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1년 반 넘게 함께 동거하던 여자 친구가 떠나던 날. 특별한 이별의 사유도 듣지 못하고 버림받던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발적인 백수가 된다. 한 병원의 방사선과에 다니던 그는 사랑에 실패한 이후로 모든 게 시시하고 무의미해졌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를 돌봐줄 가족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세상에 모든 슬픔을 혼자 끌어 않은 듯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왔다. 그의 집 발코니 주위를 맴돌며 어슬렁거리더니 집 안으로 들어와 그의 삶에 끼어들었다. 그냥 평범한 고양이가 아닌 아주 잘 생긴 고양이였다. 길 잃은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도둑고양이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그 시점에 그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필요했다고 고백한다. 그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다른 나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사라다 햄버튼] 그 잘 생긴 고양이의 이름이다. 특이한 이름을 짓게 된 사연은 생각보다 싱겁다. 고양이와 처음 만나던 날 샐러드를 맛있게 해치우는 모습에서 '샐러드'를 사용했는데, 발음하기 쉽게 '사라다'로 따오고, 마침 보고 있던 축구경기에서 설기현선수의 소속팀인 '울버햄튼'의 '햄튼'을 따왔다. 역시 발음이 어려워 '햄버튼'으로 바꿔서 ‘사라다 햄버튼’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다. 고양이는 제 이름인 줄은 아는지 ‘사라다 햄버튼!’ 하고 부르면 돌아보고는 한다.
이 책은 그가 사라다 햄버튼과 보낸 한 계절에 대한 이야기다. 고양이 얘기와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 나를 길러준 아버지와 친아버지를 만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나를 떠난 S와 새로 알게 된 R의 이야기가 한데 섞여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흔하고 평범한 일상을 들려준다.
한 계절이 지날 즈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다.
떠난 S는 여전히 떠나있고, 부모는 하늘나라와 캐나다로 먼 곳에 있다. 새로 만난 R도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나고, 고양이도 예전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로 했다. 그도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이력서를 준비한다. 주인공이 겪은 한 계절의 이야기만 남긴 채, 그와 관련된 다른 인연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사랑을 잃었다고 징징거리며 아프고 외롭다고, 상처 받았다고 호들갑 떨지 않아 좋았다. 친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 혼란스러움의 표현이 유난스럽지 않고 압축된 듯 보이는 게 좋았다. 위로해 달라고 소리치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자신의 일상을 얘기하는 게 담백하니 좋았다.