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만주라고 일컫는 중국의 동북지역, 즉 동북3(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사 속 소용돌이의 현장이었다. , 만주는 청말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추진한 한족의 대량 이주가 이루어졌던 곳이며, 근대 초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이후 서구화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요동이 일본에 할양되었다가 러시아 등의 삼국간섭에 의해 도리어 러시아에 조차되었던 곳이다. 또한 제국주의 국가 간에 동아시아의 쟁패를 겨룬 러일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가 러시아의 기득권을 양도받아 본격적으로 동북지역을 침략하기 위한 제반 기관과 시설을 설치하였던 곳이다.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9·18사변과 괴뢰 만주국의 건국이 추진되었고, 7·7사변과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그리고 만주국의 붕괴가 일어났던 역사적 공간이었다.

중국 동북지역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쟁패를 다투던 싸움터였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 등 동북아시아의 다양한 민족들이 융합된 다민족 집합 공간이었다. 또한 일제의 점령과 더불어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 기지였으며 식민 통치의 우위를 전 세계에 드러내기 위한 일제의 각종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실험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각종 근대적 기획이 실험되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 실험과 경험, 그리고 기억은 이후 일본 본국은 물론 중국,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만주국이라고 하는 신생국가는 왕도정치를 내세우며 민족협화’, ‘오족협화라는 테제 속에 동아시아 여러 민족을 융합하고자 실험하였기에 민족적 다양성과 복합성을 내재한 공간이었다. 또한 만주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위성국, 또는 꼭두각시 나라들의 원형이었다. 따라서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등이 그들의 우방에 영향을 주었던 본보기였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동북지역은, 현재의 동북지역은 물론 그와 연관되었던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및 냉전 시대를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블랙박스와 같은 공간인 것이다.

동북지역이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동북지역과 만주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각각 새로운 근대 국민국가가 해당 지역 또는 인접한 지역에 들어서면서 각각의 국가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동북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잊어야 할, 또는 은폐해야 할 것으로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국가(민족)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부분적으로 이용되거나 부각되는 모순도 존재하였다. , 중국의 경우 동북지역은 일제에 의해 점령당해 억압받던 악몽의 시공간이었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건국된 만주국은 () 만주국으로 폄하되는 한편, 오랜 기간 전개되었던 중국 국공내전의 역사를 끝냈던 중국 공산당의 승리의 보루로만 기억되었다.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적인 만행을 숨기고 피해국으로 표상화하기 위한 과정 속에 만주국의 기억과 그 관계는 끝내 침묵하는 한편,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만주국 건국의 이상개발에 맞추어 식민지 근대화론만을 거듭 강조하였다. 한국의 경우 북한이던 남한이던 만주는 철저하게 일본인에게도 중국인에게도 박해받는 조선인들의 민족의 수난처였으며 항일 독립 운동의 메카로만 이해되었다. 이러한 각국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동북지역에서의 역사적 경험을 모두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부분적인 사실이 전체인 것처럼 호도되는 현실이 문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철저한 역사적 이해는 동아시아를 둘러싼 각국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고 각각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 불현듯 불거지는 역사적 갈등은 동북지역에 대한 각각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에 역사 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지역에 대한 입체적이고 올바른 역사적 이해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동북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연구하는 것과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동아시아 국가의 현재가 20세기 전반 동북지역의 실험과 경험 및 그 기억 속에서 잉태된 것으로 이해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동북지역의 경험과 실험이 이른바 전후 ‘1940년대 체제를 이끌었다는 전제 아래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로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연구에서는 주로 전후 정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주국의 관료 및 관동군에 대한 연구로부터 전후 일본 경제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그 조사부에 대한 연구 등이 이루어졌고 최근 들어 더욱 다각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만주국이 단순한 괴뢰국이라기보다는 그 건국의 이상과 관련하여 민족적 다양성과 복합성을 유지하고자 한 동아시아적 근대로 이해하는 탈근대적 관점의 연구가 서구 학계에서 전개되었다. 한국에서도 기존의 연구 경향을 비판하며 탈민족적인 시각에서 만주와 재만 조선인에 대한 연구가 국문학계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국문학계의 연구가 주로 담론을 통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다보니 기존의 수난처와 독립 운동의 메카라는 일면적인 만주 인식에 비판적 이해는 불러왔지만, 동북지역의 현실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학계에서도 만주학회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재만 조선인 연구로부터 만주국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는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동북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연구사적 의의를 통해 볼 때 일본식민통치대련40년사는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동북지역의 역사적 이해로써 소개되지 않았던 중국 측의 연구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근대 동북아시아사에서 또 다른 주축인 중국의 경험과 기억을 접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이 지역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한국에 소개된 동북지역의 연구는 대부분 일본과 미국 측의 연구였다. 물론 그것조차 최근의 일이며 많지 않지만 동북지역의 경험과 기억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측의 연구를 간과할 수 없다. 보다 입체적인 동북지역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기존 연구는 동북지역 가운데서도 특히 만주국에 한정되어 있으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라고 하는 식민회사에 집중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러시아가 조차한 여순과 대련 및 동청철도(남만주철도)를 그대로 인수받았고, 다시 1915년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9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차하였다. 말 그대로 조차가 아니라 점령이고 영구 집권이었다. 그렇다면 일제의 만주 통치는 19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가 대체적으로 19319·18사변 이후 만주국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동북지역의 역사도 부분적인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흔히 관동주라고 일컬어지는 대련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식민통치대련40년사는 이러한 동북지역사의 전 기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또한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일본의 중국 동북지역 식민지배는 이른바 삼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 관동도독부(이후 관동청),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관동군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기적 차이에 따라 힘의 역학관계에 차이는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배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삼두마차의 역할과 활동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본 역서는 이 점을 충족시켜주는 몇 안 되는 의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체적으로 역사서술 자체가 민족주의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과할 수 없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도 본 역서에서 구체적으로 조망하고 있으므로 중국 동북지역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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