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만주라고 일컫는 중국의 동북지역, 즉 동북3(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사 속 소용돌이의 현장이었다. , 만주는 청말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추진한 한족의 대량 이주가 이루어졌던 곳이며, 근대 초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이후 서구화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요동이 일본에 할양되었다가 러시아 등의 삼국간섭에 의해 도리어 러시아에 조차되었던 곳이다. 또한 제국주의 국가 간에 동아시아의 쟁패를 겨룬 러일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가 러시아의 기득권을 양도받아 본격적으로 동북지역을 침략하기 위한 제반 기관과 시설을 설치하였던 곳이다.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9·18사변과 괴뢰 만주국의 건국이 추진되었고, 7·7사변과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그리고 만주국의 붕괴가 일어났던 역사적 공간이었다.

중국 동북지역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쟁패를 다투던 싸움터였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 등 동북아시아의 다양한 민족들이 융합된 다민족 집합 공간이었다. 또한 일제의 점령과 더불어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 기지였으며 식민 통치의 우위를 전 세계에 드러내기 위한 일제의 각종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실험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각종 근대적 기획이 실험되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 실험과 경험, 그리고 기억은 이후 일본 본국은 물론 중국,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만주국이라고 하는 신생국가는 왕도정치를 내세우며 민족협화’, ‘오족협화라는 테제 속에 동아시아 여러 민족을 융합하고자 실험하였기에 민족적 다양성과 복합성을 내재한 공간이었다. 또한 만주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위성국, 또는 꼭두각시 나라들의 원형이었다. 따라서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등이 그들의 우방에 영향을 주었던 본보기였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동북지역은, 현재의 동북지역은 물론 그와 연관되었던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및 냉전 시대를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블랙박스와 같은 공간인 것이다.

동북지역이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동북지역과 만주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각각 새로운 근대 국민국가가 해당 지역 또는 인접한 지역에 들어서면서 각각의 국가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동북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잊어야 할, 또는 은폐해야 할 것으로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국가(민족)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부분적으로 이용되거나 부각되는 모순도 존재하였다. , 중국의 경우 동북지역은 일제에 의해 점령당해 억압받던 악몽의 시공간이었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건국된 만주국은 () 만주국으로 폄하되는 한편, 오랜 기간 전개되었던 중국 국공내전의 역사를 끝냈던 중국 공산당의 승리의 보루로만 기억되었다.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적인 만행을 숨기고 피해국으로 표상화하기 위한 과정 속에 만주국의 기억과 그 관계는 끝내 침묵하는 한편,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만주국 건국의 이상개발에 맞추어 식민지 근대화론만을 거듭 강조하였다. 한국의 경우 북한이던 남한이던 만주는 철저하게 일본인에게도 중국인에게도 박해받는 조선인들의 민족의 수난처였으며 항일 독립 운동의 메카로만 이해되었다. 이러한 각국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동북지역에서의 역사적 경험을 모두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부분적인 사실이 전체인 것처럼 호도되는 현실이 문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철저한 역사적 이해는 동아시아를 둘러싼 각국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고 각각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 불현듯 불거지는 역사적 갈등은 동북지역에 대한 각각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에 역사 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지역에 대한 입체적이고 올바른 역사적 이해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동북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연구하는 것과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동아시아 국가의 현재가 20세기 전반 동북지역의 실험과 경험 및 그 기억 속에서 잉태된 것으로 이해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동북지역의 경험과 실험이 이른바 전후 ‘1940년대 체제를 이끌었다는 전제 아래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로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연구에서는 주로 전후 정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주국의 관료 및 관동군에 대한 연구로부터 전후 일본 경제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그 조사부에 대한 연구 등이 이루어졌고 최근 들어 더욱 다각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만주국이 단순한 괴뢰국이라기보다는 그 건국의 이상과 관련하여 민족적 다양성과 복합성을 유지하고자 한 동아시아적 근대로 이해하는 탈근대적 관점의 연구가 서구 학계에서 전개되었다. 한국에서도 기존의 연구 경향을 비판하며 탈민족적인 시각에서 만주와 재만 조선인에 대한 연구가 국문학계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국문학계의 연구가 주로 담론을 통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다보니 기존의 수난처와 독립 운동의 메카라는 일면적인 만주 인식에 비판적 이해는 불러왔지만, 동북지역의 현실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학계에서도 만주학회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재만 조선인 연구로부터 만주국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는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동북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연구사적 의의를 통해 볼 때 일본식민통치대련40년사는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동북지역의 역사적 이해로써 소개되지 않았던 중국 측의 연구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근대 동북아시아사에서 또 다른 주축인 중국의 경험과 기억을 접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이 지역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한국에 소개된 동북지역의 연구는 대부분 일본과 미국 측의 연구였다. 물론 그것조차 최근의 일이며 많지 않지만 동북지역의 경험과 기억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측의 연구를 간과할 수 없다. 보다 입체적인 동북지역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기존 연구는 동북지역 가운데서도 특히 만주국에 한정되어 있으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라고 하는 식민회사에 집중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러시아가 조차한 여순과 대련 및 동청철도(남만주철도)를 그대로 인수받았고, 다시 1915년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9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차하였다. 말 그대로 조차가 아니라 점령이고 영구 집권이었다. 그렇다면 일제의 만주 통치는 19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가 대체적으로 19319·18사변 이후 만주국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동북지역의 역사도 부분적인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흔히 관동주라고 일컬어지는 대련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식민통치대련40년사는 이러한 동북지역사의 전 기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또한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일본의 중국 동북지역 식민지배는 이른바 삼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 관동도독부(이후 관동청),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관동군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기적 차이에 따라 힘의 역학관계에 차이는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배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삼두마차의 역할과 활동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본 역서는 이 점을 충족시켜주는 몇 안 되는 의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체적으로 역사서술 자체가 민족주의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과할 수 없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도 본 역서에서 구체적으로 조망하고 있으므로 중국 동북지역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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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읽기 위한 해설서 또는 질문총서로써 간행된 <<타자로서의 서구>>는 스피박의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편으로는 친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친절하다. 친절한 것은 스피박의 책 순서에 따라 그녀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어서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것은 해설서이기 때문에 생략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피박의 논의가 많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불친절함이 오히려 스피박의 책을 손에 들도록 하는 힘도 있는 것같아 그리 나쁘지 않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박의 주요한 주장과 지금 여기에서 스피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참고가 되는 분명 좋은 해설서로 생각된다.

 

참고로 타자로서의 서구에서 언급된 스피박의 주장 또는 임옥희의 용어설명에서 앞으로 고민해야할 대목이 있어 옮겨 놓는다.

 

먼저, 서구의 사상과 문학에서 전개된 주체 속의 타자 설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최근 서구 사상가들의 작업들 중에 주체 속에 타자성을 설정하는 작업들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아감벤의 '탈주체의 주체'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일방적이지만 스피박은 기존의 제국주의적 독법이 타자를 억압, 삭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포스트식민시기에는 "타자를 단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주체의 이중적 자아로 만들어서 주체의 자기 확장을 도모하는 음험한" '포스트'(이건 나의 첨가어) 제국주의적인 독법이라고 비판한다. 타자 또는 타자성을 강조하는 서구중심적 작업 중에 이런 측면이 없는지 주의깊게 살펴봐야할 점이라고 생각든다.

 

그리고 임옥희가 정리한 용어 사전 중 정동(affect)을 옮겨 본다. 최근 정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주장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백발의 맑스주의 신사들의 '사랑'도 그렇고 최근 국내 학자의 '슬픔'도 그렇다. 근대가 이성이라면 후기 근대는 감정이라고 하는 얘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을 어떻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건강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될만도 하다. 일단 임옥희가 정리한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옮겨보며 특히 슬픔에 대한 내용에 주목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이성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혼란스런 느낌, 정서, 의지, 충동과 같은 여러 가지 정념, 즉 희로내락애오욕과 같은 전의식적이고 상징계 이전의 잔재로 남아 있는 어떤 흐름과 강도를 가지고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런 감정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지와 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강도와 흐름을 지니게 된다. 그것을 스피노자는 정동이라고 부른다. 스피노자에게 수치심, 복수심, 두려움, 유사희망, 불안, 공황 등은 상황에 따라 슬픔으로 정지될 수 있다. 수치심은 자신이 타자에게 비난받는다고 상상하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복수는 타인에게 슬픔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슬픔이다. 두려움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에 의해 자극되는 슬픔이다. 불안은 자신의 욕망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정할  때 비롯되는 슬픔이다. 공황은 작은 악을 통해 큰 악을 피하려는 욕망, 즉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방해당하는 일반화되고 대규모화된 두려움이다. 스피박에 따르면 서구 철학은 이런 정동을 이성에 종속시킴으로써 서구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업을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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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 2012-08-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 것에도 흔들림 없는 이성, 명백하고 확실하고 누구나 진실이라고 말하는,의 강조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업을 공고히 했다는 거군요? 항상 무엇엔가 휘둘려 보이는 감정을 컨트롤 하는 이성이 그리 대단해 보이긴 했지요. 지금까지는. 님의 글을 통해 정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감정이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 이렇게 살면 사회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일까?"
재밌습니다.
 

 

 

 

 

 

 

 

 

 

 

 

 

 

 

 

엑스포(EXPO)라고 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 선전장으로 1851년 런던의 하이든파크 수정궁에서 만국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나 제국주의시기의 만국박람회는 자국의 권력을 뽐내며 자국민에게 식민지 경영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선전하는 장일뿐만 아니라 식민지민에게조차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필요하다는 문명과 야만의 지배 이데올로기(식민주의)가 작동하는 동화의 장이기도 했죠. 그래서 반인종적이고 비인간적인 식민지민의 전시 또한 자행되었습니다. 조선인 또한 일본의 만국박람회 속에서 전시되는 수모까지 겪기도 했죠. 물론 이러한 반인종적이고 비인간적인 박람회는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행위자체가 문제시 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선전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술력 경쟁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런 공간으로 엑스포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기술력 경쟁장으로 바뀐 엑스포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의 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주체국의 기술적 우위를 국민에게 선전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간의 기술의 우열을 가리며 선진국과 후진국을 위계열적으로 질서 지우려는 근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지요. 주제관 및 주체국관, 그리고 국제관이 바로 그런 위계열적인 질서를 배우고 습득하는 공간입니다. 여수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물론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어긋남도 존재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보려고 하지만 후진국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나라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엑스포이기에 어떤 선전의 장인지 궁금했던 저로써는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습니다. 물론 이미 엑스포가 지니고 있는 권력의 현전으로써의 전시 정치라는 점에서는 흥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떤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그들의 질서 속에 끌어들이는지 관심이 갔죠. 그 질서를 알아야지 그 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엑스포는 과연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 너무나 단순해서 그러한 선전이 지금까지의 선전과 어떤 면에서 차별화되는지 또는 어떤 면에서 고도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엑스포는 단순한 자본주의의 유희 공간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또는 그러한 기대조차 미치는 못하는 장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진단도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주체국의 기업들이 기업관을 열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이점은 분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하면, 해양 또는 바다라는 주제에 대한 주체국 및 참가국, 그리고 참가기업의 생각 자체가 너무도 천변일률적이고 안일할 뿐만 아니라 어쩌며 그렇게 상상력이 빈곤한지 뭐라고 말하기 너무 힘든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먼저 주체국을 보죠. 한국이 주체국이니 한국관과 주체측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주제관을 보면 단번에 그 내용의 빈곤함과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주제관의 내용은 듀공이라고 하는 멸종위기에 빠진 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바다오염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와 듀공과의 만남을 통해 바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죠. 그런데 이 여수 엑스포가 진행되는 동안 MB정부는 포경을 재개한다고 했죠. 한국 정부의 천박함이란...더 기막힌 것은 한국관입니다. 한국관의 내용은 2개의 영상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영상물은 내용은 역사를 통해 바다와 가까웠을 때는 부강한 나라였고 바다와 멀어졌을 때는 가난한 나라였다는 메시지이며 두 번째 영상물은 함께 앞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해양개발사업에 적극 뛰어들어야하고 또 뛰어들고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대표적인 산업으로 담수플랜드사업과 조선플랜드사업을 들고 있습니다. MB스러워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바다오염을 말하며 듀공이라는 고래를 내세우면서 포경사업을 재추진하고 더불어 해양개발을 말하는 이 웃지못할 주체국과 주체 측의 전시가 과연 어떤 효과를 발휘할까요? 실소를 금치 못하는 전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서 국제관의 각 개별 국가관은 또 어떤가요. 대표적으로 미국관을 보죠. 힐러리와 오바마의 파트너쉽을 강조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영상물과 바다를 둘러싼 미국인의 풍경을 통해 결국 나의 바다우리의 바다이니 이를 공동으로 탐사, 관리하고 경영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어 함께 그런 아이디어를 내어 함께 관리하고 경영해야한다는 메시지이지요.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바다에 대한 인식이 이정도이니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죠. 그저 바다와 각 나라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소개가 모든 참관국의 전시 내용이었습니다. 그저 바다와 관련된 각 나라의 환경을 보여주고 바다오염을 말하며 함께 고민하자고 하는 것에 그치고 있죠. 정말 바다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해양이라는 이번 엑스포 주제에 대해 주체국은 물론이고 참가국 또한 전혀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엑스포에 수많은 국민의 혈세와 그것도 모자라 관객으로 또 관람료를 내는 한국민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국가라는 하는 권력기구가 반국민적인지 또 한번 세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업관, 참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바다에 대해 진지하게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기업을 엑스포에 끌어들이려고 정부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유언비어처럼 간혹 들려옵니다만 어이가 없긴 매 한가지입니다. 특히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 모으고 있던 삼성관을 보죠. 삼성관은 삼성호라는 파빌리온을 통해 바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천편일률적이게도 개발’(삼성이 이런 얘기도 하는 군요)에 의해 지구가 병들고 그 병든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삼성호가 노아의 방주처럼 나타나 그 속에 수많은 동물과 식물과 인간이 타게 됩니다. 그리고 삼성호에 탔던 어린 소녀가 지니고 왔던 장미꽃이 시들면서 빛과 물과 흙의 회복과 장미꽃의 다시 핌으로 이야기가 끝맺죠. 지구와 인간 멸망에 가장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인 삼성이 개발의 문제를 지적하며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얘기를 진행하다니 이것 또한 참 아이러니합니다. 참 자본은 무섭군요. 돈이 된다면 자신을 팔아서라도 자본을 확대재생산하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삼성이라는 기업이 얼마나 바다와 관련하여 상상력이 부재한지를 또한 명확하게 드러내 주더군요. 이처럼 기업관도 주먹구구식으로 기업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는 도저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수 엑스포는 만국박람회라는 그 태생부터 지금 전시되고 있는 내용까지 총체적 문제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위로 아닌 위로는 이제 엑스포는 더 이상 위계질서를 배우고 습득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전시의 정치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 변화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계의 정치적 장은 다른 장으로 이동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 또는 전자제품 전시장이 그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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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올리는 영화에 대한 저 개인의 후기는 영화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이 점에 유의하여 후기를 읽어주길 바랍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정은 복잡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떤 감정인지 미세한 떨림이 몸 전체를 휘감았다. 슬픔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사자후tv 속의 절규와 외침에 난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마 어떤 실재와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의 목도는 그렇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침묵으로, 말더듬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나타난다고.

 

그런데 실재를 직시해야한다는 그 철학자의 주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곤 했던 내가 이 장면에서 이상한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실재의 목도 이후를 생각할 수 없어서일까? 정확하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압도적 국가폭력 앞의 두려움이었을 테고 분노였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 장면 또한 실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큐라고 하지만 영화는 실재의 재현인 상징적 세계이며 또한 영화 속의 사자후tv 또한 상징적 세계이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실재를 가장한 환상이다. 이렇게 용산이라고 하는 사건의 실재는 렌즈 저 멀리 존재한다. 겨우 재현의 재현을 거쳐 우리에게 다가올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능하지만 그래도 국가폭력을 들춰내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왜 나는 재현의 재현에 실재의 목도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 것일까?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실재를 보고 느낀 감정이 아닌 것은 아닌가? 오히려 실재를 가장한 환상 효과는 아닌가? 왜 나는 이 장면에서 두려움과 분노를 느꼈던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그러다 문뜩 예전에 읽었던 홀거 하이데의 두려움과 분노에 대한 글(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이 생각이 났다. 국가폭력을 직간접적으로 목도한 우리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문제는 두려움을 통해 국가(자본)권력이 우리들에게 복종심, 경쟁심, 폭력성을 배우도록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는 폭력을 항상 가시적으로 상연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의도(어떤 의도인지 모른다)와는 달리 국가폭력을 순응하도록 하는 효과로도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감독은 국가폭력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감정이 들었다고 이미 밝힌바 있다.

 

그럼 또 다른 측면에서 느낀 저항의 긍정적 감정인 분노는 어떠한가? 알다시피 분노는 최근 월스트리트의 점령과 더불어 저항을 위한 긍정적 감정(정념, 정동)으로 주목받고 있다(분노하라!). 하지만 또 다시 하이데는 분노나 대중 심리 또한 대개 불의에 토대하기 때문에 결국은 정의롭고 합리적인 해결책(국가자본권력의 합리적 지속)으로 결론이 나버린다고 한다. 근원적인 치유가 아니라 임기응변으로 덮어버리는 봉합이다. 더군다나 만약 이 저항이 패배하는 경우 좌절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또 다시 적응하면서 현실로 복귀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하이데가 말하는 근본적 문제해결은 폭력을 상연하는 권력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벤야민의 내리치는 신의 폭력이 이에 해당될 것이며, 아감벤의 세속화또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다만 나는 순수 수단(국가와 자본의 폭력 중단)으로써의 신의 폭력세속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이후를 상상할 수 없는 파국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어쨌든 문제의 해결은 압도적 국가폭력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과 일시적으로 자극된 분노가 아닌 지속가능한 분노와 저항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영화는 마지막 국가폭력의 재현 장면이 아니라 감독이 그렇게 공을 들였던 앞의 장면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영화가 왜 철거민(특히 용산 철거민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철거민,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우리 모두)은 망루에 올라가야했는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하고 시의적절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용산참사에 참여한 철거민의 삶을 조명하면서도 우리에게 왜 망루에 올라갔는지에 대해 끝끝내 납득할만한 설명과 묘사를 보여주지 못했다. 근원적으로는 이 땅에서 우리는 왜 길거리로 내려앉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건 한국사에서 언제나 항상 유리걸식하는 민들의 모습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영화에서 철거민들이 매번 상투적으로 얘기하는 자본권력이란 무엇이며 이들이 자행하는 구조적 폭력은 또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 국가로부터 폭력단체라고 명명되며 이 사건의 주범처럼 인식되고 있는 철거민이 우리와 결코 다른지 않다는 주장. 그들은 결코 범죄자도 폭력조직도 아니라는 주장. 누구나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 압도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 등이 이 영화에 드러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어쩐지 설득의 실패를 폭력의 실체를 통한 분노로 연결시키는 감정의 정치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감정의 정치학은 국가와 자본이 너무도 잘 이용하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점이다. 만약 단순히 제목처럼 국가는 폭력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었다면 망루를 둘러싼 공권력의 폭력적 행동을 사자후tv 등의 당시 촬영분을 통해 재구성하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런 점에서 망루의 폭력에 대한 진실 공방은 또 다른 용산 영화인 <두 개의 문>에서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설득의 실패로 말미암아 어쩌면 국가폭력의 교육적 효과와 결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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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혁명하기에 대한 다섯 밤의 기록

 

책과 혁명, 뭔가 거창하지만 어쩌면 이때 혁명이라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에 대한 변혁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책에서는 그런 사회혁명에 기여한 사람들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혁명에 나설 수 있었고 어떻게 혁명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 혁명이 필요하다면 아주 낮은(?) 단계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의 변화가 혁명의 시작이 아닐까?

몸의 변화없는 혁명은 어떨까?

스스로의 변화 없이 사회만의 변화를 시도했을때 다시 변혁하기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경우를 역사를 통해 무수히 확인할 수 있으니까. 현실사회주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부조리하고 문제 투성이인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어쩌면 그 속에 빠져 있는 자신부터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변화에 두렵지만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처럼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의 변화(혁명)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옮긴이가 정리한 이 책의 의미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쓴다는 것은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이고,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은 곧 혁명이다. 그리고 '읽고 쓰는' 대상이 종이에 쓰는 것에 한정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극히 한정된 시공에서고 춤, 음악, 노래, 복식, 시, 회화, 영화 등 온갖 예술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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