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경제적인 공적 영역들을 ‘雜觀’, ‘夜話’, ‘片片’ 등의 짤막한 풍문, 소식 등 잡다함으로 대중에게 환기시켜 유통하는 방법은 개인의 사적 흥미(취미)를 창출/충족시켜 삼천리라는 ‘정치·문화적 공론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문화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천리의 입장은 대중의 욕망과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의 욕망이 정치·문화적 기획이라는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삼천리를 “취미 중심의 교양잡지”라고 하든지 “취미와 교양의 종합지”라고 하든지 모두 ‘취미(흥미)’가 대중과의 관계 맺기의 한 방식인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인지 삼천리는 “‘대중문화화’된 ‘정치 군사 국제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앎의 새로운 배치”라고까지 제기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취미화’라고 할 수 있다. 공사의 영역을 구분할 수 없는 근대사회에서 그래도 여전히 공사의 구분은 시도되곤 한다. 공적 영역을 정치의 영역이라고 하며 이를 사적 영역과 구분하여 보고자 한 고대와는 달리 근대는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과 구분할 수 없다. 그 만큼 ‘사회’가 공사 영역에 끼어들면서 공사영역의 구분이 어렵게 되었고 상호 연관관계(불리불가능) 속에서 주체와 주체를 둘러싼 환경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와 취미의 관계 또한 그렇다. 정치는 자타의 문제이지만 취미/취향은 개인의 문제이다. 물론 그 취미와 취향이 공통감각을 의미할 정도로 확대될 때 자타의 문제로 전환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취미/취향의 문제는 언제나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정치와 취미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뉠 수 있으며 이를 근대는 상호 긴밀한 관련 속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삼천리를 통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20~30년대 문화민족주의는 대중의 취미/취향의 형성뿐만 아니라 그 취미/취향을 정치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기획을 수립하고 전개하였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정치의 취미화’와 ‘취미의 정치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삼천리와 1930년대 문화민족주의자들은 근대적 취미/취향의 형성단계인 시대적 분위기와 자본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대중문화를 자신들이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취미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취미화’를 통해 정치의 장을 확보/확장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근대는 표상, 재편, 대표하는 것들이 언제나 권력을 획득하며 그에 따라 처음 기획된 내용과 의미는 사라지고 그 대리/대표/재현(re-presentation)의 권력화와 그에 따른 결과만을 배태한다. 저 유명한 맑스의 화폐 개념을 생각해 보라. 결국 정치를 ‘취미화’하여 대중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문화민족주의의 기획은 오히려 취미의 장에 정치를 가두는 꼴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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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으로 사회가 대립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이다. 광복절이든 건국절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일단 명칭 논란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확대되고 좌우익간의 정치적 적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징후로 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물론 전제하면 나는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적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그 긍정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유지, 강화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부분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역사적 상황에서의 긍부정은 진리로써의 긍부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족국가와 국민국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좌파들이 민족주의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심할 경우 극우파시스트와 같은 것으로 악평해버리기도 한다. 왜 최근에 탈민족담론 속에서 적대적 공존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민족과 국가는 다른 것이라고, 민족국가와 국민국가 역시 다른 것이라고 차이를 강조한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것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차이는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을 우선시 하는 사람과 국가를 우선시 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 사회에는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할 만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원래 우파는 민족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포획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은 반공을 그들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선택하도록 하였고 도리어 좌파가 민족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사제로 복무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때, 나는 민족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저항 민족주의로부터 출발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권력에 종속된 주체로 형성된 국가주의자들이 파시스트로 변질될 위험성을 다분이 지니고 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이광수가 대표적이다. 수사적 표현과 그 본질은 차이가 있으니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그럼 나는 식민지 조선을 바로보는 역사상이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건국절 운운 하는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인식은 식민지를 우리 역사에서 제거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식민지 조선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일본에 의해 근대화된 그런 식민지이며 개인의 능력이 만개한 그런 식민지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저들이 제기하는 논리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지적되는 성장론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거이다. 그들의 비판지점이 기존 역사학에서 제기된 식민지 수탈론에 대한 반발이라면 그 지점에서 의미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개발과 성장만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무한 인정과 국가권력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 이면에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가는 엄연히 내부적 적대를 조장하며서도 모순되게 그 적대를 봉합한다. 그런 기술이 공공사업을 통한 재분배이다. 그런데 국가는 애초에 약탈을 위해 존재함으로 그 약탈의 확대재생산을 위해서는 개발과 재분배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식민지는 어떤가?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수탈만을 강조하였다. 정초적인 약탈은 있겠지만 이후 지속적인 약탈을 위해서는 개발은 당연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경제사학계는 개발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약탈과 개발은 재분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 재분배는 약탈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 또한 식민지에 대해 개발-약탈(수탈)-재분배의 시스템을 가동하며 제국의 유지, 강화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본국과 식민지의 차이점은 개발과 수탈의 정도도 있겠지만 재분배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가 개발과 수탈, 각각 일면에만 집착함으로써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붙이자면 최근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탈근대적 논리 속에서도 이와 같이 개발과 수탈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재분배에 따른 차이를 시야에 넣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식민지 조선에서의 재분배 문제는 중요하다. 

  한편, 재분배는 개발 및 약탈과 정비례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면 약탈도 클 것이고 이를 다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또한 클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제국과 근대를 모두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역사적 예가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들을 전쟁에 뛰어 들게 하기 위해 일제는 극소수의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결국 더 많은 약탈을 위해서는 적으나마 정치적 재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개발과 수탈이라는 적대적 대립쌍을 각각 연구할 것이라 아니라 재분배를 통해 개발과 수탈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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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화는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상상적 동일화)를 넘어 상징계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빗금 그어진 기표로서 그렇게 말이다. 라캉의 상징적 동일화의 개념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 속에서 '호명'의 개념으로 재탄생했다. 상징계는 주체를 통해 작동된다. 즉, 상징계는 자기를 활성화시킬 주체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에 의해 이 주체의 자리가 채워져야 한다. 이렇게 큰타자는 누군가를 부르고 누군가는 이 부름에 응답하여 스스로를 주체로 내세우려면 그는 자신을 지워야 한다. 자신을 지운다는 의미는 예를 들면 관계맺는 공간과 밀접하게 연관맺고 있는데 농민이었다가 노동자가 된 사람이나 학생이다가 선생이 된 사람이나 솔로였다가 결혼한 사람이나 각각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항상 그 이전의 자신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가 어떻게/왜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느냐이다. 즉 누군가가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거세 위협이라는 '외부적 억압'을 제기한다면, 알튀세르는 호명에 의한 '상상적 오인'이라고 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 가능성을 전제하였다. 그런데 왜 주체가 그 자리를 선택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그 선택은, 그 자리차지함은 '우연(맹목적 필연)'에 호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속에서는 주체화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주체화의 거부, 즉 혁명은 이루어질 수 없다. 혁명불가능성이 애초부터 전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극한으로 밀고 가 뚫어버린 사람이 지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젝은 라캉의 '강요된 선택'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라캉이 말하는 강요된 선택은 존재(육체)와 의미(상징계)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누군가가, 즉 선-주체가 육체적 존재를 택한다면, 그는 쾌락을 얻지만 상징계 밖에 처한다. 고대의 추방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고대적 추방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결국 이것은 상징계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 속에서 그의 쾌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반면 상징계를 선택한다면, 즉 큰타자의 호명에 부응한다면 그는 삶의 의미를 얻지만, 동시에 쾌락을 상실한다. 즉 그는 상징계에 의해 노예적으로 착취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라캉의 강요된 선택은 누군가가 어떻게 주체가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주체에게는 쾌락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던가 아니면 차선의 선택으로서 상징계를 선택하던가 양자택일의 강요된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선택은 불가피한 강요에 의한 선택이며,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는 것은 겉보기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주체에게는 극단적인 경우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는 주체가 상징계의 동일화를 벗어날 가능성을 암시하게 된다. 결국 돌파구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죽음의 선택이 곧 라캉에게서 상징계로부터의 분리이다.(지젝은 상징적 죽음에 대한 예로 항상 여성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안티고네와 잉그리트 버그만이 바로 그들이다. 극단적으로 여성만이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상징계 속의 주체는 결국 '강요된 선택'(상징적 죽음이냐 주체화냐)과 '환상의 뇌물'을 통해 이중적으로 포박된 존재인 것이다. 주체화란 상징계의 큰타자에 의해 '강요된 선택'을 통해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이를 매꾸기 위한 환상을 그 구멍에 진연하는 그런 것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징적 죽음이라는 '진정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젝은 여성만이 상징적 죽음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 남성은 안되는가? 가부장제적 사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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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권력의 시선이 폭력적임을 그 때문에 그로 부터 벗어날 사적인 내밀하고 은밀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말하고 있는 벤담-오웰류의 권력의 시선으로부터 달아날 장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낙담하며 이같은 권력의 시선, 통제의 시선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러나 과연 그런가? 오히려 이와 정반대는 아닌가? 

 

"오늘날 우리의 불안은 통제받고 있다는 불안이 아니라 타자의 응시에 항상 노출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최근 아동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파렴치범들의 소행에 대해 그 근절책으로 나온 것들을 보라. 더 많은 감시카메라를 사회 곳곳에 달아야한다고 우리 스스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우리의 모습을 언제든지 보여주지 못해 환장해 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각종 블로그, 그리고 카메라 들을 보라. 그래서 “우리라는 주체는 자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일종의 존재론적 보증자로서 카메라의 응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라캉을 통해 지젝은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이 생각하는 환상, 진정한 환상은 우리를 매혹시키는 어떤 장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된 응시라고. 요컨대 가장 기초적인 환상의 장면은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되는 어떤 매혹적인 장면이 아니라 '저 밖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며, 꿈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의 꿈의 대상'이라는 생각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트루먼 쇼>나 네델란드에서 시작하여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각종 '리얼리티 쇼'를 보라. 적절한 예는 무궁무진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가 좋은 예일 것이다. 이와 같은 “‘리얼리티 쇼’의 주체/연기자들도 인위적 격리공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연기하지만 <트루먼 쇼>와 대조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 역할을 '실제상으로' 살아간다. 문자 그대로, 허구가 현실과 뒤엉켜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실제의 삶과 연기된 삶 사이의 구분은 '해체'되어 버리고 어떤 면에서 그 둘은 일치하게 된다.”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 엔디와 솔비의 경우 실제인지 가상인지 구별이 안간다. 가상에서 준 반지를 실제에서 잃어버졌지만 또 다시 가상에서 그것이 가상 부부간의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의 삶' 그 자체를 연기하고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그렇다면 텔레비젼은 우리의 실제 사회적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어떤 허구적 세계를,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도피적 오락거리를 제공한다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리얼리티 쇼'에서는 마치 현실 그 자체가 궁극적인 도피적 허구로 제공되고 레크리에이션(재-창조)되는 것만 같다.”

곁가지지만 여기서 지젝은 라캉의 '성 관계는 없다'라는 말을 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섹스란 언제나-이미 어떤 환상적 시나리오를 바닥에 깔고 있는데, 그 시나리오는 사실상 자위행위를 이끄는 환상과 동일한 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나를 쾌락에 들끓게 만드는 것은 나와 살을 맞대고 있는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투영하고 있는 은밀한 환상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언제나-이미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며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어떨까?”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아들로서, 딸로서, 학생으로서, 선생으로서, 애인으로서, 부부로서, 스승으로서, 제자로서, 무한~~~로서

이 지점에서 지젝은 “'전체주의의 위협'이라는 것이 이처럼 타자의 응시가 가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 실현됨으로써 제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데올로기란 숭고한 대상>>에서는 반유대주의를 예로 들었지만 그것보다 여기서 들고 있는 예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그의 논의를 더 따라가 보자.

1999년 마지막 날, 전 세계는 한 가지 사건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밀레니엄 버그라는 비-실체에 출현에 대한 불안 말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객관화된 앎, 그래서 우리 존재의 상징적 실체이며 우리의 상호 주관적 공간 전체를 관장하는 라캉식으로 말하면 '큰 타자') 것이지만 1999년 마지막 날 앎의 결여('00'이라는 숫자를 읽지 못하는 컴퓨터의 무능)가 왔다. 그 때문에 각종 혼돈이 예견되었던 것이고 불안이 야기되었던 것이다. 물론 아무런(? 아마 혼돈이 온 곳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일이 없었다.

이를 지젝은 “우리가 현실에 접근하도록 매개해주고 지탱해주는 디지털 네크워크가 만약 제거되었더라면, 거기서 우리는 매개 없는 진실 속에서의 자연적 삶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폐허와 맞닥트리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밀레니엄 버그야 말로 “라캉이 '작은 타자', 욕망의 대상-원인, 상징적 질서인 큰 타자의 결여를 구현해주는 사소한 티끌 한 톨, 대상 소문자a라고 불렀던 것이며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들어오는 작은 문”이라고 한다. 요컨대 “버그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작동 양상을 버그의 다섯 가지 뜻(①고장/결함, ②병, 감기 바이러스 같은 것, ③벌레, ④광신도, ⑤도청 장치)을 가지고 설명한다. “사소한 결핍이나 고장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병으로 변형되고, 그 다음엔 하나의 실정적 원인으로, 질서를 교란하는 벌레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를 비밀리에 감시하는 이 벌레에는 어떤 심적 태도(열광)가 부여된다. 이처럼, 처음에는 그저 뭔가 잘못 들어간다는 정도에서 순전히 부정적인 양상에 불과했던 오작동이 어느새 적극적인 실존성을 획득하게 되며, 그 실존성은 마치 벌레처럼 박멸되어야 할 열광적(광신도)도청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2000년 1월이 되고 아무 일이 없자, 세계는 다시 후편집증적 딜레마(각종 비난의 목소리, 음모론 등등)에 빠졌다. 여기서 지젝은 라캉을 끌어들여 “다시 한번 가장 순수한 형태의 대상a, 욕망의 대상-원인이 '되는' 텅 빈 공허를 만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 진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조차 분명치 않은 어떤 실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태풍의 눈처럼 그 주위 전체에 엄청난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밀레니엄 버그를 히치콕의 맥거핀의 하나와 같다고 하고 있다.(아~~~ 그 맥거핀...ㅎㅎㅎ)

이제 결론이다. 그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이명박정부가 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장악하고자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모두 잘 알 것이다. 이에 대해 들뢰즈의 유목민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틈새, 균열 등등의 게릴라씩으로 대응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다음 아고라가 장악되면 또 다른 곳으로, 그 곳이 장악되면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하며 저항하는 식 말이다. 그러나 지젝은 큰 타자인 디지털 네트워크는 그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하며 적절한 유물론적 응답으로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 자유의 섬으로 후퇴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의 더욱더 강력한 사회화하여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새물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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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과 경쟁자, 짝패와 차이의 소멸, 그리고 만장일치적 폭력의 희생제의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의 본능은 모방욕망이며 이 모방욕망은 라캉의 거울이론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자아는 타인 즉 모방모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자신과 모델은 점차 경쟁자의 위치에 두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점점 소멸해가면서 둘은 짝패가 된다. 이러한 짝패들이 넘쳐나는 사회 즉 차이가 소멸된 사회는 상호폭력이 팽배한 사회이고 이런 사회의 지속은 멸망과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제의가 필요하게 된다. 특히 짝패 중 괴물같은 짝패가 희생물로 선택되며 이 희생물에 대해서 만장일치적 폭력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평화가 찾아오게 되고 희생물도 다시 제의적 대체에 따라 실질적인 죽음은 외부에서 가져온 희생물에 의해 이루어지고 내부의 희생물은 신성 즉 성스러움을 지니게 된다.

=> 이것을 식민지 시기 조선과 일본으로 전치하여 보면 어느 정도 유사한 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개항과 동시에 근대화를 모방하게 된다. 그 때는 서구적인 근대화부터 일본식, 중국식 등 다양한 모방의 대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병합이후에는 유일하게 모방의 대상은 일본이 된다. 조선의 일본 모방은 일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고 둘은 여전히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면서 경쟁자가 되고 결국은 외부에서 볼 때 차이의 소멸을 초래하여 짝패가 된다. 차이의 소멸은 지라르에 의하면 희생위기이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 희생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거친 대입이지만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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