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읽기 위한 해설서 또는 질문총서로써 간행된 <<타자로서의 서구>>는 스피박의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편으로는 친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친절하다. 친절한 것은 스피박의 책 순서에 따라 그녀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어서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것은 해설서이기 때문에 생략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피박의 논의가 많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불친절함이 오히려 스피박의 책을 손에 들도록 하는 힘도 있는 것같아 그리 나쁘지 않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박의 주요한 주장과 지금 여기에서 스피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참고가 되는 분명 좋은 해설서로 생각된다.

 

참고로 타자로서의 서구에서 언급된 스피박의 주장 또는 임옥희의 용어설명에서 앞으로 고민해야할 대목이 있어 옮겨 놓는다.

 

먼저, 서구의 사상과 문학에서 전개된 주체 속의 타자 설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최근 서구 사상가들의 작업들 중에 주체 속에 타자성을 설정하는 작업들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아감벤의 '탈주체의 주체'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일방적이지만 스피박은 기존의 제국주의적 독법이 타자를 억압, 삭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포스트식민시기에는 "타자를 단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주체의 이중적 자아로 만들어서 주체의 자기 확장을 도모하는 음험한" '포스트'(이건 나의 첨가어) 제국주의적인 독법이라고 비판한다. 타자 또는 타자성을 강조하는 서구중심적 작업 중에 이런 측면이 없는지 주의깊게 살펴봐야할 점이라고 생각든다.

 

그리고 임옥희가 정리한 용어 사전 중 정동(affect)을 옮겨 본다. 최근 정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주장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백발의 맑스주의 신사들의 '사랑'도 그렇고 최근 국내 학자의 '슬픔'도 그렇다. 근대가 이성이라면 후기 근대는 감정이라고 하는 얘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을 어떻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건강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될만도 하다. 일단 임옥희가 정리한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옮겨보며 특히 슬픔에 대한 내용에 주목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이성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혼란스런 느낌, 정서, 의지, 충동과 같은 여러 가지 정념, 즉 희로내락애오욕과 같은 전의식적이고 상징계 이전의 잔재로 남아 있는 어떤 흐름과 강도를 가지고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런 감정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지와 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강도와 흐름을 지니게 된다. 그것을 스피노자는 정동이라고 부른다. 스피노자에게 수치심, 복수심, 두려움, 유사희망, 불안, 공황 등은 상황에 따라 슬픔으로 정지될 수 있다. 수치심은 자신이 타자에게 비난받는다고 상상하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복수는 타인에게 슬픔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슬픔이다. 두려움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에 의해 자극되는 슬픔이다. 불안은 자신의 욕망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정할  때 비롯되는 슬픔이다. 공황은 작은 악을 통해 큰 악을 피하려는 욕망, 즉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방해당하는 일반화되고 대규모화된 두려움이다. 스피박에 따르면 서구 철학은 이런 정동을 이성에 종속시킴으로써 서구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업을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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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 2012-08-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 것에도 흔들림 없는 이성, 명백하고 확실하고 누구나 진실이라고 말하는,의 강조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업을 공고히 했다는 거군요? 항상 무엇엔가 휘둘려 보이는 감정을 컨트롤 하는 이성이 그리 대단해 보이긴 했지요. 지금까지는. 님의 글을 통해 정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감정이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 이렇게 살면 사회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일까?"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