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난하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유예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 쉽게 얻는 무언가를, 가난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이의 마음은 자존심 상하고, 몹시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이다. 그래서 가난하면 불행하고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하나같이 돈 없어서 겪는 결핍과 설움최소화 하고 싶어 하고, 더 나아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부자를 꿈꾼다.

 

주인공은 열 두살의 '로버트 펙'으로, 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자전적 소설로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를 사는 보통의 열 두살 짜리의 아이들을 보자. 초등학생일테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게 그들의 주된 일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라기 보다는 부모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다. 집안일을 돕기는커녕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다. 어른들 말도 잘 안 듣고, 이기적이고 때로 반항적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만화를 허락하면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하고 있을 아이들이다.

 

물론, 시대와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소설 속 주인공과는 극과 극으로 큰 대조를 이룬다.

로버트는 가난한 집안에 막내로 태어났다. 누나들은 모두 시집가고, 위로 둘이나 되는 형들은 어린 나이에 운명을 달리했다. 부모님과 독신의 이모 그리고 로버트가 한 지붕아래서 함께 살지만, 아빠 혼자 벌어 4인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빠듯한 살림이다. 아빠는 '도살자' 또는 '도살꾼' 이라고도 불리우는 돼지를 도축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다.

 

로버트는 참 착실한 아이다. 가난한 집이 충분히 짜증나고, 글을 모르는 무식한 아빠와 도살꾼 이라는 직업이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을 만도 한데 창피해 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또 집에서 자신이 맡은 일들을 불평없이 하며 지낸다. 닭, 돼지, 소 등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일과 배설물을 치우는 일이 로버트의 일이다. 가끔 아빠가 아버지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한 남자인 로버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따라 나선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이라면 어리다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며 어른이 되어가는 로버트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자신이 형제처럼 아끼던 돼지 '핑크'를 가족들의 끼니를 위해 내 놓은 일은 너무 감동이었다. 차마 핑크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어 뒤돌아 울던 로버트의 모습에서 울컥했었다. 어린 나이지만 마음은 벌써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비뚤어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로버트 처럼 일찍 철 들어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가 있다. 무슨 차이일까?

 - 아이의 성격에서 비롯한 것일까?

 - 부모의 사랑때문일까?

나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로버트의 부모를 보면, 가난하지만 부부애가 좋았고 서로를 존중했다. 아이와 눈 맞추며 대화를 하고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있었다.

 

 

소설은 작가가 겪은 유년의 일상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따뜻함이 들어 있다. 가난했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그 시절의 그리움이 묻어 난다.

 

우리 아버지 헤븐 펙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돼지 잡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참 다정 다감하셨습니다.

 

책 머리에 쓰여진 글귀이다.

 

로버트의 나이 열 두살!

열 두살 이면, 아직 응석 부려도 충분히 어울리는 나이가 아닌가. 그런 로버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이었다. 로버트에게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더 절실하게 필요했겠지만, 훌쩍 커버린 지금의 저자에게도 아버지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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