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세상
주원규 지음 / 새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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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아들을 가진 이혼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대학생 딸을 가진 이혼남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는 간병인과 보호자의 인연으로 처음 만났다. 이혼의 경력을 가진 남과 여는 새로운 희망을 위해 재혼한다. 

 

서로의 첫번째 결혼이 실패로 끝났기에 두번의 시행착오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보다 충만했으리라. 그러나 주위환경은 그들을 행복의 길에 서 있게 만들지 않았다.

 

남자는 하루아침에 어떠한 해명도 없이 회사에서 짤렸고 직원들 모두가 실직 당한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속시원히 사연이라도 듣고자 사장과 면담을 요청하며 3개월째 농성중이다. 농성기간내내 집에는 귀가조차 못하고 있다.  집안에 수입이 끊기자 아내는 아내대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딸도 자신의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박봉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혼자 남겨진 치매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일하러 가면서 문을 잠그고 간다. 몇 번 집을 나간 후로 며칠째 찾아다니는 애를 먹은 후로 취해진 조치였다. 요양시설에라도 맡기자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착한 며느리는 차마 남의 손에 시아버지를 맡기지 못한다. 간병인의 직업을 가진 그녀라 그 쪽 사정을 누구보다 뻔히 알기 때문에 더 못 보낸다고 했다.

 

고등학생 아들의 입장은 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빠듯하고 가난한 형편에 강남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모양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나, 워낙 유명한 학군의 학교를 다니는 터라 상대적인 박탈감과 불합리함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고액과외와 빵빵한 재력으로 무장한 학생들 틈에서 찬밥 신세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런 아이들은 가난한 그를 그들만의 리그에 끼워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탈선도 아니고 모범생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집에서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데 현실에서의 불평등과 차별대우는 그에게 삐뚤어진 마음을 갖게 했다.

 

고단하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을 한 명씩 보여주며, 독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읽는내내 마음이 참 무거웠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후퇴도 전진도 어려운 상황에 그들은 놓여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제각기 어려움에 처한 하루였다.  정말로 끝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세상이 뒤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딱! 그 생각이 들었을때, 어휴! 이젠 큰일났다! 정말 최악이네! 싶을때, 기적처럼 세상이 바뀌었다.

그들이 밟고 서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9.0 강도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모든 상황이 복잡하게 뒤죽박죽으로 엉키고, '어휴, 어휴' 한숨만 나오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었는데 다행하게도(?) 한 개인의 복잡한 사연은 더 큰 세상의 혼란속에 묻혀버렸다.

 

나는 그 장면이 이 최악의 가족에게 한 가닥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순간으로 이해됐다. 이 큰 혼란속에서 모든 이의 생각은 오로지 "살아 남아야 한다" 였다. 어떤 일이 있건 살아 남아서 아내와 딸을, 남편과 아들을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했고, 이제는 단 한칸 짜리 방이어도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심어주게 했다.

 

모든게 절망적이고 희망이 안 보이던 가족이었지만,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는 생명력을 심어줬다.

그들이 느끼던 절망이 컸지만, 더 큰 재앙이 왔을때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삶의 고통이 그들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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