 공식화된) 관행들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반면, 관습이 하는 일은 선례와 사회적 연속성 그리고 역사에 표출된 자연법에 비추어 바람직하다고 간주된 어떤 변화(혹은 혁신에 대한 저항)를 승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습’은 법관들이 하는 일이며, 그 반면에 ‘전통’(만들어진 전통)은 법관들의 실질적인 행위를 감싸고 있는 것들, 이를 테면 머리장식이나, 법복, 기타 공식적인 장식과 의례화된 관행들이다. ‘관습’이 쇠퇴하면 관습과 상습적으로 뒤얽혀있는 ‘전통’도 불가피하게 변화하게 마련이다.

‘관습’과의 차이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구별해 두어야 할 두 번째 차이는 그 자체 어떠한 중요한 의례나 상징적 기능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부수적인 의미만 있을 뿐인 인습이나 관례와의 차이이다. 어떤 사회적 관행은, 반복적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는 한, 그 편의성과 효율성 때문에라도 일련의 인습과 관례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인습망과 관례망은 ‘만들어진 전통들’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 기능과 거기서 유래하는 정당화 양식이 이데올로기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전통’과 실용적인 인습 및 관례는 길항관계)

전통을 발명해낸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 가정하듯이 과거에 준거함을 특징으로 하면서 다만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공식화되고 의례화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통의 발명은 사회가 급속히 변형됨으로써 ‘낡은’ 전통이 기반하고 있던 사회적 패턴들이 약화되거나 파괴되어 그 결과 낡은 전통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질 때나, 아니면 낡은 전통과 그것들을 제도적으로 매개하고 보급하는 수단이 더 이상 융통성 있게 적응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을 때 더 자주 일어난다. 그런 변화들은 특히 지난 200년 사이에 중요했다. 이러한 것은 이른바 ‘전통적’ 사회들에만 국한되어 발생한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형태의 ‘근대적’ 사회들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적응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낡은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위해 낡은 모델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당히 새로운 목적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만들어진 전통들을 구성하는 데 낡은 재료들을 이용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통들이 어느 정도까지 낡은 재료들을 활용하고, 어느 정도까지 새로운 언어와 고안품들을 발명하거나 낡은 상징적 어휘의 한계를 확장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정치제도와 이데올로기적 운동 및 집단-아닌 게 아니라 민족주의에서-이 너무도 전례 없는 것들이라, 즉각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연속성을 발명해야만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예 고대적인 과거를 창조해 버린 경우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상징과 고안물들이 민족운동과 민족국가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또한 진정한 고대성을 내포하는 전통적인 ‘상투어들’에서조차 종종 드러나는 연속성의 단절을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전통이 발명되는 것은 종종 낡은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거나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낡은 방식을 의도적으로 활용 또는 적용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전통들에는 서로 중첩되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첫째, 특정한 집단들, 실재하는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공동체들의 사회 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는 것들이다. 둘째, 제도, 지위, 권위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하는 것들이다. 셋째, 그 주요 목표가 사회화나 혹은 신념, 가치체계, 행위규범을 주입하는 데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둘째, 셋째 유형의 전통들은 확실히 고안된 것이다(영국령 인도에서 권위에의 복종을 상징하는 것들처럼). 그 반면에 가설이기는 하지만, 세 유형들 중 첫째 유형이 우세했고, 따라서 그 밖의 다른 기능들은 모두 특정한 ‘공동체’ 그리고(혹은) 그 공동체를 대표하고 표현하며 상징하는 제도들-가령 ‘민족’처럼-과의 일체감에 내재해 있거나, 적어도 그런 일체감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난점은 그런 대규모 사회적 실체들이 실은 ‘공동사회’이기는커녕 공인된 관등체제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유동성과 엄연한 계급 갈등의 현실 그리고 우세한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전통과 공식 위계(가령, 군대)들 내부의 현격한 불평등을 두루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한편, 만들어진 전통들은 실제로 지위를 계약의 세계로,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를 법적으로 동등한 자들의 세계로 밀어넣기도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이 노골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즉 만들어진 전통들은 사실상 불평등한 사회조직에 대한 공식적인 상징적 동의를 통해 은밀하게 도입될 수 있었다.

일단 ‘공동체주의적인’ 만들어진 전통들이 기본유형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통상 특정 집단의 전통들의 경우에는 통과의례들이 두드러지는 반면에(입회.승진.은퇴.죽음), 포괄적인 유사 공동체들(민족.나라)을 위해 고안된 전통들의 경우에는 보통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낡은 관행은 특정하고도 강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적 관행들이었던 반면에, 만들어진 관행은 그것들이 주입하는 집단적 가치와 권리와 의무, 즉 ‘애국주의’ ‘충성’ ‘사명’ ‘정정당당함’ ‘단결심’ 등과 관련해 어지간히 불특정하고 모호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상징하는 관행들은 사실상 강제적이다.

두 번째로 관찰할 필요가 있는 대목은, 수많은 발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통들이 낡은 전통과 관습이 점진적으로 쇠퇴함으로써 생긴 수많은 공백 중 극히 미미한 부분만을 메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반적 결론은 시민의 공적 삶이라고 할 만한 영역(얼마간은 대중매체와 같은 사적인 형태들과는 구별되는, 학교와 같은 공적인 사회화 형태들까지 포함해)에는 적용될 수 없다. 기실 사람들이 시민권 자체를 의식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상징 및 준의례적 관행들(이를 테면, 선거)과 만날 때인데, 그 대부분이 실은 국기.이미지.기념식.음악처럼 역사적으로 새롭고 대개는 발명된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역사가들은 전통의 발명을 연구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챙길 수 있는가

무엇보다 만들어진 전통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마땅히 감지할 도리가 없는 문제들과 다른 방법으로는 확인하고 그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발전들을 가르키는 중요한 징후요, 따라서 지표라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만들어진 전통들은 요컨대 증거인 것이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전통들은 인간이 과거와 맺는 관계에 대해, 그러므로 역사가와 주제와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왜냐 하면 일체의 만들어진 전통들에서 역사는 가능한 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제와 집단을 통합하는 접착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가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문적인 연구의 세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공적 영역에도 속하는 과거의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 모든 역사가들은 그들의 목표야 어찌되었든 필연적으로 그런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근현대사가들이 ‘만들어진 전통들’에 대해 갖는 한 가지 특정한 관심

그들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혁신물인 ‘민족’과 그것에 부수된 현상들, 예컨대 민족주의.민족국가.민족적 상징들.민족사 등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민족적 현상은 ‘전통의 발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는 결코 적절하게 조사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전통의 발명에 대한 연구는 학제적이며 학제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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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적인 공적 영역들을 ‘雜觀’, ‘夜話’, ‘片片’ 등의 짤막한 풍문, 소식 등 잡다함으로 대중에게 환기시켜 유통하는 방법은 개인의 사적 흥미(취미)를 창출/충족시켜 삼천리라는 ‘정치·문화적 공론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문화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천리의 입장은 대중의 욕망과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의 욕망이 정치·문화적 기획이라는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삼천리를 “취미 중심의 교양잡지”라고 하든지 “취미와 교양의 종합지”라고 하든지 모두 ‘취미(흥미)’가 대중과의 관계 맺기의 한 방식인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인지 삼천리는 “‘대중문화화’된 ‘정치 군사 국제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앎의 새로운 배치”라고까지 제기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취미화’라고 할 수 있다. 공사의 영역을 구분할 수 없는 근대사회에서 그래도 여전히 공사의 구분은 시도되곤 한다. 공적 영역을 정치의 영역이라고 하며 이를 사적 영역과 구분하여 보고자 한 고대와는 달리 근대는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과 구분할 수 없다. 그 만큼 ‘사회’가 공사 영역에 끼어들면서 공사영역의 구분이 어렵게 되었고 상호 연관관계(불리불가능) 속에서 주체와 주체를 둘러싼 환경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와 취미의 관계 또한 그렇다. 정치는 자타의 문제이지만 취미/취향은 개인의 문제이다. 물론 그 취미와 취향이 공통감각을 의미할 정도로 확대될 때 자타의 문제로 전환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취미/취향의 문제는 언제나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정치와 취미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뉠 수 있으며 이를 근대는 상호 긴밀한 관련 속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삼천리를 통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20~30년대 문화민족주의는 대중의 취미/취향의 형성뿐만 아니라 그 취미/취향을 정치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기획을 수립하고 전개하였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정치의 취미화’와 ‘취미의 정치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삼천리와 1930년대 문화민족주의자들은 근대적 취미/취향의 형성단계인 시대적 분위기와 자본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대중문화를 자신들이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취미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취미화’를 통해 정치의 장을 확보/확장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근대는 표상, 재편, 대표하는 것들이 언제나 권력을 획득하며 그에 따라 처음 기획된 내용과 의미는 사라지고 그 대리/대표/재현(re-presentation)의 권력화와 그에 따른 결과만을 배태한다. 저 유명한 맑스의 화폐 개념을 생각해 보라. 결국 정치를 ‘취미화’하여 대중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문화민족주의의 기획은 오히려 취미의 장에 정치를 가두는 꼴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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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으로 사회가 대립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이다. 광복절이든 건국절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일단 명칭 논란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확대되고 좌우익간의 정치적 적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징후로 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물론 전제하면 나는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적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그 긍정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유지, 강화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부분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역사적 상황에서의 긍부정은 진리로써의 긍부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족국가와 국민국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좌파들이 민족주의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심할 경우 극우파시스트와 같은 것으로 악평해버리기도 한다. 왜 최근에 탈민족담론 속에서 적대적 공존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민족과 국가는 다른 것이라고, 민족국가와 국민국가 역시 다른 것이라고 차이를 강조한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것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차이는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을 우선시 하는 사람과 국가를 우선시 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 사회에는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할 만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원래 우파는 민족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포획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은 반공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선택하도록 하였고 도리어 좌파가 민족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사제로 복무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때, 나는 민족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저항 민족주의로부터 출발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권력에 종속된 주체로 형성된 국가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될 위험성을 다분이 지니고 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이광수가 대표적이다. 수사적 표현과 그 본질은 차이가 있으니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그럼 나는 식민지 조선을 바로보는 역사상이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건국절 운운 하는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인식은 식민지를 우리 역사에서 제거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식민지 조선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일본에 의해 근대화된 그런 식민지이며 개인의 능력이 만개한 그런 식민지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저들이 제기하는 논리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지적되는 성장론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거이다. 그들의 비판지점이 기존 역사학에서 제기된 식민지 수탈론에 대한 반발이라면 그 지점에서 의미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개발과 성장만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무한 인정과 국가권력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 이면에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가는 엄연히 내부적 적대를 조장하며서도 모순되게 그 적대를 봉합한다. 그런 기술이 공공사업을 통한 재분배이다. 그런데 국가는 애초에 약탈을 위해 존재함으로 그 약탈의 확대재생산을 위해서는 개발과 재분배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식민지는 어떤가?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수탈만을 강조하였다. 정초적인 약탈은 있겠지만 이후 지속적인 약탈을 위해서는 개발은 당연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경제사학계는 개발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약탈과 개발은 재분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 재분배는 약탈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 또한 식민지에 대해 개발-약탈(수탈)-재분배의 시스템을 가동하며 제국의 유지, 강화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본국과 식민지의 차이점은 개발과 수탈의 정도도 있겠지만 재분배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가 개발과 수탈, 각각 일면에만 집착함으로써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붙이자면 최근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탈근대적 논리 속에서도 이와 같이 개발과 수탈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재분배에 따른 차이를 시야에 넣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식민지 조선에서의 재분배 문제는 중요하다. 

  한편, 재분배는 개발 및 약탈과 정비례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면 약탈도 클 것이고 이를 다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또한 클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제국과 근대를 모두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역사적 예가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들을 전쟁에 뛰어 들게 하기 위해 일제는 극소수의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결국 더 많은 약탈을 위해서는 적으나마 정치적 재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개발과 수탈이라는 적대적 대립쌍을 각각 연구할 것이라 아니라 재분배를 통해 개발과 수탈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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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화는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상상적 동일화)를 넘어 상징계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빗금 그어진 기표로서 그렇게 말이다. 라캉의 상징적 동일화의 개념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 속에서 '호명'의 개념으로 재탄생했다. 상징계는 주체를 통해 작동된다. 즉, 상징계는 자기를 활성화시킬 주체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에 의해 이 주체의 자리가 채워져야 한다. 이렇게 큰타자는 누군가를 부르고 누군가는 이 부름에 응답하여 스스로를 주체로 내세우려면 그는 자신을 지워야 한다. 자신을 지운다는 의미는 예를 들면 관계맺는 공간과 밀접하게 연관맺고 있는데 농민이었다가 노동자가 된 사람이나 학생이다가 선생이 된 사람이나 솔로였다가 결혼한 사람이나 각각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항상 그 이전의 자신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가 어떻게/왜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느냐이다. 즉 누군가가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거세 위협이라는 '외부적 억압'을 제기한다면, 알튀세르는 호명에 의한 '상상적 오인'이라고 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 가능성을 전제하였다. 그런데 왜 주체가 그 자리를 선택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그 선택은, 그 자리차지함은 '우연(맹목적 필연)'에 호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속에서는 주체화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주체화의 거부, 즉 혁명은 이루어질 수 없다. 혁명불가능성이 애초부터 전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극한으로 밀고 가 뚫어버린 사람이 지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젝은 라캉의 '강요된 선택'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라캉이 말하는 강요된 선택은 존재(육체)와 의미(상징계)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누군가가, 즉 선-주체가 육체적 존재를 택한다면, 그는 쾌락을 얻지만 상징계 밖에 처한다. 고대의 추방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고대적 추방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결국 이것은 상징계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 속에서 그의 쾌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반면 상징계를 선택한다면, 즉 큰타자의 호명에 부응한다면 그는 삶의 의미를 얻지만, 동시에 쾌락을 상실한다. 즉 그는 상징계에 의해 노예적으로 착취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라캉의 강요된 선택은 누군가가 어떻게 주체가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주체에게는 쾌락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던가 아니면 차선의 선택으로서 상징계를 선택하던가 양자택일의 강요된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선택은 불가피한 강요에 의한 선택이며,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는 것은 겉보기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주체에게는 극단적인 경우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는 주체가 상징계의 동일화를 벗어날 가능성을 암시하게 된다. 결국 돌파구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죽음의 선택이 곧 라캉에게서 상징계로부터의 분리이다.(지젝은 상징적 죽음에 대한 예로 항상 여성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안티고네와 잉그리트 버그만이 바로 그들이다. 극단적으로 여성만이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상징계 속의 주체는 결국 '강요된 선택'(상징적 죽음이냐 주체화냐)과 '환상의 뇌물'을 통해 이중적으로 포박된 존재인 것이다. 주체화란 상징계의 큰타자에 의해 '강요된 선택'을 통해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이를 매꾸기 위한 환상을 그 구멍에 진연하는 그런 것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징적 죽음이라는 '진정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젝은 여성만이 상징적 죽음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 남성은 안되는가? 가부장제적 사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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