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남자친구 이야기 ㅣ 사계절 1318 문고 16
크리스티앙 그르니에 지음, 김주열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평점 :
『잔 레플렉스』열 여섯살의 소녀가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잔'은 어렷을때 일찍이 엄마를 잃었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기엔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오래지 않아 아빠는 재혼을 했고, 잔에겐 또 다른 엄마가 생겼다. 평범한 가정을 이룬 듯이 보였는데, 곧 아빠마저 화재사고로 엄마를 뒤따랐다.
새엄마는 그 때 남동생을 임신중이었는데, 너무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남편 없는 가정을 이끌어 갈 책임을 넘겨받은 그녀는 계속 슬퍼할 수 만은 없었다. 집도 멀리 이사하고, 남편에 대한 것은 작은 사진 한장 남기지 않고 모두 처분했다. 그 사건 이후로 '잔'네 집에서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어떤 것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되는 '금지어'가 되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의 이야기는 편한 주제는 아니었다.
어느 날 잔은 우연하게 "피아노 독주회"에 가게 된다. 평소 클래식에는 관심도 없고, 전혀 무관하게 살았던 '잔'이어서 연주회는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장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연주회가 잔의 인생에 큰 파장을 예고할 줄이야... 원래 연주하기로 했던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컨디션 난조로 취소 되었고, 수제자가 대신해서 연주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연주자의 교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탓인지 '잔'은 클래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된다. 잔의 아버지는 실력있는 녹음기사였다.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에는 음악을 녹음하는 전문적인 녹음기사가 따로 있었고, 녹음기사의 능력에 따라 음악의 질이 크게 좌우되던 시절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연주회에 갔다가 큰 감동을 받고 돌아온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타로 나온 수제자 '폴 니에만'의 열성적인 팬으로까지 발전하면서 모든 일상에서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는 아버지에 대한 이모저모들. 녹음기사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실제로 작곡도 했었다는 기록물들이 지하 창고에서 발견된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것은 작은 사진조차 갖고 있지 않은 '잔'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큰 사건이다.
한편, 클래식 정보를 얻기 위해 친구가 된 '피에르'와는 고마움을 넘어 조금씩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프로의 경지에 오른 피아니스트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알려지지 않은 재능을 알게 되는데...
이 책은 같은 작가가 '잔'의 생각과 시선으로 쓴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피에르'가 주인공인 <내 여자친구 이야기>로 된 커플 소설이다.
각각의 이야기 전개는 같은 내용과 동일한 사건으로 흘러가지만, 화자가 다르고 또 남자와 여자라는 '다름'에서 오는 차이가 있어서 남자입장, 여자입장에서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당시엔 이해되지 않던 것이 두 권을 모두 읽고 나서야 이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왜 그 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잔'의 이야기를 먼저 만났는데, 클래식의 세계로 처음 입문하는 입장에서 큰 공감을 하며 읽었다. 잔 처럼 나도 클래식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연주자나 유명한 피아노 곡명은 잘 모르지만, 클래식을 듣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실제로 책을 완독하고서 <봄의 제전>과 <방랑자 환상곡>을 검색해 감상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