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으로 사회가 대립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이다. 광복절이든 건국절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일단 명칭 논란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확대되고 좌우익간의 정치적 적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징후로 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물론 전제하면 나는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적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그 긍정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유지, 강화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부분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역사적 상황에서의 긍부정은 진리로써의 긍부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족국가와 국민국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좌파들이 민족주의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심할 경우 극우파시스트와 같은 것으로 악평해버리기도 한다. 왜 최근에 탈민족담론 속에서 적대적 공존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민족과 국가는 다른 것이라고, 민족국가와 국민국가 역시 다른 것이라고 차이를 강조한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것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차이는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을 우선시 하는 사람과 국가를 우선시 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 사회에는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할 만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원래 우파는 민족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포획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은 반공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선택하도록 하였고 도리어 좌파가 민족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사제로 복무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때, 나는 민족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저항 민족주의로부터 출발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권력에 종속된 주체로 형성된 국가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될 위험성을 다분이 지니고 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이광수가 대표적이다. 수사적 표현과 그 본질은 차이가 있으니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그럼 나는 식민지 조선을 바로보는 역사상이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건국절 운운 하는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인식은 식민지를 우리 역사에서 제거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식민지 조선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일본에 의해 근대화된 그런 식민지이며 개인의 능력이 만개한 그런 식민지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저들이 제기하는 논리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지적되는 성장론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거이다. 그들의 비판지점이 기존 역사학에서 제기된 식민지 수탈론에 대한 반발이라면 그 지점에서 의미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개발과 성장만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무한 인정과 국가권력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 이면에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가는 엄연히 내부적 적대를 조장하며서도 모순되게 그 적대를 봉합한다. 그런 기술이 공공사업을 통한 재분배이다. 그런데 국가는 애초에 약탈을 위해 존재함으로 그 약탈의 확대재생산을 위해서는 개발과 재분배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식민지는 어떤가?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수탈만을 강조하였다. 정초적인 약탈은 있겠지만 이후 지속적인 약탈을 위해서는 개발은 당연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경제사학계는 개발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약탈과 개발은 재분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 재분배는 약탈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 또한 식민지에 대해 개발-약탈(수탈)-재분배의 시스템을 가동하며 제국의 유지, 강화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본국과 식민지의 차이점은 개발과 수탈의 정도도 있겠지만 재분배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가 개발과 수탈, 각각 일면에만 집착함으로써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붙이자면 최근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탈근대적 논리 속에서도 이와 같이 개발과 수탈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재분배에 따른 차이를 시야에 넣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식민지 조선에서의 재분배 문제는 중요하다.
한편, 재분배는 개발 및 약탈과 정비례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면 약탈도 클 것이고 이를 다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또한 클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제국과 근대를 모두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역사적 예가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들을 전쟁에 뛰어 들게 하기 위해 일제는 극소수의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결국 더 많은 약탈을 위해서는 적으나마 정치적 재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개발과 수탈이라는 적대적 대립쌍을 각각 연구할 것이라 아니라 재분배를 통해 개발과 수탈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