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들을 발명해내기(에릭 홈스봄)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용어는 광범위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하지는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용어에는 실제로 발명되고 구성되어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전통들’은 물론이요, 그 기원을 쉽게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추정은 가능한 시기-대략 수년 사이-에 등장해 급속하게 확립된 ‘전통들’이 모두 포함된다.

‘만들어진 전통’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통상 공인된 규칙에 의해 지배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의례나 상징적 성격을 갖는 일련의 관행들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들은 특정한 가치와 행위규준을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내포한다. 즉 전통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인데도 불구하고 예전 상황들에 준거하는 형식을 띠거나, 아니면 거의 강제적인 반복을 통해 제 나름의 과거를 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을 이른바 ‘전통적’ 사회들을 지배하는 ‘관습’과 명백히 구별해야만 한다. 전통들이 준거하는 과거는, 실재하는 것이든 발명된 것이든 늘 반복되어 고착된 (보통 공식화된) 관행들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반면, 관습이 하는 일은 선례와 사회적 연속성 그리고 역사에 표출된 자연법에 비추어 바람직하다고 간주된 어떤 변화(혹은 혁신에 대한 저항)를 승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습’은 법관들이 하는 일이며, 그 반면에 ‘전통’(만들어진 전통)은 법관들의 실질적인 행위를 감싸고 있는 것들, 이를 테면 머리장식이나, 법복, 기타 공식적인 장식과 의례화된 관행들이다. ‘관습’이 쇠퇴하면 관습과 상습적으로 뒤얽혀있는 ‘전통’도 불가피하게 변화하게 마련이다.

‘관습’과의 차이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구별해 두어야 할 두 번째 차이는 그 자체 어떠한 중요한 의례나 상징적 기능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부수적인 의미만 있을 뿐인 인습이나 관례와의 차이이다. 어떤 사회적 관행은, 반복적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는 한, 그 편의성과 효율성 때문에라도 일련의 인습과 관례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인습망과 관례망은 ‘만들어진 전통들’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 기능과 거기서 유래하는 정당화 양식이 이데올로기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전통’과 실용적인 인습 및 관례는 길항관계)

전통을 발명해낸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 가정하듯이 과거에 준거함을 특징으로 하면서 다만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공식화되고 의례화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통의 발명은 사회가 급속히 변형됨으로써 ‘낡은’ 전통이 기반하고 있던 사회적 패턴들이 약화되거나 파괴되어 그 결과 낡은 전통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질 때나, 아니면 낡은 전통과 그것들을 제도적으로 매개하고 보급하는 수단이 더 이상 융통성 있게 적응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을 때 더 자주 일어난다. 그런 변화들은 특히 지난 200년 사이에 중요했다. 이러한 것은 이른바 ‘전통적’ 사회들에만 국한되어 발생한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형태의 ‘근대적’ 사회들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적응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낡은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위해 낡은 모델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당히 새로운 목적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만들어진 전통들을 구성하는 데 낡은 재료들을 이용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통들이 어느 정도까지 낡은 재료들을 활용하고, 어느 정도까지 새로운 언어와 고안품들을 발명하거나 낡은 상징적 어휘의 한계를 확장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정치제도와 이데올로기적 운동 및 집단-아닌 게 아니라 민족주의에서-이 너무도 전례 없는 것들이라, 즉각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연속성을 발명해야만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예 고대적인 과거를 창조해 버린 경우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상징과 고안물들이 민족운동과 민족국가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또한 진정한 고대성을 내포하는 전통적인 ‘상투어들’에서조차 종종 드러나는 연속성의 단절을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전통이 발명되는 것은 종종 낡은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거나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낡은 방식을 의도적으로 활용 또는 적용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전통들에는 서로 중첩되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첫째, 특정한 집단들, 실재하는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공동체들의 사회 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는 것들이다. 둘째, 제도, 지위, 권위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하는 것들이다. 셋째, 그 주요 목표가 사회화나 혹은 신념, 가치체계, 행위규범을 주입하는 데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둘째, 셋째 유형의 전통들은 확실히 고안된 것이다(영국령 인도에서 권위에의 복종을 상징하는 것들처럼). 그 반면에 가설이기는 하지만, 세 유형들 중 첫째 유형이 우세했고, 따라서 그 밖의 다른 기능들은 모두 특정한 ‘공동체’ 그리고(혹은) 그 공동체를 대표하고 표현하며 상징하는 제도들-가령 ‘민족’처럼-과의 일체감에 내재해 있거나, 적어도 그런 일체감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난점은 그런 대규모 사회적 실체들이 실은 ‘공동사회’이기는커녕 공인된 관등체제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유동성과 엄연한 계급 갈등의 현실 그리고 우세한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전통과 공식 위계(가령, 군대)들 내부의 현격한 불평등을 두루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한편, 만들어진 전통들은 실제로 지위를 계약의 세계로,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를 법적으로 동등한 자들의 세계로 밀어넣기도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이 노골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즉 만들어진 전통들은 사실상 불평등한 사회조직에 대한 공식적인 상징적 동의를 통해 은밀하게 도입될 수 있었다.

일단 ‘공동체주의적인’ 만들어진 전통들이 기본유형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통상 특정 집단의 전통들의 경우에는 통과의례들이 두드러지는 반면에(입회.승진.은퇴.죽음), 포괄적인 유사 공동체들(민족.나라)을 위해 고안된 전통들의 경우에는 보통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낡은 관행은 특정하고도 강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적 관행들이었던 반면에, 만들어진 관행은 그것들이 주입하는 집단적 가치와 권리와 의무, 즉 ‘애국주의’ ‘충성’ ‘사명’ ‘정정당당함’ ‘단결심’ 등과 관련해 어지간히 불특정하고 모호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상징하는 관행들은 사실상 강제적이다.

두 번째로 관찰할 필요가 있는 대목은, 수많은 발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통들이 낡은 전통과 관습이 점진적으로 쇠퇴함으로써 생긴 수많은 공백 중 극히 미미한 부분만을 메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반적 결론은 시민의 공적 삶이라고 할 만한 영역(얼마간은 대중매체와 같은 사적인 형태들과는 구별되는, 학교와 같은 공적인 사회화 형태들까지 포함해)에는 적용될 수 없다. 기실 사람들이 시민권 자체를 의식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상징 및 준의례적 관행들(이를 테면, 선거)과 만날 때인데, 그 대부분이 실은 국기.이미지.기념식.음악처럼 역사적으로 새롭고 대개는 발명된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역사가들은 전통의 발명을 연구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챙길 수 있는가

무엇보다 만들어진 전통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마땅히 감지할 도리가 없는 문제들과 다른 방법으로는 확인하고 그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발전들을 가르키는 중요한 징후요, 따라서 지표라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만들어진 전통들은 요컨대 증거인 것이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전통들은 인간이 과거와 맺는 관계에 대해, 그러므로 역사가와 주제와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왜냐 하면 일체의 만들어진 전통들에서 역사는 가능한 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제와 집단을 통합하는 접착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가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문적인 연구의 세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공적 영역에도 속하는 과거의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 모든 역사가들은 그들의 목표야 어찌되었든 필연적으로 그런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근현대사가들이 ‘만들어진 전통들’에 대해 갖는 한 가지 특정한 관심

그들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혁신물인 ‘민족’과 그것에 부수된 현상들, 예컨대 민족주의.민족국가.민족적 상징들.민족사 등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민족적 현상은 ‘전통의 발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는 결코 적절하게 조사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전통의 발명에 대한 연구는 학제적이며 학제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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